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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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활극’ … 이상과 현실 사이

여야 의원 4인 특별기고

  • 입력2010-04-26 15: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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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의도 활극’ … 이상과 현실 사이

    2009년 7월 이윤성 국회부의장이 직권상정된 미디어관계법과 금융지주회사법을 표결 처리하려 하자 야당 의원들이 의장석 주변을 에워싸고 반발하고 있다.

    ‘여의도 활극’ … 이상과 현실 사이
    ▶ 남경필 한나라당 의원

    “강경 목소리에 묻힌 민생 현안”


    제18대 국회가 어느덧 반환점에 이르렀다. 18대 국회도 많은 기대 속에서 출범했다. 한나라당의 집권은 경제를 튼실하게 만들고 이념논쟁에서 벗어난 ‘중도와 실용’의 정치를 펼쳐가겠다는 의지를 국민이 전폭적으로 지지해준 결과였다. 필자도 이 같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18대 국회를 시작했다.

    그러나 지난 2년을 돌이켜보면 아쉬움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에서 비롯된 대규모 촛불집회, 미디어법 논란, 4대강 사업 추진 등에서 많은 난관에 봉착했다. ‘사회적 갈등 해소’라는 정치의 고유 기능이 원활히 작동하지 않았고, 국민의 다양한 요구와 의견을 수용하고 중재하려는 노력은 곳곳에서 강경한 목소리에 묻혀 설 자리를 잃었다. 아직 안개 속에 있는 세종시 문제도 마찬가지다. 특정 사안에 대한 ‘與-與, 與-野’ 간의 견해 차이로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모두가 자신만이 ‘절대 선’이라는 최면에서 온전히 빠져나오지 못하는 듯하다.

    지난 정기국회에서 4대강 사업 예산문제로 여당과 야당이 첨예하게 대립했을 당시, 필자는 ‘여야 중진협의체’를 제안·구성해 중재안을 도출했다. 4대강 사업에서 국민이 우려하는 점을 불식하고, 갈등의 폭을 최대한 줄이고자 한 노력의 결과였다. 그러나 안타깝게 그 중재안은 빛을 보지 못했다. 정치를 ‘피아(彼我)의 대결구도’로 인식하는 시각, 그리고 ‘계파’라는 강고한 벽을 넘지 못하는 정치환경에 가로막혔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소통의 리더십이 절실하다.



    리더십은 ‘지향점(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와 지향점을 향해 국가를 이끌어가는 ‘방식’ ‘과정’까지 모두 포함한다. 이명박 정부 출범 2년차에 접어들면서 ‘중도·실용과 친(親)서민’을 정책의 기본 줄기로 삼은 것은 높이 평가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를 추진해가는 ‘방식과 과정’에서 아직도 미흡한 점이 적지 않다.

    우리는 민심을 이반한 ‘개혁’이 어떤 ‘엔딩(ending)’을 맞는지 노무현 정부의 경험을 통해 익히 깨달았다. 그래서 국민과 소통하고 이해를 구하며 설득으로 최소한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과정에 열정과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나에게는 안 보이는 세상’이라 해서 무조건 부정할 것이 아니라 ‘나와 다름’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만 갈등으로 파생되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의 낭비를 막을 수 있다.

    필자는 18대 국회 후반기를 맞아, 우리 국회가 소통과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 세 가지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고 본다. 첫째, 국회 고유의 기능을 복원하는 것이다. 교과서적 얘기 같지만 국민의 목소리에 좀 더 귀 기울이고, 갈등을 실제적으로 해소하는 국회가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정치권 곳곳에 암초처럼 존재하는 ‘계파’의 벽을 깨고, 정책과 입법기능을 강화해 정부 정책에 국민의 요구와 목소리를 적극 반영해야 한다.

