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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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도 소원은 광복절 특사”

수감 정치인들, 형집행정지·보석 등 막히자 사면에 올인 … 여야도 한목소리 맞장구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5-05-03 17: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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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에도 소원은 광복절 특사”

    사면 대상으로 거론되는 정대철, 이재정, 서청원, 최돈웅, 박지원, 김영일, 이상수, 안희정 씨(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

    여주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A 전 의원은 1년 새 몰라보게 늙었다. 수감생활이 가져온 병으로, 그는 제대로 걷지도 못할 만큼 몸이 나빠졌다고 한다. 무릎관절이 망가져 인공관절을 넣었고, 약의 부작용으로 폐 기능이 엉망이다. 1년 남짓 수감생활을 한 그를 더욱 옥죄는 건 남아 있는 형기다. 5년 형기는 다음 대통령이 집권 2년차를 맞는 2009년 1월19일 끝난다.

    ‘범털’이 으레 그렇듯, A 전 의원도 ‘탈출’을 위해 ‘해볼 건 다했다’. 미결수 시절엔 보석을 신청했으나 “이유 없다”며 거부됐고, 보석이 좌절된 뒤 구속집행정지로 말을 갈아탔으나 그마저 여의치 않았다. 기결수가 된 뒤로는 한 달가량 병원에 입원하며 받은 무릎 수술 등 악화된 건강을 빌미로 형집행정지를 바랐으나, “요건이 까다로워져 들것에 실려나갈 정도가 아니면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을 따름이다.

    국민통합과 화합이 명분? … 여론 흐름에 촉각

    이렇다 보니 옥중출마 의사를 밝히는 등 수감 초기 의연하던 모습은 벌써부터 사라졌다고 한다. 면회 온 동료 의원에게 “나 좀 내보내 달라”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손에 쥐기를 바라는 마지막 ‘동아줄’이 있다. ‘사면(赦免·대통령의 권한으로 형 선고 효과의 전부 또는 일부를 소멸시키거나, 형을 선고받지 않은 자에 대하여 공소권을 소멸시키는 일)’이 그것이다.

    불법자금이나 뇌물을 삼킨 정치인들의 구속은 요란하다. 그러나 그때뿐이다. 권력자들의 상당수가 보석 또는 구속집행정지, 형집행정지로 풀려나거나,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받고 면죄부를 얻은 양 걸어나와 정치권으로 돌아온다. 사정(司正)을 부끄럽게 만드는 최고 권력자의 사면은 ‘범털 구하기’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이다. 3·1절 사면론이 범털들의 일장춘몽으로 끝난 가운데 석가탄신일(5월15일), 광복절(8월15일) 사면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구치소, 교도소가 난리다. 아마도 광복절이 될 것 같다.”(수감 중인 B 전 의원의 측근)

    이렇듯 구치소, 교도소의 범털들은 석가탄신일 및 광복절 사면론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국민통합을 명목으로 늦어도 광복절엔 정치인 사면이 이뤄질 거라는 바람이다. 수감 중인 옛 여권 정치인의 측근은 “3·1절에 기대를 걸었던 이들이 석가탄신일과 광복절에 풀 베팅을 할 기세”라고 전했다. 정부 당국자도 “기업인들은 석가탄신일에, 정치인들은 광복절에 사면을 단행하는 방향이 논의되고 있다”고 밝혔다. 사면 논의는 ‘탈출’을 꿈꾸는 범털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C 전 의원은 교도소 원예반에서 활동하면서 꽃, 나무를 벗 삼아 무난하게 수감생활을 보내고 있다. 수감 기간이 짧아 아직은 ‘은전’을 기대하기 어렵지만, 그도 광복절 대사면설 탓에 조기 출소 기대를 갖게 됐다고 한다. 8월이면 형기의 3분의 2를 채우게 돼 광복절 특사로 풀려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다. 불법 대선자금에 연루된 정치인들의 사면과 함께 가석방이 이뤄질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 상대적으로 처벌이 강했다는 점에서 동정론을 듣는 C 의원은 “잘못은 잘못 아니냐, 형기를 다 채우겠다”고 각오를 밝히면서도, ‘나가고 싶다’는 속내를 숨기지 못한다고 한다.

