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강 외나무다리에서 맞붙는 리버풀과 첼시.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 리버풀, 첼시 등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3강이 지난해에 이어 준결승에 올랐고, FC 바르셀로나(스페인)가 한 자리를 꿰찼다.
챔피언스리그는 53년 동안 단 10개국의 21개 클럽만이 우승의 감격을 누렸고 레알 마드리드(스페인·9회), AC 밀란(이탈리아·7회), 리버풀(잉글랜드·5회) 등 각국 명문 클럽들이 우승의 역사를 주도해왔다.
이번 4강에 오른 팀들의 감독은 알렉스 퍼거슨(맨유), 프랑크 레이카르트(바르셀로나), 라파엘 베니테스(리버풀), 아브람 그랜트(첼시). 국적 외모 성격 등이 모두 다른 개성 강한 이들 ‘보스’는 저마다 우승을 자신하고 있다.
최고의 제전인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하려면 이들은 축구전문가인 동시에 승리를 부르는 신비한 주술을 부려야 할지도 모른다. 객관적인 전력 외에 하늘이 내려주는 행운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4월24일(이하 한국시각)과 25일, 그리고 4월30일과 5월1일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펼쳐지는 준결승전의 승자는 결승전이 펼쳐질 모스크바(5월22일·루즈니키 스타디움)행 항공권을 손에 쥘 수 있다.
많은 축구전문가들은 프리미어리그 팀들 간의 결승전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같은 리그의 팀끼리 결승전을 펼친 적은 2000년(스페인·레알 마드리드-발렌시아)과 2003년(이탈리아·AC 밀란-유벤투스) 두 차례뿐이었다.
맨유와 바르셀로나는 10년 만에 만났다. 맨유가 우승했던 98-99시즌 조별 예선에서 맞붙은 이후 처음이다. 양 팀은 ‘세 번째 유럽챔피언’이라는 같은 꿈을 꾼다. 챔피언스리그 우승으로 따지면 리그 라이벌인 리버풀(5회)과 레알 마드리드(9회)에 밀리는 양 팀인지라 이번 기회가 더욱 소중하다. 맨유는 9년 만에, 바르셀로나는 2년 만에 우승에 재도전한다.
특히 알렉스 퍼거슨 감독에게 FC 바르셀로나는 각별하다. 다섯 차례 맞대결에서 짜릿한 기쁨과 아쉬움이 공존했다. 1991년 5월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데 카윕 스타디움(페예노르트 홈구장)에서 열린 유러피언컵 위너스컵 결승전에서 요한 크루이프가 이끌던 바르셀로나를 맞아 2대 1로 승리한 기분 좋은 추억이 있다. 부임 후 한 차례 우승도 거두지 못하던 그가 만일 이날 경기에서 패했다면 아마도 경질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퍼거슨 감독은 챔피언스리그에선 네 차례 맞붙었지만 한 번도 바르셀로나를 이겨보지 못했다(3무1패). 특히 1994년 바르셀로나의 홈인 캄프 누에서 당한 0대 4 패배의 악몽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퍼거슨 감독은 10년 만에 바르셀로나와 맞붙어 챔피언스리그 첫 승에 도전한다. 묘한 것은 아스널에서 뛸 당시 맨유를 상대로 7골을 뽑았던 ‘천적’ 티에리 앙리가 이제는 바르셀로나 유니폼을 입고 퍼거슨을 조준하고 있다는 점이다.
네덜란드 출신의 레이카르트는 현역 시절 마르코 판 바스턴, 뤼트 훌리트 등과 함께 ‘튤립 3총사’로 불리며 유로88(유럽선수권) 우승과 AC 밀란의 우승가도를 이끈 스타선수 출신이다. 그가 현역에서 은퇴한 후 막 지도자로 걸음마를 떼던 1999년 퍼거슨 감독은 전무후무한 트레블(프리미어리그·FA컵·UEFA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루며 전 세계를 호령했다. 네덜란드 대표팀을 이끌고 유로2000 4강을 이끈 후 잠시 네덜란드에 머물다 바르셀로나 감독을 맡았다.
레이카르트는 바르셀로나 지휘봉을 잡자마자 퍼거슨 감독과 으르렁댔던 악연이 있다. 데이비드 베컴을 레알 마드리드에 뺏긴 바르셀로나는 맨유가 노리던 호나우지뉴(당시 파리 생제르맹)를 전격 영입했다. 호나우지뉴를 베컴의 공백을 메울 유일한 대안으로 여기던 퍼거슨 감독으로서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었다.
호나우지뉴를 놓친 맨유가 대신 급히 영입한 선수는 다름 아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였다. 호나우지뉴는 올 시즌 부상으로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하다 AC 밀란으로 이적했지만, 호날두는 세계 최고 선수로 올라섰으니 맨유로서는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5년 전 호나우지뉴를 두고 으르렁댔던 이들은 지도자로서 첫 맞대결이다. 21세의 나이 차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다. 박지성은 2005년 캄프 누에서 열린 ‘쓰나미 이재민 돕기 세계올스타전’에서 호나우지뉴11의 일원으로 경기를 펼친 이후 3년 만에 이곳을 찾는다. AS 로마와의 8강전 2경기를 모두 풀타임으로 뛴 박지성은 PSV아인트호벤 소속이던 2005년 이후 3년 만에 다시 준결승 출전을 앞두고 있다.
