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대판’했습니다. 참다 참다 폭발한 거죠. 아토피로 이혼까지 생각하게 됐으니….”
김종욱(36·가명) 씨는 큰아들(5)의 아토피 피부염으로 가정이 ‘풍비박산 났다’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일할 때 집중이 필요한 엘리베이터 관리업체에 다니지만, 아토피 피부염 때문에 일어난 ‘변화’를 생각하면 멍해지기 일쑤란다.
처음엔 여느 아이처럼 태열을 앓는 정도로 생각했다. 병원에 다녔지만 아이는 매일 가려워했고 이런 아들을 보는 아내도 스트레스를 받을 만큼 받았다. 3년 전 ‘피범벅’이 된 아들의 다리와 등을 본 뒤 아내는 아이 치료에 매달렸고, 식단과 취침시간 등 일상을 아이에게 맞췄다.
“참았습니다. 이해도 됐고요. 그런데 어디서 들었는지 아토피에 좋다는 외국산 보습제를 인터넷으로 구매한 뒤로는 쑥, 갈대, 생녹차, 케일, 목초액, 건강보조식품 등 별의별 제품이 집에 쌓이더군요. 지난 한 해 동안 1000만원은 썼을 겁니다. 아이 환경이 바뀌면 증상이 심해진다며 시댁이나 친정에도 안 가요. 모자(母子)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가 따로 없어요.”(실제 서울의료원 조사 결과 13세 이상 20세 미만 아토피 환자들은 연간 640여 만원을 치료비로 쓰는 것으로 조사됐다. 28쪽 상자기사 참조)
아토피는 ‘가족해체 질환’
김씨는 퇴근 때마다 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지만 참았다. 그리고 모처럼 아내를 설득해 지난주 외식을 했다. 패밀리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고 스테이크와 샌드위치를 시켰다. 오랜만에 즐거운 저녁식사를 했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아내의 목소리는 날카롭게 변해 있었다.
“어제 나 화장실 갔을 때 아이에게 뭐 먹인 거 있어?”
“글세… 빵 조금 먹이고….”
“혹시 소스에 찍어서?”
“그랬을 거야. 맛있잖아.”
“$%^$##·**!!”
“….”
소스에 향신료와 우유 등 아이에게 맞지 않는 재료가 들었다는 것을 그는 그때 처음 알았다. 그동안 쌓인 감정이 폭발했다. “아이가 누구 때문에 고생하느냐” “당신 어렸을 때 아토피 앓았는지 장모님에게 물어보겠다”는 원초적 공격부터 ‘팔랑귀’ 때문에 별별 치료제를 다 산다는 구박까지. 아내도 “잠자다 말고 한 시간마다 깨어나 연고 발라주는 고통을 아느냐” “음식 조심해야 하는 것도 몰랐느냐”며 스트레스를 쏟아냈고, 결국 이혼서류를 만지작거리는 신세가 됐다.
기자는 이번 호 커버스토리를 준비하면서 아토피 피부염으로 고생하는 자녀를 둔 11명의 부모와 대면, 혹은 전화 인터뷰를 했다. 물론 슬기롭게 극복하는 사람도 있지만, 7명은 가정불화로 이혼 생각까지 해본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천의 얼굴을 가진 질병’ ‘신종 불치병’ 아토피가 이제는 ‘가족해체 질환’이 돼버린 것이다. 그만큼 아토피 치료의 경제적, 심리적 부담이 크다는 얘기다. 2007년 9월에는 아토피 질환을 호소하던 30대 남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광주의 한 의대생이 초등생 때부터 앓은 아토피 피부염에 우울증이 겹쳐 목을 매 자살한 사건도 있었다.
그리스어로 ‘이상한’ ‘알 수 없는’이라는 뜻을 가진 ‘아토피(Atopy)’가 세상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23년. 세계 최초로 알레르기 클리닉을 개설한 미국 의사 로버트 쿠크와 면역학자 아서 코카가 공동으로 논문을 발표하면서 이 용어를 사용했다. 꽃가루나 먼지 등 흡인성 물질과 음식물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이 기존 양상과 다르다고 해서 이런 이름을 붙였다.
흔히 ‘아토피=아토피 피부염’으로 알고 있지만, 아토피 피부염(Atopic dermatitis)은 아토피 질환의 한 종류일 뿐이다. 하지만 이는 그만큼 아토피 피부염이 일반적이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원래 피부염은 습진을 포함해 피부에 나타나는 모든 염증성 질환. 습진은 피부가 붉어지고 붓고 가렵고, 물집이 잡히거나 진물이 나고 딱지가 앉는다. 아토피 피부염은 재발 가능성이 있는 급성 또는 만성 습진으로 피부과 외래에서 흔히 보는 대표적 알레르기 습진성 피부질환이기도 하다.
발생 원인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복합적 요인으로 발생하는 다인자성 질환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유전적인 아토피 소인과 골수에서 유래되는 백혈구의 기능 이상(면역체계 이상)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아토피 피부염 환자의 가족 중 70~80%가 아토피 질환을 앓을 정도로 유전 소인이 강하다.
일본의 아토피 피부염 치료 대가인 니와 유키에 박사는 환경오염이 근본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오존층 파괴로 증가한 활성산소가 원인이라는 얘기다. 1970년대까지 아토피 피부염 발생 빈도는 6세 이하 어린이의 경우 약 3%로 보고됐지만 최근에는 어린이에서 20% 이상, 성인에서도 1~3%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사실이 그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아토피 피부염은 지금은 난치병으로 일컬어지지만 1960년대까지만 해도 다루기 쉬운 병이었다. 대부분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저절로 나았기 때문인데, 그때에는 아토피 환자 중 초등학생은 찾아보기 힘들었다고 한다. 산업화가 진행된 1970년대 들어 환자 연령대가 미취학 아동에서 초등학생으로 확대됐고, 증세도 심해졌다.
