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교수는 과연 자신의 연구실로 돌아갈 수 있을까. 12월6일 팬들이 서울대 수의대 건물 입구에서 황 교수 연구실 앞까지 80m를 그의 복귀를 기원하며 진달래와 무궁화로 장식하고 있다.
이 절절한 구호 속에는 황우석 서울대 석좌교수와 세계줄기세포허브를 향한 우리 사회의 기대와 소망이 담겨 있다. 과연 황 교수는 대한민국의 꿈을 넘어 전 세계의 희망으로 우뚝 설 수 있을까. 그러나 국민 대다수의 열광적인 지지에도 그는 한 박자 쉬어가야 할 처지가 되고 말았다.
황 교수를 둘러싼 파문은 이제 국내 과학계와 언론계의 논란을 뛰어넘어 한국 사회의 문제, 나아가 국제적인 스캔들로까지 비화됐다. 갈등의 참여자와 대립전선이 날로 확산돼 뉴스를 꼼꼼히 분석하지 않으면 사태 해결을 위한 실마리조차 가늠하기 어려울 지경이 되었다. 연구용 난자 확보 과정의 윤리를 따지던 문제는 어느새 정점에 올라 있는 한 과학자의 진정성 여부를 재는 잣대가 되었고, 줄기세포 연구와 관련한 애국 논쟁으로 번져나갔다.
언론계에서는 언론의 취재윤리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고, 국제적으로는 줄기세포 연구의 주도권 쟁탈전이라는 음모론까지 엉켜붙었다. 무엇이 대한민국의 희망으로 불렸던 황 교수를 이 같은 곤혹스러운 처지로 몰아넣었을까.
황 교수를 둘러싼 논쟁이 일정 단계에서 멈추지 않고 눈덩이처럼 확대되는 까닭은 황 교수가 다루는 ‘생명공학(BT)’이란 분야의 특수성 때문이다. ‘인간배아줄기세포’라는 최첨단 연구는 다른 분야와 달리 과학적 수식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인간의 이전 단계인 난자와 배아를 직접적인 실험 대상으로 다루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사회적·윤리적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아직도 서구사회의 핵심 쟁점이 ‘낙태’라는 점, 그리고 과도한 ‘동물실험’도 윤리 논쟁을 거쳐야 한다는 현실을 상기해보면 인간배아줄기세포 연구가 사회적 논쟁을 야기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황 교수 논쟁은 통과의례로 비쳐졌던 ‘윤리 논쟁’을 넘어서 ‘황우석’ 자체에 대한 검증으로 비화됐다. 11·12사태로 명명된 섀튼 교수의 결별선언으로 시작된 황우석 파문은 단순한 윤리 논란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오히려 지난 2년간 꾸준히 제기된 ‘황우석 회의론’이 고개를 들며 쟁점을 장기화하고 있다.
학계에서는 그간 황 교수의 행보가 열성적인 지지자뿐만 아니라 비판자들을 양산해낼 수밖에 없었다는 평가를 내놓으며 현 사태를 우려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1차 논란이 난자 확보 과정의 윤리성에 모아졌다면, 2차 논란은 ‘황우석’ 연구 성과의 진실성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한다. 핵심 쟁점은 2005년 5월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의 자료로 쓰인 데이터의 조작 여부다. 이 논문은 실제 난치병 환자의 체세포를 이용해 복제한 인간배아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한 세계 최초의 성과로 알려졌다. ‘환자 맞춤형’ 배아줄기세포를 환자에게 이식하면 면역거부 반응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획기적이라는 것이고, 세계줄기세포허브의 출범 역시 이 논문을 근간으로 삼는다.