올 시즌 중반 8명의 감독이 경질되는 폭풍이 휩쓸고 간 프리미어리그. 이 조짐은 끝나 보이지 않는다. 프리미어리그를 둘러싸고 올 시즌 종료 후 경질될 것으로 예상되는 ‘2차 감독 살생부’가 심심찮게 나돌고 있는 게 현실이다. 공교롭게도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전에서 맞붙는 베니테스와 그랜트의 이름이 나란히 올라 있다.
베니테스는 시즌 내내 투자를 외면하는 톰 힉스와 조지 질레트 등 구단주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스페인 출신의 베니테스는 2004년 6월 부임 후 챔피언스리그와 FA컵에서 한 차례씩 우승했지만 리버풀 팬들의 염원인 리그 우승을 이루지 못했다는 아킬레스건이 있다.
올 시즌에도 우승권에서 벗어나자 팬들의 실망은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구단주들은 지난해 말부터 위르겐 클린스만 전 독일대표팀 감독을 접촉하며 차기를 물색해왔다. 이 사실을 접한 베니테스는 노발대발하며 구단에 해명을 요구했다. 베니테스가 팬들의 신임을 다시 얻고 구단주들을 압박하기 위해선 챔피언스리그 우승이 절실한 처지다.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전을 앞두고 그는 또다시 ‘리버풀 정신’을 강조하고 나섰다. 힘든 여건에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았던 리버풀의 정신은 2005년 ‘제라드 매직’을 앞세워 기적적인 우승을 이끌었고, 지난 시즌에도 팀을 준우승으로 올려놓는 데 원동력이 됐다. 리그에서는 맨유, 첼시가 펄펄 날아도 ‘역시 유럽에서는 리버풀이다’라는 유럽 축구계 관계자들의 말은 무척 일리 있어 보인다.
첼시의 그랜트 감독은 지난해 9월 경질된 조제 무리뉴 감독 대신 지휘봉을 잡았다. 당초 크리스마스까지 ‘시한부 인생’이라던 그는 예상외로 팀을 잘 수습하며 프리미어리그와 챔피언스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하지만 올 시즌을 끝으로 팀을 떠날 것이라는 예상은 끊이지 않는다. 언론은 여전히 그에게 냉담한 데다 드로그바 등 팀 내 주축 선수들도 사실상 떠날 채비를 마쳤다. 자력으로 프리미어리그 우승컵을 차지하기는 벅찬 상황이라는 점에서 그랜트 역시 챔피언스리그 우승이 절실한 처지다. 이스라엘 대표팀을 맡은 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이력이 없는 그로서는 유럽 챔피언이라는 타이틀만이 지도자 자질과 관련한 일부 여론의 비난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양 팀은 지난 시즌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전에서도 맞대결을 펼쳤다. 1대 0 승리를 나눠 가진 양 팀은 승부차기 끝에 4대 1로 리버풀이 승리했다. 베니테스는 또다시 첼시를 격파하고 결승 진출을 자신하고 있다. 반면 그랜트는 지난 시즌 무리뉴가 못한 결승 진출을 이루며 내년 시즌 첼시 지휘봉을 예약해놓겠다는 각오다.
베니테스와 그랜트는 지난 2월11일 스탬포드브리지(첼시 홈)에서 열린 프리미어리그 26차전에서 0대 0으로 비긴 게 유일한 맞대결 전적이다. 고향행 짐을 싸두고 벌이는 양 감독의 승부여서 더욱 흥미롭다.
감독 | 알렉스 퍼커슨 VS 프랑크 레이카르트 | 라파엘 베니테스 VS 아브람 그랜트 | ||
구단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잉글랜드) | FC바르셀로나(스페인) | 리버풀(잉글랜드) | 첼시(잉글랜드) |
국적 | 스코틀랜드 | 네덜란드 | 스페인 | 이스라엘 |
생년월일 | 1941.12.31(67세) | 1962.9.30(46세) | 1960.4.16(48세) | 1955.5.6(53세) |
부임일자 | 1986.11.6 | 2003.7.1 | 2004.6.16 | 2007.9.20 |
리그 우승 | 9회(93·94·96·97·99·00·01·03·07년) | 2회(05·06년) | 없음 | 없음 |
UCL우승 | 1회(1999년) | 1회(2006년) | 1회(2005년) | 없음 |
FA컵 우승 | 5회(90·94·96·99·04년) | 없음 | 1회(2006년) | 없음 |
※ 리그 우승 기록은 현 소속팀에서 기록한 데이터 |
맨유-바르셀로나 | 4.24 오전 3:45(캄프 누· 바르셀로나 홈) | 4.30 오전 3:45(올드 트래포드·맨유 홈) |
리버풀-첼시 | 4.25 오전 3:45(스탬포드 브리지·첼시 홈) | 5.1 오전 3:45(안필드·리버풀 홈) |
결승전 | 5.22 오전 3:45(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