뚜렷한 치료법 없어 ‘적절한 관리’ 목표 삼아야
아토피 피부염은 생후 2세 이전에는 주로 얼굴에서, 이후에는 팔과 다리 접히는 부위에서 발생한다. 12세 이후에는 이마, 목, 손목에 건조증과 태선화(苔癬化·단단하고 거친 잔주름들이 커져 뚜렷이 나타나는 피부병)가 주로 나타난다. 안타깝게도 아직까지는 뚜렷한 치료법이 없기 때문에 적절한 관리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과 환자 부모들의 공통된 견해.
우선 과도하게 면역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 카펫은 걷어버리고 커튼 대신 블라인드, 천 대신 가죽으로 된 소파를 사용하는 게 좋다. 집먼지진드기 등 대기 중 흡입 항원을 미리 없애는 것이다. 집 안 온도는 18~20℃, 습도는 50~60%를 유지하고 애완동물은 키우지 않는 게 좋다.
아토피 피부염의 치료 방법은 피부 보습관리, 적절한 스테로이드제 사용, 악화인자 제거 등의 일반 치료와 항히스타민제 복용, 항생제, 항바이러스제 사용 등의 보조 치료, 자외선을 이용한 광선 치료, 전신 면역억제제 사용 등의 선택 치료로 나뉜다.
중등도 이하 증상인 경우 일반적인 치료법을 사용한다. 대부분의 환자가 여기에 해당하는데, 생활습관이나 알레르기 관리를 통해 유발(악화)인자를 제거하고 보습제를 사용해 피부 보습과 관리를 하는 것이 기본이다. 악화될 때마다 스테로이드 연고를 바르거나 피메크로리무스(제품명 : 엘리델)이나 타크로리무스(제품명 : 프로토픽) 같은 국소 면역조절제 연고를 주기적으로 바른다.
흔히 ‘피부약이 독하다’고 하는 것은 스테로이드제 때문인데, 적절히 사용하면 이만한 약이 없다는 게 전문의들의 일관된 견해다. 스테로이드제는 작용 강도에 따라 가장 강한 것(1그룹)부터 가장 약한 것(7그룹)으로 구분하는데, 대부분의 전문의는 가장 약한 연고를 사용한다.
음식조절도 중요하다. 아토피 피부염 환자라고 해서 알레르기 유발 음식(우유, 달걀흰자, 생선 등)을 무조건 섭취하지 않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유아의 심한 아토피 피부염은 음식물 알레르기를 의심해볼 수 있다. 피부단자 검사나 혈액 검사, 제거식이 검사(알레르기 유발 음식을 먹지 않고 증상이 호전되는지 확인한다) 등을 통해 음식물 알레르기 여부를 진단할 수 있다. 음식물에 의한 아토피 피부염 악화 증세는 나이가 들면 점차 사라져 3세 이상에서는 드물게 나타난다. 알레르기 유발 음식이라고 해도 성장에 필요한 영양분을 함유하고 있으므로 먹을지 말지는 전문의에게 맡겨야 한다.
“원인·악화 인자를 피하고(회피요법), 피부를 촉촉하게 관리하고(피부보습), 가려움증과 염증 치료(약물치료) 세 가지 방법을 적절히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꾸준히 치료받는 것이 원칙이다. 약물 중 스테로이드제는 중독성이 없다. 흔히 독하다고 하는데 이는 생각하기 나름이다.”
서울아산병원 소아천식아토피센터 홍수종 교수의 말이다. 그는 “최근에는 시험기를 전후해 청소년 환자의 증상이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 부모가 싸움을 심하게 해도 (스트레스를 받게 돼) 자녀의 증상이 악화된다”며 “스트레스도 주요 원인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알레르기 유발인자를 없애고 전문의와 상담하면서 꾸준히 치료받는 게 정도(正道)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뚜렷한 치료법이 없는 상황에서 아토피 피부염을 잘 ‘관리’한 이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논바닥 갈라지듯 쩍쩍 갈라지는 자녀의 피부를 보송보송 아기 피부로 바꾼 5명의 엄마를 만났다.
‘아토피 맘’들의 피눈물 나는 아토피 극복기
4년간 음식물 일기 쓰며 반응 확인 … 블로그 열어 아픔 함께 나눠
“분유가 피부에 닿기만 해도 두드러기가 나 퉁퉁 부어오르는데… 애는 울어대고, 그렇다고 해결 방법은 없고….”
딸 김혜민(4·오른쪽 사진) 양의 ‘아토피 극복기’를 얘기하던 엄마 임은경(37·강원 원주시, 위 사진) 씨는 힘들었던 당시를 생각하자 어느새 눈물이 고였다. 그만큼 아토피는 4년간 그와 딸의 삶을 힘들게 했다. 혜민이는 분유 한 방울이라도 피부에 닿으면 모기 물린 자국처럼 피부가 부풀어올랐다. 모유량이 적은 엄마는 ‘생존’을 위해 딸에게 분유를 먹였지만 혀와 입안, 식도까지 부어 숨을 제대로 못 쉬는 걸 보고는 단념해야 했다.
“시판되는 분유 모두 샘플을 얻어 먹였어요. 반응은 마찬가지였지요. 제조사에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고 십여 군데 찾아간 병원에서는 ‘아토피’라 마땅히 방법이 없다는 거예요. 자리에 주저앉았죠.”
새근새근 자는 딸을 보며 한참을 울다가 마음을 다잡았다. 6개월 때부터 이유식을 시작(그는 20개월 때까지 모유 수유를 했다)하면서 음식 반응을 체크했다. 처음엔 쌀을 먹여 반응을 확인했고 다음은 호박, 당근, 콩나물 등을 먹였다. 최소 5일 이상 먹이면서 반응을 확인했고 매일 일기나 메모 형태로 기록했다. ‘공원 산책, 새로운 메뉴 닭고기 추가’ ‘아기 옷 새로 산 것(세제 A 사용) 입고 외출’ ‘목욕 시 입욕제 B 사용’ 하는 식으로.
