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욱은 1977년 6월22일 미 의회 증언에서 유신정권에 대한 포문을 연 뒤 회고록을 집필, 반(反)박정희 전선의 선봉에 섰다.
진실위는 김형욱이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지시로 프랑스에 있던 중정 요원들과 이들이 고용한 동유럽 외국인들에 의해 피랍돼 살해된 뒤 파리 근교에 버려진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진실위의 발표는 그동안의 구구한 억측을 통째로 뒤집은 것이다. △서울로 납치 후 청와대 지하실에서 살해 △파리 근교 양계장에서 닭 모이 분쇄기로 처리 △살해 후 센 강에 유기 △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실종 등 미확인 ‘설’이 나돌았다.
그런데 진실위가 사건의 실체를 밝히기보다는 또 다른 ‘설’을 덧붙이는 데 그쳤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번 발표가 여러 가지 의문점을 안고 있는 데다, 조사 과정에서도 일부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진실위 오충일 위원장은 “충분한 검증 과정을 거쳐 발표한 것”이라며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개입 여부를 비롯해 앞으로의 조사 역시 중간발표를 토대로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상자기사 참조).
중간발표의 핵심은 ‘김형욱 사건’의 배후로 김재규를 지목했다는 점이다. 국정원이 “죽은 김재규에게 배후를, 불특정 외국인에게 살해 혐의를 덮어씌웠다”는 비딱한 시선이 나올 만큼 중간발표는 의문투성이인 게 사실이다.
진실위에 따르면 김재규는 1979년 9월 말 중정의 프랑스 책임자이던 이상열 당시 주 프랑스 공사에게 김형욱 살해를 지시했고, 이 공사의 명령을 받은 중정 연수생 신현진(가명)이 동유럽 출신의 외국인 2명에게 살해를 청부했다고 한다. 신현진은 이들 외국인과 함께 10월7일 김형욱을 파리 근교로 납치했고, 외국인 중 한 명이 옛 소련제 권총으로 쏴 살해했다는 것이다.
박정희 시해 19일 전에 지시?
5월26일 국가정보원에서 열린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위원회 중간발표 모습.
박 전 대통령 시해 사건과 관련해 김재규를 변호했던 강신옥 변호사는 “전두환이 김재규를 역적으로 만들기 위해 보안사에서 샅샅이 조사했다. 신군부가 고문까지 하며 털끝까지 발가벗겼다. 사실이라면 밝혀내지 못했을 이유가 없다. 김재규가 살해 지시를 내렸다면 전두환이 정치적으로 이용했을 것이다. 또 변호 과정에서 김재규에게 김형욱 사건에 대해 아는 바 있느냐고 수차례 물었으나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진실위가 중간결과를 발표하면서 신현진의 진술에 ‘주로’ 의존한 점도 조사의 신빙성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다.
진실위에 따르면 신현진은 사건 3일 뒤인 10월10일 귀국해 김재규 전 부장을 만나 “잘했다”는 칭찬을 듣고 320만원의 격려금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옛 중정 관계자는 “젊은 연수생에게 맡기기엔 수준 높은 공작이고, 일개 하수인이 중정 부장을 직접 만났다는 것도 난센스다. 또 ‘내가 지시했다’고 하수인에게 알릴 정보기관 책임자가 어디 있겠는가. 중정은 그렇게 어설픈 조직이 아니다”고 밝혔다.
정보기관 요원이 김형욱의 시신을 어설프게 처리했다는 점도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진실위는 “외국인 2명이 도로에서 50m 떨어진 지점에 땅을 파지 않고 수북이 쌓여 있는 낙엽을 이용해 김형욱의 시신을 덮었다”고 밝혔다. 신현진은 김형욱을 살해한 외국인한테서 살해에 이용한 권총을 분실했고, 시체를 허술하게 처리했다는 얘기를 듣고도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조사과정에서 신현진의 진술을 국정원 직원만이 들었다는 점도 중간발표의 신뢰성을 떨어뜨린다. 범행 경위 일체를 진술한 신현진을 민간조사관들은 직접 면담하지 않았다. 진실위는 출범 당시 “잘못하면 국정원의 들러리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듣기도 했다. 오 위원장은 지난해 11월 취임 직후 “면죄부를 받기 위해 들러리로 내세웠다는 의심이 들면 판을 깨고 뛰쳐나오겠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