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약 한번 먹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까. 인류 건강과 불가분의 역사를 함께해온 약. 그 약이 요즘 무한 진화하고 있다.
“하루 세 번, 식후 30분에 드세요.” 약국에 가면 약사에게서 으레 듣는 말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물 없이도 먹는 약, 1년에 한 번만 주사하면 되는 뼈엉성증(골다공증) 치료제 등 통념을 깨뜨리는 약들이 잇따라 출현하면서 전통적인 약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고혈압을 앓는 민경호(가명·62) 씨는 매번 약 먹는 일이 곤혹스럽다. 고혈압 환자 대다수는 고령인 데다 당뇨병이나 고지혈증 같은 합병증으로 한꺼번에 여러 약을 복용해야 하는 고충을 겪고 있다.
이런 점에 착안한 한국아스트라제네카의 고혈압 치료제 ‘아타칸 16mg’은 지름이 불과 7mm로, 기존 약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초소형으로 개발됐다. 크기가 작아 다른 약과 함께 복용해도 부담스럽지 않고, 고령 및 여성 고혈압 환자도 쉽게 복용할 수 있어 환자의 복용 기피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심혈관 질환으로 인한 사고를 최소화할 수 있게 했다. 아타칸은 강력한 혈압강하 및 심장보호 효과, 초소형에 따른 복용의 편리함이 알려지면서 30% 이상 고속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아스트라제네카 아타칸 PM(제품 매니저) 이경원 과장은 “아타칸은 혈압강하 효과도 중요하지만 환자가 약을 얼마나 정기적으로 잘 복용할 수 있는지에도 초점을 맞춘 게 특징”이라며 “처음엔 아타칸이 가장 작은 제형(劑形)의 고혈압약이었지만, 현재는 많은 경쟁업체들이 앞다퉈 작은 제형의 제품을 시장에 내놓고 있다”고 전한다.
뼈엉성증 치료제는 통상 일주일에 한 번씩 먹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GSK는 한 달에 한 번만 복용하면 되는 ‘본비바정’을 출시한 데 이어, 이를 주사제로 바꿔 3개월에 한 번만 주사로 맞는 ‘본비바주’를 출시했다.
물 없이 먹는 약 등장, 패치제로 전성시대
이에 그치지 않고 마치 정기 건강검진을 받듯 1년에 한 번 주사 한 대로 뼈엉성증을 치료하는 약도 나왔다. 한국노바티스는 현재 1년에 한 번만 맞으면 되는 뼈엉성증 주사제 ‘아클라스타’의 국내 출시를 준비 중이다. 이 주사제는 1년에 한 번 15분 정도 정맥주사로 맞으면 되는 만큼, 자주 약을 먹어야 하는 환자의 불편함이 최소화됨으로써 뼈엉성증 치료에 변혁을 가져오리라 전망된다.
알약을 먹을 때 바늘과 실처럼 따라붙는 것이 물. 하지만 물 없이 먹을 수 있는 약도 등장했다. 물 없이 먹는 약은 알약을 삼키기 힘든 암환자나 혼수상태의 환자 등 특수상황 또는 약 복용이 꺼려지는 신경정신과 계통의 약물이 대부분이다. 한국얀센의 우울증 치료제 ‘레메론 솔탭’, 한국릴리의 정신분열증 치료제 ‘자이프렉사 자이디스’, 한국GSK의 구토 억제제 ‘조프란 자이디스’, 제일약품의 위궤양 치료제 ‘란스톤 LFDT’ 등은 물 없이 소량의 침에 녹여 먹을 수 있도록 개발됐다.
몸에 붙이는 패치제도 전성기를 맞고 있다. 패치제는 주사제와 먹는 약(경구용)에 밀려 관절염 환자나 암환자의 통증 치료 등에 제한적으로 사용됐다. 하지만 최근엔 간편하고 부작용이 적다는 강점 덕에 각광받고 있다.
한국노바티스는 지금까지 복용약으로 사용된 치매 치료제 ‘엑셀론’을 접착식 패치로 만든 ‘엑셀론 패치’를 7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데 이어, 올해 안에 국내에서도 출시하기 위해 서두르고 있다. 먹는 형태의 엑셀론은 구토를 일으키는 등 부작용이 많지만, 엑셀론 패치는 약 성분이 곧바로 혈관을 통해 흡수되기 때문에 부작용이 거의 없다고 한다.
천식 치료제는 보통 입 안에 뿌려 흡입하는 형태인데, 이는 특히 어린이 환자에게 거부감이 컸다. 흡입형 제제를 올바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복약지도가 앞서야 한다는 번거로움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애보트의 ‘호쿠날린 패치’는 약을 먹거나 흡입하기 힘든 어린이, 노약자 환자에게 적합하도록 개발됐다. 하루 한 번 가슴이나 등 같은 상반신에 붙이면 24시간 약효가 지속된다. 특히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크기라 어린이 환자도 쉽게 붙일 수 있어 야간 천식발작 예방에 효과적이다.
