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신선이 바둑판을 둘러싼 형국의 명당(五仙圍碁穴)에 쓴 무덤.
그보다 50년 전인 대한제국 말에는 동학군과 항일의병이 이곳을 의지해 싸우거나 숨어들었다. 회문산은 이념과 종교를 가리지 않고 이곳을 찾아드는 이들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결코 살아서 나가게 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음기가 강한 산의 성격 탓이었다.
비극의 현장으로서는 회문산보다 지리산이 더할 것이다. 그런데 지리산과 달리 이곳 회문산에는 풍수와 관련된 여러가지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조선의 명당, 24개의 명당이 있는 곳, 다섯 신선이 바둑판을 둘러싸고 있는 형국의 명당(五仙圍碁穴)이 있어 발복이 되면 59대 후손까지 잘 살게 된다”는 등 회문산과 관련해 인근 마을 사람마다 다양하게 말하는 것이 그것이다. 19세기 초 홍경래의 풍수 스승으로 알려진 일이승(一耳僧)이나 전라도의 전설적인 명풍수 홍성문(홍문대사 혹은 홍석문 등으로 불리기도 함)이 ‘회문산 명당도’를 남겼는데, 그 비결(秘訣)이 어딘가에 있다는 이야기도 숱하게 많다.
몇 년 전 고등학교 교사라고 밝히는 한 지관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는 필자에게 ‘홍성문이 지은 회문산가 24혈’이란 비결을 보여주었다. 붓으로 쓰고 그린 고서처럼 보였지만, 자세히 보면 모필한 최근 작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24개 명당이 아직 임자를 만나지 못했는데, 자신이 찾아서 광주와 전북 사람들에게 몇 곳을 소개한 적이 있다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였지만 회문산 능선을 오를 적마다 지금도 여전히 무덤이 쓰여지는 것을 보면 계속 수요가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잡초가 우거진 무덤들이 더 많다. 그래서 풍수 공부에 좋은 현장이 되는 곳이다.
회문산 ‘자연휴양림’ 입구에서 헬기장까지 개설된 비포장 임도(자동차 이용 가능)를 지나 회문산 정상(830m)으로 가는 능선에서 수많은 무덤들을 만나게 된다. 바위 위에다 관을 놓고 흙을 덮어 봉분을 만든 것, 바위 사이에 무덤을 쓴 것, 바둑판이라고 생각한 너럭바위 아래에 무덤을 쓴 것, 산 정상에 돌을 쌓고 그 위에 무덤을 쓴 것 등 제각각 24명당 혹은 오선위기혈임을 확신하고 쓴 무덤들이다(사진 참고). 너무 많은 무덤이 들어서 골칫거리가 되자 최근 산림청에서는 ‘무연고 무덤 정리’를 공지할 정도가 되었다.
주변의 바위들이 다섯 신선이고 무덤자리가 바둑판이라고 생각해서 쓴 무덤. 회문산 여근목과 남근석(여근목 뒤에 있는 바위).(위부터)
회문산은 잠시 머물다 갈 자리이지 영주할 곳이 아니다. 음기가 강한 까닭에서이다. 음기의 정수를 표출하듯 헬기장에서 정상으로 10분 정도 오르다 보면 등산로 한가운데에 소나무(赤松)가 서 있다. 동양 최고의 여근목(女根木)이다. 필자의 주관이 아니라 우리나라와 이웃 나라 여근목이란 여근목은 모두 찾아다닌 어느 분의 말씀이다.
그분 말씀으로는 일본에 이것이 소개되면 단체 관광객이 몰려들 곳이라고 극찬을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필자에게 이 여근목은 회문산 음기의 상징으로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