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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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88만원’ 20대 비정규직 슬픈 자화상

취업 좁은 문 속 경제기득권 세대에 밀려 불리한 사회 첫출발

  •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경제학

    입력2007-10-31 14: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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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랜드 사태는 한국 사회의 비정규직 차별문제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 여기에 더해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88만원 세대’를 소개한다.
    • ‘88만원 세대’란 20대 비정규직 평균임금 88만원에서 비롯된 말로, 고용불안과 임금차별을 겪는 20대 비정규직 근로자를 가리킨다. - 편집자 -
    ‘월급 88만원’ 20대 비정규직 슬픈 자화상
    최근 KTX와 이랜드 사태 등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하나의 추세가 가져온 부작용과 사회적 반감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했다.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아웃소싱’이라는 이름으로 기업의 많은 ‘내부 과정’을 외부화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한국 경제가 1970년대에서 90년대에 이르는 이른바 ‘영광의 30년’ 동안 유지해온 일본식 연공서열제가 해체됐고, 비정규직 일반화의 시대가 열렸다.

    비정규직에 관해서는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공식 통계가 존재하지 않지만, 급속도로 증가하는 비정규직은 20대와 50대에 집중되는 쌍곡선 형태를 보이고 있다. 다시 말해 연공서열제의 경향이 남아 있는 30대와 40대가 대부분의 정규직을 차지하고 있는 데 반해, 20대와 50대에서 비정규직 비율이 월등히 높다. 게다가 여성, 지방대, 고졸 등 한국 경제의 ‘마이너리티’에 속하는 사회적 핸디캡이 결합되면 비정규직화의 속도는 더욱 빨라진다.

    경제 주도권 가진 40, 50대에 의한 세대계층화 진행

    비정규직 문제로 가장 먼저 부각된 KTX 여승무원이 20대 여성들이었고 다음이 40, 50대 여성들이 주축을 이룬 이랜드 사태였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두 사건은 단번에 수습될 수 있는 성격의 사안이 아니며, 앞으로 점점 일반화돼 사회적 위기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



    장기적으로는 상대적 소수만이 ‘우아한 직업(descent job)’을 갖게 될 현재의 20대에서 이런 불균형이 극단적으로 표출될 것이다. 기업과 비정규직은 일종의 ‘빈곤의 악순환’ 관계다. 기업은 경영이 어려워질수록 인건비 절감을 위해 더 많은 내부 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전환하는데, 이에 따라 ‘포스트 포디즘’이라 불리는 지식경영에 적합한 내부 혁신의 가능성도 줄어들게 된다. 노동은 갈수록 표준화된 기계적 노동으로 바뀌지만 다품종 소량생산 체계에서 기업 경쟁력은 더욱 약화되고, 이에 따라 외부화가 필요하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비정규직화가 시장의 기계적 조정장치에 의해 정규직 체계로 돌아갈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그렇다면 20대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현재 한국에서 비정규직의 평균임금은 119만원 정도인데, 여기에 20대의 평균임금률인 74%를 곱하면 88만원 정도가 된다. 이들은 외환위기 때 10대를 보냈고 사회에 진출할 즈음 비정규직 일반화가 진행되면서 상대적 소수만이 ‘튼튼한 직장’을 가질 수 있는, 비정규직화의 최대 피해자가 됐다.

    무엇보다 20대는 ‘승자독식 세대’로서 경쟁을 자연스럽게 체화했지만 연공서열제 종료 이후 사실상 세대간 경쟁에 들어간 셈이다. 하지만 경제기득권을 확보한 386세대와 유신세대에 밀린 20대의 경제적 조건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한마디로 40, 50대에 의한 세대 계층화가 구조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지금의 10대가 독립할 즈음에는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경제 주체의 관점으로 볼 때, 이런 식으로 장기간 작동할 수 있는 국민경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수요 부족으로 공황 국면을 맞거나 기업 경쟁력 약화에 따라 경제 부가가치가 질적으로 떨어지는 등 몇 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해볼 수 있다.

    스웨덴식 사회대타협·일본 연공서열제 복귀 등 대안

    ‘월급 88만원’ 20대 비정규직 슬픈 자화상

    사회에 진출할 즈음 비정규직 일반화가 진행되면서 ‘튼튼한 직장’을 얻는 젊은이들이 줄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세대간 불균형 문제가 완전고용 상태에서 지난 30년간 운용돼온 한국 경제엔 낯선 일이라는 점이고, 이에 대한 인식은 물론 이론적 대응 수준도 낮다는 점이다. 100개의 이랜드 사태가 동시에 벌어진다고 생각해보라. 이 정도의 사회 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대화 절차를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극단적으로 달러화 약세에 따른 세계경제의 위축이나 제3차 석유파동 등 외적 요인이 겹쳐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공황이 도래한다고 가정할 때 한국 경제가 자랑해온 내적 응집력과 역동성은 타격받을 수 있다. 계급 갈등은 임금비율 조정을 통해 상대적으로 단기간에 극복할 수 있겠지만, 특정 세대에 집중된 재생산 문제는 단기 해결이 불가능하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노동 유연성을 보장하는 대신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스웨덴식 사회대타협이나 3년 전부터 일본이 선택한 연공서열제로의 복귀, 임금을 낮추며 일자리를 늘리는 볼보주의식 ‘일자리 나누기’ 등의 대안이 논의될 수 있다. 기타 세대기금이나 중소기업 강화처럼 충격을 완화하는 다양한 옵션이 디자인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세대 불균형이 국민경제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문제의식이 낮다는 점이다.

    이랜드 사태는 다분히 우연적인 요소가 결합된 우발적 사태일 수 있다. 그러나 갈수록 일반화되는 비정규직화가 빚어낼 ‘88만원 현상’은 좀더 구조적이며, 거시경제에 위협요소가 될 것이다. 이 시점에서 세대간 불균형 문제를 완화할 수 있는 사회적 논의가 시급하다. 이는 ‘분배냐 성장이냐’라는 해묵은 논쟁이 아니라, ‘정상적인 국민경제 주체를 어떻게 재생산할 것인가’라는 거시경제 운용의 기초에 관한 질문이다. 이제라도 그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고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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