논란의 촉발은 MBC 시사고발 프로그램인 ‘PD수첩’이 2005년 논문에 자료로 실린 줄기세포가 ‘가짜’라는 증거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 황 교수팀의 내부 제보로 시작된 이 의혹은 PD수첩팀이 난자매매 의혹의 2탄으로 준비했으나 전파를 타지 못했다. 하지만 이 문제가 담고 있는 파괴력이 얼마나 큰지는 현재까지 벌어진 상황으로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해 어느 쪽으로도 판단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PD수첩은 황 교수팀에 2차 검증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황 교수팀은 “방송이 과학 논문의 오류를 검증하는 경우는 없다”며 “재연 요청에 응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거듭 밝히고 나섰다. MBC가 시도한 DNA 검사 결과에 대해 황 박사 측은 과학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또 같은 시료를 다시 확보할 수도 없어 이 문제에 대한 논란은 명쾌한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황 박사가 만든 11개의 줄기세포 가운데 단 하나도 진짜 줄기세포로 검증되지 않았다는 PD수첩의 ‘도발적인’ 의혹 제기에 대해 과학계는 ‘경악’과 ‘충격’을 금치 못했다. 이에 대해 과학자들은 세계 최고의 과학저널인 사이언스가 검증해 커버스토리로 실은 논문에 대해서 비전문가 집단인 방송이 검증에 나섰다는 점에서 경악했다. 서울대 의대의 한 임상교수는 “사이언스에 실리는 논문은 100% ‘사실(fact)’이 아니라 가설에 대한 실험 결과일 뿐이다”며 “그 실험에 대한 검증은 경쟁 연구자들이 자연스럽게 동일 실험을 반복하면서 이뤄진다”고 촌평했다.
그러나 PD수첩은 ‘사이언스’가 직접 시료를 채취해 검증하지 않았다며 자신들이 한 유전자검사에 무게를 두고 있다. 문제는 세계 어느 과학전문지도 시료 자체를 직접 검증하지는 않고, 할 수도 없다는 점이다. 게다가 배아줄기세포에 대해서 황 교수와 섀튼 교수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세계 최고의 권위를 갖고 있다.
논문 자체의 흠결에도 PD수첩의 주장대로 이 논문이 거짓이라고 보는 학자는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 문제가 심각해진 까닭은 난자 확보 과정의 윤리 논쟁에서와 마찬가지로 황 교수가 또 한번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으로 옮겨졌다. 이러한 의혹 때문에 황 교수는 병원에 입원할 정도의 심리적 압박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황 교수의 다재다능? 혹은 지나친 정치성?
2004년 7월, 모 정치인이 총재로 있는 한 청소년 과학단체의 여름행사 출범식장. 이 행사는 언론의 흥미를 끌 만한 요소가 없는 평범한 모임이었다. 그런데 호텔에서 열린 이날 기자회견은 큰 성황을 이뤘다. 황 교수의 행사 참석 소식을 듣고 달려온 기자들 때문이었다.
2004년 2월, 세계적인 학술저널인 ‘사이언스’의 커버스토리로 다뤄진 이후 황 교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과학자로 부상했다. 때문에 황 교수는 ‘과학계의 미래를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제안되는 숱한 강연 요청과 시상식을 뿌리치지 못하고 자의 반 타의 반 연구 이외 행사에 자주 얼굴을 내밀었다.
지나친 것으로 보였던 이러한 대외활동이 과학계 내부에서조차 극렬한 ‘안티 황우석’ 세력을 만드는 바탕이 됐다. 이른바 언론과 국민들의 일방적인 ‘황우석 팬덤(fandom·열광) 현상’이 기타 학문 분야의 소외를 낳는다는 ‘황우석 그늘론’이 제기된 것이다.
일찍부터 과학계 내부에서는 황 교수의 과도한 ‘정치력’을 도마에 올린 상태였다. 그는 1999년 복제 소 영롱이를 탄생시키는 과정에서 이를 청와대에 알리는 센스를 발휘했다. ‘영롱이’라는 이름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직접 지어준 이름이다. 2000년 멸종 위기에 처한 백두산 호랑이 복제 프로젝트 역시 언론을 의식한 ‘쇼맨십’ 강한 행사였다는 뒷말도 나왔다.
황 교수의 정치력을 대표하는 또 다른 사례로는 1999년 이후 ‘생명윤리기본법’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생명윤리와 관계된 NGO(비정부기구) 관계자들 사이에서 “황 교수의 전화를 안 받아본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말이 떠돌았던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인간배아에 대한 관리 규정을 놓고 대립각을 벌였던 ‘과기부-보건복지부-시민단체’ 싸움에서 결국 황 교수는 ‘난치병 치료가 우선’이라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종교계가 주장하는 엄격한 제한을 풀도록 만들었다. 지금도 100만명에 달하는 국내 난치병 환자들은 ‘황우석 신화’를 지탱하는 주요 근간이다.
