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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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패션 브랜드로 때 빼고 광내고 돈도 번다!

대기업들 럭셔리 선점 위한 스피드 경쟁 … 하이엔드 마켓 차지, 마케팅 유통망 총동원

  • 김민경 주간동아 편집위원 holden@donga.com

    입력2008-08-11 17: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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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벌 패션 브랜드로 때 빼고 광내고 돈도 번다!

    삼성 제일모직이 운영하는 럭셔리 슈트 편집매장 란스미어. 벽에 쓰인 이름들이 슈트 명가들로 란스미어에서 수입한다.

    얇은 셔츠 한 장도 무겁게 느껴지는 여름 더위 속에서 겨울맞이 준비로 가장 분주한 사람들은 패션업계 관계자들이다. 패션업계가 다가오는 가을겨울 준비를 끝내고 ‘신상’을 언론과 바이어, VIP 고객에게 선보이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호텔이나 청담동 화랑들, 대형 매장에선 연일 패션쇼나 프레젠테이션이 이어지고, 도로는 쇼에 참석한 연예인들이 타고 온 검은색 밴들로 혼잡을 빚는다. 밖의 기온은 40℃에 육박하지만, 행사장 안은 캐시미어나 여우털 코트를 입은 모델들이 자연스러워 보이는 겨울 한복판이다.

    날마다 새 브랜드 알고 보면 같은 사업부

    날마다 새로운 패션 브랜드의 행사가 열리지만, 흥미롭게도 주최 측은 돌아가며 같은 얼굴이다. 즉 오늘은 마미페르, 내일은 니나리찌 식으로 도나카란, 마크제이콥스, 안나몰리나리, 엘리타하리, 지미추, 나인웨스트 같은 브랜드가 소비자들을 만나지만, 알고 보면 이는 코오롱, 삼성, SK, 또 코오롱, LG, SK 등의 패션사업부에 속한 팀명이기도 한 것이다.

    2~3년 전만 해도 중소 수입업상들의 영역처럼 보이던 옷과 신발 수입, 즉 럭셔리 디자이너 브랜드 유통 라이선스업에서 대기업끼리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로써 샤넬, 에르메스, 까르띠에 등 전통적 럭셔리 브랜드는 본사에서 설립한 지사에서 판매유통을 맡고, 마크제이콥스나 도나카란처럼 상대적으로 젊은 럭셔리 브랜드들은 한국 대기업들과 계약을 맺어 한국 시장에서 대결을 벌이는 구도가 형성된 것. 이미 1980~90년대 초 대기업들이 외국에서 ‘메이커’만 들여와 생산은 한국에서 하는 라이선스를 통해 럭셔리 브랜드 사업에 뛰어든 바 있다. 당시 라이선스의 목적은 브랜드가 아니라 대중적 마켓의 확대였다(그 결과 럭셔리 브랜드의 이미지는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다).



    최근 대기업의 패션사업은 소비시장 상위 5~10%를 차지하는 하이엔드 마켓을 두고 벌이는 럭셔리 브랜드의 마케팅 및 유통망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인 패션 제조시장은 삼성 제일모직, LG패션, 코오롱이 나눠 갖고 있다. 그러나 지금 패션사업은 얼마나 좋은 브랜드를 잘 마케팅하느냐에 달렸다. SK네트웍스는 패션업에선 후발주자지만 회사 전체가 ‘한 차원 높은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하고 패션, 최고급 와인, 수입차 등을 ‘프레스티지 사업’으로 묶어 적극적으로 키우는 덕에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SK네트웍스 패션 부문을 설명하는 함혜원 과장도 럭셔리 브랜드의 한국 법인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경력을 갖고 있다. SK네트웍스는 세계 최대의 럭셔리 그룹이자 기민한 경영으로 유명한 LVMH를 벤치마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기업답지 않게 정책 결정과 추진에 필요한 ‘스피드’를 갖췄다는 평이다.

    SK네트웍스는 캐주얼 브랜드로 루츠와 클럽모나코, ‘뉴 럭셔리’ 브랜드로 타미힐피거와 DKNY, 하이엔드급 디자이너 브랜드로 도나카란을 수입 판매한다. 한국 브랜드로 뉴욕에 진출한 오브제를 지난 연말 합병했고, 미국 뉴욕의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 리처드 채의 유통도 담당한다.

    삼성 제일모직은 올해 3월 서울 청담동에 패션문화 복합공간 10 꼬르소 꼬모를 열고, 한국인이 디자인을 맡고 있는 이탈리아의 신성 브랜드 데렐쿠니에 조건 없는 투자 결정을 내려 국내외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10 꼬르소 꼬모와 데렐쿠니는 럭셔리 패션사업 중에서도 극소수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날개 돋친 듯’ 팔리는 것들은 아예 없기 때문이다.

    글로벌 패션 브랜드로 때 빼고 광내고 돈도 번다!

