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에서 강북으로 들어서면 어딘지 모르게 포근하다. 계획된 도시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동선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공간이어서 사람 냄새가 나는 모양이다. 그 안에서 얽히고설켜 있는 옛것과 새것 사이의 긴장과 조화도 묘하게 매력적이다. 특히 경복궁 돌담길을 따라 삼청동으로 이어지는 길은 그러한 매력의 절정이다. 이곳을 걸으면, 숨 막히게 돌아가는 도시의 리듬에서 놓여나기라도 한 듯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을 받는다. 한때 이곳은 프랑스문화원을 찾는 젊은이들에게 문화예술의 메카이기도 했다. 오랜 세월 이곳을 지키고 있는 개성 있는 화랑들은 지금도 묵묵히 멋을 더해주고 있다.
삼청동 길 어귀, 갤러리 현대 뒤편에 있는 와인 레스토랑 ‘두가헌’은 이 거리의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두가헌 마당으로 들어서는 순간 “이런 곳이 다 있었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영친왕의 생모인 엄귀빈을 위해 지어졌다는 오래된 한옥이 바로 ‘두가헌 와인 레스토랑’이다. 우리의 것과 서양의 것을 한데 섞어놓은 이름에서 느낄 수 있듯, 전통가옥의 골격을 그대로 살린 채 현대적 요소를 절묘하게 결합시킨 공간이다. ‘매우 아름다운 집’을 의미한다는 ‘두가헌’이란 이름에 전혀 손색이 없다. 150년 된 은행나무 암수 한 쌍이 커다란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마당을 가로지르면 대한제국 말기 러시아식 벽돌건물이 있고, 이곳에 ‘두가헌 갤러리’가 있다. 갤러리에는 언제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처럼 전통과 현대, 음식과 예술이 어우러진 특별한 문화공간이 바로 두가헌이다.
실내에 들어서면 서까래가 드러난 높다란 천장이 인상적이다. 그 아래에서 이탈리아 음식을 기본으로 하는 차림표를 펼쳐든다. 차림표는 의외로 간결하다. 음식 종류가 20가지를 넘지 않는다. 혹 실망하는 이들도 있을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메뉴 정책을 좋아한다. 차림표가 두툼할수록, 그 안에 소개된 음식들을 제대로 만들어내고 그에 필요한 식재료를 관리하기가 무척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전통가옥 구조를 살리다 보니, 현실적으로 주방 공간이 여유롭지 않으리라는 짐작도 든다. 가짓수를 적게 유지하면서 정기적으로 음식 종류를 바꾸겠다는 두가헌의 생각은, 음식의 질을 최상으로 유지하면서도 단조로움에서 탈피하겠다는 야무진 경영 방식일 것이다.
반면 와인 목록은 길다. 별채 지하에 마련된 두가헌의 와인 셀러는 온도, 습도 면에서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으로, 5000여병까지 저장할 수 있다고 한다. 현재 이곳에 저장돼 있는 와인만 320여종에 이른다. 와인 초보자라면 이렇게 많은 종류의 와인을 나열해놓은 와인 목록을 들여다볼 생각만 해도 어찔할 것이다. 하지만 두가헌의 와인 목록은 복잡한 와인의 세계에서 길을 잃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와인을 포도 품종별로 분류하고 이를 다시 지역과 생산 연도별로 정리해놓아서 의외로 와인에 대한 기초 정보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때로는 낯선 와인 이름과 수많은 와인 종류 때문에 만만치만은 않은 와인 선택이 체계적인 와인 목록 덕분에 수월하다. 이곳의 와인 목록은, 포도 품종에 따라 와인의 맛과 향을 기억하는 것이 와인을 즐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임을 은연중에 가르쳐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와인과 음식의 궁합이 아닌가. 어떤 음식을 먹을까를 결정하고 나니 그에 어울리는 와인을 선택해야 할 순간이다. 소믈리에(포도주를 관리하고 추천하는 직업이나 그 일을 하는 사람)의 추천이 남다르다. 음식에 대해 훤히 꿰뚫고 있다. 손님의 취향과 손님이 선택한 음식을 고려하면서 그에 어울리는 와인을 고르도록 도와준다. 소믈리에의 능란한 설명은 풍부하면서도 어렵지 않다.
