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요이 구사마, ‘Dots Obsession’, 2009(위). 야요이 구사마의 작품이 설치된 템스 강변.
멀리서도 눈에 띌 만큼 화려한 빨간 바탕에 흰 물방울무늬 옷을 두른 나무들을 보며, 이 여름 런던 사우스 뱅크 지역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죠.
누구에게 물어보기도 전 나무와 똑같은 패턴의 사인 보드가 걸린 건물이 눈에 들어와 확인해보니, 영국의 대표적인 현대미술 갤러리인 헤이워드 갤러리(Hayward Gallery)였습니다. 미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저절로 발걸음을 옮기게 한 동선이 인상적이었죠.
전시 때마다 관객과 비평가 모두에게 큰 반응을 얻는 것으로 유명한 헤이워드 갤러리의 올여름 블록버스터 전시는 ‘Walking in My Mind’(내 마음속으로 들어와)인데요. 작가 10명의 머릿속을 재현한 전시였습니다. 안 그래도 ‘예술가의 머릿속엔 대체 뭐가 들었을까’ 궁금하던 차라 호기심을 안고 첫 작가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봤죠.
첫 주인공은 일본 요시토모 나라의 ‘My Drawing Room’(2008)이었는데요. 작가는 일본의 외딴 시골마을에서 혼자 대부분 시간을 보낸 오두막을 재현했습니다. 관객의 키보다 작은 오두막의 창문을 고개 숙여 들여다보면, 색연필과 도화지가 어지럽게 널려 있는 어린이용 책상과 그의 작품세계에 영향을 미쳤을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인적이 드물어 개나 고양이와 지내는 시간이 더 많았던 외로운 어린 시절, 그가 상상의 세계를 만들어냈던 작은 방은 관객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각자의 아련한 어린 시절을 환기해줍니다.
한편 프랑스 라스코 동굴과 스위스 터널 시스템을 함께 연상시키는 스위스 작가 토마스 히어쉬호른의 ‘동굴’은 누르스름한 마분지 상자와 포장용 테이프로 얼기설기 만들었는데요. 니체, 들뢰즈, 사르트르의 철학책이 가득한 동굴을 지나자마자 포르노 여배우들의 포스터 사진이 잔뜩 붙어 있는 또 하나의 동굴이 나타납니다.
다 마시고 난 코카콜라 캔들이 쓰레기통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방과 종이로 만든 다이너마이트가 설치된 방 등을 지나다 보면 예술가의 머릿속도 일반인과 별반 다를 게 없구나 싶습니다.
예술가의 머릿속을 몇 번 들어간 뒤 마지막으로 올해 81세가 된 일본 작가 야요이 구사마의 작품 ‘Dots Obsession’을 만났습니다. 템스 강변의 나무들이 두른 것과 똑같은 패턴으로 만든 큰 풍선들은 거울이 설치된 벽 때문에 무한대로 증식합니다. 관객이 어지럼증을 느낄 정도죠.
아버지가 어머니를 떠난 후 원치 않는 아이로 여겨지며 온갖 박대 속에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녀의 망막에 언제부턴가 붉은 점들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자발적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해 아직도 치료를 받고 있는 구사마는 자신의 고통스러운 환각 증세를 수많은 점으로 표현합니다. 또 점들 사이로 사라지고 마는 작은 하나의 점으로 자신을 그리죠.
작가들의 머릿속을 들락날락하다 전시장을 나오니 제 자신의 머릿속을 이렇게 큰 규모로 재현한다면 과연 어떤 모습일지, 과연 공개가 가능할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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