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생광, ‘토함산 해돋이’(왼쪽), 이응노, ‘생맥’.
한국에서는 ‘동양화’라고 했다가 ‘한국화’라는 말로 바뀌었고, 이 이름이 굳어지고 있는 추세다. 즉, 한반도에서 수천 년 역사를 거치면서 만들어진 그림의 개념과 방법을 ‘한국화’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는 프랑스화 독일화 영국화 등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비하면 매우 이례적인 일로, 지난 수 세기 동안 진행돼온 식민주의 역사가 만들어낸 모순이다. 스스로 타자의 정체성을 부여하면서 붙여진 이름 ‘한국화’. 그러나 이 이름은 역설적이게도 문화적 식민주의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보루가 되고 있다. 한국이라는 ‘지역성’을 기반으로 21세기 문명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할 수 있다는 믿음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6·25전쟁 이후 60여 년간의 한국화를 모아놓은 이번 전시는 탈식민주의 맥락에서 일반 ‘모둠전’과 차별화된다. 이응노 박래현 박생광 천경자 등 80여 작가의 200여 작품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총 다섯 개 구역으로 꾸며진다. 첫 번째 ‘추상의 유입과 실험’에서는 전후 20여 년간 서구 모더니즘을 받아들인 김기창 박래현 이응노 같은 선구자들의 작품을 조망한다. 두 번째 ‘전통 산수의 재인식과 현대적 변용’은 변관식 이상범 같은 대가의 뒤를 이은 산수화를 다룬다. 즉, 박대성 오용길 등에서 유근택 박병춘 등에 이르는 실경산수의 맥락이 읽힌다. 세 번째 ‘서구 모더니즘에서 한국적 모더니즘으로’는 권영우 서세옥 송수남 문봉선 등으로 이어지는 미술운동 차원의 다양한 모더니즘 실험을 다룬다.
80여 작가 200여 작품 … 조형성과 그 의미 조명
네 번째 ‘채색의 맥’은 천경자 박생광이라는 거장을 비롯해 정종미 김선두에 이르는 채색화 작가들의 계보를 보여준다. 그리고 일본 채색화의 영향에서 탈피하기 위해 오랫동안 수묵에 무게를 뒀던 한국 현대미술이 새롭게 발견해낸 무궁무진한 가능성들을 탐색한다. 마지막으로 ‘한국화의 시야를 넘어’에서는 1990년대 이후 현대미술의 장에서 장르나 재료 기법의 개념을 넘어선 뒤 동시대성을 획득한 임만혁 정재호 김정욱 등의 작품들을 선보인다.
이응노에서 김정욱에 이르기까지 이 전시의 출품작들은, 60여 년 역사가 남긴 한국 그림의 맥락이 특수를 넘어 보편의 장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20세기 한국 현대사를 가로지른 거장 이응노의 출품작은 그래서 더욱 각별하다. 1950년대 화단에서 한국 초유의 앵포르멜 작품을 선보인 뒤 홀연히 프랑스로 떠나‘문자추상’과 ‘군상’연작으로 동서고금의 거장으로 거듭난 이응노의 출품작은 1958년 ‘도불전’에 나왔던 두 작품이다. 박생광의 화려한 채색화 또한 한국의 회화 전통을 새롭게 인식하게 하는 중요한 작품이다. 2007년 4월25일~5월27일, 서울시립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