추천받은 레드와인 ‘에르미타주’가 숨쉬기를 기다리면서, 전채요리 ‘아스파라거스 그라탕’으로 미각을 깨우기 시작한다. 바질 페스트와 크림 소스에 파마산 치즈를 얹어 그라탕한 아스파라거스로 식욕이 슬슬 살아나기 시작한다. 상큼한 바질 향과 중후한 파마산 맛이 아삭하게 잘 익힌 그린 아스파라거스와 무리 없이 어우러진다. 뒤이어 ‘신선한 채소와 자몽을 곁들인 바닷가재 요리’가 등장한다. 약간 도톰하게 썬 스팀에 익힌 바닷가재에 너무 얇지도 두껍지도 않게 썬 자몽과 오렌지를 겹쳐 깔고 망고 소스를 뿌린 것이다. 과일의 상큼한 단맛이 쫄깃하게 씹히는 바닷가재 사이로 스며드는데, 매우 이색적인 맛이다. 같은 접시에 곁들여낸 방울토마토는 그 신선한 발상으로 허를 찌른다. 속을 파내고 바닷가재 살로 채운 방울토마토는 바닷가재의 내장을 머리에 이고 있다. 토마토가 툭 터지면서 나오는 즙과 내장의 비릿하고 짭짤한 맛이 고소하게 이어지면서 입 안에 긴 여운을 남긴다. 물론 이 내장이 신선한 바닷가재에서 나온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타닌 성분이 많아 남성적인 힘이 넘치면서도 섬세한 맛과 향을 지니고 있는 ‘에르미타주’ 레드와인은 양갈비구이와 안심구이를 만나면서 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세 가지 후추와 포르토 와인 소스로 맛을 살린 양갈비구이는 녹색 후추의 강한 맛과 포르토 와인 소스의 달콤함, 그리고 양고기 육즙이 입 안에서 충돌해 화려한 맛의 향연이 오래도록 남는다. 이 순간의 에르미타주는 입 안에 감도는 양갈비구이의 풍요로운 맛을 죽이지 않으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간다. 그야말로 와인과 음식의 찰떡궁합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두가헌에는 여유가 있다. 와인과 음식을 저녁에만 제공하는데, 느지막한 시간까지 이어진다. 식사 후에도 디저트 와인과 차를 마시거나 시가를 즐기면서 여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늦은 시간에 와인을 찾는 사람들도 저녁 11시까지 식사를 주문할 수 있다. 이곳의 독특한 분위기 때문에 외국인들이 눈에 많이 띈다. 6~8명까지 들어갈 수 있는 별실이 있어 소규모 모임도 자주 열린다. 식사를 하는 동안 제법 굵게 마당에 뿌리는 빗줄기는 늦봄의 운치를 한껏 살려준다. 한옥 마루에 앉아 비를 바라보던 때의 정취를 얼마 만에 다시 느껴보는가. 레스토랑을 나서면서 맛과 멋에 흠뻑 취해버린 나를 발견하게 되는 곳이다.
삼청동 길 어귀, 갤러리 현대 뒤편에 있는 와인 레스토랑 ‘두가헌’은 이 거리의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두가헌 마당으로 들어서는 순간 “이런 곳이 다 있었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영친왕의 생모인 엄귀빈을 위해 지어졌다는 오래된 한옥이 바로 ‘두가헌 와인 레스토랑’이다. 우리의 것과 서양의 것을 한데 섞어놓은 이름에서 느낄 수 있듯, 전통가옥의 골격을 그대로 살린 채 현대적 요소를 절묘하게 결합시킨 공간이다. ‘매우 아름다운 집’을 의미한다는 ‘두가헌’이란 이름에 전혀 손색이 없다. 150년 된 은행나무 암수 한 쌍이 커다란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마당을 가로지르면 대한제국 말기 러시아식 벽돌건물이 있고, 이곳에 ‘두가헌 갤러리’가 있다. 갤러리에는 언제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처럼 전통과 현대, 음식과 예술이 어우러진 특별한 문화공간이 바로 두가헌이다.
실내에 들어서면 서까래가 드러난 높다란 천장이 인상적이다. 그 아래에서 이탈리아 음식을 기본으로 하는 차림표를 펼쳐든다. 차림표는 의외로 간결하다. 음식 종류가 20가지를 넘지 않는다. 혹 실망하는 이들도 있을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메뉴 정책을 좋아한다. 차림표가 두툼할수록, 그 안에 소개된 음식들을 제대로 만들어내고 그에 필요한 식재료를 관리하기가 무척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전통가옥 구조를 살리다 보니, 현실적으로 주방 공간이 여유롭지 않으리라는 짐작도 든다. 가짓수를 적게 유지하면서 정기적으로 음식 종류를 바꾸겠다는 두가헌의 생각은, 음식의 질을 최상으로 유지하면서도 단조로움에서 탈피하겠다는 야무진 경영 방식일 것이다.