    그에 대한 해법으로는 법안 발의를 통해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오픈 프라이머리’ 제도 도입과 ‘예결위 상설화’ 등을 제안한다. 여러 난관이 있겠지만, 생산적인 국회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둘째, 현 정부 들어 추진하고 있는 각종 국책사업을 의미 있게 마무리하는 것이다. ‘속도전’ 식으로 밀어붙일 것이 아니라, 시간을 늦추더라도 갈등요소를 최대한 줄이고 당초 취지를 살리는 게 제대로 된 마무리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선 ‘다음 정부에서는 할 수 없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마지막으로 서민경제에 국회의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유례없는 글로벌 경제위기에 잘 대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실이지만, 여기에 도취돼서는 안 된다. 장바구니 물가, 가계부채, 실업과 고용불안, 전셋값 폭등, 사교육비가 여전히 우리 서민의 삶을 고단하게 하기 때문이다. ‘중산층 붕괴’를 불러오는 이러한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정치의 모든 역량을 쏟아야 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법이다.

    ‘여의도 활극’ … 이상과 현실 사이
    ▶ 민주당 김부겸 의원

    “대화와 협상 부실, 정치 실종”


    18대 국회 상반기를 한마디로 평가하면 ‘정치의 실종’이다. 대의민주주의에서 협상과 타협을 통해 갈등을 조정하는 것이 정치인데, 정치의 장(場)인 국회가 그 구실을 제대로 못했다. 정권 초기 쇠고기 협상을 둘러싼 촛불집회, 미디어법 파동, 세종시 말 바꾸기와 4대강 사업의 일방적 추진 등은 우리 공동체가 대의 기구를 통한 대화와 협상 측면에서 얼마나 부실한지를 여실히 보여준 사례다. 국회 개원 60주년을 넘어선 지금까지도 상대를 눌러야 내가 살 수 있다는 식의 ‘진영(陣營)정치’가 대한민국 국회의 현주소다.

    진영정치의 폐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된다. 국회가 더 이상 정치 활극의 장이 되거나 불신의 대명사가 돼서는 안 된다. 집권 중반기에 들어선 이명박 대통령은 이제라도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하는 국정운영을 실천하고, 여야는 정책 제시를 통한 건전한 경쟁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진영정치가 강화 및 지속되는 것은 수적 우위를 앞세운 정부 여당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과 민주적이지 못한 정당운영이 주요 원인이다. 민주주의는 무엇보다 민주적 절차와 과정을 중요시해야 하며, 정치는 대화와 소통을 통해 쌍방이 타협함으로써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그런데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은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가 하는 일은 옳은데 국민이 잘 몰라서 그러는 거니까, 홍보를 잘하면 국민은 따라올 것’이라고 여기며, 이것이 소통이고 대화인 줄 안다. 이 대통령은 개발독재시대의 기업가 출신답게 목표의식은 지나치게 뚜렷한 반면, 민주적 합의 과정을 불필요하고 비효율적인 것으로 인식한다. 절차와 과정을 무시하고 수적 우위를 앞세워 밀어붙인다면 야당은 결국 국회 밖으로 나가 국민에게 호소할 수밖에 없다.

    여당은 입법부의 한 축으로서 지녀야 할 원칙과 자존심을 지키지 못했으며, 야당을 포용하는 리더십도 부족했다. 엄연히 당과 청와대가 분리돼 있고, 국정운영에 대한 비판과 견제는 야당만의 몫이 아님에도 청와대의 주문을 그대로 옮기는 ‘통법부’를 자임한 꼴이다. 여당은 ‘민주주의는 다수결’이라고 강조하지만, 정작 그들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사안들은 국민 다수가 반대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권력은 5년에 불과하지만 정당은 더 오래 지속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청와대에도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해야 한다.