이밖에도 황 교수는 과학 관련 정책 수립과정에서 자신의 반대자들을 후원자로 만드는 놀라운 협상력을 선보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박기영 현 대통령 과학정책보좌관과의 물밑 거래설이다. 박 보좌관은 교수 시절 경실련 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으로 있으면서 생명윤리기본법 제정에 관여했는데, 그는 과학계와 시민단체가 극적 타협을 이루는 데 기여했다. 2004년 박 보좌관은 과기부에서 황 교수에게 240억여원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출범시키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후 박 보좌관은 사이언스 논문의 공저자로 등재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자연스레 박 보좌관을 생명공학 논문에 공저자로 올려준 데 대해 일종의 ‘논문 로비’에 해당한다는 비난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서는 윤리 연구에 조언을 해주었다는 변명이 있었으나 GMO(유전자 변형 식품)를 전공한 식물학자가 동물의 수정란에 관련된 윤리 연구에 조언했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에 가깝다는 지적이 훨씬 더 많았다.
일각에서는 “황 교수의 ‘마당발’ 정신은 그의 불리한 조건이 낳은 불가피한 생존전략이었다”는 식의 옹호론을 펼친다. 황 교수는 의사가 아닌 수의사 출신, 그것도 ‘국내 박사’라는 불리한 조건을 안고 있다.
아직도 생명공학계는 의대 출신과 기타 대학(수의대·자연대·농대 등) 출신 사이에 ‘노골적인’ 장벽이 존재한다. 인간의 난자를 다룰 수 있는 법적 권한은 의사에게만 있다. 그런데 수의사인 황 교수가 이를 다루게 되니 ‘깐깐한’ 의사집단으로부터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 어쨌든 황 교수는 연구를 위해 난자를 확보해야 하므로 ‘언론’과 ‘정치인’을 동원해 새로운 권위를 세워야 했는데, 이를 위해서는 정치력이 필요했던 것. 그런데 이 정치력이 질시를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되었다.
11월25일, 황 교수 후원회원들이 MBC 본관 앞에서 PD수첩의 방송에 항의하는 촛불시위를 벌이는 모습. 대다수 국민들은 황 교수의 연구를 적극 지지하고 있다(위). 12월6일 황 교수의 후원모임인 ‘아이러브황우석’ 운영진이 안규리(왼쪽 사진 앞줄 가운데) 이병천(왼쪽사진 앞줄 맨 왼쪽) 교수를 격려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황우석의 첫 번째 연합팀에서는 국내의 대표적인 의료기관인 서울대·연세대·한양대 고려대 의대가 모두 포함됐지만, 세계줄기세포허브가 서울대에 설치되면서 이들이 떨어져나온 것도 이번 사태를 불러온 원인(遠因)이 되었다.
◆황 교수의 반대자들은 누구
종교계와 여성인권 단체는 인간배아줄기세포 연구의 최대 난적이다. 김수환 전 추기경은 “인간배아는 존엄한 인간 생명이며, 따라서 배아를 파괴하는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올바르지 않으므로 기어코 중단되어야 합니다”고 강조해왔다(오른쪽). 미국 피츠버그 대학의 섀튼 교수는 11월12일 황 교수와의 결별선언으로 황 교수 연구에 큰 타격을 입혔다. 최근에는 “거짓말을 한 과학자와 함께 연구할 수 없었다”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 교수에 대한 첫 번째 대립은 여성의 난자와 생명에 대한 논란에서 일어났다. 때문에 여성인권 단체와 천주교계, 민주노동당, 생명윤리학회, 진보 언론들은 황 교수의 연구에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천주교 측은 김수환 추기경이 앞장서 인간의 난자에서 추출되는 인간배아줄기세포 연구가 아닌, ‘성체(成體)줄기세포 연구를 적극 후원하는 입장을 내세워 황 교수를 적잖게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황 교수의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에서 뿜어져나오는 ‘감수성 넘치는’ 행보도 다양한 비판자들을 양산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국내외 난치병 환자들에 대한 과도한 애정표현. 황 교수는 각종 강연회마다 “수많은 척수장애인들의 희망은 내가 이 연구를 계속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하며 난치병 환자들의 손을 꼭 잡고 “제가 꼭 낫게 해드리겠다”며 눈물을 훔쳤다.
