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개청한 방위사업청은 투명성을 강조해왔다. 그런데 광운대와 ‘특수한 관계’를 맺어 구설에 올랐다.
드물긴 하지만 국가기관이 원하는 인재를 배출하는 학교가 있다. 사관학교, 경찰대, 세무대, 철도대, 교육대,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등이 그런 경우다. 이 학교들은 인재 수요처인 국가기관이 원하는 과정을 가르칠 수 있다. ‘수요 맞춤식’ 교육이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이들 인재가 해당 기관에 진출하면 이들이 주요 국가기관을 장악한다는 문제가 생긴다.
사관학교 출신이 각 군에서 배타적 군맥(軍脈)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 이 때문에 군에서는 학군과 3사 출신 등을 우대해 군이 사관학교라는 특정 학맥에 좌지우지되는 것을 막고 있다. 교육기관은 국가기관이 원하는 전문가를 키워야 하지만, 국가기관은 특정 학맥에 의해 좌우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투명성 높이기 위해 창설된 방위사업청
노무현 정부는 방위산업을 부정적으로 봤다. 그래서 방위산업의 투명성을 높이겠다며 2006년 국방부에서 무기 획득 분야를 떼어내 방위사업청(이하 방사청)을 만들었다. 방위사업은 국가 정보 분야만큼이나 폭이 넓고 심도가 깊다. 방위사업에는 잠수함, 항공기, 미사일, 전자, 화공 등 다양한 분야의 공학이 참여해야 한다. 신무기가 개발되면 전술과 작전이 바뀌는 경우가 허다하다. 반대로 새로운 작전과 전술을 펼치기 위해 신무기를 개발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작전과 전술을 알아야 제대로 된 방위사업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무기를 획득하려면 계약을 해야 하는데, 계약을 잘하려면 계약 자체와 무기 원가에 정통해야 한다. 신무기 개발 과정을 관리하는 일도 방위사업의 한 분야인데, 이 일을 잘하려면 관리와 경영에 전문성을 지닌 인재가 필요하다. 따라서 방사청에는 무기개발과 관련된 공학의 여러 분야 전문가, 군사학교에서 주로 가르치는 작전과 전술 분야 전문가, 계약과 관리 분야 전문가가 모여 있어야 한다.
이렇게 복잡하고 다양한 것이 방위사업인데 이를 ‘방위사업학’이라는 하나의 학문으로 묶어낼 수 있을까. 학과를 넘어선 통섭(統攝)을 하지 않으면 불가능해 보이는데, 방위사업을 하나의 학문으로 묶는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광운대가 2007년 가을 학기에 일반대학원 안에 방위사업학과를 개설한 것. 광운대의 이 결정을 가장 반긴 것은 방사청이었다.
대학원에 방위사업학과를 개설한 광운대. 방사청과 광운대가 맺은 협정서와 그 사실을 밝힌 방사청 보도자료.
그해 10월2일 방사청은 광운대와 ‘방위사업 학술교류에 관한 협정’을 맺었다. 그와 동시에 방사청에서는 ‘광운대 러시’가 일었다. 제1기인 2007년 가을학기부터 방사청에서는 이 학과의 석사과정에 7명, 박사과정에 27명이 입학했고 제2기인 2008년 봄학기에는 석사과정에 8명, 박사과정에 25명, 석·박사 통합과정에 2명이 들어갔다. 이런 식으로 방사청에서는 매학기 30명 정도가 광운대에 들어가고 있다.
방위사업에는 비밀을 유지해야 하는 내용이 많고 군에 대한 이해도 깊어야 하므로, 만일 학문으로 다룬다면 군 내부 교육기관인 국방대에서 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그러나 국방대는 방위사업학이라는 개념을 도출해내지 못했다. 반면 광운대는 방위사업학이 ‘틈새시장’이자 ‘블루오션’이라는 점을 간파하고 학위과정을 만들어냈다. 이에 대해 광운대 방위사업학과의 한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국방대는 국제 정치나 경영 분야엔 강점이 있으나 공학 분야는 매우 취약하다. 방위사업엔 공학적 요소가 많이 들어가는데, 국방대는 공학 분야가 약해 방위사업 분야를 학문화하기 힘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 광운대는 전자공학을 필두로 한 공학 모태의 대학이라 방위사업학을 해보자는 결심을 내릴 수 있었다. 이것이 방사청의 수요와 맞아떨어졌다.”
‘블루오션’을 발견해냈지만, 광운대 방위사업학과는 아직 이 ‘바다’를 자유롭게 헤쳐나갈 능력까진 갖추지 못했다. 방위사업이라는 광범위한 영역을 커버할 교수진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이 학과 주임교수 3명의 전공은 모두 전산학이다. 기계공학, 조선학, 항공공학, 화공학, 경영학 등의 전공자가 교수진에 포함돼 있지 않으니 이 학과의 운영은 파행적일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광운대는 융합 교육을 시도하고 있다. 즉, 기계공학을 토대로 한 방위사업을 연구해야 하는 학생은 방위사업학과 교수가 아니라 기계공학과 교수에게, 그리고 계약 분야의 방위사업을 공부해야 하는 학생은 경영학과 교수에게 지도받도록 한 것인데, 이는 ‘안정적인 학과 운영’이라고 보기 어렵다. 협정 제2조엔 광운대는 방위사업학과의 교육체계 확립을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이 있으나 광운대는 이를 구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매학기 방사청에서는 30여 명의 직원이 몰려가니 ‘관(官)-학(學) 유착의 학위 장사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의혹은 광운대 방위사업학과 교수가 방위사업연구학회를 만들고, 11월 초 방사청이 이 학회의 등록을 승인함으로써 증폭되고 있다. 광운대 교수가 만든 방위사업연구학회는 그동안 방위산업을 다뤄온 방위산업학회와 성격이 중첩된다는 지적을 받는다.
대학원 학생들이 석·박사 학위를 받으려면 관련 학회지에 논문을 발표해야 한다. 광운대가 주동이 된 방위사업연구학회는 방사청의 승인을 받았기에 학회지를 발간할 수 있다. 그렇다면 광운대는 재학생이 이 학회지에 논문을 게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방사청 직원들의 학위 취득을 용이하게 해줄 수 있다. 여러 대학의 교수와 방산업체 관계자들이 모인 방위산업학회 학회지에 논문을 내야 한다는 부담을 피하게 해주는 것이다.
광운대 대학원의 방위사업학과 개설과 운영은 방사청의 요구에 부응한 수요 맞춤형 교육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광운대가 하나의 학문으로 묶기 힘든 방위사업을 학과로 묶어 학위과정을 개설한 것은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방사청과 광운대의 ‘커넥션’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