    민주당에도 분명 변화가 필요하다. 민주당은 정부 여당의 일방적 국정운영에 대해서는 단호히 맞서 투쟁해왔다. 하지만 투쟁 자체가 결코 정치 목표는 아니다. 투쟁은 협상력을 제고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이고, 투쟁을 통해 얻은 분명한 성과를 국민 앞에 내보여야 한다. 그런 점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는 투쟁은 소모적일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민주정부 10년을 이끌었던 집권당이었으며, 또 집권을 목표로 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동안 민주당은 현실 속에서 사회경제적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적 약자와 서민을 위한 생활 속 진보적 가치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대안 제시가 상대적으로 미약했다. 따라서 앞으로 민주당은 수권정당으로서의 모습을 확고히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책정당으로서의 체질을 강화하고, 여당이 합의할 수밖에 없도록 정책 타당성 측면에서 우위를 점해야 한다. 여야 간 감정의 골이 깊어진 상태에서 합리적 협상과 이익의 조화보다 정부 여당의 일방적 국정운영과 노골적인 편 가르기를 통한 힘의 정치만을 계속 고집한다면 18대 국회의 후반기도 순탄치 않을 것이다.

    ‘여의도 활극’ … 이상과 현실 사이
    ▶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

    “무능 국회 모멸 속에서 희망을 본다”


    ‘국민에게 상처 주는 정치는 하지 않겠다.’ 엉겁결에 국회로 들어오면서 혼자 다짐했던 말이다. 그러나 18대 국회 2년을 돌아보면 사안마다, 발자국마다 ‘상처’뿐이다. 제헌국회 개원 60주년에 시작된 18대 국회는 임기 시작 후 무려 80여 일이 지나서야 개원했다. 미국산 쇠고기 협정과 안전성 논란으로 촉발된 촛불집회로 원 구성조차 하지 못한 채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거리로 나섰기 때문이다.

    자유선진당의 적극적 중재와 개입으로 어렵사리 원 구성이 됐지만, 그 뒤로도 국회 일정은 순탄치 않았다. 미국발 국제금융위기로 시작된 경제적 어려움과 그 와중에 확산된 물가 폭등,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서 벌어진 폭력국회, 미디어법 제정과 세종시 수정안 논란, 4대강 사업 등 정부가 발표하고 내놓는 법안과 정책마다 국민적 갈등을 불러왔다. 그때마다 국민과 대통령은 저마다 소통과 국민화합을 외쳤지만, ‘불통’과 ‘국론 분열’은 역대 최고조에 달했다.

    ‘폭력국회, 무능국회, 식물국회, 헌정사상 최악의 국회….’ 주말도 휴일도 없이 혼신의 힘을 다한 곳에서 받은 모멸적인 평가다. 이는 우리 정치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초라한 성적표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이 모멸적인 표현에서 역설적이게도 희망을 본다. 민주국가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유권자의 무관심이다. 애정 어린 비난을 받는 것은 아직도 우리 국민이 정치에 ‘관심’이 있다는 징표이기 때문이다.

    국회가 ‘정치의 장’으로 다시 태어나려면 정치인은 공천의 노예에서 벗어나야 한다. 여당은 청와대 눈치 보기에 앞서 행정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에 충실해야 한다. 그리고 각 행정부처의 장은 소신을 가져야 한다. 최고 권력자 눈치 보는 데 급급하거나 정쟁을 일삼는다면, 대한민국 국회는 영원히 미숙아로 남을 것이다.

    필자는 이 시대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입법기관의 소속원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국회의원 수를 3분의 2로 줄이고, 국회의원 정수의 50%는 지역구가 아닌 전문가 비례대표로 구성해야 한다.

    둘째, 각 정당은 인기영합 정책에서 벗어나 진정한 정책대결의 장을 펼치고, 그 과정에서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전문성을 발휘해야 한다.

    셋째, 숙의(熟議)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해 소수의견을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 그래야 국회 폭력과 파행도 방지할 수 있다.

    넷째, 합법적으로 의사진행을 방해할 수 있는 ‘필리버스터(filibuster)’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각종 쟁점법안의 문제점이 국민에게 충실히 전달될 수 있도록 상임위원회와 본회의에 충분한 토론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물론 의사일정이 마비되는 것을 막기 위해 토론종결제도를 동시에 도입한다면 일부에서 우려하는 부작용은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국회의장의 위상을 제고해야 한다. 직권상정 권한을 폐지하는 대신 국회의장 임기 4년제를 도입하고, 임기 직후에도 정당 가입을 배제함으로써 국회의장의 정치적 중립성을 더 강화해야 한다. 그래야 입법부로서 국회 위상도 높아진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문화의 개선이다. 정당과 정파, 계파가 의원 개인의 의사결정을 구속하는 족쇄구조에서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 국회가 다양한 갈등을 중재하고 조정하려면 의원들은 자신을 옥죄는 사슬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것만이 정치와 숙의 민주주의, 유권자들의 사랑을 되살리는 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무능 국회’라는 모멸 속에서 희망을 본다.

