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 국가안보위원회 위원들이 대(對)테러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테러 공격 경고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정치적인 음모다. 대통령에게 좋지 않은 일이 있을 때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우려한다. 경고 중 얼마만큼이 실제이고, 얼마만큼이 정치적인 것인지 알 수 없다.”(1일 버몬트 하워드 딘 전 주지사 CNN 회견)
“테러 위협은 여전히 실제하고 심각하다. 위협이 실제적으로 나타나면 일반 국민에게 알릴 것이다.”(2일 영국 내무부 대변인 성명)
“우리가 며칠간 검토해왔고, 검토 결과 더 명확해진 정보는 내가 보아온 어떤 것과도 같지 않았고, 보통과 아주 다른 내용이다.”(2일 미국 백악관 콘돌리자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 NBC 회견)
테러 공격에 대해 언론도 의혹 제기
“우리가 국민을 위협하는 실제 정보를 찾았다면 정부는 그것을 국민과 공유해야 할 의무가 있다.”(6일 부시 대통령 소수민족 출신 기자회견)
미국에서 ‘새로운 테러 공격 정보’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란의 진실은 쉽사리 확인될 것 같지 않다. 테러 공격 계획을 감지해서 세상에 알리고 경고를 한 결과 테러리스트들이 공격 계획을 취소하거나 바꾸었다면 훌륭한 효과를 발휘했지만, 사실 여부를 제대로 확인할 수 없다. 거짓 또는 과장 경고를 했는지 여부는 훗날 청문회를 하더라도 제대로 가려내기 어렵다.
어쨌든 8월2일부터 뉴욕의 월 스트리트에 무장경찰이 증원됐고, 증권거래소 등 일부 건물에는 바리케이드가 세워졌다. 직원들은 신원 확인과정을 거친 뒤에야 사무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미국 언론들은 “테러 경고에도 일자리를 지켰다”며 사뭇 감상적인 글로 직원들의 첫 출근 표정을 전했다. 트럭이나 밴은 다리나 터널을 통과해 맨해튼에 들어갈 없었다(이 조치는 8월4일 밤 해제됐다). 워싱턴의 의사당 주변 길은 교통이 통제됐다. 비상계엄과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정부의 대대적인 테러 경고에 대한 여론이 곱지만은 않다. 이런 판단의 배경에 어떤 정보가 있었는지를 짚어나가던 언론들은 몇 가지 의혹을 제기했다. 이 경고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믿을 만하고 유효하냐 하는 점이다.
첫째, ‘왜 지금이냐’는 물음이다. 진짜 그만한 정보를 입수해서 발표한 것인지, 아니면 정치적 또는 다른 이유가 있느냐는 질문이다. 정보 당국자도 ‘새로운’ 정보가 7월 체포한 알 카에다 조직원인 파키스탄 출신 컴퓨터 엔지니어에게서 나왔고, 정보의 대부분은 오래됐거나 심지어 9·11 이전에 만들어진 것이란 점을 시인했다. 새로운 테러에 관한 시간표는 밝혀진 내용이 전혀 없다. 언론들은 파키스탄인의 컴퓨터에서 발견된 정보가 대부분 금융기관 소개 책자에 나와 있는 공개된 자료라고 지적하고 있다. 미국 내 다양한 목표물들의 사진과 그림, 설계도 등을 포함한 수백장의 영상들이며 어떤 특정한 음모나 시간에 관한 정보를 보여주는 자료는 없었다는 것. 테러 경고 강화에 맞춰 “검거 선풍이 불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고, 실제로 곧바로 미국과 세계 곳곳에서 아랍인을 포함한 테러 관련자 체포 소식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 나왔다가 탈락한 딘 전 주지사는 “테러 경보 수준을 격상하는 방안을 승인한 부시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도모하고 있었다는 충분한 증거가 있다”고 공격했다. 특히 7월에 체포한 파키스탄인한테서 정보를 얻는 데 3주일이나 걸렸다면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며, 민주당이 대통령후보를 선정하는 잔치인 전당대회 직후에 경고를 내보낸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부시 정부가 일을 못하거나 정치놀음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반면 존 케리 민주당 대통령후보는 안보 부분에서 부시 대통령에게 밀린다는 평가를 의식한 탓인지 테러 경고에 대한 직설적인 비판을 삼가고 있다.