12월7일 급작스럽게 병실로 옮겨진 황우석 박사의 초췌한 모습.
한국생명윤리학회 구영모 교수는 “줄기세포의 치료 도입은 시작단계에 불과하고 해결해야 할 의학적 난제들이 무수하다”며 “연구의 장점만을 강조해 일반인에게 환상을 심어주는 것은 도적적 해악이다”고 강조했다.
특허권에 대한 논란도 잠복해 있는데 이 또한 길게 보면 황 교수를 괴롭힐 수 있는 민감한 문제다. 황 교수 스스로가 제2의 삼성전자를 언급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에 의하면 줄기세포 연구가 연간 6조6000억원에서 많게는 33조원의 국부 창출 효과를 가져온다는 등의 분석을 내놓았는데, 전문가들은 이 분석조차 과장됐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울산의대 김장한 교수는 “인간배아복제 연구를 금지하는 나라가 많아 특허를 논의하기에는 너무 성급하다”며 “결국 국내에 치료센터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 연구가 임상에 적용되기까지는 요원한 일이다”고 설명한다. 또한 특정 분야가 아닌 순수과학의 균형발전만이 줄기세포 연구의 진정한 해결책이라는 제언도 나오고 있다.
◆한국 사회의 취약함, 무리한 성과주의
황 교수를 둘러싼 각종 현상은 한국 사회의 취약한 자화상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황 교수의 적극적 지지 세력은 잘 알려진 대로 난치병 환자들이다. 이미 이들은 황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의 가장 충실한 후원자가 돼 활약했다. 천주교계의 한 생명윤리운동 관계자는 “그간 종교계나 한국의 사회복지가 이들을 껴안지 못했기 때문에 이들이 황 교수를 대하는 심정이 절실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언론의 문제점도 지적됐다. 기자들의 문제의식 없는 황 교수 띄우기와 죽이기 역시 언론의 횡포라는 것. 이밖에도 여성 연구원의 이름을 공개하고 그가 기술을 유출하기 위해 미국 영주권을 신청했다며 빨리 돌아오라고 애국심에 호소하는 편견에 싸인 태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한편에서는 시민사회와의 소통에 서툴렀던 과학계에 대해 자책하는 목소리도 높다.
“당시에는 그저 제 눈앞의 일과 성취 외에는 보이는 게 없었다.”
11월24일 오후 2시 서울대 수의대 3층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낸 황 교수의 발언이다. 자신의 억울함을 설명하는 자리였지만 성과에 집착했던 과거의 자신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친 대목이다. 황 교수는 이후 일절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고, 결국 12월6일 서울대 병원에 입원하고 만다.
그는 “모든 것을 아주 접고 싶었다. 이런 풍토에서 과학이 무슨 희망이 있느냐는 자괴감이 들었다”고 토로했으나, 이내 국민적 지지에 감동했는지 “그동안 공백이 큰 만큼 빠른 시일 내에 연구에 복귀해 한국을 줄기세포 중심지로 만들겠다”고 덧붙였다. 전 세계 학계에서도 그에게 연구 성과를 통해 각종 의혹을 빨리 해소해주기를 기대하는 눈치다.
비관적인 전망 속에서도 긍정적인 전망이 없는 것도 아니다. 생명공학에 대한 미래 비전과 각종 윤리 문제들을 한국 땅에서 정립할 수 있는 계기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최근 KAIST(한국과학기술원)의 러플린 총장은 “이 분야 선진국인 한국은 이 문제를 간과할 수 없게 됐다. 좋든 싫든 간에 이제 한국인들에게는 그들의 세계 수준 기술에 필적하는 세계 수준의 법을 제정해야 할 임무가 부여됐다”고 말했다.
황 교수 역시도 “우리가 어렵사리 개발한 기술은 무(無)의 상태로 되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고 장담했다. 줄기세포 진위 여부에 대한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새로운 연구 성과는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한 새로운 연구 성과일 가능성이 높다. 과연 황 교수는 자신을 둘러싼 논쟁의 제3막을 획기적인 성과로 입증할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