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저민 와이커 지음/ 김근용 옮김/ 328쪽/ 눈과마음 펴냄/ 1만2000원
캐나다 세인트폴 센터와 디스커버리 연구소에서 수석 작가로 활동하는 벤저민 와이커 박사가 쓴 ‘세상을 망친 10권의 책’이 그 주인공이다. 저자는 데카르트, 루소, 마르크스, 프로이트, 니체에서 킨제이에 이르기까지 무구한 역사에 걸쳐 인류의 신임을 얻어온 ‘위대한 사상가’를 도마에 올려놓고 잘근잘근 다진다. 그는 “이들이 끼친 엄청난 영향력 때문에 수많은 독자가 신을 부정함으로써 도덕적 불감증이 생기고, 이로 말미암아 전쟁과 집단학살 등의 만행이 자행되고 전제주의의 밑거름이 돼 인류가 억압되고 나아가 현대 가족의 붕괴가 발생했다”고 역설한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폭군이라 불리던 수많은 정치가에게 교과서로 각광을 받았다. 왜 그랬을까. 스탈린도 ‘군주론’을 늘 침대 머리맡에 뒀다고 한다.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에서 ‘신(혹은 하나님)은 단순히 우리의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창조물’이라는 논리 하나로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었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홉스는 어떻게 ‘리바이어던’에서 ‘인간은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할 권리가 있다’는 믿음을 이끌어냈을까.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이 역사상 가장 유해한 책으로 선정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다윈은 어떻게 ‘인류의 유래’를 통해 인간 사회에 자신의 ‘적자생존 법칙’을 적용하려 했을까. 니체가 ‘선악의 피안’에서 ‘권력을 향한 열망’에 지배되는 세상을 어떤 방식으로 폭로했을까.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어째서 대량 학살을 초래한 반유대주의를 합리화하는 ‘영적 다윈설’로 볼 수 있을까. 마거릿 미드가 ‘사모아의 성년’에서 묘사한 범성욕주의의 천국은 어째서 그 자신의 성적 혼란과 열망에 근거한 창조물로 전락했을까. 앨프레드 킨제이의 ‘남성의 성적 행위’는 왜 과학이라는 미명 아래 쓰인 자서전에 그칠까. ‘세상을 망친 10권의 책’은 이들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저자의 주장은 ‘진실 그 자체에 대한 열망이 아니라 진실이어야 하는 무언가를 향한 열망이 악의 기원’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이것이 바로 모든 ‘관념 혹은 이데올로기’의 시작이며, ‘이데올로기’는 과거에 존재한 많은 ‘악’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관념 혹은 이데올로기란 정확하게 무엇일까. 우리는 선과 악을 구분하기가 너무나 어려운 관념적 시대에 살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이데올로기와 철학은 별개라는 것이다. 철학은 지혜에 대한 사랑 혹은 본질에 대한 사랑이다. 또한 진실에 대한 열망이며, 그런 열망을 현실에 적용하고자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겸손함을 내포한 학문이다. 그러나 이데올로기는 철학과 정반대의 방법, 즉 무엇을 열망하는가를 충족시키기 위해 사실 자체를 변형하면서 진실을 찾고자 한다.
이데올로기는 우리가 바라는 바에 맞추고자 진실을 왜곡하는 데 어떤 양심의 가책도 요구하지 않기에 그것을 행할 때 망설임도 없다. 사람의 이성과 감성을 움직이는 모든 발상은 커다란 영향력을 가진다. 이 강력한 발상이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여진다면 질병처럼 인간에게 해로운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지론이다.
벤저민 와이커는 ‘위대한 책’이라는 수식 뒤에 숨은 극악무도한 이면을 까발리고자 이 책을 출간했다고 말했다. 인류에게 해로운 책이 어떤 책인지를 적시하고, 그것을 쓴 저자들의 사악한 속내를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이 출간 목적이란다. 이 모든 내용을 자신의 주장만큼이나 강렬한 문체와 속도감 있는 전개, 그리고 기존 인문서와 차별화된 재치 넘치는 글로 흥미진진하게 다루고 있다.
저자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이 시대에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고 습득했던 위험한 사고와 사상에 대한 신랄한 비평이 있어 우리의 영혼과 도덕성을 치료해주는 일종의 의사’라는 평가가 있다. ‘서구 문명이 어디에서부터 본질의 궤도를 이탈하기 시작했는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는 추천사도 있다. 마르크스에서 히틀러, 니체에서 베티 프리던에 이르는 ‘악당’들에 대한 활기찬 저자의 독설을 읽다 보면 서구 문명에 영향을 준 사상가들을 새로운 시각에서 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