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야구에서 ‘100승’은 28년간 단 20명만이 달성한, 정상급 투수들의 상징적인 숫자다. 선발투수로서의 합격점인 시즌 10승을 무려 10년은 해야 얻을 수 있는 업적이다. 지금까지 100승을 달성한 투수들은 대부분 큰 부상으로 인한 공백 없이 기록을 달성했다.
그러나 ‘8년 재활’이라는 기나긴 쉼표를 찍은 뒤 이 의미 있는 기록에 도전하는 선수가 있다. 바로 기아 타이거즈의 이대진(35)이다. 기아의 전신 해태에 입단하던 1993년 10승을 올리면서 두각을 보인 이대진은 98년까지 6년간 76승을 올리며 해태 마운드의 한 축을 담당했고, 이 기간에 팀이 3차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150km를 넘나드는 빠른 직구와 파워커브를 앞세워 95년과 98년에는 탈삼진왕에 올랐고, 97년에는 투수 골든글러브까지 수상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98년에는 당시 막강 현대 타자들을 상대로, 한국 프로야구사에서 전무후무한 10타자 연속 탈삼진 기록도 세웠다. ‘Ace of Ace’. 상대팀 에이스와의 대결에서도 늘 선전했기에 이런 별명까지 얻게 된 그는 명문 해태 구단의 보배였다.
“내년에는 10승까지 기대”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그늘이 찾아왔다. 그것도 일시적인 그림자가 아닌, 터널과 같은 길고 짙은 어둠이 엄습했다. 1998년 시즌 전 열린 슈퍼토너먼트대회 이후 처음 어깨 통증을 느낀 이대진은 그해 아픔을 참아내며 12승을 거뒀는데, 결국 이게 화근이 되고 말았다. 이듬해 거의 공을 던지지 못한 것이다. 1경기 3과 2/3 이닝만을 소화했다.
2000년에 다시 8승을 거두며 재기하는 듯했지만 어깨 통증이 악화되면서 결국 수술대에 오르게 된다. 어깨 회전근육이 뼈와 부딪히는 충돌증후군이 그를 괴롭혔다. 이후 두 차례의 수술을 더 받았고 모두 8년을 재활에 쏟아부었다. 연골, 근육막, 회전근 등 어깨가 전체적으로 닳았기에 증상은 좀처럼 호전되지 않았다. 이렇게 되자 아마추어 시절 타격에도 소질이 있던 이대진은 2002년 당시 김성한 감독의 권유로 타자로 변신을 시도했다.
그 무렵 LG의 무적 마무리 이상훈을 상대로 호쾌한 장타를 날리기도 했다. 그러나 타자로의 변신은 실패로 돌아갔다. 23경기에 출전해 8푼3리라는 초라한 성적만 남기고 헬멧을 벗어야 했다. 부상으로 신음하던 8년 동안 이대진이 거둔 승수는 고작 9승. 1980~90년대에 우승을 ‘밥 먹듯’ 했던 타이거즈는 이대진이 쓰러진 이후 정규시즌 우승을 한 번도 차지하지 못했다. 8년이라는 기나긴 재활기간에 부상이 호전되지 않아 좌절과 절망을 거듭했지만, 이대진은 서두르지 않았다.
복귀의 날을 떠올리며 재활에만 전념했다. 점점 야구팬들의 기억에서 잊혀가던 이대진은 ‘생환용사’처럼 2007년부터 기아 마운드에 본격적으로 복귀했다. 2007, 2008년에 각각 70이닝 이상을 던지고 12승을 올렸다. 대단한 기록은 아니지만 부상 정도나 공백기간을 감안하면 성공적인 재기였다.
비록 90년대에 상대를 주눅들게 하던 강속구며 폭포수 같은 커브가 사라지면서 볼의 위력도 많이 떨어졌으나, 재활 끝에 이뤄진 그의 복귀는 후배들에게 큰 교훈을 주었고, 야구팬들에겐 진한 감동을 선사했다.