쓰디쓴 알약보다 더 싫은 약은 무엇일까. 바로 주사제다. 특히 암환자에게는 독한 항암주사를 몇 달씩 맞으면서 구토와 탈모로 고통받아야 하는 항암치료가 몸속의 암만큼이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최근 먹는 항암제가 개발되면서 ‘악명 높은’ 항암주사를 맞아야 하는 환자들이 크게 줄었다. 입원할 필요 없이 집에서 항암치료를 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 약들은 대부분 암세포나 암세포에 영양을 공급하는 혈관내피세포만 선택적으로 공격하는 최신 표적 항암제다. 한국노바티스의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 한국로슈의 위암 치료제 ‘젤로다’, 한국바이엘의 신장암 치료제 ‘넥사바’ 등이 대표적이다.
환자 맞춤 ‘파마코지노믹스’ 시대 도래
천편일률적이던 하얀색 알약도 화려하게 변신 중이다. 이른바 알약의 디자인 시대가 도래한 것.
대웅제약의 진통제 ‘이지엔6’는 투명한 파란색으로 청량감과 시각적 상쾌함을 더해준다. 특히 물 형태의 액상을 투명한 연질 캡슐에 넣는 네오솔 공법을 이용해 기존의 정제형 제제보다 빠른 진통효과를 볼 수 있다. 이처럼 눈에 띄는 색과 디자인으로 이지엔6는 여대생들에게 큰 인기를 끌면서 여성용 진통제로 자리잡고 있다.
한국MSD의 뼈엉성증 치료제 ‘포사맥스’는 약 표면에 뼈 모양의 문양을 새겨 약을 혼동하거나 복용을 잊지 않도록 하는 한편, 뼈를 튼튼하게 하는 약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한국화이자의 고혈압 치료제 ‘노바스크’는 고령 환자도 쉽게 기억할 수 있는 팔각형 모양이다.
경희대 의대 동서신의학병원 김정태 약무팀장(약학박사)은 “색다른 콘셉트를 지닌 약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환자들의 약물 복용 횟수가 전체적으로 줄어 복용도가 높아졌을 뿐 아니라, 붙이는 약물이 늘어남에 따라 위장장애도 줄었다. 하지만 기존 약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싼 이들 약의 재고 관리가 약사에게는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그는 “환자 개개인에게 가장 적합한 맞춤 약물요법인 파마코지노믹스(Pharmacogenomics/약리유전체학·개인의 유전적 차이에 따른 약물대사 차이를 밝히는 것) 시대의 도래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하루가 다르게 환자를 겨냥한 약들의 이유 있는 진화는 언제까지 이어질까.
“하루 세 번, 식후 30분에 드세요.” 약국에 가면 약사에게서 으레 듣는 말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물 없이도 먹는 약, 1년에 한 번만 주사하면 되는 뼈엉성증(골다공증) 치료제 등 통념을 깨뜨리는 약들이 잇따라 출현하면서 전통적인 약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고혈압을 앓는 민경호(가명·62) 씨는 매번 약 먹는 일이 곤혹스럽다. 고혈압 환자 대다수는 고령인 데다 당뇨병이나 고지혈증 같은 합병증으로 한꺼번에 여러 약을 복용해야 하는 고충을 겪고 있다.
이런 점에 착안한 한국아스트라제네카의 고혈압 치료제 ‘아타칸 16mg’은 지름이 불과 7mm로, 기존 약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초소형으로 개발됐다. 크기가 작아 다른 약과 함께 복용해도 부담스럽지 않고, 고령 및 여성 고혈압 환자도 쉽게 복용할 수 있어 환자의 복용 기피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심혈관 질환으로 인한 사고를 최소화할 수 있게 했다. 아타칸은 강력한 혈압강하 및 심장보호 효과, 초소형에 따른 복용의 편리함이 알려지면서 30% 이상 고속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아스트라제네카 아타칸 PM(제품 매니저) 이경원 과장은 “아타칸은 혈압강하 효과도 중요하지만 환자가 약을 얼마나 정기적으로 잘 복용할 수 있는지에도 초점을 맞춘 게 특징”이라며 “처음엔 아타칸이 가장 작은 제형(劑形)의 고혈압약이었지만, 현재는 많은 경쟁업체들이 앞다퉈 작은 제형의 제품을 시장에 내놓고 있다”고 전한다.
뼈엉성증 치료제는 통상 일주일에 한 번씩 먹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GSK는 한 달에 한 번만 복용하면 되는 ‘본비바정’을 출시한 데 이어, 이를 주사제로 바꿔 3개월에 한 번만 주사로 맞는 ‘본비바주’를 출시했다.
물 없이 먹는 약 등장, 패치제로 전성시대
이에 그치지 않고 마치 정기 건강검진을 받듯 1년에 한 번 주사 한 대로 뼈엉성증을 치료하는 약도 나왔다. 한국노바티스는 현재 1년에 한 번만 맞으면 되는 뼈엉성증 주사제 ‘아클라스타’의 국내 출시를 준비 중이다. 이 주사제는 1년에 한 번 15분 정도 정맥주사로 맞으면 되는 만큼, 자주 약을 먹어야 하는 환자의 불편함이 최소화됨으로써 뼈엉성증 치료에 변혁을 가져오리라 전망된다.
