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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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수입하는지 몰라 원산지 둔갑 식은 죽 먹기?

쇠고기 수입업체·수입물량까지 철저히 비공개 … 복잡한 유통·무자료 거래 얽히고설켜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입력2008-07-07 1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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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수입하는지 몰라 원산지 둔갑 식은 죽 먹기?

    서울 성동구 마장동 축산시장 내 한 수입쇠고기 도매상 앞에 미국산 쇠고기 상자가 쌓여 있다.

    장맛비가 내리는 7월2일 오후 서울 성동구 마장동 축산시장의 분위기는 차분히 가라앉아 있었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이 6월26일 미국산 쇠고기 검역을 시작한 지 일주일 사이 628t의 미국산 쇠고기가 검역필증을 받고 이중 80t이 시장에 풀렸으니 일부 물량은 이곳을 드나들었을 터.

    수입 쇠고기를 판매하는 몇몇 도매상 앞에는 미국의 대표적인 수출업체 상표가 선명하게 찍힌 상자들이 놓여 있었다. 그러잖아도 여론의 곱지 않은 시선 탓에 장사가 잘되지 않기 때문인지 시장 분위기를 묻는 질문에 도매업자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이야기해줄 사람도 없고, 할 이야기도 없어요.”

    지난해 10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잠정 중단된 이후 지금까지 8개월 동안 미국산 쇠고기를 취급하던 도매업자들 처지에서는 적지 않은 피해를 봤으니 화가 날 법도 하다. 더욱이 끊이지 않는 촛불시위 때문에 쇠고기 시장이 급랭한 것도 좋을 리 없다.

    수입 쇠고기 유통경로는 ‘블랙박스’



    하지만 그들에겐 책임이 없을까? 수입 쇠고기를 한우로 둔갑시키고, 투명하지 못한 유통구조는 결국 불신을 자초한 측면도 적지 않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국내에서 수입 쇠고기 유통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을까? 현재 국내에서는 수입 쇠고기 유통구조에 대한 연구가 매우 미진한 상태다. 최근 4~5년 동안 관련 연구 자료나 보고서로는 한국육류유통수출입협회 양형조 기획실장이 2006년 조사 발표한 ‘수입 축산물(육류)의 유통실태’ 보고서가 거의 유일하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국내 쇠고기 유통경로와 구조에 대한 연구는 어느 정도 이뤄졌지만, 수입 쇠고기 유통경로와 구조 연구는 거의 없다. 블랙박스(Black Box)에 가깝다”고 말했다.

    이처럼 수입 쇠고기 유통과 관련한 연구가 부족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등록된 쇠고기 수입업체는 무려 2700여 개에 이른다. 그중 실제 영업을 하는 업체는 300~400개. 이 가운데 미국산 쇠고기 수입업체는 미국 현지에서의 광우병 발생으로 인해 한국에 대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중단됐던 2003년 말 303개에서 이후 수입이 재개된 2007년 초에는 58개 업체로 급감했다.

    문제는 정부가 이들 수입업체의 이름은 물론 수입물량까지 비공개를 고집한다는 점이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 기획검사계 강구식 사무관은 이에 대해 “(수입업체 이름과 수입량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기업 내부 정보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강 사무관은 그 근거로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제9조 7항을 제시했다. 제9조는 ‘비공개 대상 정보’를 규정하는 조항으로 7항에서 ‘법인·단체 또는 개인의 경영·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법인 등의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라고 정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위한 촛불집회가 끊이지 않고, 수입업체에 대한 누리꾼(네티즌)들의 압력이 거세게 일고 있는 현 상황은 극히 이례적이다. 이전까지 수입업체 이름과 수입량이 공개된다고 해서 과연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대기업들 시장에 깊숙이 개입”

    누가 수입하는지 몰라 원산지 둔갑 식은 죽 먹기?

    출처 : 한국육류유통수출입협회 ‘수입 축산물(육류)의 유통실태’ 보고서

    더욱이 9조 7항 단서조항에는 ‘사업활동에 의해 발생하는 위해로부터 사람의 생명·신체 또는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공개할 필요가 있는 정보’ ‘위법·부당한 사업활동으로부터 국민의 재산 또는 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공개할 필요가 있는 정보’는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광우병은 국민의 건강과 직결되는 사안이다. 이 때문에 정부로서는 오히려 수입업체에 관련된 정보를 적극적으로 공개하는 것이 법 취지에 맞다.

    한 수입 쇠고기 대형도매업체 관계자는 “정부가 수입업체 관련 정보를 왜 비공개로 하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한때 대기업들이 이 시장에 깊숙이 개입돼 있던 것과 무관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 업계 한 관계자의 얘기다. “2001년 쇠고기 수입자유화 이후 2003년 말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중단되기 전까지 한화와 롯데, LG, CJ 등 대기업들이 계열사나 협력업체 등을 통해 우회적으로 쇠고기 수입시장에 대거 진출했다. 이들은 기업 이미지상 이런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이들 대기업 가운데 롯데, LG 등은 시장 상황이 여의치 않자 2~3년 전쯤 철수했고, 한화는 아직까지 국내 유통업체들의 쇠고기 수입을 대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입과정부터 불투명한 수입 쇠고기가 투명한 유통과정을 거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양 실장이 작성한 ‘수입 축산물(육류)의 유통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수입 쇠고기 유통구조(표 참조)는 매우 복잡하다.

    국내 수입업체를 통해 들어온 수입 쇠고기는 일반적으로 도매상을 거쳐 육가공업체와 대량 소비처, 음식점, 정육점, 대형 유통업체 등을 통해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하지만 수입업체의 규모가 작고, 수입량이 많지 않을 때는 수입업체가 도매상을 거치지 않고 바로 육가공업체나 대량 소비처, 음식점, 정육점 등에 판매하기도 한다. 규모가 큰 일부 도매상은 미국 수출업체로부터 직접 수입하는 경우도 있다.