    사면, 복권을 검토하는 명분은 국민통합과 화합이다. 청와대와 정부는 타이밍을 검토하며 여론의 흐름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에서도 비리 정치인들의 사면, 복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통합을 얘기하면서 사면을 제외하면 얘기가 되지 않는다”(문희상 우리당 의장). “대선자금 수사로 처벌받은 김영일·최돈웅 전 의원이 개인적으로 돈을 착복한 게 아니지 않느냐.”(한나라당의 한 중진 의원)

    안영근 의원(우리당)은 4월14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불법 대선자금 사건에 연루돼 실형을 받은 정치인의 사면론을 주장한 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한테서 “고맙다”는 전화를 받아 화제가 됐다. 안 의원은 정대철 전 민주당 대표에게서도 “어려운 얘기를 거론해줘 매우 고맙다”는 뜻을 전해 들었다고 한다. 정 전 대표는 불법 대선자금과 관련해 노무현 대통령 측근들이 모두 풀려난 가운데 유일하게 옥살이를 계속하는 여권 인사다. 여권에선 소외감, 박탈감을 느낄 그를 달래줘야 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정 전 대표는 사면과 관련해 ‘여권 핵심부’를 향해 시위하는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 탄생의 일등공신인 그를 두고 “존재 자체가 부담스럽다”는 반응이 나온 이유다. 정 전 대표는 올 3·1절에 크게 기대를 걸었다는 전언이다. 이상수·이재정 전 의원 등이 일찌감치 출감하면서 조바심이 더욱 커졌다는 것. 정 전 대표는 최근 형집행정지를 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일각에선 조기사면이 어려웠다면 형집행정지 등으로 짐을 덜어줬어야 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시민단체들 곱지 않은 시각 … 노 대통령 결단이 관건

    사면 대상으로 거론되는 정치인은 정 전 대표를 비롯해 여권의 이재정·이상수 전 의원, 안희정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원 등과 야권의 김영일·최돈웅·박명환·서청원 전 의원, 서정우 변호사 등이다. 또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 박지원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도 혜택을 누릴 것으로 보인다.

    이들에 대한 사면 논의가 등장한 속내는 복잡하다. 족쇄가 채워진 노 대통령 측근들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절차라는 비판도 나온다. 이들 정치인들이 공직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선 사면, 복권이 필요하다. 한나라당도 여권의 속내를 훤히 꿰고 있다. 그럼에도 딴지를 걸 까닭은 없다. 한나라당 역시 불법 대선자금 모금과 관련해 총대를 멘 김영일 전 의원 등에게 신세를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회창 전 총재의 최측근인 서정우 변호사도 여전히 수감 중이다.

    사면, 복권이 국민통합의 필요조건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데다 사면, 복권을 받은 뒤 아예 죄가 없었다는 양 재·보궐 선거 등에 출마해 정치권에 재등장하는 구태에 식상한 이들이 많다. 물론 정치적 암수가 가미된 사면 논의라도 대통합을 위해선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견해 또한 없지 않다. 사면이라는 특권을 ‘손에 쥔’ 노 대통령은 어떤 결심을 내릴까. 노 대통령을 고민케 할 참여연대의 주장이다.

    “국민들은 여전히 ‘차떼기’와 ‘희망돼지 사기극’을 기억하고 있는 만큼 (사면 주장은) 이해될 수도 없고, 용납될 수도 없다. 수백억원대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정치인들이 제대로 처벌받지도 않고 사면, 복권된다면 힘있고 가진 자들에게 적용되는 법과 가지지 못한 자들에게 적용되는 법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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