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우, ‘해변의 초상’ 시리즈 중 일부.
우선 우리가 사진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필연적으로 마주치는 근본적인 질문-‘어떻게 찍을 것인가’ ‘무엇을 찍을 것인가’ ‘사물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에 정확한 답을 내리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예술사진의 영역은 훨씬 더 어렵다. 이는 사진 찍는 사람마다 다른 목적으로 사진을 찍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사진을 기록과 전달의 매체로서 이해한다면 어떤 이에게 사진은 표현과 창조의 수단, 또 다른 이에게는 유희를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이렇듯 사진이 각각의 사람들에게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는 만큼 개인은 자신이 사진을 통해 무엇을 추구하는지 먼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진에 대한 질문은 주로 ‘어떻게’에 집중돼 있다. 카메라와 렌즈는 무엇을 사용했고, 프린트는 어떤 프로세스를 거쳤으며, 어디에서 촬영을 했는지 등과 같이 메커니즘과 작업환경에 대한 것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질문들은 카메라의 특성에만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사진을 통해 펼쳐질 수많은 가능성을 제약하곤 한다.
카메라는 그림을 그리는 붓에 비유할 수 있다. 붓은 내가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전달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때문에 붓에 집착하고 그 붓을 세밀하게 다듬기 위해서 노력한다면 붓에 대한 전문가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화가는 될 수 없을 것이다. 붓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무엇을 위해 그 붓을 사용하는가, 그리고 그 붓을 사용하는 사람은 누구인가다. 이는 사진 역시 마찬가지다.
‘무엇’을 ‘어떻게’ 찍어야 하는지에 앞서 ‘(대상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사진을 통해 무언가를 표현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표현 방식을 논하기 전, 파인더 밖 세상에 대한 공부와 관심을 통해 자기만의 관점을 가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렇다면 나만의 관점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사실 답은 우리가 매일 걷는 길에 이미 놓여 있는지도 모른다. 일단 카메라를 들고 걸으면서 셔터를 눌러보자. 어느 순간 내가 찍고 싶은 것들이 보이고 시간이 지나면서 파인더 속에 보이는 대상들이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그 대상들을 가지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가 명확해진다.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 세상과 친밀해질수록 더욱 빠르게 해답을 얻을 수 있다. 프로이트도 “영감이 오지 않을 때는 내가 그것을 만나러 반을 간다(When inspiration does not come to me, I go halfway to meet it)”고 말하지 않았던가.
이렇게 내 관점을 가지고 사진 찍을 준비가 됐다면, 이제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사람과 풍경을 어떻게 접근할 수 있는지 정리해보자.
이미지 얻기 힘든 인물사진 보람도 커
이일우, ‘Stein’ 시리즈 중 일부(사진 위). 이일우, ‘무제’(istanbul).
어떤 사람들이 가진 특별한 힘을 사진으로 옮기는 일은 무척 어렵다. 낯선 사람들을 카메라 앞에 세우는 첫 단계부터 용기가 필요하다. 우선 허락을 받아내기 쉽지 않은 데다, 설령 수락한다 해도 원하는 사진을 만들어내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때로는 셔터를 누르는 것에 급급해 내가 모델에게서 얻고 싶은 게 무엇인지 잊어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나 그렇게 이미지를 얻기 힘든 만큼, 인물사진은 보람도 크다.
필자의 경우 사진을 찍기 전 인물을 오랜 시간 관찰하며 그 사람이 지닌 특색이 무엇인지, 그것이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옮겨졌을 때 어떤 느낌을 가져올 수 있는지 수없이 묻는다. 그리고 어느 정도 답을 찾게 돼 사진촬영에 돌입하면 철저히 이기적인 주문자가 된다. 표정이나 서 있는 자세, 감정까지 많은 것을 요구한다. 그 사람의 모습 중 작업에 불필요한 요소가 있으면 인위적으로 제거하고, 필요한 요소가 있다면 없는 모습을 그 캐릭터에 덧붙이기도 한다. 사각의 프레임이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그 안에 다양한 환경과 소재를 재구성하면서 내가 진정 얻고 싶은 결과를 위해 인물을 각색한다.
때론 모델을 지나치게 인위적으로 형상화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지만, 좀더 좋은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한 준비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게 초상은 모델이 된 특정인을 사진을 통해 정확히 구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고 싶은 이미지를 완성하기 위한 소재다. 때문에 사람들이 내 초상사진에 담긴 모델을 넘어, 작가인 나를 봐주길 원한다. 사진의 주체는 카메라 앞에 서 있는 인물이 아니라 카메라를 찍고 사진을 만드는 이이기 때문이다.
풍경사진은 숨겨진 이야기를 담아야
이일우, ‘무제’(Paris). 이일우, ‘해변의 초상’ 시리즈 중 일부(아래).
초상 작업에 비해 풍경을 사진으로 옮기는 작업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사진으로 옮길 때는-시공간의 제약을 받는 초상 작업에 비해-시간과 공간이 내 편이다. 따라서 작업의 긴장감은 덜하지만 그만큼 대상에 대한 고민은 더 길고 깊어진다. 어떻게 그 풍경 너머 숨겨진 이야기를 사각의 프레임 안으로 옮겨야 하는지 생각하다 보면 함부로 셔터를 누르기 어렵다.
카메라만 있으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아름다운 풍경들은 얼마든지 담을 수 있다. 개인의 ‘미니홈피’마다 넘쳐나는 풍경사진들도 충분히 아름답다. 그러나 사진가가 바라보는 풍경은 그것과 달라야 한다. 사진가는 풍경을 통해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 사진에 찍힌 풍경들은 풍경이면서 동시에 내가 가졌던 생각과 그 생각에 대한 질문의 결과물인 것이다.
자신의 망막을 거쳐 들어온 이미지가 머리를 지나 가슴으로 내려와 사진으로 만들어지고, 그 사진이 다시 누군가의 가슴에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사진가가 찍어내는 사진이다.
※사진미학 교실은 주간동아, (사)문화문, 사진아트센터 boda의 공동기획으로 진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