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를 끊기가 무섭게 다시 전화가 걸려온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경기지원 인천출장소(이하 인천출장소)에는 쇠고기 원산지 허위 및 미표시 업체에 대한 제보가 꾸준히 들어온다. 포상금이 짭짤한 만큼 앞으로 쇠고기 원산지 표시를 감시하는 이른바 ‘쇠파라치’의 활동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온 나라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둘러싸고 ‘난리’다. 국민들이 연일 촛불시위를 통해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에 의문을 제기하자 정부 각 부처는 쇠고기 원산지 표시제 홍보와 원산지 허위표시에 대한 단속을 병행하고 있다.
“라벨과 거래명세표 척 보면 압니다”
7월1일 인천지역 유통업체들의 쇠고기 원산지 표시 단속에 나선 사람은 인천출장소 변기환 윤재진 주무관. 이들은 베테랑 중 베테랑이다. 쇠고기만 쳐다본 지도 10년이 넘었다.
“우리는 중(中)급에서도 하(下) 정도죠. 정말 상(上) 중의 상은 따로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말은 겸손으로 들린다. 어떻게 육안으로 국내산 육류와 수입산을 구별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전문가로서의 역량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삼겹살은 몇 달이면 수입산과 국내산을 금방 판별해요. 쇠고기는 경력이 몇 년 돼도 틀리는 경우가 종종 있죠. 냉장 쇠고기의 경우는 구별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육안 감시로 주로 구별하지만 그래도 의심이 갈 때는 쇠고기 일부분을 떼내 시험연구소에서 DNA 분석을 한다.
정말 구분하기 쉬운 걸까? 주무관들이 기자에게 삼겹살을 대상으로 즉석에서 국내산과 수입산의 구분법을 알려준다. 국내산의 경우 잘랐을 때 절단면이 삐뚤삐뚤해 고르지 않다. 반면 수입산은 절단면의 모양이 일정하다. 간단한 차이지만 확연히 구분된다.
주무관들은 신기해하는 기자에게 “이제 더 놀라운 육안 구별법을 보여주겠다”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는다.
처음 찾아간 곳은 인천 연수구 선학동에 자리한 천지유통. 쇠고기를 비롯한 육류를 수입해 일반 소매점에 공급하는 도매상이다. 냉장창고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안경에 부옇게 김이 서린다. 영하 20℃. 창고 안은 쇠고기와 돼지고기가 담긴 포장 박스가 성인남성 키만큼씩 쌓여 있다.
“사실 대형 도매상은 큰 문제가 없어요. 포장된 상태 그대로 소매상으로 보내기 때문에 라벨과 거래명세표를 확인하면 원산지가 금방 확인되죠.”
문제는 소비자와 직접 맞닿는 음식점이라고 한다. 포장을 풀어 2차 가공을 할 때 원산지를 속일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천지유통 신홍식 대표는 거래명세표와 도축검사증명서를 변 주무관에게 건넨다. 포장된 상자를 열어 고기까지 확인하면 원산지 확인은 끝. 대형 도매상의 경우 원산지 확인이 수월하다는 것이 변 주무관의 설명이다.
“재래시장은 한 군데서 장난치면 다 장난쳐요. 한 군데 조사 나가면 다른 가게는 문 닫아버리죠. 동시에 들이닥쳐 조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인천 남동구 구월동 모래내시장. 이곳에는 도살장에서 잡은 고기를 가져와 직접 소비자들에게 파는 정육점이 즐비하다. 정육점 앞에서는 “자, 맛있는 고기가 있습니다. 100% 한우만 팝니다”라며 손님을 끄는 목소리가 드높다.
윤 주무관이 신분증을 내보이며 검사를 요청하자 가게 업무는 일순간 정지된다. 변 주무관은 정육점 주인에게 도축거래내역서와 거래실적 기록부를 요구하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동시에 윤 주무관은 진열장 한편에서 우족(牛足)을 꺼내 들었다 놓았다 하며 살펴본다.
때깔이 검붉으면 수입산 가능성 커
대형 할인점을 비롯한 유통업체에 대해서도 쇠고기 원산지 표시 점검이 이뤄진다(가운데). 변기환 주무관이 정육점에서 거래실적 기록부를 확인(왼쪽)한 뒤 고기를 꺼내 육안으로 관찰(오른쪽)하고 있다.