    ‘여의도 활극’ … 이상과 현실 사이
    ▶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

    “무조건 대립 국민들 불신 자초”


    6개월 전, 나는 어느 한 신문사의 ‘소통’ 특집기획 대담 인터뷰에서 보수진영의 대표논객인 전원책 변호사와 마주앉았다. 그때 과거사, 북핵, 노동운동 등의 문제에서 보수와 진보 간 의견 차이뿐 아니라 공통된 의견도 상당 부분 존재한다는 데 놀랐다.

    정치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최대공약수를 찾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입법기관인 국회는 법적 평등과 실질적 평등, 그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메우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정치지형과 정당구조는 이 문제를 풀어가는 데 한계로 작동한다. 여대야소, 다당화된 야당구조를 가진 현재의 정치구조는 다양한 민의를 수렴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더군다나 대통령의 국정운영은 일방적 독주로 일관하고, 여당은 대통령의 거수기로 전락해 한나라당인지 청와대당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다. 야당 역시 제대로 된 비판과 미래지향적인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대중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일방적 독주의 여당과 신뢰받지 못한 야당은 지금까지 한 치의 밀릴 틈도, 서로에 대한 예의도 배격하면서 대립해왔다.

    18대 국회 초반부에 국회의장을 뽑는 데 43일이 걸렸고, 원 구성에 83일이나 걸렸다. 사학법, 미디어법 등 쟁점법안들로 국회 공전과 파행이 지속됐으며, 정부가 밀어붙이는 각종 현안의 가속도가 붙을수록 의회의 법안심사권이 침해되기 일쑤였다. 노동을 배제한 비정규직 법안, 사회적 약자를 배제하고 기득권 세력의 이익을 우선하는 감세 관련 법안, 사람보다 이윤을 먼저 생각하는 금산분리 완화법안 등 18대 국회는 유독 서민에게 가혹했다. 이렇게 국회에서 경제적 민주주의가 퇴보하면서 정치적 민주주의 역시 퇴보할 수밖에 없었다. 용산참사, 쌍용차 사태에서 드러나듯 정치가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고 통합하기보다는 갈등을 확대, 재생산하기에 이르렀다.

    불균형한 사회에서는 힘을 가진 진영이 힘을 자제할 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소통은 힘의 역학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은 균형과 합리, 국민적 상식에 기반을 둔 당당한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또한 여당은 야당을 소통의 대상으로 인정해야 한다. 지금까지 여당은 야당을 ‘반대를 위한 반대세력’으로 규정해왔다.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상임위원회, 본회의에서 표 대결을 하기보다는 여야가 합리적 대안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

    진정한 소통은 단순히 대화의 측면보다 양보와 이해, 배려가 전제돼야 한다. 왜냐하면 상대를 존중하는 것뿐 아니라 상대의 이익도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국회의원 20인 이상의 교섭단체만 거의 절대적인 국회운영 권한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군소 야당의 의견은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 교섭단체 정당 이외의 군소 정당이 총선에서 받은 지지도를 합산하면 20%에 이르는데도 말이다.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라는 공간에서 우리 사회의 뜨거운 현안에 대한 대화와 공감대를 만들어내는 게 불가능한 일일까? 나는 보수진영의 대표인사와 대담하면서 서로 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대화와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점을 발견했다. 꽉 막힌 18대 국회의 소통구조를 여는 것, 그것은 양보와 타협을 기반으로 한 한나라당의 태도변화에 달려 있다. 18대 국회, ‘소통’만이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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