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것을 가정한 합성 사진.
“왜?”
“임기는 절반 가까이 지나갔는데 해놓은 일이 없으니까. 행정수도 이전이 좌절되고 기타 개혁 입법안도 추진이 여의치 않다. …그래서 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성사에 올인했다. 행정수도 이전을 추진할 때처럼 남·북정상회담 성사에 정권의 명운을 건 것이다.”
권부 깊은 곳의 움직임을 들여다보는 소식통끼리 하는 말이다. 이들은 “노 대통령이 11월13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 국제문제협의회가 주최한 오찬에서 ‘북한은 핵과 미사일을 외부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억제 수단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일리 있는 측면이 있다’고 연설한 것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남·북정상회담을 하자는 노골적인 ‘러브 콜’을 보낸 것이다”라고 단언했다. 왜 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성사에 목을 맬까.
2003년 2월25일 노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식 연설에서 “북한의 핵 개발은 용인될 수 없다. 북한이 핵 개발을 포기하면 국제사회는 북한이 원하는 많은 것을 제공할 것이다. 북핵 문제는 반드시 평화적으로 해결돼야 한다”는 요지의 ‘평화번영 정책’을 발표했다. 평화번영 정책은 ‘선(先)북핵 포기, 후(後)대북 지원’으로 정리될 수 있는데, 노 대통령은 취임 2년이 다 돼가는 지금 이 정책을 단 한 발자국도 진척시키지 못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은 盧 지지도 회복할 매력적인 카드
현재 진행되고 있는 남·북경협(대북 지원)은 도로·철도 연결(경의선 등), 개성공단 건설, 금강산 특구 건설의 ‘3대 경협’뿐이다. 그러나 이는 모두 김대중 정부의 작품이다. 1차 남·북정상회담 2년 후인 2002년 4월 북한을 방문한 임동원 특보는 북한과의 3대 사업 에 합의했다. 그런데 이를 확대 발전시켜야 하는 노 대통령은 평화번영 정책을 발표하며 기염을 토했건만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처지에는 큰 차이가 있다. 김대중 정부가 정상회담을 추진할 때는 94년 제네바 합의로 1차 북핵위기가 해결된 다음이었으나 노 정부는 2차 북핵위기가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출범했다. 때문에 노 정부는 ‘선북핵 포기’를 전제로 한 ‘평화번영 정책’의 집행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이 전제가 평화번영 정책을 막는 자가당착을 낳고 있는 것이다.
소식통들은 “따라서 노 대통령은 ‘북한이 핵을 가지려 하는 것은 일리가 있다’고 달래면서,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남·북정상회담을 하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1차 남·북정상회담은 제네바 합의 덕분에 북핵 문제는 전혀 거론하지 않을 수 있었지만 2차 남·북정상회담을 한다면 반드시 거론해야 한다. 그러나 북핵 문제는 남·북 문제라기보다 미·북 문제라는 속성을 안고 있다. 다시 말해 노 대통령은 미국과 같은 힘과 협상술을 갖고 있어야 북핵문제를 놓고 김정일 위원장을 상대할 수 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큰 문제이다.
11월20일 칠레에서 부시 미국 대통령(위 오른쪽)과 만난 노무현 대통령.
미국은 4전4승을 올렸는데, 2승은 초반 KO승이고 2승은 링에 오르지도 않고 기권승을 거뒀다. 이러한 부시 정부도 핵을 쥐고 있는 김정일 위원장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라 고민하고 있는데 전과가 전혀 없는 노 정부가 과연 이뤄낼 수 있을까. 한 관계자는 “노 정부의 꿈은 2차 남·북정상회담을 열고 그 자리에서 김정일 위원장으로 하여금 ‘핵 개발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을 받아내고 그에 대한 대가로 북한에 대해 막대한 경제협력을 약속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꿈은 이뤄질 수 있을까.