이병훈 KBS N SPORTS 야구 해설위원은 “수술받고 나서도 잘 던지는 투수는 봤지만, 이대진처럼 오랜 재활을 거친 뒤 이만큼 잘 던지는 투수는 못 봤다”며 “올 시즌이 끝난 뒤 보강 운동을 잘하면 내년에는 10승까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대진은 이제 국내 프로야구 21번째 100승 달성을 위해 달려가고 있다. 99승 이후 3차례 선발 등판에서 승수 쌓기에 실패한 그는 남은 경기에서 1승만 거두면 100승 고지에 오른다. 그렇다면 이대진처럼 프로야구 역사상 오랜 재활 끝에 대기록을 달성하거나 수상을 한 선수로는 누가 있을까. 대표적인 선수가 ‘불사조’ 박철순과 1993년 시즌 MVP 김성래다.
불사조 박철순, 93년 MVP 김성래
프로 원년 22연승이라는 불멸의 기록을 작성한 박철순(전 OB)은 그해를 24승4패 7세이브, 방어율 1.84라는 놀라운 성적으로 마치면서 시즌 MVP를 거머쥐었다. 한국시리즈에서는 1승 2세이브를 거두며 팀 우승에 큰 공을 세웠다. 하지만 한 해에 너무 무리한 피칭을 선보였던 탓일까. 1983년 시즌 전 전지훈련에서 허리 통증이 심해진 데다, 86년 시즌 종료 후에는 CF 촬영 도중 아킬레스건까지 다쳐 오랜 기간 자기와의 싸움을 해야 했다.
83년부터 8년간 박철순이 거둔 승수는 고작 13승이다. 그러던 박철순은 1991년부터 ‘부활’했다. 4년간 꾸준히 매 시즌 100이닝 안팎을 소화하면서 7승씩을 거둔 그는 95년에는 7연승과 함께 시즌 9승을 올린 뒤, 팀을 13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94년에는 최고령(38세) 완봉승이라는 의미 있는 기록까지 세웠다.
1987년 홈런왕, 86년부터 3년 연속 2루수 골든글러브 수상으로 최고 전성기를 구가하던 김성래(전 삼성-쌍방울-SK, 현 SK 2군 코치)는 88년 말 무릎 십자인대 부상을 당해 3년간 재활치료를 한 뒤 93년 시즌 MVP에 오르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대진 박철순 김성래의 경우처럼 유독 야구 종목에서 오랜 재활 끝에 복귀해서 재기에 성공한 사례가 적잖다. 스포츠의학 클리닉으로 유명한 ‘한마음 스포메디의원’의 김창원 대표원장은 특히 투수를 언급하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투수의 경우 팔을 많이 틀다 보니 부상은 잦지만 재활이 잘되는 편이다. 어깨에는 4개의 회전둘레근이 있는데 이 중 1개가 손상을 당해도 다른 근육이 서서히 보강해주기에 재활이 잘되는 반면, 무릎 등 다른 부위들은 회복이 쉽지 않다.”
볼티모어 오리올스 소속으로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의 1960~70년대를 풍미한 짐 파머는 통산 268승(그중 221승이 완투승, 방어율 2.86)을 거두고 사이영상을 3차례나 받은 특급 투수였다. 그러나 그도 67년부터 2년간 팔꿈치, 어깨, 허리 등 아프지 않은 곳이 없을 만큼 몸이 망가졌고 야구인이나 팬들은 그의 선수생활이 끝났다고 예상했다.