“아기가 음식 때문에 아토피 반응을 보이는지, 아니면 다른 요인 때문인지 파악해야 하거든요. 대부분 음식의 경우 바로 반응이 나타나는데 꽃가루라든지 새로 산 옷 때문일 수도 있어요.”
이렇게 하다 보니 인공 감미료와 조미료 등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걸 알게 됐다. 뻥튀기를 사 먹였다가 소량의 사카린에 반응한다는 걸 알게 된 후로는 유기농 과자, 빵을 직접 만들어 먹였다.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자 식단표를 보면서 1년간 도시락을 싸서 보냈다.
“이제는 과자를 가끔 사 먹여도 잠깐 ‘불긋’하는 정도가 됐어요. 아주 가끔 생선이나 돼지고기 때문에 두드러기가 생기지만요. 간식은 고구마와 감자, 제철 과일, 미숫가루 등으로 해결해요.”
그의 말대로 4년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모든 ‘포커스’를 아이에게 맞추다 보니 남편에게도 미안했고, 자신의 삶도 너무 피폐해졌다. 남편과 상의해 매주 한 시간이라도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자신만의 시간을 가진 것도 그 때문. 처음에는 ‘정보의 바다’에서 음식과 보습제에 대한 정보를 찾았지만 제품 광고 외에는 믿을 내용이 없었다. 결국 직접 블로그 ‘튼튼이모’(blog.naver.com/uoek)를 개설해 자신의 체험기를 올렸고, 비슷한 고민을 하던 엄마들과 정보를 주고받았다. 가끔 막대사탕을 먹고 싶어 하거나 어린이집에서 나눠주는 음료수를 들고 와 “이거, 아빠 거야?” 하고 말할 때는 가슴이 아프다고.
“애가 가렵다고 긁으려고 하면 ‘세세세 놀이’를 하든가 책을 읽으며 가려움을 잊게 해요. 자꾸 긁지 말라고만 하면 스트레스를 받거든요.”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다른 엄마들에게서 오는 ‘상담 전화’를 처리하는 데도 제법 능숙해졌다. “저도 그랬지만, ‘아토피 엄마’들은 귀가 ‘프로펠러’예요. 병원에 가도 근본 대책이 없으니 별의별 민간요법을 동원하다가 아토피가 심해지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 전화를 받으면 무조건 받아 적으라고 하고 제 경험을 알려주죠.” 어느 날 “매일 먹던 음식을 먹였는데 아이 피부가 심하게 부어오른다”는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그래서 그날의 행적을 물어봤더니 답이 나왔다. “날씨가 싸늘해 드라이클리닝한 옷으로 아이를 감쌌던 거예요. 화학약품에 반응한 거죠.”
지난 4년간 경험을 통해 얻은 그의 아토피 관리법은 3가지가 핵심. △음식조절 △보습제로 피부관리 △습도조절 및 환기 등 환경조절. 아이 방에 20kg 정도의 숯을 놓아둔 것도 도움이 됐다고 한다. “아토피는 마라톤이에요. 장기전에는 엄마가 건강하고 현명해야 해요. 귀가 지나치게 얇아도 안 되고요.”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아로마 테라피로 심리적 안정 … 식이요법 병행하며 완치단계
경기 안산시 초지동에 사는 고권(5) 군은 아로마 테라피를 통해 아토피를 치유한 경우. 권이는 생후 100일 무렵부터 아토피 증상을 보였다. 엄마 김혜령(35) 씨는 처음엔 단순 태열인 줄 알았으나 갈수록 증세가 심해졌고 결국 아토피 피부염이란 것이 밝혀져 당황스러웠다고.
이후 향나무요법, 쑥물요법 등 각종 민간요법을 써봤으나 치료 초기에만 차도를 보일 뿐 병세는 제자리걸음이었다. 그러나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아토피를 치유할 수 있었던 계기를 우연한 곳에서 만났다.
“2007년 한여름이었어요. 지하철을 탔는데 옆자리에 앉은 할머니가 권이를 보고 아토피가 너무 심하다며 여의도성모병원 아로마 전문클리닉을 권해주셨어요. 당장 달려가서 상담했죠. 병원 처방대로 아로마 오일을 바르고 아로마 방향제를 수시로 옷에 뿌려주며 상태를 살펴봤죠. 일주일쯤 지나자 상당히 호전되기 시작했어요.”
아로마 치료에 확신을 갖게 된 김씨는 병원 처방 외에도 아로마 향초를 구입, 수시로 초를 피웠다. 아이의 심리적 안정에도 도움이 되는 데다 초를 피우는 것을 아이도 재미있어해 효과가 배가됐다. 김씨는 여기서 더 나아가 아이에게 좋은 분위기를 제공했고, 철저한 식이요법도 병행했다.
“아토피가 스트레스에 민감한 질환이다 보니 되도록 아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려 노력했어요. 과자나 식품을 살 때도 포장지 뒤의 성분표시를 꼼꼼히 살피는 것은 기본이고요. 간식도 인스턴트 음식은 피하고 다시마, 말린 과일, 고구마 등을 먹이려 노력해요.”
아로마 테라피와 식이요법을 꾸준하게 병행한 아이는 현재 완치단계에 접어들었다. 진물이 나서 건조하게 갈라지던 피부도 뽀송뽀송한 피부로 돌아왔고, 이젠 가렵다고 보채는 일도 없다.
유두진 프리랜서 기자 tttfocus@naver.com
의사 처방 전적으로 신뢰 … 집안 구석구석 청소하고 ‘멸균활동’
“소율이가 아토피에 시달릴 때 찍어놓은 사진이 한 장도 없어요. 그때가 한창 예쁠 때인데…. 그것이 마음이 아파서 날씨가 쾌청하거나 좋은 장소에 가면 꼭 사진을 찍어주곤 해요.”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송혜영(34) 씨는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딸 김소율(4) 양의 해맑은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이룬 것이다. 송씨의 말에서 그간의 아픔이 묻어나왔다. 소율이는 태어난 지 30일 정도 됐을 때부터 아토피 증세를 보였다. 이유식을 먹이면서부터는 분해되지 않은 단백질 성분에 유독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됐다. 처음엔 여느 ‘아토피 엄마’들처럼 송씨의 귀도 얇았다. 스테로이드제를 쓰면 내성이 생길까 민간요법에 의존했지만 아이의 괴로움은 더욱 커져갔다.
