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댓국.
안양에 터를 잡았으면 적어도 그 오래된 식당에 인사는 해야 할 것 같아 그중 한 곳인 삼덕집을 찾아갔다. 삼덕집은 종이공장 삼덕제지 앞에서 포장마차를 열고 국밥을 팔기 시작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은 딸에게 물려주고 은퇴한 정명순(83) 씨가 40년도 더 전에 시작한 음식점이다.
제지공장 노동자들 허기 달랜 한 끼 … 내장, 머리고기, 오소리감투 푸짐
지금도 중앙시장 장터에는 여전히 포장마차들이 줄지어 있지만, 삼덕집은 시멘트 건물 1층에 튼실하게 자리잡고 있다. 간판은 삼덕집 순대국(031-466-0071)이다. 작은 글씨로 소머리국밥, 고사머리, 막창구이 전문이라 적혀 있고, 괄호 안에 원조할머니집이라고 씌어 있다. 음식점 바로 옆에는 순댓국집들이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죽 늘어서 있다.
순댓국과 막창구이가 이 집의 전문이다. 밥이 말아 나오는 순댓국밥에는 순대가 보이지 않는다. “순대는 없어요?”라고 묻자 안주인 정씨의 따님은 “넣어달라면 옆집에서 순대를 사와 넣어줄 수 있어요”라고 대답했다. 이 집은 아예 순대는 넣을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 이유가 뭐냐고 묻자, 사람들이 순대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처럼 순대부터 건져 먹는 사람은 아예 취급조차 하지 않는다.
안양토박이에게 물었더니, 정씨가 늘 “제대로 된 순댓국에는 순대가 안 들어가”라고 말했단다. 그럼 그게 고깃국이지 순댓국일까 싶은데, 삼덕집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왜 순대가 도태됐는지 이해된다. 삼덕집은 1961년 안양에 삼덕제지 공장이 들어서면서 먼지 많은 종이공장 노동자들의 허기를 채워줬다. 제지공장 노동자들에겐 당면이 들어간 순대보다 고기 한 점이 더 아쉬웠을 것이다.
삼덕집 순댓국에는 내장, 머리고기, 토실한 오소리감투가 잔뜩 들어 있다. 오소리감투는 돼지 밥통, 즉 위장이다. 오소리 머리에 뒤집어썼으니 작은 감투인데, 감투 모양을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다른 설로는, 서로 차지하려고 탐내는 감투처럼 맛 좋은 부위라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먹성 좋은 돼지의 일생을 관장했던 돼지의 위장, 즉 쉬지 않고 수축운동을 했던 질기디질긴 그러면서도 말캉말캉한 오소리감투는 제법 씹는 맛이 난다.
순댓국밥을 떠보니 밥알이 잘 안 걸린다. 밥보다 고기가 훨씬 더 많다. 하루 종일 우려낸 국물은 잡내 없이 부드럽다. 반찬으로 풋고추, 마늘, 된장, 깍두기, 배추김치, 고추를 썰어 넣은 새우젓이 나온다. 주방 아주머니들의 말투는 투박하지만, 인심은 순댓국 속에 가득 들어 있다. 그릇이 넘칠 만큼 푸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