알약을 먹을 때 바늘과 실처럼 따라붙는 것이 물. 하지만 물 없이 먹을 수 있는 약도 등장했다. 물 없이 먹는 약은 알약을 삼키기 힘든 암환자나 혼수상태의 환자 등 특수상황 또는 약 복용이 꺼려지는 신경정신과 계통의 약물이 대부분이다. 한국얀센의 우울증 치료제 ‘레메론 솔탭’, 한국릴리의 정신분열증 치료제 ‘자이프렉사 자이디스’, 한국GSK의 구토 억제제 ‘조프란 자이디스’, 제일약품의 위궤양 치료제 ‘란스톤 LFDT’ 등은 물 없이 소량의 침에 녹여 먹을 수 있도록 개발됐다.
몸에 붙이는 패치제도 전성기를 맞고 있다. 패치제는 주사제와 먹는 약(경구용)에 밀려 관절염 환자나 암환자의 통증 치료 등에 제한적으로 사용됐다. 하지만 최근엔 간편하고 부작용이 적다는 강점 덕에 각광받고 있다.
한국노바티스는 지금까지 복용약으로 사용된 치매 치료제 ‘엑셀론’을 접착식 패치로 만든 ‘엑셀론 패치’를 7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데 이어, 올해 안에 국내에서도 출시하기 위해 서두르고 있다. 먹는 형태의 엑셀론은 구토를 일으키는 등 부작용이 많지만, 엑셀론 패치는 약 성분이 곧바로 혈관을 통해 흡수되기 때문에 부작용이 거의 없다고 한다.
천식 치료제는 보통 입 안에 뿌려 흡입하는 형태인데, 이는 특히 어린이 환자에게 거부감이 컸다. 흡입형 제제를 올바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복약지도가 앞서야 한다는 번거로움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애보트의 ‘호쿠날린 패치’는 약을 먹거나 흡입하기 힘든 어린이, 노약자 환자에게 적합하도록 개발됐다. 하루 한 번 가슴이나 등 같은 상반신에 붙이면 24시간 약효가 지속된다. 특히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크기라 어린이 환자도 쉽게 붙일 수 있어 야간 천식발작 예방에 효과적이다.
쓰디쓴 알약보다 더 싫은 약은 무엇일까. 바로 주사제다. 특히 암환자에게는 독한 항암주사를 몇 달씩 맞으면서 구토와 탈모로 고통받아야 하는 항암치료가 몸속의 암만큼이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최근 먹는 항암제가 개발되면서 ‘악명 높은’ 항암주사를 맞아야 하는 환자들이 크게 줄었다. 입원할 필요 없이 집에서 항암치료를 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 약들은 대부분 암세포나 암세포에 영양을 공급하는 혈관내피세포만 선택적으로 공격하는 최신 표적 항암제다. 한국노바티스의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 한국로슈의 위암 치료제 ‘젤로다’, 한국바이엘의 신장암 치료제 ‘넥사바’ 등이 대표적이다.
환자 맞춤 ‘파마코지노믹스’ 시대 도래
천편일률적이던 하얀색 알약도 화려하게 변신 중이다. 이른바 알약의 디자인 시대가 도래한 것.
대웅제약의 진통제 ‘이지엔6’는 투명한 파란색으로 청량감과 시각적 상쾌함을 더해준다. 특히 물 형태의 액상을 투명한 연질 캡슐에 넣는 네오솔 공법을 이용해 기존의 정제형 제제보다 빠른 진통효과를 볼 수 있다. 이처럼 눈에 띄는 색과 디자인으로 이지엔6는 여대생들에게 큰 인기를 끌면서 여성용 진통제로 자리잡고 있다.
한국MSD의 뼈엉성증 치료제 ‘포사맥스’는 약 표면에 뼈 모양의 문양을 새겨 약을 혼동하거나 복용을 잊지 않도록 하는 한편, 뼈를 튼튼하게 하는 약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한국화이자의 고혈압 치료제 ‘노바스크’는 고령 환자도 쉽게 기억할 수 있는 팔각형 모양이다.
경희대 의대 동서신의학병원 김정태 약무팀장(약학박사)은 “색다른 콘셉트를 지닌 약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환자들의 약물 복용 횟수가 전체적으로 줄어 복용도가 높아졌을 뿐 아니라, 붙이는 약물이 늘어남에 따라 위장장애도 줄었다. 하지만 기존 약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싼 이들 약의 재고 관리가 약사에게는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그는 “환자 개개인에게 가장 적합한 맞춤 약물요법인 파마코지노믹스(Pharmacogenomics/약리유전체학·개인의 유전적 차이에 따른 약물대사 차이를 밝히는 것) 시대의 도래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하루가 다르게 환자를 겨냥한 약들의 이유 있는 진화는 언제까지 이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