“한우는 지방질에 흰색이 많아요. 이른바 마블링이 잘돼 있죠. 수입산의 경우는 얼렸다 녹였다를 반복하다 보니 핏기가 진해지죠. 고기 색이 점차 검붉게 변한답니다.”
육안으로 구별하는 비결이라도 있는 것일까.
“고기는 자꾸 봐야 알아요.”
요령이 통하지 않는 것은 어디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갑자기 가게 안쪽이 시끄럽다. 주인이 어디론가 다급히 전화를 하고, 변 주무관은 심각한 표정으로 서류를 넘기고 있다.
“6월달 거래실적 기록부가 안 보이네요.”
쇠고기를 언제 어디서 받았는지를 기록하는 거래실적 기록부는 의무적으로 작성해야 한다.
“거래실적 작성 안 하셨죠? 이러면 곤란한데….”
순간 침묵이 흐른다. 조사관들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전 직원이 동원돼 거래실적 기록부를 찾느라 가게는 ‘비상상태’다.
“찾았다, 찾았어. 여기 있습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린다.
“맨 오른쪽 진열장에 있는 것은 이틀 전에 들어온 거네요. 한번 꺼내볼까요?”
변 주무관은 거래실적 기록부와 진열장 안 쇠고기를 비교하며 하나하나 원산지를 확인한다. 마지막으로 냉장실 확인에까지 걸린 시간은 40여 분. 조사 시간 동안 구경거리라도 난 듯 정육점 앞은 두리번거리는 손님들로 북새통이다. 이웃 가게들도 다시 한 번 원산지 표시를 확인하느라 모래내시장 일대가 들썩인다.
책임 큰 만큼 단속 어깨 무거워
본의 아니게 장사를 방해한 것 같아 기자가 미안함을 표시하자 “요즘은 한우도 안 사가요. 죽을 맛이죠. 차라리 이렇게 철저히 조사해서 소비자들의 불신감이라도 사라졌으면 좋겠어요”라며 주인은 오히려 홀가분하다는 반응이다.
대형 도매상, 재래시장 한 곳, 대형 할인점을 도는 데만 반나절이 꼬박 걸렸다. 오늘 단속의 ‘성과’는 없었다. 쇠고기 원산지 표시 단속이 강해지면서 예전처럼 적발되는 경우는 크게 줄었다고 한다. 인천에만 해도 1만9000여 개소의 양곡상, 축산 관련 가게들이 있고, 쇠고기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곳이 2000개소를 넘는다. 반면 인천출장소 직원은 16명에 불과하다. 이 인원이 인천 전 지역의 원산지 표시를 관리하는 셈인데, 한번 단속을 한 후 다시 단속하는 사이에 틈이 생기지는 않을까?
“우리만 단속한다면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보통 대여섯 개 기관에서 원산지 관리를 담당합니다.”
농산물품질관리원을 비롯해 식품의약품안전청, 수의과학연구원 등에서 수시로 검사를 나오기 때문에 평소에도 원산지 표시를 철저히 지킬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무엇보다 강력한 관리의 동기는 아이러니하게도 ‘경쟁업체의 제보’다.
“재래시장이나 대형 도매상의 경우 한 가게에서 원산지를 허위 표시한다 그러면 바로 제보가 들어와요. ‘주말에 한번 저 가게를 가보시라’는 식으로 말이죠. 경쟁을 하다 보니 서로 감시하는 셈이죠.”
재래시장은 경쟁업체에서 흘리는 정보가 많기 때문에 오히려 단속이 쉽다고 한다. 아파트 대단지 상가를 중점적으로 찾아가는 이유도 경쟁업체가 없는 곳에서 불법행위를 저지를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차를 타고 다시 인천출장소로 돌아왔다. 오늘 검사 결과를 정리하고, 다른 지역으로 조사를 나간 사람들과 회의를 하며 향후 일정을 의논한다.
쇠고기 수입 최전선에 서 있는 사람들. 책임이 큰 만큼 어깨가 무거워 보인다. 이들은 쇠고기를 볼 때 ‘색안경’을 낀다고 한다.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를 원산지 허위 표시를 잡아내기 위해서다.
“우리들이 대신 색안경을 끼고 살필 테니 국민들은 믿고 드셔도 될 겁니다.” 이들 베테랑의 확신처럼 국민이 먼저 색안경을 벗을 수 있을까? 색안경을 벗는다고 쇠고기에 대한 믿음을 회복할 수 있을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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