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5월 서울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던 박성남 씨가 자신의 작품들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잘 알려진 대로 박수근의 그림은 역대 한국 화가들 가운데 가장 비싸다. 그러나 그의 후손들은 박수근의 그림을 한 점도 소장하지 않고 있다. 생계를 위해 그림을 모두 팔았기 때문이다. 필자의 오랜 지인이기도 한 성남 씨는 아버지가 뒤늦게라도 인정받는 것이 기쁠 뿐, 자신의 처지를 한탄한 적이 한 번도 없다.
“2년 반 긴 투쟁 … 진실 밝힌 분들 때문에 희망 발견”
그런 후손들에게 갑자기 혼란스런 일이 생겼다. 난데없이 박수근의 그림 1760점을 소장하고 있다는 김용수 씨가 나타난 것이다. 그 그림들은 현재 거래되는 가격으로 대충 계산해도 2000억원이 넘는다. 이내 한국미술감정협회에 의해 그 그림들이 모두 가짜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물론 후손들은 김씨가 소장한 그림이 모두 가짜라는 확신을 가졌다. 박수근의 생애를 곁에서 지켜본 가족 처지에선 자신들이 모르는 작품이 그렇게 많을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이 해야 할 일은 자명했다.
장남 성남 씨가 후손을 대표해 소송을 제기했다. 당연히 김씨도 맞고소로 대응했다. 한국미술감정협회 관계자들도 김씨에게 고소를 당했다. 2005년 5월4일 양측의 고소장이 접수됐고, 위작이냐 아니냐를 놓고 길고 긴 공방전이 최근까지 이어졌다.
필자는 2005년 4월 성남 씨가 ‘나는 왜 김용수를 고소했나’라는 장문의 글을 들고 찾아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와 10여 차례 인터뷰를 했다. 성남 씨는 고소 사건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지난 2년간 서울에 머물다시피 했다. 다음은 10월23일 오전 국제전화로 성남 씨와 대화한 내용이다. 마지막 세 질문은 과거에 가졌던 인터뷰에서 인용했음을 밝힌다.
- 김용수 씨의 소장품이 모두 가짜라는 검찰의 발표가 있었다. 지금의 심정은?
“진작부터 이러한 결론을 예상했기 때문에 별다른 감회는 없다. 다만 사태가 이 지경에까지 오도록 방치한 한국 미술계에 섭섭할 따름이다. 더욱이 허술한 사기꾼의 범죄행위를 비호한 협작 세력에 비애를 느낀다. 그들은 한국 미술계에서 내로라하는 명망가들 아닌가.”
- 그들은 오히려 오랜만에 활기를 되찾은 한국 미술계에 박씨 등이 찬물을 끼얹었다고 비난한다.
“적반하장이다. 그들이 올바르게 처신했다면 이번 사태도 조기에 수습됐을 것이다. 이 얼마나 쓸데없는 공권력 낭비인가. 일부 미술계 인사들의 낮은 국민의식과 공동체 의식에서 비롯된 불행한 결과다. 게다가 이번 기회에 미술계를 정화하자는 주장에 대해 ‘얼어붙은 미술시장’ 운운하면서 사태를 덮어버리려는 세력이 있다니, 무력감을 느낀다. 내가 그들을 응징할 만한 사람은 못 되지만,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그들이 반성하게 만들어야 한다.”
박수근 화백(가운데)과 어린 시절의 성남(왼쪽) 씨. 오른쪽은 장녀 인숙 씨.
“이중섭 박수근 두 화가의 명예를 회복했다는 점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 소득이다. 두 분은 한국미술사의 근대와 현대를 잇는 상징적인 화가다. 이런 분들이 그토록 많은 엉터리 그림을 그린 당사자가 된다면 한국 미술사의 맥은 끊어지게 된다.”
- 지금까지의 처리 과정에서 미흡하다고 느낀 점은 무엇인가.
“이중섭 박수근의 위작이 너무 많이 일반에게 노출돼 두 분 작품의 이미지가 크게 훼손됐다는 점이다. 즉 진품과 위작 사이에서 혼동을 일으킬 수 있다는 뜻이다. 이건 예술작품에 가하는 테러다. 그동안 좀더 세심하게 배려했어야 한다.”
