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는 작가의 고통과 한 아이를 죽음으로 몰고 간 집단 폭력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 ‘베스트셀러’는 이런 작가의 ‘이미지’에서 시작한다. 실제 작가의 면모가 아니라, 우리가 그러려니 생각하는 작가적 성격 위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베스트셀러 작가 백희수는 2년 전 표절 의혹에 휘말리게 된다. 그의 소설이 예전에 심사를 맡았던 공모전의 어느 응모작과 내용, 문장, 구성 면에서 유사하다는 질타를 받은 것이다. 그렇게 2년여가 지난 뒤, 희수는 재기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는 여전히 자신을 믿어주는 편집장의 도움으로 시간, 경비, 장소를 지원받아 글감을 얻기 위해 시골 외딴 마을의 버려진 별장으로 향한다. 그리고 영화는 여기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작가의 이미지라고 말했지만, 그 이미지는 자생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 이미지를 세공화한 것은 아마도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일 것이다. 고립무원의 호텔에서 쉬지 않고 글만 쓰는 남자는 ‘일만 하고 놀지 않는’ 정신병자가 되고 만다. 자유로운 낭만적 남색가로 알려진 랭보의 삶을 재구성한 ‘토탈 이클립스’, 연쇄살인을 저지르고 그것을 소설로 써내는 미모의 작가가 등장하는 ‘원초적 본능’에 이르기까지 신경질적이며 비정상적인 작가의 이미지는 사실 영화사에 고스란히 축적돼왔다.
이는 다른 말로, 이정호라는 신인 감독이 이 지독한 기시감과 싸워야 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감독은 지나치게 많은 작품을 본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해 ‘작가’가 등장하는 고전적 작품의 설정들을 따르는 듯하면서도 교묘히 피해나간다. 앞과 뒤가 확연히 나뉘는 영화의 장르적 성격이 바로 그 예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앞부분은 마치 묘령의 존재가 있는 듯 으스스한 분위기를 작가의 선병질과 연결해 미스터리 호러로 제시한다. 감독은 희수의 딸과 소통하는 ‘언니’를 통해 작가의 광기와 외딴집의 공포를 한데 묶는다. 중요한 것은 이 관습적 선택의 조합 과정을 뒤틀어 또 한 번의 새로운 경우의 수를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장르의 관습을 훤히 아는 관객의 예상을 뒤엎기 위해 이 감독은 섬세한 방어기제를 마련해둔다.
과연 ‘누가 그녀를 죽였을까’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후반 스릴러 역시 관습이나 습관에 물들지 않은, 좀 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기 위한 고민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여기서 질문 하나. 감독이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이 표절의 낙인이 찍힌 작가의 신경증인가, 아니면 시골의 한 소녀를 죽음으로 몰고 간 외딴 마을의 담합된 폭력인가.
‘베스트셀러’는 장르의 교접뿐 아니라 이질적인 두 주제의 융화도 노리고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두 주제는 융화됐다기보다 단순 병렬돼 있다. 이 단순 병렬의 틈새를 막아주는 것은 신인처럼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고 투신한 원톱 여주인공 엄정화와 든든한 기초 영양분이 돼준 조연들이다. 이도경, 조진웅 같은 배우들의 연기는 영화적 결점을 사각지대로 괄호쳐줄 만큼 훌륭하다.
일각에서 주목하는 표절에 대한 문제제기는 중심이라기보다 무늬에 가깝다. 어차피 이 영화는 작가와 고통, 폭력의 이야기지 ‘표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될까. “귀신이 된 그녀의 복수를 위해 ‘표절’은 지극히 필요한 장치였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