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구의 레슬링 선수였던 패션모델 김민철을 등장시켜 화제가 되고 있는 GM대우 ‘나는 나를 넘어섰다’, 대표적인 ‘힘내자’ 컨셉트 광고인, 교보생명의 ‘마음에 힘이 되는 노래’
‘모두 힘내세요!’
최근 유행하는 ‘힘내자’ 컨셉트 광고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교보생명의 ‘마음에 힘이 되는 노래’ 시리즈다. 톱 탤런트 김희애를 모델로 한 이 광고는 어깨가 처진 남편 옆에서 아내가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라는 만화 ‘캔디’의 유명한 주제가를 부르는 것이 전부다. 2주 전에 첫 방송을 시작한 이 광고는 곧바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김희애씨의 표정연기만으로도 힘을 얻을 수 있는 가슴 따뜻한 광고’, ‘좀 울컥할 것 같은 느낌’, ‘저런 아내가 곁에서 힘을 준다면 용기백배할 거 같네요’.(www.tvcf.co.kr)
현재 방송되고 있는 또 다른 ‘힘내자’ 컨셉트 광고로는 박카스의 ‘어머니와 아들’, 서울우유의 ‘사랑한다면 하루 세 번’, 00700의 ‘대한민국 응원가’, GM대우의 ‘나는 나를 넘어섰다’ , 삼성생명의 ‘브라보 유어 라이프’, KTF의 ‘열정’, 햇반의 ‘밥은 먹고 해’ 등이 있다. 장수 상품인 삼양라면이나 에이스도 빅 모델을 쓰지 않고 열심히 살았던 시절의 추억을 되살려 호감을 사고 있는 광고들.
‘힘내자’ 광고가 늘어나기 시작한 시점은 올 상반기부터. 교보생명 광고에서 최민식이 친구에게 무언가 말을 할 듯 할 듯하다 ‘거칠은 벌판으로 달려가자’는 ‘젊은 그대’를 불러주는 광고가 큰 인기를 얻으면서 하나의 트렌드를 이루기 시작했다.
“실업자와 신용불량자가 늘어서 사람들이 모두 기운 없어 하잖아요.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나온 아이디어죠. 우연히 눈에 들어온 짧은 문구, 노랫말 한 줄이 희망을 잃은 사람들의 마음에 더 깊이 닿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거죠.”(교보생명 광고대행사 웰컴, 김영숙)
촬영은 새벽 서울 인사동 거리에서 이뤄졌는데, 친구 역으로 아깝게도 뒷모습만 보인 배우는 사실 베테랑 연극 배우다. 그러나 얼굴 대신 ‘가장 절망적으로 처진 어깨’ 연기를 수십 회 촬영하는 것으로 자기 몫을 다했다. 최민식 다음 편은 가수 ‘비’가 아버지를 위해 ‘아빠의 청춘’ CD를 선물한다는 내용이었는데, ‘다소 어렵다’는 의견에 따라 다시 최민식에 버금가는 연기력을 갖춘 중견탤런트 김희애로 복귀한 것.
‘나는 안 울어’ 어려움에 처한 내 이야기로 공감
김희애는 ‘캔디’ 주제가와 ‘세상만사’ 두 개의 버전을 촬영했는데,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꿋꿋이 살아가자’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 ‘캔디’가 적당하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그러나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느라 제작진이 막판에 비밀리 일본을 오가며 상당히 고생을 했다는 후문이다.
GM대우의 ‘나는 나를 넘어섰다’에는 가수 ‘보아’와 모델 김민철이 등장하는데 무명 시절을 흑백화면에 담아 보여줌으로써 ‘힘내자’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했다는 평을 받는다. 특히 모델 김민철은 130kg이 넘는 거구의 레슬링 선수였는데 패션모델이 되고 싶어 파리로 날아가 60kg을 감량하고 패션업계의 밑바닥 생활부터 시작해 꿈을 이룬 의지의 인간으로 광고 출연 후 언론의 각광까지 덤으로 얻었다.
‘힘내자’ 광고는 원론적으로는 빅 모델을 쓰지 않고 시청자들이 “바로 내 얘기네”라고 느낄 수 있는 일반 모델을 기용한다. 그래서 최민식, 김희애, 비 같은 톱스타를 쓴 ‘힘내자’ 광고의 한계를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광고대행사 쪽에서는 “최민식이나 김희애, 보아 등은 연기력과 역경을 딛고 성공한 인간적 면모 때문에 캐스팅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교보생명과 GM대우를 제외한 다른 ‘힘내자’ 광고들은 일반인이거나 무명모델을 써서 광고의 주제를 부각시킨다. 또한 일반 모델을 쓰면 대스타의 천문학적인 광고 출연료를 줄이는 경제적 장점도 있다.