결국 인근 종합병원을 찾았고, 아이의 피부 체질을 검사한 결과 알레르기 수치가 정상치의 20배에 이른다는 충격적인 결과를 접했다. 가려움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아이를 보며 그는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 만큼 힘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적극적으로 마음을 다잡고 아이의 치료를 시작했다.
우선 병원 치료는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면서 시간을 허비하기보단 한 군데를 정하고 그곳 의사의 처방을 믿는 것이 좋다는 원칙을 세웠다. 이외에 송씨가 주의를 기울인 것은 환경 개선. 온도, 습도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아이를 위해 건조한 환절기에는 가습기를 수시로 켜놓아 습도를 조절했고, 장마철에는 집먼지진드기를 박멸하고자 적극적으로 ‘멸균활동’을 했다. 청소기 또한 미세먼지 여과 기능이 있는 ‘헤파 필터’를 사용하고 샤워기도 혹시 섞여 나올지도 모를 녹물을 제거하기 위해 샤워필터를 꽂아 사용했다.
이 같은 노력이 이어지자 아이는 차도를 보이기 시작했고, 지난해 9월경에는 아이의 피부가 정상 상태로 돌아왔다. 과다 알레르기 수치 판정을 받은 2007년 4월 이후 1년5개월 만이었다. 그는 블로그 ‘뷰티풀 시너리’(blog.naver.com/chmade)에 보습제 비교 등 각종 정보와 아토피 마사지 방법 등 다양한 육아 비법을 소개하고 있다.
유두진 프리랜서 기자 tttfocus@naver.com
‘졸업’ 판정받던 날 눈물 펑펑
귀여운 얼굴에 뽀얀 피부. 4월24일 만난 이예슬(5·경기 안산시) 양이 상위 3%에 포함될 만큼 중증의 아토피 피부염 환자였다는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말도 마세요. 예슬이가 한창 아토피에 시달릴 때 병원에 데려갔더니 의사 선생님도 놀라셨어요. ‘아이가 이 지경이 되도록 뭐 하고 있었느냐’며 혼을 내더군요.”
아빠 이호상 씨는 당시의 막막했던 심정을 전하며 “예슬이의 아토피가 악화됐을 때는 피부가 보통사람의 발바닥보다 더 건조했다”고 말했다.
예슬이는 2007년 9월경부터 본격적인 아토피 증세를 보였다. 너무 긁어서 온몸이 피범벅이 될 정도였다. 보다 못한 아빠가 가려움증을 줄여주려고 아이의 몸을 압박붕대로 감는 민간요법까지 써봤을 정도. 그러다 지난해 4월 아토피를 전문으로 치료하는 병원을 알게 됐고, 그곳에서 한방과 양방을 혼용한 집중 치료를 받으면서 상태가 호전되기 시작했다. 치료를 받은 뒤 일주일쯤 지난 뒤 예슬이가 피부를 긁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부모는 의사의 처방을 절대적으로 신뢰했다.
“집에 와서도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했어요. 양방의 처방에 따라 하루 세 차례 오일을 발라줬고, 한방 요법대로 수시로 입욕도 시켰고요. 아이가 좋아지는 것이 눈에 보이더군요. 지난해 12월에 병원에서 ‘졸업’ 판정을 받았습니다.”
엄마 박은경 씨의 말이다. 박씨는 밝은 표정으로 전문가를 신뢰해야 아토피를 치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아이의 상태에 따라 잘 맞는 의사와 안 맞는 의사가 있으니 적절한 전문가를 만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부모의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유두진 프리랜서 기자 tttfocus@naver.com
1년간 아토피 무료 치료 혜택 환경 개선으로 거의 완치
김희광(5) 군의 어머니 이희정 씨는 환경재단과 한국중부발전이 아들의 아토피를 낫게 해줬다며 연신 고마워했다. 아들의 아토피 증상과 치료법을 알게 해줬다는 것이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이씨는 맞벌이를 하느라 자녀 4명을 제대로 돌볼 수 없었다고 했다. 어느 날 희광이가 다리를 긁는 것을 보고 ‘좀 있으면 낫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자고 나면 이불이 피범벅이 되기 일쑤였고 시간이 흐를수록 증상도 심해졌다. 저소득 가정 지원 프로그램에 등록해 보건소에서 예방접종과 식음료 지원을 받던 터라 희광이를 데리고 그곳을 찾았다.
“아토피라는 사실도 그때 알았어요. 아토피에 대해 전혀 몰랐고 병원 다닐 형편도 아니어서 애만 태웠죠.”
2008년 초 환경재단에서 전화가 와 사회공헌 사업인 ‘아토피 없는 세상 만들기(Free from Atopy)’를 알게 됐고, 서울의료원에서 1년간 무료로 치료를 받았다.
“의사 선생님과 얘기하다가 원인을 알았어요. 아토피를 일으키는 환경에 노출된 겁니다. 이전에 살던 집은 습기가 많고 바퀴벌레가 많았거든요.”
희광 군 밑의 두 아이도 아토피 증상을 보인 이유를 그때 알았다. 그때까지 이씨는 주변 얘기를 듣고 약을 쓰지 않았다.
“증상이 심해지는데, 어떤 분들은 약을 쓰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문외한이었죠.”
의사의 조언대로 집 안을 대청소하고 꾸준히 미지근한 물로 20분간 샤워를 시켰다. 목욕 후 보습제도 발라줬다. 집 구조상 습기는 어쩔 수 없어 햇볕 잘 드는 집으로 이사했다. 1년간 병원 치료를 받고 환경을 개선하니 이제 다리에만 약간의 아토피 증상이 남아 있을 뿐 생활에 문제가 없을 정도가 됐다.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김종욱(36·가명) 씨는 큰아들(5)의 아토피 피부염으로 가정이 ‘풍비박산 났다’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일할 때 집중이 필요한 엘리베이터 관리업체에 다니지만, 아토피 피부염 때문에 일어난 ‘변화’를 생각하면 멍해지기 일쑤란다.
