#1. 2005년 개교한 서울 노원구 A고등학교. A고교는 학교 건물을 다 지어놓고도 1년이 지나서야 개교할 수 있었다. A고교가 남녀공학이라는 이유로 주변 중학교 학부모들이 해당 교육청에 찾아가 항의를 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1년 만에 문을 열었으나 A고교의 첫해 입학생 370여 명 중 1회 졸업생은 340여 명에 그쳤다. 나머지 학생들은 전학을 갔다. 타 지역으로 전학을 갔다가 다시 A고교 인근의 단성(單性)학교로 전학하는 전략을 쓴 경우도 있었다. ‘2010학년도 서울시 후기 일반계 고등학교 경쟁률’에서 A고교는 주변 유명 사립학교 경쟁률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사교육 트라이앵글’ 중 하나인 노원구는 학부모의 교육열이 높고 성적에 대한 기대가 큰 지역으로 유명한데, 남녀공학에 가면 성적이 떨어진다는 우려 때문에 A고교가 푸대접을 받고 있는 것. 결국 A고교는 지난해 단성학교 전환을 추진했으나 예산, 정책 등의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도 단성학교 전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2. “아, 우리 학교 망했어요. 망했어!”
A고교에서 3km 정도 떨어진 B고교. B고교는 남학교로 개교했으나 1999년 서울시 교육청의 남녀공학 확대정책에 맞춰 남녀공학으로 전환했다. 한때 전국 상위 80위권에 드는 성적이었으나 2010년 고교선택제가 도입된 이후 B고교의 미래는 어두워졌다. 이 학교 2학년 조모 군은 학교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후배들을 보면 답답해요. 우리 학교는 1학년이 3학년 같고, 2학년이 1학년 같죠. 고교선택제가 시행되면서 인근에서 논다는 애들이 다 모였어요. 담배 피우다 걸린 학생도 1학년이 더 많을 정도니까요. 머리 길고 껄렁한 3학년처럼 보이는 학생들이 1학년이에요.”
고교선택제 2단계 학교별 경쟁에서 B고교는 미달됐다. A고교처럼 남녀공학이라는 점이 불리하게 작용한 것. 주변 사립고교들은 단성학교다. 올해 B고교 1학년의 학업성적은 2, 3학년보다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년도 1학년 모의고사에서 1등급 학생이 20여 명이었던 반면, 올해는 10여 명 수준이다. 그나마 1등급 학생들이 B고교를 선택한 이유도 내신성적 관리를 위해서다.
한국 사회에서 남녀공학이 확대되기 시작한 것은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녀평등의식 고양, 사회성 발달 등 인성교육 차원에서 남녀공학 확대정책이 추진됐다. 1999년 전국 일반계 고교의 남녀공학 비율은 43.9%였으나, 2009년에는 13.1%포인트 증가해 현재 874개교(57%)에 이른다. 서울시는 유인종 전 교육감 재임기간(1996~2004년)에 적극적으로 단성학교를 남녀공학으로 전환했다.
전환 초기에는 이성에 대한 호기심 덕에 남녀공학의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10여 년이 지난 지금 남녀 합반으로 시작한 학교들이 대부분 분반으로 바뀌었고, 아예 단성학교로 전환하는 등 남녀공학의 인기가 시들해지고 있다.
이처럼 남녀공학 기피현상은 대학 입시를 제1가치로 삼는 한국 고교의 현실이 한몫했다. 남녀공학에 가면 성적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성적 우수학생들이 남녀공학을 기피했고, 그럴수록 남녀공학의 성적은 떨어졌다. A고교 상위권인 박모(18) 학생은 “남학생, 여학생이 자연스럽게 친구로 지내면서 사회성을 기르고 대인관계도 넓힌다는 장점이 있지만, 머리를 한 번 더 감고 거울도 한 번 더 보는 만큼 성적이 영향을 받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실제 남녀공학학교에 비해 단성학교의 학업성취도가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의 국어, 사회, 수학, 과학, 영어 5개 교과에 대한 고교 1년생의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에서, 단성학교 성취도 평균이 남녀공학보다 높았다. 또한 2005~2009년 대학수학능력시험 언어·수리·외국어 영역 점수에서도 단성학교가 남녀공학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1990년대 후반 정부가 남녀공학을 장려했음에도 경기고, 서울고, 경복고, 숙명고 등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단성학교들은 남녀공학으로 전환하지 않았다. 특히 교육청의 간섭을 덜 받는 사립고교들이 단성학교를 고수했다. 그 결과 고교 전체의 남녀공학 비율이 절반을 넘는 것에 비해 사립고교의 남녀공학 비율은 35.1%에 그친다. 지난 10년간 증가폭도 9.3%포인트에 머문다. 한 전통 명문 고교의 교사는 “동문회의 입김이 세다. 남녀공학이 되면 학교에 손해 갈 것이 뻔하기 때문에 굳이 전환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중상위권 남학생들 상대적인 손해
또한 남녀공학 기피현상은 여학생보다 남학생에게서 더 많이 나타난다. 이는 ‘내신성적에서 남학생이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는 믿음 탓이다. 두 아들을 둔 주부 박미숙(45) 씨는 “첫애는 남학교에 보내고 싶었지만 남녀공학에 갔다. 결과적으로 내신성적에서 손해가 컸다. 둘째가 중학생인데 꼭 남학교에 보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 고교 교사는 “여학생 학부모들은 단성학교로의 전환을 그리 반기지 않는다. 성적에서 남학생들이 바닥을 깔아주니 굳이 전환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귀띔했다.