9·11 테러 직후 화염과 재로 휩싸인 뉴욕의 시내 광경.
두 번째 논란은 경고 시스템의 효과에 관해서다. 옹호론을 펴고 있는 안보전문가 하버드대학의 줄리엣 카엠 교수는 “지금까지의 테러 경고 시스템은 실패였으며 테러 대상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를 내놓은 이번의 경고는 제대로 된 것”이라며 칭찬하고 있다. 테러리스트들에게 “당신들의 계획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냄으로써 최소한 테러 공격을 연기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 선거 앞두고 논란 계속될 듯
그러나 비판하는 사람이 더 많다. 먼저 “경고를 언제까지 써먹을 것인가” 하는 지적이다. 컨설팅회사 조국 안보 어소시에이츠의 랜달 라슨 대표는 “안보를 위한 각종 방안에 대해 시민들이 당장 오늘은 불평하지 않겠지만 금요일엔 어떻게 되고 다음 금요일엔 또 어떻게 될까”라고 반문했다. 정부의 테러 경고가 우화에 나오는 양치기 소년의 ‘늑대가 나타났다’는 외침처럼 된다면 국민들은 피로만 느낄 것이라는 주장이 공개적으로 나오고 있다. 정부가 워싱턴과 뉴욕 금융기관들에 대한 테러 경보를 격상하면서 취한 조치는 이들 기관과 주변 도로에 대한 보안조치뿐이며, 이와 동시에 일반 국민들에게는 “일상생활을 유지하라”고 말하는 것은 “겁이나 먹어라”는 의미가 아니겠느냐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사설에서 “현재 테러경보체제는 국민들에게 ‘겁먹어라’ ‘더 겁먹어라’ ‘정말 겁먹어라’고 하면서 동시에 아무 문제도 없는 것처럼 행동하라고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는 국토안보부와 정보 및 사법 당국 관계자들이 테러 위협 정도를 설명하면서 표현이 날마다 달라지기 때문에 국민들이 처음엔 겁먹었다가 다음날엔 냉소적이 됐다가 다다음날엔 황당해지는 등 혼란을 겪는다고 비판했다.
테러 경보의 효과에 관한 논란 중 하나는 신뢰할 만한 정보를 입수했다면 대중에게 공개하는 수밖에 없겠지만, 때로는 불필요하게 널리 공개해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지역별로 테러 공격 가능성을 적시하는 대신 특정 건물을 지목함으로써 건물 입주자들에게 지나친 우려를 심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충격심리요법 전문가인 로버트 버터워스는 “테러 경보 시스템이 기대적 초조감을 초래한다”고 말했다. 어떤 일이 일어나기 한참 전부터 일반 대중이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만일 은행 강도 첩보를 입수했다면 당국에선 그에 대비해 주의를 기울이면 되지 세상에 알릴 필요는 없다”면서 “테러 공격이 대규모 생화학이나 핵무기가 포함된 것이 아니라면 마찬가지”라는 견해를 밝혔다.
또 하나의 부작용은 테러리스트들에게 대응 능력을 공개하게 된다는 점. 정보를 공개하다 보면 미국 당국이 얼마나 파악하고 있는지를 만천하에 알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또 알 카에다 핵심 조직원 가운데 누가 체포돼서 어디까지 털어놓았는지도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반대로 알 카에다가 거짓 정보를 흘려 미국을 혼란스럽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 전문가는 “지금 모두가 트럭 폭탄, 차량 폭탄, 자살테러만 염두에 두고 있는데 그러다가 전혀 다른 방법이 동원되면 어떻게 하느냐”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