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운동이 불붙었던 80년대, 대중문화가 꽃피었던 90년대(오른쪽).
98년 경제위기 한국경제사 가장 큰 트라우마
1980년대 전두환 전 대통령이 적극적인 조절자 구실을 하던 한국경제는 ‘영광의 30년’ 후반기를 열게 되는데, 당시 20대를 보낸 사람들이 지금의 386세대로 불리는 이들이다. 이 호황기에 ‘귀족 노동자’라고 표현할 수 있는 중산층과 ‘넥타이 부대’가 탄생했고, 한국경제는 비교적 허리 부분이 두툼한 ‘마름모꼴’ 경제구조가 됐다. 이러한 마름모꼴 경제는 87년을 전후해 대폭발을 하고, 그리하여 이른바 ‘87년 체계’가 형성된다. 386세대의 정서는 이 ‘공유된 경험’을 근거로 한 자기실현 명제로 작용하는데, 경제호황기 서구의 68세대와 경제사회적 조건에서 가장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1990년대는 한국경제의 마름모꼴 구조가 세계경제 구조의 재편과 연결되며, 한국이 ‘세계의 공장’처럼 팽창해가던 때였다. 이 시기에 20대를 보낸 사람들은 한국 역사상 ‘문화적’으로 가장 세련됐다. 이 시기는 또한 ‘다양성 혁명’의 직전까지 갔던 때다. 즉 80년대에서 넘어온 정치적 가치가 90년대 형성된 다양성이라는 문화 가치와 충돌하면서 혼재하던 시기라고 할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시대를 ‘서태지 시대’라고 부를까 한다.
하나의 유형으로 정형화하기 어려운 모습들이 등장하던 이 시기엔 ‘오렌지족’ ‘X세대’ 같은 소비문화와 다양성의 시대가 뒤섞였고, 정치적으로는 아나키즘 성향이 ‘자치’ ‘자율’과 함께 하나의 경향성으로 등장했다. 극우에서 극좌까지 공존하던 이 시기는 전체주의적이고 동원경제적인 요소가 해소되면서 다음 단계로의 전환을 준비하던 시기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90년대에 만개한 다양성의 공간은 IMF 외환위기와 함께 닫힌다. 어쨌든 이 시기에 사회에 진출할 수 있었던 20대들은 한국경제의 특징 중 하나였던 일본식 연공서열제의 마지막 수혜자들이고, 다양성 혁명으로 향해가던 흐름 위에 서 있던 사람들이다.
‘88만원 세대’에 문 열지 않으면 구조적 질식사
취업난을 겪고 있는 2000년대 모습.
386세대, X세대 그리고 ‘88만원 세대’로 나뉘는 세대 현상은 서로 다른 3개의 경제사회적 공간이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 수도 있다. 이 문제를 사회적으로 강화하는 장치는 정규직, 비정규직 같은 노동의 유형과 부동산 보유 유무 두 가지다. 이중 가장 불리한 ‘88만원 세대’는 정규직도 아닌 데다 부동산도 없는 한국사회의 경제적 약자다. 문제는 이러한 흐름이 ‘잠김 현상’과 같아서 나이가 어릴수록, 그리고 뒤에 태어난 사람일수록 더욱 심하게 고통받는 ‘비가역적 구조’를 만든다는 것이다.
불행한 것은 8자형 윗부분에 들어간 일부 386들이 앞의 세대, 즉 유신세대와 공조해 다음 세대가 위로 올라오는 문을 닫아버리는 구실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완전히 문이 닫히면, 새로 사회에 진출하는 세대는 영원히 ‘88만원 세대’가 될 것이며 한국경제는 구조적으로 질식사하게 된다. 이 문을 다시 열어야 하는데 그 열쇠는 바로 ‘정규직’ ‘부동산’과 관련 있으며, 이 문제가 풀려야 교육문제도 풀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