남녀학생 간 내신성적의 격차는 수행평가에서 비롯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정해숙 선임연구위원은 ‘남녀공학 중등학교에서의 성별 교육실태와 향후과제’에서, 수행평가를 합산하는 전체 성적에서 남학생의 상위 등급 비율이 다소 감소하고 하위 등급이 증가한 것으로 미루어, 수행평가가 여학생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았다. A고교 교무부장은 “상위권에서는 남녀 학생 간 차이가 없다. 하지만 중상위권에서 남학생들은 꼼꼼하지 못해 손해가 크다”고 말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당초 기대했던 남녀평등의식 고양 효과도 적은 것으로 조사돼 남녀공학의 입지를 좁게 한다. 최근 성역할의식 조사에서 남녀공학 학생이 단성학교 학생보다 덜 진보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성 발달 조사에서도 남녀공학 학생의 사회점수가 단성학교 학생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낮았다. 남녀공학의 장점으로 꼽히던 학원폭력 방지 효과도 미미하다는 평가다. 관할경찰서의 한 강력계 형사는 “밖에서 싸우거나 사고를 치는 녀석들은 대부분 남녀공학 학생들이다. 애정문제가 얽히면서 더 싸우는 것 같다”고 전했다.
서울 송파구에서 고교선택제 2단계에서 미달된 2곳은 모두 공립 남녀공학이었으며, 그중 한 곳은 신설학교였다. 서초구와 강남구의 2단계 미달 고교 중 절반 이상이 공립 남녀공학이었다. 각종 특수목적고교와 사립고교가 성적 올리기에 몰두하는 동안, 공립에 남녀공학이라는 이중고까지 짊어진 일반 고교들은 나날이 경쟁력을 잃고 있다. 현 상황을 두고 정 선임연구위원은 “대학입시에 매몰된 탓에 남녀공학의 필요성에 대해 제대로 논의한 바 없다”고 지적한다.
“성급하게 남녀공학의 폐지를 주장하기보다 남녀평등, 인구변화, 대학입시 등을 고려한 종합적인 논의가 필요합니다.”
#2. “아, 우리 학교 망했어요. 망했어!”
A고교에서 3km 정도 떨어진 B고교. B고교는 남학교로 개교했으나 1999년 서울시 교육청의 남녀공학 확대정책에 맞춰 남녀공학으로 전환했다. 한때 전국 상위 80위권에 드는 성적이었으나 2010년 고교선택제가 도입된 이후 B고교의 미래는 어두워졌다. 이 학교 2학년 조모 군은 학교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후배들을 보면 답답해요. 우리 학교는 1학년이 3학년 같고, 2학년이 1학년 같죠. 고교선택제가 시행되면서 인근에서 논다는 애들이 다 모였어요. 담배 피우다 걸린 학생도 1학년이 더 많을 정도니까요. 머리 길고 껄렁한 3학년처럼 보이는 학생들이 1학년이에요.”
고교선택제 2단계 학교별 경쟁에서 B고교는 미달됐다. A고교처럼 남녀공학이라는 점이 불리하게 작용한 것. 주변 사립고교들은 단성학교다. 올해 B고교 1학년의 학업성적은 2, 3학년보다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년도 1학년 모의고사에서 1등급 학생이 20여 명이었던 반면, 올해는 10여 명 수준이다. 그나마 1등급 학생들이 B고교를 선택한 이유도 내신성적 관리를 위해서다.
