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잠실 저밀도 재건축 단지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정부는 이에 따라 2월17일 ‘수도권 주택시장 안정대책’을 발표하는 등 정책 기조를 경기 부양에서 규제로 재선회하며 시장 잠재우기에 나섰다. 투자를 미뤄왔던 수요자들로서는 행동에 나서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결정하기가 더욱 곤혹스러워진 상황이다.
연말 연초 각 연구기관에서 분석한 2005년도 부동산 시장 전망은 한마디로 ‘하락국면 지속’이었다. 400조원에 이르는 시중 부동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될 전망은 크지 않다는 것이었다. 정부의 투기 억제 정책이 계속되는 데다, 과다한 가계 부채도 주택수요 활성화에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실물경기 회복을 장담할 수 없어 부동산 시장 또한 극심한 거래 부진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대세를 이뤘다. 결론적으로 연 2~3%의 집값 하락이 예상되며, 토지 시장 또한 1~3% 하락할 것이라는 예측이 이어졌다.
전망 비웃는 시장 상황, 강남ㆍ충청권 연초부터 들썩
정부 역시 경기가 회복돼도 상반기까지는 부동산 시장 침체가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정부는 가라앉은 부동산 경기가 경기회복의 악재로 작용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정부가 등록세율 인하, 투기과열지구 분양권 전매금지 기준 완화, 주택투기지역 및 주택거래신고지역 해제 등의 조치를 잇따라 내놓은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1월 중순 이후 사정이 급반전됐다. 서울 송파구 잠실 저밀도지구 재건축 아파트 값이 일주일 새 3000만~4000만원 급등한 것이다. 최근에는 2004년 10월29일 부동산 대책 발표 이전 가격을 회복했다.
수도권 재건축 시장도 들썩이고 있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주공아파트, 대치동 은마아파트, 서초구 반포동 주공아파트, 경기 광명시 철산동 주공아파트 등도 매물이 사라지면서 가격이 상승세로 돌아섰다. 설상가상, 2종 일반주거지역 내의 층수 제한 폐지로 초고층 재건축 추진이 가능해졌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강남권 일반 아파트 값도 꿈틀대고 있다.
2004년 11월1일 열린우리당 위원들과 부동산 정책을 논의하고 있는 이헌재 부충리.(왼쪽)
실제로 ‘부동산뱅크’ 자료에 따르면 강남권 주요 아파트 값은 한 달 새 폭등에 가까운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31평형은 1월 5억8500만원에서 한 달 만에 6억6500만원으로 8000만원 뛰었고, 서울 송파구 잠실동 주공 1단지 10평형은 같은 기간 3억7750만원에서 4억500만원,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사원아파트 36평형은 6억7500만원에서 7억2500만원으로 뛰어올랐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양지공인’ 송대호씨는 “개포동 주공아파트의 경우 20일 만에 7000만~1억원 정도 올랐다”며 “중개업소 22년 동안 이처럼 단기간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오른 경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충청권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행정수도 건설이 재추진되면서 대전시 노은지구 등의 아파트 값이 하락세를 멈추고 상승세로 돌아섰다. 충청권 토지 시장도 위헌 결정에 따른 후폭풍에서 회복되고 있다.
대세 상승인가 일시적 반등인가
단기간에 폭등에 가까운 상승장이 연출되면서 투자를 미뤘던 수요자들의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부동산 값이 바닥을 치고, 본격 회복 국면에 진입해 투자시기를 놓치지 않았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한 가지 눈여겨볼 것은 요즈음의 부동산 시장은 다분히 호가 장세라는 점이며, 거래 상황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대부분이 주택거래신고지역으로 묶인 서울 송파구ㆍ강남구ㆍ강동구의 1월 주택거래신고 건수로 미뤄 짐작할 수 있다. 2005년 1월 신고 건수가 2003년 12월에 비해 다소 늘어난 것은 사실이나, 12월이 비수기인 점을 감안하면 이전과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이다.
2004년 12월 6일 서울 여의도의 한 건설사 모델하우스를 찾은 소비자들이 조감도를 살펴보고 있다.
서울 강동구도 예외는 아니다. 올 1월 주택거래신고 건수는 97건으로 2004년 12월의 57건에 비해 40건 증가했을 뿐이다. 강동구청 지적과 서희동 과장은 “고덕 및 둔촌 아파트를 빼고는 거래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 거래금액도 중개업소가 밝힌 시세보다 낮다. 서울 송파구 지적과에 따르면 신고된 거래금액은 중개업소ㆍ인터넷에서의 시세보다 5~10% 정도 낮다. 강동구 역시 신고 금액이 중개업소의 시세보다 10~20% 정도 낮다고 밝혔다.
신규 분양시장은 서울시의 경우 동시분양을 하지 못할 정도로 꽁꽁 얼어붙어 있다. 미분양 물량은 여전히 쌓여 있다. 건물이 준공되고도 입주자를 구하지 못해 텅텅 빈 집들이 수두룩하다. 증시 활황에 따른 뭉칫돈의 주식 시장 유입, 실물경기 회복 불투명, 금리인상 요인 상존 등의 경제변수 또한 부동산 시장 대세 상승과 거리가 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수요자, 추격매수 나설 필요 없다
일시적 반등이라 해도 수요자가 추격매수에 나서면 매도 호가가 시세로 연결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일시적 반등장이 대세 상승장으로 변화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추격매수가 일어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서울 강남권 부동산중개업소들에 따르면 매매 손님보다 전월세 손님이 더 반갑다고 한다. 매매 손님은 가격만 물어볼 뿐 실제 매매로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일선 현장에서는 매도자들이 집값을 올리고 있지만, 수요자들이 추격매수에 나설 조짐은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2월17일 발표된 시장 안정대책도 호가 상승장에 제동을 걸 것으로 보인다. 초고층 재건축 불허, 안전진단 강화, 판교 대책 등은 정책의 실효성 여부를 떠나, 시장 불안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시장에 재천명한 점에서 얼마간 효과를 거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투자시기를 마냥 늦춰서는 안 된다. 정부의 ‘2·17 대책’ 효과가 지속되기 힘들 것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번 조치 또한 재건축 사업 지연을 통해 기대심리를 억누르는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재건축의 투자 매력은 여전하며, 판교는 여전히 ‘로또’나 다름없다.
실제 정부는 전세대란을 막겠다며 서울 송파구 잠실주공 등 저밀도지구 재건축 사업을 10년 넘게 지연시켰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들 저밀도 재건축 단지는 사업이 진행되면서 집값 상승의 주범으로 작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투자시기에 대해 올 상반기 전후가 적기인 것으로 보고 있다. 하반기부터 취ㆍ등록세 부담이 현재보다 더 늘어 투입비용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또 부동산 시장이 외환위기 이후 침체와 2002~2003년 폭등기를 거치면서 양극화하고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서울 강남권과 비강남권, 호재가 있는 곳과 그렇지 않은 지역 간의 시장 격차는 앞으로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