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 라이언의 스트라이프에선 어려 보이겠다는 의도가 역력하죠? 블랙과 화이트 셔츠는 모 럭셔리브랜드 이사님의 것입니다. 어디서 샀는지 물어봐야겠어요. 스트라이프가 내년 봄여름 시즌까지 유행할 거라니까요.
패션계에서 스트라이프와 체크는 스테디셀러지만, 올 가을 겨울엔 특히 스트라이프와 체크가 ‘잇 아이템’ 1순위에 올라 있답니다. 폴 스미스라는 ‘줄무늬의 황제’도 있어요. 줄무늬만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은 영국 디자이너죠. 하지만 이번 주 ‘잇 아이템’ 쇼핑은 폴 스미스의 컬러풀한 스트라이프가 아니라 횡단보도처럼 두 가지 컬러의 줄이 동일한 간격으로 반복돼 눈을 아른아른하게 만드는 스트라이프입니다.
사실 스트라이프는 중세 이후 꾸준히 인기를 모은 ‘패션 아이템’이랍니다. 중세에 제작된 글이나 그림을 보면 줄무늬 옷을 입은 사람들이 등장하는데요, 불행하게도 그들은 모두 사회질서를 문란하게 한 사람들이었어요. 유대인, 이단자, 광대, 창녀, 미치광이 등 면면도 다양하죠. 성경에 ‘두 재료로 직조한 옷을 입지 말라’는 구절이 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어요. 하여간 죽죽 ‘줄이 간’ 사람들은 뭔가 ‘악마’와 관련 있다고 간주된 거죠.
스트라이프는 18세기 말, 혁명 정신으로 불타오른 프랑스에서 미국의 13식민지를 뜻하는 빨강과 흰색의 줄무늬를 자유의 상징으로 받아들이면서 비로소 긍정적 의미를 갖게 됐다고 합니다. 당시 줄무늬는 체크무늬의 나라 영국에 대한 프랑스혁명 진영의 적대감을 과시하는 방법이기도 했고요. 그러고 보니 이때의 스트라이프에도 ‘열광’과 ‘일탈’의 느낌이 있었군요.
그 후 줄무늬는 경쾌한 리듬감 때문에 ‘놀이’와 관련된 복장에 자주 쓰이게 되는데, 지금도 운동선수들의 유니폼에서 스트라이프를 볼 수 있고, 뱃사람들의 복장에도 자주 쓰여 여름옷의 가로줄 무늬에는 늘 ‘마린룩’이란 설명이 붙어요.
20세기 초 아방가르드 예술가들도 굵은 가로줄 스트라이프 셔츠를 즐겨 입었던 것 같아요. 아마 스트라이프 셔츠를 입은 피카소의 사진을 본 분들도 많이 있겠죠? 시작과 끝이 없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스트라이프는 또 무척 회화적이어서 다니엘 뷔렝이라는 작가는 줄무늬로 세계적 작가 반열에 올랐어요.
패션 피플 중에도 스트라이프 마니아가 많아요.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처럼요. 얼마 전 개봉한 영화 ‘내 친구의 사생활’에서 주인공 멕 라이언은 줄곧 스트라이프 셔츠를 입어요. 나이가 드러나는 얼굴을 굽슬거리는 긴 머리로 가리고 스트라이프로 관객의 시선을 끌려는 거, 누가 모르겠어요. 나쁘지 않은 작전이긴 했어요. 또 남성 매거진 GQ의 이충걸 편집장은 스트라이프 티만 보면 ‘그냥 사버린다’고 하고, 적잖은 트렌드 세터들은 가장 좋아하는 아이템으로 스트라이프 셔츠를 꼽아요. 콤 데 가르송이나 앤 드뮐미스터, 아르마니처럼 스트라이프가 주요한 테마인 브랜드들도 있죠.
세로줄이 들어간 남성 슈트의 경우, 대부분은 살짝 보이는 정도지만, 밝은 컬러의 스트라이프 패턴 슈트를 즐겨 입던 남자들이 있었으니 바로 1930년대 미국의 갱단이었어요.
어쩐지 세상이 재미없다면, 스트라이프를 쇼핑하세요. 참, 요즘 눈에 잘 띄는 스트라이프 슈트를 입을 땐 조심하셔야 해요. 갱단이 아니라 바람둥이처럼 보이기 쉽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