처음엔 여느 아이처럼 태열을 앓는 정도로 생각했다. 병원에 다녔지만 아이는 매일 가려워했고 이런 아들을 보는 아내도 스트레스를 받을 만큼 받았다. 3년 전 ‘피범벅’이 된 아들의 다리와 등을 본 뒤 아내는 아이 치료에 매달렸고, 식단과 취침시간 등 일상을 아이에게 맞췄다.
“참았습니다. 이해도 됐고요. 그런데 어디서 들었는지 아토피에 좋다는 외국산 보습제를 인터넷으로 구매한 뒤로는 쑥, 갈대, 생녹차, 케일, 목초액, 건강보조식품 등 별의별 제품이 집에 쌓이더군요. 지난 한 해 동안 1000만원은 썼을 겁니다. 아이 환경이 바뀌면 증상이 심해진다며 시댁이나 친정에도 안 가요. 모자(母子)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가 따로 없어요.”(실제 서울의료원 조사 결과 13세 이상 20세 미만 아토피 환자들은 연간 640여 만원을 치료비로 쓰는 것으로 조사됐다. 28쪽 상자기사 참조)
아토피는 ‘가족해체 질환’
김씨는 퇴근 때마다 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지만 참았다. 그리고 모처럼 아내를 설득해 지난주 외식을 했다. 패밀리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고 스테이크와 샌드위치를 시켰다. 오랜만에 즐거운 저녁식사를 했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아내의 목소리는 날카롭게 변해 있었다.
“어제 나 화장실 갔을 때 아이에게 뭐 먹인 거 있어?”
“글세… 빵 조금 먹이고….”
“혹시 소스에 찍어서?”
“그랬을 거야. 맛있잖아.”
“$%^$##·**!!”
“….”
소스에 향신료와 우유 등 아이에게 맞지 않는 재료가 들었다는 것을 그는 그때 처음 알았다. 그동안 쌓인 감정이 폭발했다. “아이가 누구 때문에 고생하느냐” “당신 어렸을 때 아토피 앓았는지 장모님에게 물어보겠다”는 원초적 공격부터 ‘팔랑귀’ 때문에 별별 치료제를 다 산다는 구박까지. 아내도 “잠자다 말고 한 시간마다 깨어나 연고 발라주는 고통을 아느냐” “음식 조심해야 하는 것도 몰랐느냐”며 스트레스를 쏟아냈고, 결국 이혼서류를 만지작거리는 신세가 됐다.
기자는 이번 호 커버스토리를 준비하면서 아토피 피부염으로 고생하는 자녀를 둔 11명의 부모와 대면, 혹은 전화 인터뷰를 했다. 물론 슬기롭게 극복하는 사람도 있지만, 7명은 가정불화로 이혼 생각까지 해본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천의 얼굴을 가진 질병’ ‘신종 불치병’ 아토피가 이제는 ‘가족해체 질환’이 돼버린 것이다. 그만큼 아토피 치료의 경제적, 심리적 부담이 크다는 얘기다. 2007년 9월에는 아토피 질환을 호소하던 30대 남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광주의 한 의대생이 초등생 때부터 앓은 아토피 피부염에 우울증이 겹쳐 목을 매 자살한 사건도 있었다.
그리스어로 ‘이상한’ ‘알 수 없는’이라는 뜻을 가진 ‘아토피(Atopy)’가 세상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23년. 세계 최초로 알레르기 클리닉을 개설한 미국 의사 로버트 쿠크와 면역학자 아서 코카가 공동으로 논문을 발표하면서 이 용어를 사용했다. 꽃가루나 먼지 등 흡인성 물질과 음식물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이 기존 양상과 다르다고 해서 이런 이름을 붙였다.
흔히 ‘아토피=아토피 피부염’으로 알고 있지만, 아토피 피부염(Atopic dermatitis)은 아토피 질환의 한 종류일 뿐이다. 하지만 이는 그만큼 아토피 피부염이 일반적이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원래 피부염은 습진을 포함해 피부에 나타나는 모든 염증성 질환. 습진은 피부가 붉어지고 붓고 가렵고, 물집이 잡히거나 진물이 나고 딱지가 앉는다. 아토피 피부염은 재발 가능성이 있는 급성 또는 만성 습진으로 피부과 외래에서 흔히 보는 대표적 알레르기 습진성 피부질환이기도 하다.
발생 원인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복합적 요인으로 발생하는 다인자성 질환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유전적인 아토피 소인과 골수에서 유래되는 백혈구의 기능 이상(면역체계 이상)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아토피 피부염 환자의 가족 중 70~80%가 아토피 질환을 앓을 정도로 유전 소인이 강하다.
일본의 아토피 피부염 치료 대가인 니와 유키에 박사는 환경오염이 근본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오존층 파괴로 증가한 활성산소가 원인이라는 얘기다. 1970년대까지 아토피 피부염 발생 빈도는 6세 이하 어린이의 경우 약 3%로 보고됐지만 최근에는 어린이에서 20% 이상, 성인에서도 1~3%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사실이 그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아토피 피부염은 지금은 난치병으로 일컬어지지만 1960년대까지만 해도 다루기 쉬운 병이었다. 대부분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저절로 나았기 때문인데, 그때에는 아토피 환자 중 초등학생은 찾아보기 힘들었다고 한다. 산업화가 진행된 1970년대 들어 환자 연령대가 미취학 아동에서 초등학생으로 확대됐고, 증세도 심해졌다.