긴 불황 모험보다 안정적인 소비자 확보 전략
1998년부터 올 초까지 젊은 소비자층을 타깃으로 하여 ‘지킬 것은 지킨다’는 광고를 내보냈던 박카스도 5월부터는 식당일 하느라 힘든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송대관의 ‘네박자’에 맞춰 재롱 떠는 청년 아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모자편’을 내보내고 있다. 경제개발을 위해 고생했던 중·장년층을 소홀히 했다는 판단 때문이다. 경쟁제품 ‘비타 500’류에 맞서 시장을 보호해야 할 절박한 사정도 작용했다. 박카스 광고의 ‘유턴’에 대해서는 젊은 광고전문가들이 ‘굵직한 사회적 이슈를 광고로 보여준 박카스가 소소한 가정사로 돌아가 아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 데 비해, 일반 소비자층은 ‘보수와 진보,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로 양극화한 시대적 분위기에 바람직한 내용이다’라는 평이다.
광고제작사 선연의 박일경 부장은 “신제품을 알리는 정보 광고도 아니고, 젊은층에서 장년층까지 넓은 소비자층에 팔리는 상품이다 보니 컨셉트 결정에 어려움이 많다. 다음 편에는 모두에게 희망을 주면서도 작지 않은 이야기를 다룰 것”이라고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루 세 번’ 사랑한다는 말과 우유 한 컵을 주라는 메시지를 담은 서울우유 광고도 대표적인 ‘힘내세요’ 이야기다. 일반인 모델로 어머니와 딸, 아버지와 아들 등의 상황을 설정했다. 서울우유는 올 초까지 인기 연예인을 기용하기도 하고 ‘우유는 록이다’ 같은 발랄한 카피를 노출시켜왔다.
또한 마지막 장면에 차두리가 등장하는 00700 광고도 각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일반인들을 보여주면서 ‘더 자주 응원해주세요, 대한민국 응원가’라는 내레이션을 내보낸다. ‘햇반’의 경우에는 새내기 직장인과 그에게 ‘밥은 먹고 하라’는 엄마의 전화 메시지를 보여줘 사회초년생들의 눈시울을 붉게 한다.
이 같은 ‘힘내자’ 광고가 많이 등장한 주요한 배경이 장기적인 내수 불황이라는 데는 이의가 없는 듯하다. 광고 포털사이트 ‘미디어웍스’의 양숙 공동대표는 “그동안 대유행한 엽기 코드 광고는 폭발적으로 인기를 얻을 수 있는 반면, 거부감을 줄 수도 있다. 지금 같은 시기엔 광고주들도 모험보다는 안정적 방법으로 소비자층을 끌어안으려고 한다”고 말한다.
특히 광고의 배경음악을 보면 메시지는 더욱 분명해진다. 재즈나 힙합 대신 ‘아빠의 청춘’ ‘캔디’ ‘젊은 그대’ ‘파란나라’ ‘사노라면’ ‘네박자’ 등 지나간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국민가요가 애용된다. “지금보다 더 어려웠던 시절도 있었다, 그때처럼 열심히 일해 경제위기를 극복하자”는 것이다.
이 같은 광고 형식에 대해서는 “퇴보했다”는 반응도 있지만 그동안 너무 멋을 낸 데 대해 반성해야 한다는 긍정적 평도 있다. 광고평론가 김홍탁씨는 “한국 광고는 시작부터 길을 잘못 들어섰다. 말하려는 바(what to say)를 정확하게 보여주어야 하는데 멋과 이미지에 초점을 맞춘 광고가 많았다. 또 빅 모델 보여주는 걸로 만족하는 광고도 많았다. 그중 많은 것이 성공했으니 어쩔 수 없긴 하다. 좋은 광고라면 아이디어와 컨셉트가 분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기가 갑자기 좋아지지 않는다면, ‘힘내자’ 광고는 한동안 광고장이들의 ‘화두’가 될 전망이다. 제일기획에서 전자제품 광고를 기획하는 조화숙 국장은 “아직까지는 세련을 내세우는 전자 부문에서도 가을부터 ‘힘내자’ 광고가 많이 나올 것으로 본다”고 예측했다.
경기 침체가 ‘심리적’이라는 주장도 있으니, ‘힘내자’ 광고는 소비자들에게 실제 이상의 소구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당장은 이 광고들이 딱히 대안이 없는 기업들의 주장을 대변하는 듯한 느낌도 주긴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