    다이애나비가 사랑한 구두로 유명해진 지미추는 FnC코오롱에서 수입. FnC코오롱은 마니아층이 분명한 브랜드를 많이 갖고 있다.

    그러나 10 꼬르소 꼬모와 데렐쿠니 투자는 ‘월스트리트저널’ 등 해외 언론에서 “제일모직이 세계에 하이엔드 이미지로 진출하기 위해 삼성을 앞세워 야심차게 추진한 사업”이라고 보도할 만큼 상징성이 강한 프로젝트다. 제일모직은 국내 브랜드 빈폴과 갤럭시, 그리고 구호, 중가 수입 브랜드 나인웨스트, 뉴 럭셔리 브랜드에 해당하는 띠어리, 하이엔드 영역의 10 꼬르소 꼬모와 남성슈트 편집숍 란스미어, 이세이미야케를 유통한다. 또 한편으론 세계무대에서 활동하는 한국의 신진 디자이너들을 후원하는 삼성패션디자인펀드상을 운영해 대기업 가운데 가장 다양한 횡보로 패션사업을 벌이고 있다.

    FnC코오롱은 최근 하얏트호텔에서 대규모 남성패션쇼를 열어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하고 활력을 불어넣어 대기업다운 구실을 했다는 평을 받았다. FnC코오롱은 루이비통의 디렉터 마크 제이콥스가 만드는 마크제이콥스와 마크바이마크제이콥스, 다이애나가 사랑한 구두 지미추, 하이엔드 주얼리 프레드, 수제 구두 브랜드 벨루티를 수입 유통하고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디자이너 채규인의 마미페르도 새로 들여왔다.

    글로벌 공략 한국 브랜드 없어 유감

    글로벌 패션 브랜드로 때 빼고 광내고 돈도 번다!

    SK네트웍스가 올 가을 새로 선보이는 뉴욕 브랜드 엘리타하리. SK네트웍스는 뉴욕 브랜드를 많이 수입한다.

    “현재 대기업들이 수입하는 럭셔리 브랜드는 비중과 가치로 볼 때 국내의 소규모 수입업체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덩치다. 마케팅과 유통 비용이 엄청나게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만큼 해외 럭셔리 브랜드는 한국에서 백화점 유통망과 자본력을 지닌 대기업을 파트너로 선호할 수밖에 없다. 작은 수입업체들은 유통 마진을 더 준다 해도 불황이 닥치면 홍보비와 매장 수를 줄이거나 대폭 할인 판매를 할 수도 있다. 그럼 브랜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이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미지다.”(FnC코오롱 양문영 과장)

    처음부터 고급 마켓을 겨냥해 라이선스 브랜드로는 드물게 닥스를 성공적으로 유통해온 LG패션도 럭셔리 브랜드 안나몰리나리와 블루마린, 스포츠 브랜드 라푸마를 수입하고 있다.

    패션사업은 오랜 기간 연구개발 투자가 필요한 기초 소재나 제조 분야에 비해 초기 투자비용이 적고 승패가 빨리 나는 대신, 규모 면에서 한계를 지닌다고 평가돼왔다. 이런 이유로 대기업에는 적당하지 않다는 평이 많았다. ‘대기업이 상품인 동시에 문화이기도 한 패션을 진정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우려의 시선도 여전하다. 10년 전 삼성과 SK 등 대기업이 경쟁적으로 영화 제작에 뛰어들었다 허무하게 철수한 일을 예로 드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패션 브랜드는 공방 수준에서 다국적 기업으로 커졌고, 옷이나 구두를 만드는 일에서 호텔과 리조트 분야로까지 끝없이 팽창하는 중이다. 또한 분화한 소비자들은 전통 명품에 만족하지 않고 전 세계의 다양한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로 변덕스럽게 옮겨다니기 때문에 한두 개 브랜드로는 유통망을 유지할 수 없다. 패션이 다국적 대기업의 영역이 된 것이다.

    제일모직 홍보팀 이윤신 씨는 “전 세계 패션시장은 하나로 통합됐다. 국내, 국외, 럭셔리, 매스티지 브랜드를 따지는 게 이제는 무의미하다. 이 시장에선 어떤 브랜드가 살아남는지가 문제다”라고 말한다.

    올가을 FnC코오롱은 산드로와 바바토스라는 뉴 럭셔리존 브랜드를 론칭한다. 제일모직은 니나리찌 액세서리, SK네트웍스는 엘리타하리를 새로 선보인다. FnC코오롱의 양문영 씨는 “매 시즌 많은 새 브랜드들이 들어오지만 그 안에 한국 브랜드가 없어 유감”이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한국 브랜드란 한국적 정서를 담아 한국에서 만드는 오방색 ‘토종’ 옷이 아니다. 한국 기업이 세계시장에서 유통할 수 있는 글로벌한 패션 브랜드가 아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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