반면 와인 목록은 길다. 별채 지하에 마련된 두가헌의 와인 셀러는 온도, 습도 면에서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으로, 5000여병까지 저장할 수 있다고 한다. 현재 이곳에 저장돼 있는 와인만 320여종에 이른다. 와인 초보자라면 이렇게 많은 종류의 와인을 나열해놓은 와인 목록을 들여다볼 생각만 해도 어찔할 것이다. 하지만 두가헌의 와인 목록은 복잡한 와인의 세계에서 길을 잃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와인을 포도 품종별로 분류하고 이를 다시 지역과 생산 연도별로 정리해놓아서 의외로 와인에 대한 기초 정보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때로는 낯선 와인 이름과 수많은 와인 종류 때문에 만만치만은 않은 와인 선택이 체계적인 와인 목록 덕분에 수월하다. 이곳의 와인 목록은, 포도 품종에 따라 와인의 맛과 향을 기억하는 것이 와인을 즐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임을 은연중에 가르쳐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와인과 음식의 궁합이 아닌가. 어떤 음식을 먹을까를 결정하고 나니 그에 어울리는 와인을 선택해야 할 순간이다. 소믈리에(포도주를 관리하고 추천하는 직업이나 그 일을 하는 사람)의 추천이 남다르다. 음식에 대해 훤히 꿰뚫고 있다. 손님의 취향과 손님이 선택한 음식을 고려하면서 그에 어울리는 와인을 고르도록 도와준다. 소믈리에의 능란한 설명은 풍부하면서도 어렵지 않다.
추천받은 레드와인 ‘에르미타주’가 숨쉬기를 기다리면서, 전채요리 ‘아스파라거스 그라탕’으로 미각을 깨우기 시작한다. 바질 페스트와 크림 소스에 파마산 치즈를 얹어 그라탕한 아스파라거스로 식욕이 슬슬 살아나기 시작한다. 상큼한 바질 향과 중후한 파마산 맛이 아삭하게 잘 익힌 그린 아스파라거스와 무리 없이 어우러진다. 뒤이어 ‘신선한 채소와 자몽을 곁들인 바닷가재 요리’가 등장한다. 약간 도톰하게 썬 스팀에 익힌 바닷가재에 너무 얇지도 두껍지도 않게 썬 자몽과 오렌지를 겹쳐 깔고 망고 소스를 뿌린 것이다. 과일의 상큼한 단맛이 쫄깃하게 씹히는 바닷가재 사이로 스며드는데, 매우 이색적인 맛이다. 같은 접시에 곁들여낸 방울토마토는 그 신선한 발상으로 허를 찌른다. 속을 파내고 바닷가재 살로 채운 방울토마토는 바닷가재의 내장을 머리에 이고 있다. 토마토가 툭 터지면서 나오는 즙과 내장의 비릿하고 짭짤한 맛이 고소하게 이어지면서 입 안에 긴 여운을 남긴다. 물론 이 내장이 신선한 바닷가재에서 나온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타닌 성분이 많아 남성적인 힘이 넘치면서도 섬세한 맛과 향을 지니고 있는 ‘에르미타주’ 레드와인은 양갈비구이와 안심구이를 만나면서 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세 가지 후추와 포르토 와인 소스로 맛을 살린 양갈비구이는 녹색 후추의 강한 맛과 포르토 와인 소스의 달콤함, 그리고 양고기 육즙이 입 안에서 충돌해 화려한 맛의 향연이 오래도록 남는다. 이 순간의 에르미타주는 입 안에 감도는 양갈비구이의 풍요로운 맛을 죽이지 않으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간다. 그야말로 와인과 음식의 찰떡궁합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두가헌에는 여유가 있다. 와인과 음식을 저녁에만 제공하는데, 느지막한 시간까지 이어진다. 식사 후에도 디저트 와인과 차를 마시거나 시가를 즐기면서 여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늦은 시간에 와인을 찾는 사람들도 저녁 11시까지 식사를 주문할 수 있다. 이곳의 독특한 분위기 때문에 외국인들이 눈에 많이 띈다. 6~8명까지 들어갈 수 있는 별실이 있어 소규모 모임도 자주 열린다. 식사를 하는 동안 제법 굵게 마당에 뿌리는 빗줄기는 늦봄의 운치를 한껏 살려준다. 한옥 마루에 앉아 비를 바라보던 때의 정취를 얼마 만에 다시 느껴보는가. 레스토랑을 나서면서 맛과 멋에 흠뻑 취해버린 나를 발견하게 되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