하지만 파머는 근력 강화를 위해 땡볕 아래서 하루 몇 시간씩 테니스를 치는가 하면 지구력을 키우려고 덥고 습한 지역을 찾아다니는 등 지옥훈련을 소화해낸 뒤 더욱 강한 선수로 거듭났다. 짐 파머처럼 스스로 재활 프로그램을 소화하면서 8년이라는 인고의 세월을 이겨낸 뒤 100승이라는 의미 있는 기록에 도전하는 이대진. 비록 짐 파머처럼 아직은 재기 후 전성기 시절의 볼 위력이 더 살아난 경우는 아니지만 ‘인간승리의 표본’이라는 그의 행보에 국내 야구계와 야구팬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8년 재활’이라는 기나긴 쉼표를 찍은 뒤 이 의미 있는 기록에 도전하는 선수가 있다. 바로 기아 타이거즈의 이대진(35)이다. 기아의 전신 해태에 입단하던 1993년 10승을 올리면서 두각을 보인 이대진은 98년까지 6년간 76승을 올리며 해태 마운드의 한 축을 담당했고, 이 기간에 팀이 3차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150km를 넘나드는 빠른 직구와 파워커브를 앞세워 95년과 98년에는 탈삼진왕에 올랐고, 97년에는 투수 골든글러브까지 수상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98년에는 당시 막강 현대 타자들을 상대로, 한국 프로야구사에서 전무후무한 10타자 연속 탈삼진 기록도 세웠다. ‘Ace of Ace’. 상대팀 에이스와의 대결에서도 늘 선전했기에 이런 별명까지 얻게 된 그는 명문 해태 구단의 보배였다.
“내년에는 10승까지 기대”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그늘이 찾아왔다. 그것도 일시적인 그림자가 아닌, 터널과 같은 길고 짙은 어둠이 엄습했다. 1998년 시즌 전 열린 슈퍼토너먼트대회 이후 처음 어깨 통증을 느낀 이대진은 그해 아픔을 참아내며 12승을 거뒀는데, 결국 이게 화근이 되고 말았다. 이듬해 거의 공을 던지지 못한 것이다. 1경기 3과 2/3 이닝만을 소화했다.
2000년에 다시 8승을 거두며 재기하는 듯했지만 어깨 통증이 악화되면서 결국 수술대에 오르게 된다. 어깨 회전근육이 뼈와 부딪히는 충돌증후군이 그를 괴롭혔다. 이후 두 차례의 수술을 더 받았고 모두 8년을 재활에 쏟아부었다. 연골, 근육막, 회전근 등 어깨가 전체적으로 닳았기에 증상은 좀처럼 호전되지 않았다. 이렇게 되자 아마추어 시절 타격에도 소질이 있던 이대진은 2002년 당시 김성한 감독의 권유로 타자로 변신을 시도했다.
그 무렵 LG의 무적 마무리 이상훈을 상대로 호쾌한 장타를 날리기도 했다. 그러나 타자로의 변신은 실패로 돌아갔다. 23경기에 출전해 8푼3리라는 초라한 성적만 남기고 헬멧을 벗어야 했다. 부상으로 신음하던 8년 동안 이대진이 거둔 승수는 고작 9승. 1980~90년대에 우승을 ‘밥 먹듯’ 했던 타이거즈는 이대진이 쓰러진 이후 정규시즌 우승을 한 번도 차지하지 못했다. 8년이라는 기나긴 재활기간에 부상이 호전되지 않아 좌절과 절망을 거듭했지만, 이대진은 서두르지 않았다.
복귀의 날을 떠올리며 재활에만 전념했다. 점점 야구팬들의 기억에서 잊혀가던 이대진은 ‘생환용사’처럼 2007년부터 기아 마운드에 본격적으로 복귀했다. 2007, 2008년에 각각 70이닝 이상을 던지고 12승을 올렸다. 대단한 기록은 아니지만 부상 정도나 공백기간을 감안하면 성공적인 재기였다.
‘불사조’ 박철순(왼쪽)과 87년 홈런왕 김성래도 오랜 재활 끝에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한 스타로 꼽힌다.