- 가짜 판명의 결과를 얻는 데 공헌한 단체나 개인이 있는가.
“각종 협박과 회유, 비난에도 끝까지 진실을 밝혀낸 한국미술감정협회에 공을 돌려야 마땅하다. 개인을 거론하기는 좀 그렇지만, 몇 분은 한국 미술계를 위해 큰 업적을 남겼다. 그런 분들이 있는 한 한국 미술계에는 희망이 있다.”
- 이중섭의 차남 이태성 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같은 2세 처지에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2005년 5월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찾아갔던 이태성 씨의 기자회견장에서 그가 잘못된 사람들을 만나 휘둘리고 있다고 짐작했다. 그러나 그때는 별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다만 빨리 고소해서 사태를 바로잡는 것만이 수렁에 빠진 이씨를 돕는 길이라고 믿었다.”
- 당시 이씨를 만나 무슨 이야기를 나눴나.
“난생처음 만난 그를 끌어안았다. 말도 통하지 않는 그를 포옹하면서 속으로 울었다. 그의 얼굴에서 깊은 고뇌를 읽었기 때문이다. 이씨가 그렇게 된 데는 한국 미술계에 전적인 책임이 있다. 인간은 약한 존재다. 집요하게 회유당하다 보면 순간 오판할 수도 있다. 한국 미술계의 명망가들이 적극 대처했다면 사태를 초기에 바로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중섭 화백은 한국 미술인들의 선배이자, 정신적으로 갈급할 때 목을 축일 수 있는 생수 같은 존재다. 이씨에게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을 묻되, 다들 똑같이 책임을 느껴야 한다.”
- 더는 박수근 위작이 나오지 않을 것으로 보는가.
“그렇게 되길 소망한다. 내가 살아 있는 한 누구도 위작을 내놓기 어려울 것이다. 나는 아버지의 그림을 거의 똑같이 그릴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아버지의 작업을 곁에서 지켜왔고 돌아가신 뒤에도 마티에르, 붓 터치 등을 끊임없이 연구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는 아버지의 그림에서 영혼을 느낀다. 그렇기에 나보다 아버지의 그림을 더 잘 베낄 사람은 없다고 믿는다. 이번 사건에 임하면서 그동안 내가 너무 (위작에 대해) 소홀하지 않았나 반성도 했다. 앞으로는 유사한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생각이다.”
- 후손들이 소장한 박수근 화백의 작품은 없는가.
“없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극심한 생활고 탓에 몇 차례 ‘박수근 유작전’을 열어 모두 팔았다. 당시엔 호당 5000원이었다. 그 돈으로 쌀을 샀고 학비를 냈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도 그랬다. 자녀들이 그림에 재능을 보여도 말려야 했던 어머니의 심경을 충분히 이해한다.”
박수근이 1952년에 그린 다섯 살배기 장남 성남 씨. 현재 소장자는 알려지지 않았다.
“아버지 작품을 소장하지 않은 것은 어떤 의미에서 축복이다. 그렇게 큰 재산이 있었다면 형제간의 우애도 지금처럼 깊지 않았을 테고, 무척 게으르게 살았을 것이다. ‘예술가는 적당히 가난해야 한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아버지도 가난하지 않았다면 서민의 모습만 그리진 않았을 것이다. 이중섭 화백도 마찬가지다. 그런 의미에서 이중섭과 박수근 화백은 우리의 사람이다. 우리가 지나온 근대의 정체성이다. 우리가 반듯하게 지켜내야 할 공동재산이다.”
- 김용수 씨가 소장한 가짜 그림은 어떤 방식으로 처리돼야 한다고 보는가.
“그가 수집한 박수근 그림 1700여 점은 모두 가짜다. 불태워 흔적도 남기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일부는 가짜 그림의 제작, 유통 과정의 사례로 보관하고 전시했으면 좋겠다. 그 일은 유족이나 미술계의 힘으로는 역부족이다. 사법기관의 협조가 필요하다.”
- 언제 호주로 돌아오나?
“12월에 돌아갈 예정이다. 시드니는 나의 근거지다. 서울은 화가로서의 내 활동무대다. 앞으로 자주 왕래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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