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 공사를 마친 송도국제학교 최근 모습.
‘주간동아’ 취재 결과 정부부처 관계자들은 4월 두 차례 회동을 갖고 4월24일 시행령 개정으로 송도국제학교 문제를 풀자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 확인됐다. 법을 개정할 경우 국회 의결 등으로 최소 6개월 이상이 걸리지만, 시행령 개정은 차관·국무회의 의결 등을 거쳐 비교적 단기간에 처리할 수 있다. 여기에 최근 총리실의 ‘규제완화’ 천명과 기획재정부의 ‘서비스산업 선진화 방안 추진’ 등으로 일시적으로 규제를 풀어주자는 의견이 우세한 것도 시행령 개정 쪽으로 합의를 이끌어냈다.
지난해 10월 시행된 ‘경제자유구역 및 제주국제자유도시의 외국교육기관 설립·운영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이하 특별법 시행령)에 따르면, 송도국제학교 같은 외국교육기관은 개교 5년까지 내국인 학생 수를 외국인 재학생 수의 30% 이내(5년 이후는 10%)로 정하게 돼 있다. 이 조항 중 내국인 학생 수를 한시적(3~5년)으로 ‘외국인 재학생 수의 30%’에서 ‘총정원의 30%’로 개정, 내국인 학생을 대거 모집할 수 있게 하자는 것.
현재 송도국제학교에 입학 가능한 외국인 자녀가 100명 이하인 것을 고려하면 최대 130명(내국인 30명)으로 개교해야 한다. 이에 비해 시행령이 고쳐지면 총정원 2100명의 30%, 즉 630여 명의 내국인 학생이 입학할 수 있어 학교 운영이 가능해진다.
‘주간동아’ 취재가 시작되자 각 부처 관계자들은 말을 아꼈지만, 때로는 분통을 터뜨리며 다른 부처의 이기주의적 행태를 지적하기도 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학생 수 부족으로 개교를 1년 늦춘 송도국제학교가 운영기관도 찾지 못해 또 개교를 연기해야 한다는 우려가 높았다. 그래서 함께 모여 해법을 찾으려 했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하 인천자유청)은 ‘한시적’ 규정마저 풀어달라고 하고, 교과부는 특혜 논란 및 형평성 문제로 난색을 표했다. 결국 부처별로 조금씩 양보해 청와대가 제시한 중재안을 받아들인 셈”이라며 그간의 사연을 전했다.
송도국제도시.
중재안은 받아들였지만 교과부는 우스운 꼴이 됐다. 그동안 인천자유청과 지경부 등에서 내국인 학생 수 비율을 조정해달라는 요청이 있었지만, 시행령 제정에 대한 부담과 외국인학교와의 형평성 등을 이유로 ‘불가’ 입장을 견지해온 교과부로서는 마뜩잖다. 지난해 10월 자신들이 만든 특별법 시행령을 불과 7개월도 안 돼, 그것도 자신들의 손으로 다시 고치게 된 단견(短見)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여기에 5월6일 대국대과(大局大課) 체제로 조직이 개편되면서 주무부서도 바뀌어 혼란스럽다는 반응이다.
“사실 곤혹스럽다. ‘한시적 규제완화’ ‘서비스산업 선진화 방안’ 등 정부의 정책 방향 때문에 (교과부도) 부담이 컸다. 이렇게 (시행령이 개정) 되면 일정도 촉박하다.”
교과부 관계자의 말처럼 시행령을 개정하더라도 9월 개교까지는 ‘산 넘어 산’이다. 아직 시행령 개정안이 만들어지지 않았고 법제처의 법률 검토, 국무회의 의결, 학교 설립심사 등이 줄줄이 남아 있다. 법제처 남창국 법제관은 “사안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1개월의 검토 기간이 필요하다. 특별법 시행령 개정의 경우 형평성 논란이 문제 된다면 시간은 더 걸릴 수 있다. 행정부처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바뀔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교과부가 심사위원회를 구성해 송도국제학교 설립인가를 심사하는 데도 최소 14주가 걸린다. 경제자유구역위원회의 최종심의 의결까지 포함해 3~4개월은 필요하다.
‘내국인용 귀족학교’ 피할 묘책 있나
학교 설립신청 접수도 늦어졌다. 송도국제학교 설립 주체인 송도국제도시개발유한회사(NSIC)는 최근에야 캐나다 밴쿠버 국제학교를 운영기관으로 선정해 학교 설립 신청을 준비 중이다. 지난달 미국 인터내셔널스쿨서비스(ISS) 등과의 국제학교 설립 운영에 관한 협상이 결렬되면서 그만큼 시간이 지체됐다.
“다들 급하다고 말하지만, 정해진 것도 없고 (연락) 오는 것도 없다. 타이밍이 급박하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겠다.”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부처별 협의는 됐지만 ‘각자 플레이’로 서로를 지켜보는 모양새가 계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교과부는 일단 설립인가 신청이 접수되면 심사를 시작하고, 모집 정원 부분은 시행령 개정 이후 진행한다는 ‘투-트랙’ 전략을 고려하고 있다.
법은 그렇다 쳐도 7~8월 중 모집공고를 내고 학생모집을 하려면 당장 국제학교 설립심사의 톱니바퀴를 돌려야 한다. 인천자유청은 “속성으로 (설립심사를) 할 경우 두 달이면 인가가 떨어질 것”이라고 말하고, 교과부는 최대한 설립인가 심사기간을 앞당기려 한다. 이러다 보니 정부 내에서 ‘주객전도(主客顚倒)’로 인한 부실 심사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차라리 요식행위인 설립심사를 생략하는 건 어떨까. 어차피 (설립이) 되도록 돼 있는데 굳이 세금 써가며 위원회 구성하고 심사할 필요가 있나. 설립인가 심사와 시행령 개정 부실을 우려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아직 설립신청서가 제출되지는 않았지만 송도국제학교는 연간 학비가 2만 달러 정도로 추정된다. 따라서 교과부로서는 스스로 시행령을 고쳐서까지 ‘내국인용 귀족학교’의 설립을 돕는다는 지적도 피해야 한다. 교과부가 줄곧 ‘국제학교를 운영하면서 수익이 나지 않더라도 사회 소외층에 장학금을 지급하라’고 주장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인천자유청은 일단 개교하면 외국인 학생 모집에 자신 있다는 분위기다. 장기적으로는 기숙사를 지어 지방 거주 외국인 자녀를 흡수하고, 중국 동부지역 유학생을 받아들여 외국인 학생 수를 늘린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인천자유청 김종태 교육팀장은 “전남 광양과 여수 등에 외국인이 많이 산다. 보통 자녀는 교육 문제로 엄마와 서울에 사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수요를 끌어들이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경우 송도국제업무단지 내 외국인의 정주(定住) 환경을 개선하고자 추진돼온 송도국제학교의 설립 취지에 반해 ‘꼼수’로 학생을 모집하려 한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어쨌든 인천자유청과 NSIC의 ‘수요 예측 오판’으로 불거진 송도국제학교 개교 문제가 청와대의 개입으로 돌파구가 마련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정부 관계자의 말처럼 모양새가 이상해졌다.
“송도국제학교 개교를 위해 청와대와 각 부처가 최고의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기에는 안쓰러움이 앞선다. 스스로 정부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허둥지둥 개교를 서두르는 모습은 한 편의 블랙코미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