6·15남·북 공동선언에 따르면 2차 남·북정상회담은 김정일 위원장이 답방하는 형태로 이뤄져야 하지만, 현 상황에선 김 위원장의 답방이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일각에서 금강산을 정상회담 후보지로 점찍어두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이 핵 포기를 선언하면, 20%대에 머물고 있는 노 대통령 지지도는 치솟을 가능성이 높다. 침체를 거듭해온 국내 경제계로서는 북한 지역에 대한 사회간접자본 건설 특수(特需)를 누릴 수 있게 된다.
노 대통령 APEC 발언은 북한 향한 은근한 메시지?
핵 포기는 김정일 위원장에게도 큰 선물을 준다. 2002년 김 위원장은 신의주 경제특구 설치와 화폐개혁이 포함된 7·1 경제개선관리조치를 추진하며 경제 살리기를 시도했다. 그러나 신의주 특구는 중국이 양빈(楊斌) 행정장관을 투옥함으로써, 7·1조치는 경제는 살리지 못하고 인플레이션율만 높여놓음으로써 완전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다. 외부 투자가 없는 한 북한의 경제 살리기는 성공하기 어렵다.
그런데 김정일이 핵 포기 선언을 함으로써 한국이 투자를 한다면,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고민하던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 여타 국가의 기업들도 안심하고 투자를 하게 돼, 북한은 경제를 비약시킬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김정일은 북한 경제를 살린 ‘덩샤오핑’이 되고, 노 대통령은 가다피를 잡은 ‘부시’가 되는 것이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꿩 먹고 알 먹고…’.
미국은 이러한 장밋빛 미래를 좌절시킬 힘을 갖고 있다. 때문에 노 대통령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가기 위해 경유한 미국에서 ‘북한이 핵을 가지려 하는 것엔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는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북한에는 ‘미국에 할 말 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우리를 믿고 회담에 응하라는 메시지를 전한 것. 그러나 미국이 ‘무슨 소리를 하느냐’며 훼방하기 시작하면 이 의욕은 실패로 귀착될 수밖에 없으므로 노 대통령은 11월20일 칠레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 ‘또 다른 올인’을 했다.
많은 사람들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것으로 보고 있지만, 현실은 그 반대다. 미국은 북한을 공격할 수도 있는 ‘하드웨어’는 계속 갖춰나가겠지만(그래야 북한이 겁을 먹는다), 섣불리 북한을 공격한다는 의지는 세우지 못한다. 지난 4년간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은 ‘대화’였다. 클린턴 정부는 북한과 1대 1로 만나는 양자 대화를 했다가 2차 북핵위기를 만났으니, 부시 행정부는 6자회담이라고 하는 다자 대화의 틀로 북한을 상대한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이러한 부시 행정부의 태도는 미국과 한국에서 10월 충격설이 떠돌고 미국 대선이 코앞에 닥친 10월26일, 한국에 온 파월 국무장관이 ‘북한을 공격하지 않겠다’고 한 데서도 확인된다.
이종석 NSC 사무차장.
이런 경험이 있는 만큼 노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면서 한미 관계를 악화시키는 우(愚)를 범해선 안 된다. 소식통들은 노 대통령의 LA 연설이 있은 직후부터 “노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을 만나면 그 특유의 화법인 ‘맞습니다, 맞고요’로 나갈 것”으로 전망했다. 어차피 미국은 6자회담에서 ‘대화’로 북핵 문제를 풀려고 할 것이니, 노 대통령 부시 대통령이 하는 말에 거의 무조건적으로 동의해버린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한미 정상회담은 좋은 분위기 속에서 끝나게 돼, LA 발언에도 한미 관계는 전혀 흔들리지 않은 것으로 보이게 된다.
