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머리쌓기(Pile of Heads)’.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그룹쇼’전에 한국, 일본 출신 젊은 작가들의 ‘캐릭터’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이혜림은 게임에 등장할 것 같은 ‘토키’라는 여자 캐릭터의 젖가슴과 젖꼭지, 성기, 입술, 눈, 엉덩이 등 몸의 조각들을 파편화해 보여준다. 그것은 ‘옵세션(Obsession)’이라는 향수 속에 담겨 있기도 하다.
전경의 그림들에는 벌거벗은 소녀와 소년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들은 혓바닥이나 곱고 길게 딴 머리카락으로 결박돼 있거나 목이 잘려 있기도 하고, 소녀는 왜소한 남자의 성기를 자르기도 한다.
일본 작가 히데야키 가와시마는 창백하고 몸통이 없는, 마치 유령 얼굴 같은 이미지를 그린다. 대부분 파스텔톤으로 그려진 그 얼굴들은 모두 커다란 눈을 살그머니 뜨고,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허공을 둥실둥실 떠다니듯 그려져 있다.
와이피가 그려낸 캐릭터들은 이를 다 드러내며 웃는다. 그들의 표정은 빙글빙글 돌아가는 눈동자 때문에 더욱 희극적으로 보인다. 눈에서는 방독면을 뒤집어쓴 토끼가 튀어나오기도 한다. 어떤 캐릭터는 혀를 길게 뺀 채 목이 잘려 있는데, 목에선 피가 솟구친다. 이 캐릭터들은 그들의 행위나 묘사된 장면의 잔인함과 달리 무표정하기도 하고, 심지어 웃고 있기도 하다. 게다가 대부분의 장면에서 입술, 성기 등과 같은 욕구 부위가 직접적이고 반복해 등장하는 것을 보면, 이 캐릭터들은 구강기나 항문기적 유아 상태로 퇴행한 존재들임을 알 수 있다.
어쩌면 이런 상상은 매우 일상적이고 심지어 진부하기까지 한 것일지 모른다. 사실 우리는 참수, 성기 절단, 잔혹 살인과 같은 사건들뿐만 아니라 강박과 집착에 이르기까지 이미 일상적으로 이런 상상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있으며, 이런 캐릭터들을 만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왜 엽기, 도착, 잔인함에 대한 상상이 반복되는 것일까. 그리고 그 속에서 무수히 쏟아져 나오며 변종하는 희극적이고 냉담해 보이는 도착적 캐릭터들은 무엇을 의미할까. 우리 사회가 퇴행하고 있다는 증거일까. 아니면 우리 삶에 대한 새로운 상상의 시대가 눈앞에 닥쳐왔다는 반성일까. 3월4일까지, 국제갤러리, 02-735-84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