뚜렷한 치료법 없어 ‘적절한 관리’ 목표 삼아야
아토피 피부염은 생후 2세 이전에는 주로 얼굴에서, 이후에는 팔과 다리 접히는 부위에서 발생한다. 12세 이후에는 이마, 목, 손목에 건조증과 태선화(苔癬化·단단하고 거친 잔주름들이 커져 뚜렷이 나타나는 피부병)가 주로 나타난다. 안타깝게도 아직까지는 뚜렷한 치료법이 없기 때문에 적절한 관리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과 환자 부모들의 공통된 견해.
우선 과도하게 면역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 카펫은 걷어버리고 커튼 대신 블라인드, 천 대신 가죽으로 된 소파를 사용하는 게 좋다. 집먼지진드기 등 대기 중 흡입 항원을 미리 없애는 것이다. 집 안 온도는 18~20℃, 습도는 50~60%를 유지하고 애완동물은 키우지 않는 게 좋다.
아토피 피부염의 치료 방법은 피부 보습관리, 적절한 스테로이드제 사용, 악화인자 제거 등의 일반 치료와 항히스타민제 복용, 항생제, 항바이러스제 사용 등의 보조 치료, 자외선을 이용한 광선 치료, 전신 면역억제제 사용 등의 선택 치료로 나뉜다.
중등도 이하 증상인 경우 일반적인 치료법을 사용한다. 대부분의 환자가 여기에 해당하는데, 생활습관이나 알레르기 관리를 통해 유발(악화)인자를 제거하고 보습제를 사용해 피부 보습과 관리를 하는 것이 기본이다. 악화될 때마다 스테로이드 연고를 바르거나 피메크로리무스(제품명 : 엘리델)이나 타크로리무스(제품명 : 프로토픽) 같은 국소 면역조절제 연고를 주기적으로 바른다.
흔히 ‘피부약이 독하다’고 하는 것은 스테로이드제 때문인데, 적절히 사용하면 이만한 약이 없다는 게 전문의들의 일관된 견해다. 스테로이드제는 작용 강도에 따라 가장 강한 것(1그룹)부터 가장 약한 것(7그룹)으로 구분하는데, 대부분의 전문의는 가장 약한 연고를 사용한다.
음식조절도 중요하다. 아토피 피부염 환자라고 해서 알레르기 유발 음식(우유, 달걀흰자, 생선 등)을 무조건 섭취하지 않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유아의 심한 아토피 피부염은 음식물 알레르기를 의심해볼 수 있다. 피부단자 검사나 혈액 검사, 제거식이 검사(알레르기 유발 음식을 먹지 않고 증상이 호전되는지 확인한다) 등을 통해 음식물 알레르기 여부를 진단할 수 있다. 음식물에 의한 아토피 피부염 악화 증세는 나이가 들면 점차 사라져 3세 이상에서는 드물게 나타난다. 알레르기 유발 음식이라고 해도 성장에 필요한 영양분을 함유하고 있으므로 먹을지 말지는 전문의에게 맡겨야 한다.
“원인·악화 인자를 피하고(회피요법), 피부를 촉촉하게 관리하고(피부보습), 가려움증과 염증 치료(약물치료) 세 가지 방법을 적절히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꾸준히 치료받는 것이 원칙이다. 약물 중 스테로이드제는 중독성이 없다. 흔히 독하다고 하는데 이는 생각하기 나름이다.”
서울아산병원 소아천식아토피센터 홍수종 교수의 말이다. 그는 “최근에는 시험기를 전후해 청소년 환자의 증상이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 부모가 싸움을 심하게 해도 (스트레스를 받게 돼) 자녀의 증상이 악화된다”며 “스트레스도 주요 원인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알레르기 유발인자를 없애고 전문의와 상담하면서 꾸준히 치료받는 게 정도(正道)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뚜렷한 치료법이 없는 상황에서 아토피 피부염을 잘 ‘관리’한 이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논바닥 갈라지듯 쩍쩍 갈라지는 자녀의 피부를 보송보송 아기 피부로 바꾼 5명의 엄마를 만났다.
‘아토피 맘’들의 피눈물 나는 아토피 극복기
4년간 음식물 일기 쓰며 반응 확인 … 블로그 열어 아픔 함께 나눠
“분유가 피부에 닿기만 해도 두드러기가 나 퉁퉁 부어오르는데… 애는 울어대고, 그렇다고 해결 방법은 없고….”
딸 김혜민(4·오른쪽 사진) 양의 ‘아토피 극복기’를 얘기하던 엄마 임은경(37·강원 원주시, 위 사진) 씨는 힘들었던 당시를 생각하자 어느새 눈물이 고였다. 그만큼 아토피는 4년간 그와 딸의 삶을 힘들게 했다. 혜민이는 분유 한 방울이라도 피부에 닿으면 모기 물린 자국처럼 피부가 부풀어올랐다. 모유량이 적은 엄마는 ‘생존’을 위해 딸에게 분유를 먹였지만 혀와 입안, 식도까지 부어 숨을 제대로 못 쉬는 걸 보고는 단념해야 했다.
“시판되는 분유 모두 샘플을 얻어 먹였어요. 반응은 마찬가지였지요. 제조사에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고 십여 군데 찾아간 병원에서는 ‘아토피’라 마땅히 방법이 없다는 거예요. 자리에 주저앉았죠.”
새근새근 자는 딸을 보며 한참을 울다가 마음을 다잡았다. 6개월 때부터 이유식을 시작(그는 20개월 때까지 모유 수유를 했다)하면서 음식 반응을 체크했다. 처음엔 쌀을 먹여 반응을 확인했고 다음은 호박, 당근, 콩나물 등을 먹였다. 최소 5일 이상 먹이면서 반응을 확인했고 매일 일기나 메모 형태로 기록했다. ‘공원 산책, 새로운 메뉴 닭고기 추가’ ‘아기 옷 새로 산 것(세제 A 사용) 입고 외출’ ‘목욕 시 입욕제 B 사용’ 하는 식으로.
