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2006년 초 당(열린우리당)으로 복귀한다. 열린우리당은 생각보다 심각한 상태. 여당의 재집권 방안을 놓고 고민하던 두 사람은 노무현 대통령과 헤어질 것을 결심한다. 노 대통령도 분위기를 감지하고 탈당한다. 친노세력들은 노 대통령을 따라 탈당 대열에 합류한다. 정 장관과 김 장관은 우리당의 남은 세력을 추슬러 재창당 작업에 몰입한다. 호남세력과 테크노크라트그룹이 재창당 되는 신당에 새로운 피로 수혈되고, 호남의 정통성을 놓고 갈등을 빚던 민주당과는 공조 및 합당으로 관계를 매듭짓는다. 정 장관과 김 장관은 이 신당으로 지방선거에 임한다.”
한나라당 맹형규 의원이 얼개를 그린 여권의 정계개편 시나리오는 매우 드라마틱하다. 한편으로는 과격하다. 대통령과의 결별은 통상 임기 말에 나오는 최후의 승부수 성격이 짙다. 창당도 마찬가지. 창당한 지 3년 만에 당을 버리고 신당 형태로 재창당을 한다는 것은 실현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2000년 整風 주도 리더로 성장
이 시나리오는 여권을 감싸고 있는 위기감을 기저에 깔았다. 이대로라면 지방선거는 필패, 대선도 어렵다는 여권 인사들의 광범위한 인식이 ‘영감’의 원천이라고 맹 의원은 설명한다.
우리당과 청와대는 맹 의원의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공작적 소설이란 일차적 반응과 폄하가 대부분이다. 맹 의원의 분석은 검증할 시스템이 없다는 한계를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맹 의원의 시나리오를 정치공학적 측면에서 보면 눈길을 끄는 부분이 없지는 않다. 특히 정 장관의 역할에 대한 분석이 매우 도전적이다. 2000년 12월 정 장관이 주도했던 정풍(整風)운동을 기억하는 사람일수록 정치판으로 돌아오는 정 장관의 역할설에 무게를 싣는다. 그는 과연 제2의 정풍을 준비하고 있을까.
2000년 12월 정 장관은 인적 쇄신을 명분으로 정풍운동을 주창했다. 앙시앙레짐(구체제) 혁파론으로 정리되는 이 정풍운동의 대상은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의 2선퇴진이었다. 동교동 심장을 쏘는 이 운동의 성공과 실패는 천양지차. 정 장관은 결국 앙시앙레짐을 무너뜨렸고 소장파의 리더로 성장했다. 2005년 말, 당 복귀 의사를 밝힌 정 장관 앞에 놓인 우리당은 5년 전 민주당과 오버랩되는 부분이 많다.
먼저 민심 이반 부분이 흡사하다. 개혁을 화두로 집권했지만 개혁을 논하는 것이 사치로 여겨질 정도. 생존을 위한 몸부림만이 당 주위를 감싼다. 각 정파의 이합집산과 갈등구조도 내용의 일부만 다를 뿐 뼈대는 유사하다.
우리당 인사들이 돌아오는 정 장관을 보는 눈이 각별한 것은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정 장관은 12월7일 한 인터넷 매체가 주최한 ‘네티즌과의 대화’에서 “당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 말은 두 달 전에 이미 준비된 것이었다.
10·26 재선거 패배 후 문희상 당의장 퇴진론이 불거졌을 때 앞장선 그룹은 김 장관 측이었다. 정 장관 측은 관망 태세였다. 이런 흐름으로 보면 당 복귀 우선순위는 김 장관 몫이었다. 그러나 정 장관 주변에 “당으로 돌아오라”는 메시지가 11월 집중적으로 전달됐다는 후문이다. 당은 비상지도부가 꾸려지는 등 어수선했고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의 등장이 절실했다. 정 장관 캠프는 각종 경우의 수를 검토했다. “기왕 나설 거면 어정쩡한 모습을 보일 필요는 없다.” 측근 그룹이 밝힌 결단의 배경이다.