    다른 수입품 유통구조와 비교했을 때 특기할 점은 수입업체 간 또는 도매상 간에 거래가 많다는 것이다. 이 같은 거래는 호주산보다는 미국산 쇠고기 시장에서 자주 발생하는데, 이는 미국 수출업자들의 독특한 판매방식 때문이다.

    수입이 중단되기 전까지 미국산 쇠고기는 ‘구매자’ 중심이 아닌 ‘판매자’ 중심으로 매매됐다. 구매자인 국내 수입업체가 필요한 품목을 필요한 양만큼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판매자인 미국 수출업체가 팔고 싶은 품목과 양만큼 팔았던 것. 그것도 수출업체별로 달랐다. 도매상이나 대형유통업체 등 구매처에서 요구하는 품목을 맞추기 위해 국내 수입업체들은 서로 사고팔 수밖에 없는 구조였던 것.

    수입 쇠고기 유통망이 여기서 한 단계 복잡해지는 것은 일명 ‘나까마’로 불리는 중간 유통업자들 때문이다. 이들은 대부분 서울 마장동, 독산동 등 축산시장 주변에 사무실만 얻어놓고 국내 수입업체나 도매상들 간에 중개수수료를 받고 거래를 주선하는 ‘브로커’ 구실을 한다.

    이 과정에서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크게 두 가지. 하나는 절차가 늘어나면서 실제로 소비자들에게 전달되는 수입 쇠고기 가격이 필요 이상 상승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무자료 거래의 빈도수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무자료 거래가 많으면 그만큼 수입 쇠고기가 국내산 한우로 둔갑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국내 수입업체끼리 사고팔던 구조

    누가 수입하는지 몰라 원산지 둔갑 식은 죽 먹기?

    마장동 축산시장 주변에는 사무실과 냉동창고를 두고 수입 쇠고기를 유통하는 대형 도매상들이 많다.

    이 대목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가 주목되는 이유는 미국산만이 국내산 한우로 둔갑하기 쉽다는 점 때문이다. 호주, 뉴질랜드산 쇠고기의 경우 목초로 키워 맛과 질에서 한우보다 현저히 떨어질 뿐 아니라 ‘마블링(근내지방도)’이 거의 없어 한우와 쉽게 구별된다. 하지만 한우처럼 곡물로 기른 미국산 쇠고기는 맛과 질은 물론 마블링 정도도 한우와 비슷해 소비자들의 육안으로는 식별이 불가능할 정도다.

    호주, 뉴질랜드산 쇠고기의 주요 수입품목이 사태와 앞다리, 설도, 우둔 등 국거리용인 반면 미국산 쇠고기 주요 수입품목은 갈비, 등심, 목심, 양지 등 국내에서 선호하는 구이용인 것도 이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미국산 쇠고기 유통과정 중 한우로 둔갑하기에 가장 쉬운 단계가 음식점과 단체급식업체다. 그리고 가장 손쉬운 부위는 등심과 갈비다. 알목심, 알등심(꽃등심), 목등심 등으로 세분화된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해서 한우 등심으로 팔거나 LA갈비, 진갈비살, 갈비살 등을 한우 생갈비와 양념갈비로 속여 파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일례로 국내에서 판매하는 ‘이동갈비’ 대부분이 미국산 쇠고기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2003년 말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전면 금지된 이후 전국적으로 ‘이동갈비’를 판매하는 음식점이 줄어든 것도 같은 이유라는 것.

    마장동의 한 수입 쇠고기 전문도매상은 “(미국산 갈비가 들어왔을 때) 수입박스 포장을 풀어서 가져다 달라는 음식점이 많았다. ‘이동갈비’라고 하면 사람들이 대부분 한우라고 생각했는데, 음식점 주인들은 그걸 악용했다. 솔직히 요즘도 그런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이 업자는 “초등학교 등 학교 급식업체들도 한우 대신 미국산 쇠고기를 사용하거나 국내산 육우와 각종 수입 쇠고기를 섞어 파는 경우가 많았는데, 단가를 맞추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수입 쇠고기가 가공된 이후 원산지 표시 없이 원료로만 사용되거나 한우나 국내산 육우로 둔갑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양 실장은 “미국이나 호주, 뉴질랜드 등 수입 쇠고기는 포장된 상태로 유통되기 때문에 포장이 뜯겨지기 전까지는 한우로 둔갑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음식점이나 급식업체, 가공업체 등은 일단 포장을 뜯은 후 가공하거나 판매하기 때문에 둔갑할 여지가 많다”고 말했다.

    정부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놓은 것이 음식점 원산지표시 관리제도다. 업계 관계자들은 “정부 차원에서 의욕적으로 시행한 제도인 데다 수입산, 특히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큰 상황에서 과거처럼 속여 팔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업계 자정 차원에서라도 불법행위가 많이 사라질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들의 이야기를 일단 믿어야겠지만, 미국산 꽃등심 1kg이 9~10달러(예상시장가 1만4000~1만5000원)에 수입되는 데 반해 한우 등심 1kg은 10만원이 훨씬 넘게 팔리는 현실을 감안하면 불법의 유혹은 쉽게 사라질 것 같지 않다. 마장동 한 수입 쇠고기 도매상 한쪽에서 어디론가 팔려가기 위해 포장박스와 비닐이 벗겨진 채 칼질을 당하고 있는 수입 쇠고기를 보는 마음이 편치 않은 이유다. 빗줄기가 굵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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