“아기가 음식 때문에 아토피 반응을 보이는지, 아니면 다른 요인 때문인지 파악해야 하거든요. 대부분 음식의 경우 바로 반응이 나타나는데 꽃가루라든지 새로 산 옷 때문일 수도 있어요.”
이렇게 하다 보니 인공 감미료와 조미료 등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걸 알게 됐다. 뻥튀기를 사 먹였다가 소량의 사카린에 반응한다는 걸 알게 된 후로는 유기농 과자, 빵을 직접 만들어 먹였다.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자 식단표를 보면서 1년간 도시락을 싸서 보냈다.
“이제는 과자를 가끔 사 먹여도 잠깐 ‘불긋’하는 정도가 됐어요. 아주 가끔 생선이나 돼지고기 때문에 두드러기가 생기지만요. 간식은 고구마와 감자, 제철 과일, 미숫가루 등으로 해결해요.”
그의 말대로 4년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모든 ‘포커스’를 아이에게 맞추다 보니 남편에게도 미안했고, 자신의 삶도 너무 피폐해졌다. 남편과 상의해 매주 한 시간이라도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자신만의 시간을 가진 것도 그 때문. 처음에는 ‘정보의 바다’에서 음식과 보습제에 대한 정보를 찾았지만 제품 광고 외에는 믿을 내용이 없었다. 결국 직접 블로그 ‘튼튼이모’(blog.naver.com/uoek)를 개설해 자신의 체험기를 올렸고, 비슷한 고민을 하던 엄마들과 정보를 주고받았다. 가끔 막대사탕을 먹고 싶어 하거나 어린이집에서 나눠주는 음료수를 들고 와 “이거, 아빠 거야?” 하고 말할 때는 가슴이 아프다고.
“애가 가렵다고 긁으려고 하면 ‘세세세 놀이’를 하든가 책을 읽으며 가려움을 잊게 해요. 자꾸 긁지 말라고만 하면 스트레스를 받거든요.”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다른 엄마들에게서 오는 ‘상담 전화’를 처리하는 데도 제법 능숙해졌다. “저도 그랬지만, ‘아토피 엄마’들은 귀가 ‘프로펠러’예요. 병원에 가도 근본 대책이 없으니 별의별 민간요법을 동원하다가 아토피가 심해지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 전화를 받으면 무조건 받아 적으라고 하고 제 경험을 알려주죠.” 어느 날 “매일 먹던 음식을 먹였는데 아이 피부가 심하게 부어오른다”는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그래서 그날의 행적을 물어봤더니 답이 나왔다. “날씨가 싸늘해 드라이클리닝한 옷으로 아이를 감쌌던 거예요. 화학약품에 반응한 거죠.”
지난 4년간 경험을 통해 얻은 그의 아토피 관리법은 3가지가 핵심. △음식조절 △보습제로 피부관리 △습도조절 및 환기 등 환경조절. 아이 방에 20kg 정도의 숯을 놓아둔 것도 도움이 됐다고 한다. “아토피는 마라톤이에요. 장기전에는 엄마가 건강하고 현명해야 해요. 귀가 지나치게 얇아도 안 되고요.”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아로마 테라피로 심리적 안정 … 식이요법 병행하며 완치단계
경기 안산시 초지동에 사는 고권(5) 군은 아로마 테라피를 통해 아토피를 치유한 경우. 권이는 생후 100일 무렵부터 아토피 증상을 보였다. 엄마 김혜령(35) 씨는 처음엔 단순 태열인 줄 알았으나 갈수록 증세가 심해졌고 결국 아토피 피부염이란 것이 밝혀져 당황스러웠다고.
이후 향나무요법, 쑥물요법 등 각종 민간요법을 써봤으나 치료 초기에만 차도를 보일 뿐 병세는 제자리걸음이었다. 그러나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아토피를 치유할 수 있었던 계기를 우연한 곳에서 만났다.
“2007년 한여름이었어요. 지하철을 탔는데 옆자리에 앉은 할머니가 권이를 보고 아토피가 너무 심하다며 여의도성모병원 아로마 전문클리닉을 권해주셨어요. 당장 달려가서 상담했죠. 병원 처방대로 아로마 오일을 바르고 아로마 방향제를 수시로 옷에 뿌려주며 상태를 살펴봤죠. 일주일쯤 지나자 상당히 호전되기 시작했어요.”
아로마 치료에 확신을 갖게 된 김씨는 병원 처방 외에도 아로마 향초를 구입, 수시로 초를 피웠다. 아이의 심리적 안정에도 도움이 되는 데다 초를 피우는 것을 아이도 재미있어해 효과가 배가됐다. 김씨는 여기서 더 나아가 아이에게 좋은 분위기를 제공했고, 철저한 식이요법도 병행했다.
“아토피가 스트레스에 민감한 질환이다 보니 되도록 아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려 노력했어요. 과자나 식품을 살 때도 포장지 뒤의 성분표시를 꼼꼼히 살피는 것은 기본이고요. 간식도 인스턴트 음식은 피하고 다시마, 말린 과일, 고구마 등을 먹이려 노력해요.”
아로마 테라피와 식이요법을 꾸준하게 병행한 아이는 현재 완치단계에 접어들었다. 진물이 나서 건조하게 갈라지던 피부도 뽀송뽀송한 피부로 돌아왔고, 이젠 가렵다고 보채는 일도 없다.
유두진 프리랜서 기자 tttfocus@naver.com
의사 처방 전적으로 신뢰 … 집안 구석구석 청소하고 ‘멸균활동’
“소율이가 아토피에 시달릴 때 찍어놓은 사진이 한 장도 없어요. 그때가 한창 예쁠 때인데…. 그것이 마음이 아파서 날씨가 쾌청하거나 좋은 장소에 가면 꼭 사진을 찍어주곤 해요.”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송혜영(34) 씨는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딸 김소율(4) 양의 해맑은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이룬 것이다. 송씨의 말에서 그간의 아픔이 묻어나왔다. 소율이는 태어난 지 30일 정도 됐을 때부터 아토피 증세를 보였다. 이유식을 먹이면서부터는 분해되지 않은 단백질 성분에 유독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됐다. 처음엔 여느 ‘아토피 엄마’들처럼 송씨의 귀도 얇았다. 스테로이드제를 쓰면 내성이 생길까 민간요법에 의존했지만 아이의 괴로움은 더욱 커져갔다.