결단을 내린 정 장관의 행보는 이전과 다소 달랐다. 우선 통일부 장관의 행보 속에 정치 냄새가 조금씩 배어나왔다. 강연이 매개였다. 당에 있던 정 장관 그룹들도 갑자기 분주해졌다. 수시로 만나 ‘1월’을 위한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그가 당으로 복귀하면 맹 의원이 쓴 시나리오의 1막 1장은 일단 맞아들어가는 셈이다. 문제는 침몰하는 당을 견인할 정 장관의 해법이다. 특히 맹 의원의 지적처럼 노 대통령과 결별하고 신당 창당 등과 같은 초강수를 담은 제2의 정풍운동을 추진할 것인가가 관심사다.
정 장관의 한 측근은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의 처지를 ‘만나면 만날수록 서로의 이미지에 상처를 주는’ 사이라고 진단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미치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 그 때문에 정 장관이 복귀하면 당과 정부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부분에 심혈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를 조정해야 당도 살고, 정부도 살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정 장관은 민주세력 통합에도 적극적으로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 정 장관은 “우리 시대에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미래와 통합이지만 우리는 아직 내부 냉전상태에 있다”며 전통적 지지세력의 재결집과 통합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당내에서는 정 장관이 과거 정풍운동을 벌인 것처럼 충격요법을 쓰기보다 시스템과 지도력 결집을 통해 반전을 꾀할 것으로 본다.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흔적도 노출됐다.
“복귀 땐 모든 방법 동원 대안 모색”
12월5일 당의장의 권한을 대폭 강화해 ‘원톱’ 체제로 개편한다는 내용을 담은 우리당 내부 문서가 공개됐다. 당의장 중심의 단일 지도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의원총회에서 선출해온 원내대표·정책위의장 러닝메이트제를 폐지하고 당의장이 정책위의장 추천권을 갖는 방안이 그 줄거리. 이 방안대로 가면 당의장은 어느 때보다 막강한 힘을 갖게 된다. 만약 정 장관이 경선을 통해 당의장 자리에 오르고 당 지도체제가 개편되면 그야말로 제왕적 위치에 서게 된다. 지도력 부재로 인한 혼선과 혼란은 자동적으로 제어될 수 있다.
우리당이 검토 중인 안에는 그동안 논란이 됐던 기간당원제 요건을 완화하고 경우에 따라 완전 폐지하는 것까지도 포함됐다. 매달 2000원씩, 6개월 이상 당비를 낸 기간당원의 공직 선거권과 피선거권에 대해 권리행사 규정을 완화하고 대상을 확대하는 등의 조정안이 골자. 정 장관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유시민 의원 등이 심혈을 기울인 기간당원제 폐지는 정 장관의 입지를 크게 확대시킬 수 있는 기회. 정 장관 측은 “당을 추스르기 위해서는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적극적이다.
기간당원제의 대폭 손질은 민주당과의 통합 등을 염두에 둔 기반조성 성격으로도 볼 수 있다.
정 장관과 가까운 한 초선의원은 12월8일 전화통화에서 정 장관이 갖고 올 제2의 정풍운동과 관련 “당이 비상상황인 만큼 정 장관이 당으로 돌아오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 대안을 찾을 것”이라며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의 말이다.
“정풍운동의 방향은 당을 감싸고 있는 패배의식을 걷어내는 것이다. 당원들의 열정을 되살려 개혁세력을 하나로 결집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자면 제도적으로 당 지도부의 권위와 리더십이 보장돼야 한다. 당 지도부는 이를 통해 당과 청와대, 그리고 정부 및 개혁세력을 하나로 묶는 작업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러나 그는 “맹 의원이 지적한 것처럼 격한 방식의 충격요법을 사용할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런 극단적 방법이 통할 가능성이 없다는 주장이다. 이 인사는 이를 정 장관이 처한 현실을 통해 설명한다.
“정 장관은 우리당 창당의 산파였다. 그런 그가 우리당을 깨면 국민들이 가만있겠나. 정 장관은 참여정부에서 요직을 지냈다. 노 대통령과 오랫동안 한 배를 탄 정치 동지다. 그런 그가 노 대통령과 차별화를 기한다고 차별화가 되겠는가. 우리당을 버리고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 노 대통령과 결별하면 자기 정체성만 부정하는 행위가 될 뿐 국민들 지지를 얻기란 불가능하다.”