한 남녀공학 고등학교의 수업 모습.(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전환 초기에는 이성에 대한 호기심 덕에 남녀공학의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10여 년이 지난 지금 남녀 합반으로 시작한 학교들이 대부분 분반으로 바뀌었고, 아예 단성학교로 전환하는 등 남녀공학의 인기가 시들해지고 있다.
이처럼 남녀공학 기피현상은 대학 입시를 제1가치로 삼는 한국 고교의 현실이 한몫했다. 남녀공학에 가면 성적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성적 우수학생들이 남녀공학을 기피했고, 그럴수록 남녀공학의 성적은 떨어졌다. A고교 상위권인 박모(18) 학생은 “남학생, 여학생이 자연스럽게 친구로 지내면서 사회성을 기르고 대인관계도 넓힌다는 장점이 있지만, 머리를 한 번 더 감고 거울도 한 번 더 보는 만큼 성적이 영향을 받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학교 자습실에서 공부하는 학생들. 대한민국 고교생은 대학입시를 위해 산다.
1990년대 후반 정부가 남녀공학을 장려했음에도 경기고, 서울고, 경복고, 숙명고 등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단성학교들은 남녀공학으로 전환하지 않았다. 특히 교육청의 간섭을 덜 받는 사립고교들이 단성학교를 고수했다. 그 결과 고교 전체의 남녀공학 비율이 절반을 넘는 것에 비해 사립고교의 남녀공학 비율은 35.1%에 그친다. 지난 10년간 증가폭도 9.3%포인트에 머문다. 한 전통 명문 고교의 교사는 “동문회의 입김이 세다. 남녀공학이 되면 학교에 손해 갈 것이 뻔하기 때문에 굳이 전환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중상위권 남학생들 상대적인 손해
또한 남녀공학 기피현상은 여학생보다 남학생에게서 더 많이 나타난다. 이는 ‘내신성적에서 남학생이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는 믿음 탓이다. 두 아들을 둔 주부 박미숙(45) 씨는 “첫애는 남학교에 보내고 싶었지만 남녀공학에 갔다. 결과적으로 내신성적에서 손해가 컸다. 둘째가 중학생인데 꼭 남학교에 보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 고교 교사는 “여학생 학부모들은 단성학교로의 전환을 그리 반기지 않는다. 성적에서 남학생들이 바닥을 깔아주니 굳이 전환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귀띔했다.
남녀학생 간 내신성적의 격차는 수행평가에서 비롯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정해숙 선임연구위원은 ‘남녀공학 중등학교에서의 성별 교육실태와 향후과제’에서, 수행평가를 합산하는 전체 성적에서 남학생의 상위 등급 비율이 다소 감소하고 하위 등급이 증가한 것으로 미루어, 수행평가가 여학생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았다. A고교 교무부장은 “상위권에서는 남녀 학생 간 차이가 없다. 하지만 중상위권에서 남학생들은 꼼꼼하지 못해 손해가 크다”고 말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당초 기대했던 남녀평등의식 고양 효과도 적은 것으로 조사돼 남녀공학의 입지를 좁게 한다. 최근 성역할의식 조사에서 남녀공학 학생이 단성학교 학생보다 덜 진보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성 발달 조사에서도 남녀공학 학생의 사회점수가 단성학교 학생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낮았다. 남녀공학의 장점으로 꼽히던 학원폭력 방지 효과도 미미하다는 평가다. 관할경찰서의 한 강력계 형사는 “밖에서 싸우거나 사고를 치는 녀석들은 대부분 남녀공학 학생들이다. 애정문제가 얽히면서 더 싸우는 것 같다”고 전했다.
서울 송파구에서 고교선택제 2단계에서 미달된 2곳은 모두 공립 남녀공학이었으며, 그중 한 곳은 신설학교였다. 서초구와 강남구의 2단계 미달 고교 중 절반 이상이 공립 남녀공학이었다. 각종 특수목적고교와 사립고교가 성적 올리기에 몰두하는 동안, 공립에 남녀공학이라는 이중고까지 짊어진 일반 고교들은 나날이 경쟁력을 잃고 있다. 현 상황을 두고 정 선임연구위원은 “대학입시에 매몰된 탓에 남녀공학의 필요성에 대해 제대로 논의한 바 없다”고 지적한다.
“성급하게 남녀공학의 폐지를 주장하기보다 남녀평등, 인구변화, 대학입시 등을 고려한 종합적인 논의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