소식통들은 한미 정상회담이 있은 후 노 대통령이 “외교안보팀에 한턱 내겠다”고 한 것은 그가 펼친 일련의 노력이 성공했다는 자평으로 판단한다. 소식통들은 이러한 로드맵이통일부도 외교부도 국방부도 아닌, 이종석 차장이 이끄는 NSC(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구상됐다고 단언했다. 이 차장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수행원으로 현장에 있었다. 노 대통령의 특별한 신임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 차장으로서는 노 대통령의 평화번영 정책이 ‘공약(空約)’이 아니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북한, 미국과 회담 성사된다면 남·북정상회담 응할 수도
이 차장은 지난해 “북핵 문제와 연관지어 자이툰 부대의 이라크 파병을 추진하겠다”고 밝혀 어떤 로드맵을 그리고 있는지 드러냈다. 이어 자이툰 부대의 규모를 3000명으로 한정짓고 주한미군 재배치 현상에도 깊이 관여했다. 이 차장이 주도한 대미협상에 대해서는 다양한 평가가 나올 수 있지만, 중요한 대미 문제가 타결된 이상 그는 진짜 과제인 ‘북핵 문제 해결’을 해내는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노 대통령의 LA 발언을 계기로 이 차장은 북한에 보여줄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 남은 것은 북한의 반응인데 한 관계자는 “김정일 위원장이 그렇게 호락호락하겠느냐”라며 1차 정상회담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차 남·북정상회담은 대략적인 통일 방향과 남·북경협만 논의한 회담이었다. 1차 남·북정상회담이 있기 전 북한은 미국과 미사일 회담을 성공적으로 펼치고 있었다. 미국을 상대로 제네바 합의라는 핵 회담에 이어 미사일 회담까지 밀고 나가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미·북 관계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남·북정상회담을 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런데 김대중 정부가 현대그룹을 통해 5억 달러를 보내준다는 파격적인 제의까지 했으니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미국과 북한은 관계가 좋지 않다. 6자회담을 제외하곤 이렇다 할 회담도 없는 상태다. 2차 북핵문제는 치열하게 달아올랐는데…. 북한은 초지일관 한국을 미국의 꼭두각시로 봐왔고, 스스로는 미국과 맞서는 강성대국을 주장해왔으므로 회담을 한다면 미국과 해야 한다. 미국과의 회담이 성사될 수 있다면 북한은 노 정부의 간절한 소망인 2차 남·북정상회담에 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부시 정부가 6자회담 틀만 고집하고 미·북 간의 양자 회담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2차 남·북정상회담에 굳이 응할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한국이 1차 때처럼 ‘검은돈을 주겠다’고 한다면, 경제가 어려운 만큼 북한은 마지못해 응할 수도 있다. 그 돈은 1차 때의 5억 달러보다 많아야 할 텐데, 어느 기업이 이 돈을 부담하겠는가. 2006년이 되면 노 정부는 사실상 레임덕(임기만료를 앞둔 공직자를 ‘절름발이 오리’에 비유한 말)에 빠질 것이므로 노 정부로서 2005년은 2차 정상회담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한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93년 대기근 때 300만명이 굶어죽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이러한 성격의 김정일은 ‘뭔가가 손에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며 노 정부를 한없이 애태울 것이다.”
한 관계자는 “1차 남·북정상회담의 산물인 3대 경협은 2002년 4월 임동원 특보가 세 번째로 북한을 방문했을 때 이뤄졌다. 한국은 이 경협을 군사 문제를 다루는 회담으로 발전시키려 했다. 철도와 도로를 잇고 금강산과 개성을 개발하려면 DMZ에 포진한 남·북군 사이에 회담이 있어야 하는데, 이 회담을 남·북군사 문제를 다루는 회담으로 발전시키려고 했다. 그리하여 서해 NLL 문제를 다루는 장성급 회담까지 열리게 되었으나, 북한은 한국의 대북 심리전을 차단하는 ‘과실’을 챙긴 뒤 서해 사태를 일으켜 뒤로 물러나버렸다. 그리고 김일성 사망 10주기인 7월 한국에서 누구도 조문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유로 3대 경협을 제외한 모든 접촉을 중단했다. 북한이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 너무 뻔한데, 노 정부는 너무 서둘고 있다”라고 말했다.
남·북정상회담은 노무현 정부의 산적한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전가의 보도다. 이종석 차장이 노 정부의 ‘히어로’가 되려면 그는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켜야 한다. 그러나 노 대통령 임기는 계속해서 짧아지고 있다. 그를 초조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서둘면 당한다. 제발 무리수를 두지 말아달라”고 간곡히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