2000년 12월 정풍운동은 앙시앙레짐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에 기댄 경향이 컸다. 정 장관은 그 맞은편에서 치고 나갔다. 그러나 지금은 참여정부와 여당에 대한 문제제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어떻게 보면 여당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2000년에 비해 더 싸늘하다. 그만큼 상황도, 방향을 설정하기도 어렵다. 정 장관은 과연 어떤 해법을 들고 돌아올까.
한나라당 맹형규 의원이 얼개를 그린 여권의 정계개편 시나리오는 매우 드라마틱하다. 한편으로는 과격하다. 대통령과의 결별은 통상 임기 말에 나오는 최후의 승부수 성격이 짙다. 창당도 마찬가지. 창당한 지 3년 만에 당을 버리고 신당 형태로 재창당을 한다는 것은 실현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2000년 整風 주도 리더로 성장
이 시나리오는 여권을 감싸고 있는 위기감을 기저에 깔았다. 이대로라면 지방선거는 필패, 대선도 어렵다는 여권 인사들의 광범위한 인식이 ‘영감’의 원천이라고 맹 의원은 설명한다.
우리당과 청와대는 맹 의원의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공작적 소설이란 일차적 반응과 폄하가 대부분이다. 맹 의원의 분석은 검증할 시스템이 없다는 한계를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맹 의원의 시나리오를 정치공학적 측면에서 보면 눈길을 끄는 부분이 없지는 않다. 특히 정 장관의 역할에 대한 분석이 매우 도전적이다. 2000년 12월 정 장관이 주도했던 정풍(整風)운동을 기억하는 사람일수록 정치판으로 돌아오는 정 장관의 역할설에 무게를 싣는다. 그는 과연 제2의 정풍을 준비하고 있을까.
2000년 12월 정 장관은 인적 쇄신을 명분으로 정풍운동을 주창했다. 앙시앙레짐(구체제) 혁파론으로 정리되는 이 정풍운동의 대상은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의 2선퇴진이었다. 동교동 심장을 쏘는 이 운동의 성공과 실패는 천양지차. 정 장관은 결국 앙시앙레짐을 무너뜨렸고 소장파의 리더로 성장했다. 2005년 말, 당 복귀 의사를 밝힌 정 장관 앞에 놓인 우리당은 5년 전 민주당과 오버랩되는 부분이 많다.
먼저 민심 이반 부분이 흡사하다. 개혁을 화두로 집권했지만 개혁을 논하는 것이 사치로 여겨질 정도. 생존을 위한 몸부림만이 당 주위를 감싼다. 각 정파의 이합집산과 갈등구조도 내용의 일부만 다를 뿐 뼈대는 유사하다.
우리당 인사들이 돌아오는 정 장관을 보는 눈이 각별한 것은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정 장관은 12월7일 한 인터넷 매체가 주최한 ‘네티즌과의 대화’에서 “당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 말은 두 달 전에 이미 준비된 것이었다.
10·26 재선거 패배 후 문희상 당의장 퇴진론이 불거졌을 때 앞장선 그룹은 김 장관 측이었다. 정 장관 측은 관망 태세였다. 이런 흐름으로 보면 당 복귀 우선순위는 김 장관 몫이었다. 그러나 정 장관 주변에 “당으로 돌아오라”는 메시지가 11월 집중적으로 전달됐다는 후문이다. 당은 비상지도부가 꾸려지는 등 어수선했고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의 등장이 절실했다. 정 장관 캠프는 각종 경우의 수를 검토했다. “기왕 나설 거면 어정쩡한 모습을 보일 필요는 없다.” 측근 그룹이 밝힌 결단의 배경이다.
결단을 내린 정 장관의 행보는 이전과 다소 달랐다. 우선 통일부 장관의 행보 속에 정치 냄새가 조금씩 배어나왔다. 강연이 매개였다. 당에 있던 정 장관 그룹들도 갑자기 분주해졌다. 수시로 만나 ‘1월’을 위한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그가 당으로 복귀하면 맹 의원이 쓴 시나리오의 1막 1장은 일단 맞아들어가는 셈이다. 문제는 침몰하는 당을 견인할 정 장관의 해법이다. 특히 맹 의원의 지적처럼 노 대통령과 결별하고 신당 창당 등과 같은 초강수를 담은 제2의 정풍운동을 추진할 것인가가 관심사다.