결국 인근 종합병원을 찾았고, 아이의 피부 체질을 검사한 결과 알레르기 수치가 정상치의 20배에 이른다는 충격적인 결과를 접했다. 가려움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아이를 보며 그는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 만큼 힘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적극적으로 마음을 다잡고 아이의 치료를 시작했다.
우선 병원 치료는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면서 시간을 허비하기보단 한 군데를 정하고 그곳 의사의 처방을 믿는 것이 좋다는 원칙을 세웠다. 이외에 송씨가 주의를 기울인 것은 환경 개선. 온도, 습도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아이를 위해 건조한 환절기에는 가습기를 수시로 켜놓아 습도를 조절했고, 장마철에는 집먼지진드기를 박멸하고자 적극적으로 ‘멸균활동’을 했다. 청소기 또한 미세먼지 여과 기능이 있는 ‘헤파 필터’를 사용하고 샤워기도 혹시 섞여 나올지도 모를 녹물을 제거하기 위해 샤워필터를 꽂아 사용했다.
이 같은 노력이 이어지자 아이는 차도를 보이기 시작했고, 지난해 9월경에는 아이의 피부가 정상 상태로 돌아왔다. 과다 알레르기 수치 판정을 받은 2007년 4월 이후 1년5개월 만이었다. 그는 블로그 ‘뷰티풀 시너리’(blog.naver.com/chmade)에 보습제 비교 등 각종 정보와 아토피 마사지 방법 등 다양한 육아 비법을 소개하고 있다.
유두진 프리랜서 기자 tttfocus@naver.com
‘졸업’ 판정받던 날 눈물 펑펑
귀여운 얼굴에 뽀얀 피부. 4월24일 만난 이예슬(5·경기 안산시) 양이 상위 3%에 포함될 만큼 중증의 아토피 피부염 환자였다는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말도 마세요. 예슬이가 한창 아토피에 시달릴 때 병원에 데려갔더니 의사 선생님도 놀라셨어요. ‘아이가 이 지경이 되도록 뭐 하고 있었느냐’며 혼을 내더군요.”
아빠 이호상 씨는 당시의 막막했던 심정을 전하며 “예슬이의 아토피가 악화됐을 때는 피부가 보통사람의 발바닥보다 더 건조했다”고 말했다.
예슬이는 2007년 9월경부터 본격적인 아토피 증세를 보였다. 너무 긁어서 온몸이 피범벅이 될 정도였다. 보다 못한 아빠가 가려움증을 줄여주려고 아이의 몸을 압박붕대로 감는 민간요법까지 써봤을 정도. 그러다 지난해 4월 아토피를 전문으로 치료하는 병원을 알게 됐고, 그곳에서 한방과 양방을 혼용한 집중 치료를 받으면서 상태가 호전되기 시작했다. 치료를 받은 뒤 일주일쯤 지난 뒤 예슬이가 피부를 긁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부모는 의사의 처방을 절대적으로 신뢰했다.
“집에 와서도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했어요. 양방의 처방에 따라 하루 세 차례 오일을 발라줬고, 한방 요법대로 수시로 입욕도 시켰고요. 아이가 좋아지는 것이 눈에 보이더군요. 지난해 12월에 병원에서 ‘졸업’ 판정을 받았습니다.”
엄마 박은경 씨의 말이다. 박씨는 밝은 표정으로 전문가를 신뢰해야 아토피를 치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아이의 상태에 따라 잘 맞는 의사와 안 맞는 의사가 있으니 적절한 전문가를 만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부모의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유두진 프리랜서 기자 tttfocus@naver.com
1년간 아토피 무료 치료 혜택 환경 개선으로 거의 완치
김희광(5) 군의 어머니 이희정 씨는 환경재단과 한국중부발전이 아들의 아토피를 낫게 해줬다며 연신 고마워했다. 아들의 아토피 증상과 치료법을 알게 해줬다는 것이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이씨는 맞벌이를 하느라 자녀 4명을 제대로 돌볼 수 없었다고 했다. 어느 날 희광이가 다리를 긁는 것을 보고 ‘좀 있으면 낫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자고 나면 이불이 피범벅이 되기 일쑤였고 시간이 흐를수록 증상도 심해졌다. 저소득 가정 지원 프로그램에 등록해 보건소에서 예방접종과 식음료 지원을 받던 터라 희광이를 데리고 그곳을 찾았다.
“아토피라는 사실도 그때 알았어요. 아토피에 대해 전혀 몰랐고 병원 다닐 형편도 아니어서 애만 태웠죠.”
2008년 초 환경재단에서 전화가 와 사회공헌 사업인 ‘아토피 없는 세상 만들기(Free from Atopy)’를 알게 됐고, 서울의료원에서 1년간 무료로 치료를 받았다.
“의사 선생님과 얘기하다가 원인을 알았어요. 아토피를 일으키는 환경에 노출된 겁니다. 이전에 살던 집은 습기가 많고 바퀴벌레가 많았거든요.”
희광 군 밑의 두 아이도 아토피 증상을 보인 이유를 그때 알았다. 그때까지 이씨는 주변 얘기를 듣고 약을 쓰지 않았다.
“증상이 심해지는데, 어떤 분들은 약을 쓰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문외한이었죠.”
의사의 조언대로 집 안을 대청소하고 꾸준히 미지근한 물로 20분간 샤워를 시켰다. 목욕 후 보습제도 발라줬다. 집 구조상 습기는 어쩔 수 없어 햇볕 잘 드는 집으로 이사했다. 1년간 병원 치료를 받고 환경을 개선하니 이제 다리에만 약간의 아토피 증상이 남아 있을 뿐 생활에 문제가 없을 정도가 됐다.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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