이병훈 KBS N SPORTS 야구 해설위원은 “수술받고 나서도 잘 던지는 투수는 봤지만, 이대진처럼 오랜 재활을 거친 뒤 이만큼 잘 던지는 투수는 못 봤다”며 “올 시즌이 끝난 뒤 보강 운동을 잘하면 내년에는 10승까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대진은 이제 국내 프로야구 21번째 100승 달성을 위해 달려가고 있다. 99승 이후 3차례 선발 등판에서 승수 쌓기에 실패한 그는 남은 경기에서 1승만 거두면 100승 고지에 오른다. 그렇다면 이대진처럼 프로야구 역사상 오랜 재활 끝에 대기록을 달성하거나 수상을 한 선수로는 누가 있을까. 대표적인 선수가 ‘불사조’ 박철순과 1993년 시즌 MVP 김성래다.
불사조 박철순, 93년 MVP 김성래
프로 원년 22연승이라는 불멸의 기록을 작성한 박철순(전 OB)은 그해를 24승4패 7세이브, 방어율 1.84라는 놀라운 성적으로 마치면서 시즌 MVP를 거머쥐었다. 한국시리즈에서는 1승 2세이브를 거두며 팀 우승에 큰 공을 세웠다. 하지만 한 해에 너무 무리한 피칭을 선보였던 탓일까. 1983년 시즌 전 전지훈련에서 허리 통증이 심해진 데다, 86년 시즌 종료 후에는 CF 촬영 도중 아킬레스건까지 다쳐 오랜 기간 자기와의 싸움을 해야 했다.
83년부터 8년간 박철순이 거둔 승수는 고작 13승이다. 그러던 박철순은 1991년부터 ‘부활’했다. 4년간 꾸준히 매 시즌 100이닝 안팎을 소화하면서 7승씩을 거둔 그는 95년에는 7연승과 함께 시즌 9승을 올린 뒤, 팀을 13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94년에는 최고령(38세) 완봉승이라는 의미 있는 기록까지 세웠다.
1987년 홈런왕, 86년부터 3년 연속 2루수 골든글러브 수상으로 최고 전성기를 구가하던 김성래(전 삼성-쌍방울-SK, 현 SK 2군 코치)는 88년 말 무릎 십자인대 부상을 당해 3년간 재활치료를 한 뒤 93년 시즌 MVP에 오르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대진 박철순 김성래의 경우처럼 유독 야구 종목에서 오랜 재활 끝에 복귀해서 재기에 성공한 사례가 적잖다. 스포츠의학 클리닉으로 유명한 ‘한마음 스포메디의원’의 김창원 대표원장은 특히 투수를 언급하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투수의 경우 팔을 많이 틀다 보니 부상은 잦지만 재활이 잘되는 편이다. 어깨에는 4개의 회전둘레근이 있는데 이 중 1개가 손상을 당해도 다른 근육이 서서히 보강해주기에 재활이 잘되는 반면, 무릎 등 다른 부위들은 회복이 쉽지 않다.”
볼티모어 오리올스 소속으로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의 1960~70년대를 풍미한 짐 파머는 통산 268승(그중 221승이 완투승, 방어율 2.86)을 거두고 사이영상을 3차례나 받은 특급 투수였다. 그러나 그도 67년부터 2년간 팔꿈치, 어깨, 허리 등 아프지 않은 곳이 없을 만큼 몸이 망가졌고 야구인이나 팬들은 그의 선수생활이 끝났다고 예상했다.
하지만 파머는 근력 강화를 위해 땡볕 아래서 하루 몇 시간씩 테니스를 치는가 하면 지구력을 키우려고 덥고 습한 지역을 찾아다니는 등 지옥훈련을 소화해낸 뒤 더욱 강한 선수로 거듭났다. 짐 파머처럼 스스로 재활 프로그램을 소화하면서 8년이라는 인고의 세월을 이겨낸 뒤 100승이라는 의미 있는 기록에 도전하는 이대진. 비록 짐 파머처럼 아직은 재기 후 전성기 시절의 볼 위력이 더 살아난 경우는 아니지만 ‘인간승리의 표본’이라는 그의 행보에 국내 야구계와 야구팬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