정 장관의 한 측근은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의 처지를 ‘만나면 만날수록 서로의 이미지에 상처를 주는’ 사이라고 진단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미치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 그 때문에 정 장관이 복귀하면 당과 정부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부분에 심혈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를 조정해야 당도 살고, 정부도 살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정 장관은 민주세력 통합에도 적극적으로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 정 장관은 “우리 시대에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미래와 통합이지만 우리는 아직 내부 냉전상태에 있다”며 전통적 지지세력의 재결집과 통합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당내에서는 정 장관이 과거 정풍운동을 벌인 것처럼 충격요법을 쓰기보다 시스템과 지도력 결집을 통해 반전을 꾀할 것으로 본다.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흔적도 노출됐다.
“복귀 땐 모든 방법 동원 대안 모색”
12월5일 당의장의 권한을 대폭 강화해 ‘원톱’ 체제로 개편한다는 내용을 담은 우리당 내부 문서가 공개됐다. 당의장 중심의 단일 지도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의원총회에서 선출해온 원내대표·정책위의장 러닝메이트제를 폐지하고 당의장이 정책위의장 추천권을 갖는 방안이 그 줄거리. 이 방안대로 가면 당의장은 어느 때보다 막강한 힘을 갖게 된다. 만약 정 장관이 경선을 통해 당의장 자리에 오르고 당 지도체제가 개편되면 그야말로 제왕적 위치에 서게 된다. 지도력 부재로 인한 혼선과 혼란은 자동적으로 제어될 수 있다.
우리당이 검토 중인 안에는 그동안 논란이 됐던 기간당원제 요건을 완화하고 경우에 따라 완전 폐지하는 것까지도 포함됐다. 매달 2000원씩, 6개월 이상 당비를 낸 기간당원의 공직 선거권과 피선거권에 대해 권리행사 규정을 완화하고 대상을 확대하는 등의 조정안이 골자. 정 장관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유시민 의원 등이 심혈을 기울인 기간당원제 폐지는 정 장관의 입지를 크게 확대시킬 수 있는 기회. 정 장관 측은 “당을 추스르기 위해서는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적극적이다.
기간당원제의 대폭 손질은 민주당과의 통합 등을 염두에 둔 기반조성 성격으로도 볼 수 있다.
정 장관과 가까운 한 초선의원은 12월8일 전화통화에서 정 장관이 갖고 올 제2의 정풍운동과 관련 “당이 비상상황인 만큼 정 장관이 당으로 돌아오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 대안을 찾을 것”이라며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의 말이다.
“정풍운동의 방향은 당을 감싸고 있는 패배의식을 걷어내는 것이다. 당원들의 열정을 되살려 개혁세력을 하나로 결집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자면 제도적으로 당 지도부의 권위와 리더십이 보장돼야 한다. 당 지도부는 이를 통해 당과 청와대, 그리고 정부 및 개혁세력을 하나로 묶는 작업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러나 그는 “맹 의원이 지적한 것처럼 격한 방식의 충격요법을 사용할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런 극단적 방법이 통할 가능성이 없다는 주장이다. 이 인사는 이를 정 장관이 처한 현실을 통해 설명한다.
“정 장관은 우리당 창당의 산파였다. 그런 그가 우리당을 깨면 국민들이 가만있겠나. 정 장관은 참여정부에서 요직을 지냈다. 노 대통령과 오랫동안 한 배를 탄 정치 동지다. 그런 그가 노 대통령과 차별화를 기한다고 차별화가 되겠는가. 우리당을 버리고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 노 대통령과 결별하면 자기 정체성만 부정하는 행위가 될 뿐 국민들 지지를 얻기란 불가능하다.”
2000년 12월 정풍운동은 앙시앙레짐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에 기댄 경향이 컸다. 정 장관은 그 맞은편에서 치고 나갔다. 그러나 지금은 참여정부와 여당에 대한 문제제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어떻게 보면 여당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2000년에 비해 더 싸늘하다. 그만큼 상황도, 방향을 설정하기도 어렵다. 정 장관은 과연 어떤 해법을 들고 돌아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