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타지마할 호텔. 2008년 한 해 동안 인도에서는 8번 이상의 굵직한 테러사건이 발생했다.
그러나 인도에 사는 필자 처지에서는 2007년 이후 부쩍 늘어난 테러 공격이 방식과 규모를 ‘조금’ 달리해서 ‘또’ 일어났을 뿐이다. 최근 인도에서 일어난 테러가 타지마할 테러뿐이 아니기 때문이다. 굵직한 사건만 꼽아도 2008년 한 해에만 여덟 번 이상의 폭탄, 총격 등의 테러가 있었다.
9월 폭탄 테러 38세 여성이 주모자
국제적으로 테러분자는 ‘중동이나 서아시아 출신의 이슬람교도, 특히 남성’이라는 것이 공식처럼 통용되고 있다. 그러나 인도에서 빈발하는 테러 사건들은 이보다 훨씬 다양한 배경을 갖고 있다.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단체의 소행으로 밝혀진 테러 외에 동북부 분리주의자들이나 마오쩌둥주의를 표방하는 공산 테러리스트, 힌두교 원리주의 단체에 의한 테러도 빈번하다. 또한 간혹 여성 테러리스트에 관한 뉴스가 나와, 여성은 약한 존재라서 늘 폭력의 피해자가 된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린다.
요즘 인도 언론을 달구는 여성 테러리스트는 프라갸 타쿠르(38). 그는 2008년 9월 인도 중부 말레가온에서 벌어진, 5명의 사망자와 20명 이상의 부상자를 냈던 폭탄 테러의 배후로 지목되어 체포됐다. 프라갸는 열혈 힌두교도로 학생 시절부터 힌두교 원리주의 단체에서 활발히 활동해왔다. 2년 전에는 수행자로 출가까지 했다.
말레가온 폭탄 테러는 이슬람교 사원에서 기도하던 무슬림을 노린 것이었기에 처음부터 힌두 원리주의자 집단의 소행으로 의심됐다. 프라갸는 9명의 용의자 중 하나로 체포됐는데 자신이 타고 다니던 오토바이가 범행에 사용됐고, 폭탄을 설치한 남성과의 통화 내용이 밝혀지면서 말레가온과 또 다른 한 곳에서 연쇄적으로 일어난 폭탄 테러를 기획한 주모자급으로 조사받고 있다. 말레가온 이슬람교 사원에서 폭탄이 터진 직후의 통화에서 그는 “왜 그것밖에 죽이지 못했느냐”고 남성 행동대원을 다그쳤다고 알려졌다.
자신을 강간한 남자 등 22명 보복 살해도
경찰의 컴퓨터 분석과 피의자 심문조사로 밝혀진 바에 따르면, 말레가온 테러에 연루된 이들은 2025년까지 인도를 완전한 ‘힌두 국가’로 만들기 위해 이슬람교도를 공격하거나 힌두교로 개종시키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고 한다. 역시 힌두 원리주의 단체 민족봉사단(RSS)의 열성 단원인 아버지 덕분에 어린 나이부터 원리주의 사상에 심취했다는 프라갸는 이미 대학 시절 RSS의 핵심 단원이자 선동가로 이름을 날렸다. 감정을 뒤흔드는 유창한 언변으로 집회에 모인 여성들이 그의 연설에 눈물을 흘렸을 만큼 대중 정치인으로서의 자질을 타고났다.
이번 테러사건에 연루되기 전에도 프라갸는 힌두 원리주의를 표방하는 인도인민당(BJP)의 정치집회에 연사로 참석해 정치계에도 얼굴을 알린 차세대 정치 유망주이기도 했다. 그가 테러에 연루되자 힌두 원리주의 정치단체에서는 “힌두 원리주의를 공격하려는 음모”라고 주장하고 있다. 코앞에 닥친 총선에서 프라갸의 체포를 쟁점화해 다시 한 번 힌두교도를 규합, 표로 이끌어내려는 계산도 상당 부분 들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유명해진 프라갸 외에도 인도에는 우리의 상식을 깨는 여성 테러리스트가 제법 있다. 1991년 자살 폭탄테러로 라지브 간디 총리를 암살한 타밀 타이거의 요원 중에도 여성이 포함돼 있었다. 총선 지원 유세차 타밀나두 지방의 대형 집회에 참석한 라지브 간디를 노리고 꽃바구니를 든 축하객으로 가장한 여성이 바로 자살폭탄조였던 것. ‘여성은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잘못된 상식 탓에 보안검색을 허술하게 한다는 허점을 이용했는데, 허리에 엄청난 분량의 폭발물을 장착한 이 여성 테러리스트는 라지브 간디의 발을 만지며 경의를 표하는 제스처를 취하다가 자폭해 암살 목적을 달성했다. 이후 인도에서는 여경들이 보안검색에 배치돼 소지품은 물론 온몸을 손으로 훑으며 철저한 검색을 실시하고 있다. 이 밖에도 라지브 간디 암살에 연루돼 사형선고를 받은 4명 중 한 명이 여성이었다.
테러리스트 범주에 들어가기는 어렵겠으나, 남성을 능가하는 사건을 저지른 풀란 데비라는 하층민 출신 산적 여두목도 있었다. 상위 카스트 남성들에게 윤간당하고 애인을 잃은 풀란은 복수심에 불타 우타르프라데시 주의 오지를 전전하며 힘을 기르고 산적 떼를 이끌었다. 그러다 17개월이 지난 어느 날 문제의 마을을 습격해 자신을 강간했던 범인 2명을 포함해 그들과 같은 카스트에 속하는 남자 22명을 살해했다. 정부에 항의하며 수년을 경찰과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을 하다가 결국 조건부로 항복했는데, 나중에 국회의원까지 지내다 결국 그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의 복수의 총알에 사망하고 말았다. 풀란 데비의 실화를 바탕으로 ‘밴디트 퀸’이라는 영화가 만들어졌을 만큼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인명 살상과 파괴, 폭력을 가져오는 테러를 자행하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남의 말을 듣지 않는, 아집에 가까운 신념과 자기주장으로 무장하고 적개심과 복수심에 불타 있다. 자신의 믿음에 목숨을 바치는 열정과 용기는 숭고하나, 남의 목숨을 앗으려는 증오를 함께 키우는 그 믿음이 참으로 개탄스럽다. 이런 위험한 신념을 갖게 되는 것에 남녀가 따로 없음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남성보다 더 무서운 여성 테러리스트들에게 생명을 돌보고 사랑하는 것이 인류 역사가 보여준 여성의 미덕이요, 인류의 비전이라고 말한다면 너무 구태의연한 발언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