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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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왜 고통의 연속인가

  •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입력2005-12-19 09: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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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무주의 철학의 대표자 쇼펜하우어는 생전에 동물들의 생태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두더지와 개미를 관찰한 글을 남겼는데 의미심장하다.

    ‘삽처럼 생긴 커다란 발로 끊임없이 땅을 파는 것은 두더지가 평생 짊어진 숙명이다. 두더지의 주변은 영원한 어둠뿐이다. 눈이 덜 발달한 것은 단지 빛을 피하기 위해서다. 즐거움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고난으로 꽉 찬 일생을 통해 두더지는 무엇을 얻을까? 이들의 고난과 고통은 삶에서 얻는 과실이나 이득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가혹하다.’

    ‘대부분 벌레들의 삶은 태어날 자손들을 위한 음식물과 주거공간을 준비하느라 노력하는 근면의 시간에 지나지 않는다. 허기와 성적 열정을 만족시키는 것 외에 달리 보여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쇼펜하우어는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은 벌레고 인간이고 ‘허기와 성적 만족’을 위한 무의미한 생존에 전력투구하고 있다고 보았다. 인간 역시 사랑을 추구하고 연인과 카페에서 잡담을 나누고 아기를 가지는, 다시 말해 두더지나 개미와 비슷한 선택의 과정을 겪고 있으며, 사실 그런 생명체보다 더 행복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스위스의 소설가인 알랭 드 보통은 이런 쇼펜하우어의 생각이 우리를 우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의 헛된 기대들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풀어놓아 ‘쾌활하게 만든다’고 역설한다. 예를 들어 사랑에 낙심할 때, 사랑의 본래 계획에는 행복이란 절대로 없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면 얼마나 큰 위안이 되겠는가. 그리하여 가장 염세적인 사상가들이 가장 쾌활할 수도 있다는 게 보통의 해석이다. 그는 말한다.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행복이란 살아 생전에 꼭 손에 넣어야 하는 것이라는 가정과 그에 따른 행동이다. 인간은 행복해지기 위해 존재한다는 관념은 잘못된 것이다. 이를 고집하는 한 세상은 모순으로 꽉 찬 것처럼 보인다. …세상을 고통으로 인식하면 많은 것들이 보인다. 막연한 행복한 기만적인 이미지들이 주는 환상이 벗겨지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는 말했다. ‘고통을 지식으로 승화시키라고’.”

    고통을 지식으로 승화시킨 철학이 바로 불교다. 불교는 한마디로 ‘고(苦)’의 철학이다. 태어남도 고통이고 늙음도 고통이고 죽음도 고통이다. 사랑하지 않는 자와 만나는 것도, 사랑하는 자와 헤어지는 것도 고통이다. 한마디로 일체개고(一切皆苦)다. 불교는 고의 실체를 개념화하고 분류화했다. 흔히 말하는 생로병사 4고가 대표적이고 후대 불전에 따르면 8고, 18고까지 망라되고 어떤 경전은 110고에까지 이른다.

    고통을 강조하는 불교는 흔히 염세와 허무의 종교로 이해된다. 태어나는 것 자체도 고통이라니 살 이유가 없지 않나 하는 의문까지 든다. 그러나 쇼펜하우어나 보통의 말처럼 삶을 고통의 바다(苦海)로 보는 불교철학은 삶을 기만하는 온갖 달콤한 환상들을 걷어낸다. 그리하여 허무가 아닌 긍정으로, 염세가 아닌 낙천적 세계관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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