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8월20일 최초로 비행을 시도한 T-50 시제 1호기.
6월18일 감사원이 T-50 고등훈련기 사업의 예산 낭비를 지적하며 관련자 처벌을 요구한 데 대해 T-50의 주계약 업체인 KAI(한국항공우주)와 공군, 국방부가 강력히 반발한 이유는 국익에 대한 해석 차이 때문이었다.
1992년 세계 최초로 초음속 고등훈련기를 개발한다는 목표로 한국과 미국이 공동개발에 나선 T-50 사업은 2002년 시제 1호기를 제작하면서 목표의 95% 정도를 달성했다. 그 후 6대의 시제기를 제작해 가장 어렵다고 하는 ‘마지막 5%’를 채워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2003년 8월20일 시제 1호기가 초음속 비행에 성공해 목표의 99%를 채우는 쾌거를 이뤘다. 이로써 한국은 세계에서 12번째로 초음속 항공기 개발국이 됐다. 그리고 올해 말까지 나머지 1%를 채우는 시험을 완료하고, 내년부터는 94대를 제작해 한국 공군에 납품하게 돼 있다.
T-50은 국내외로부터 “성공했다”는 찬사를 받았다. 예산 낭비를 지적한 감사원조차도 보도자료에서 “성공한 사업이다”라고 평가할 정도로 T-50 사업은 성공적이었다. T-50이 안고 있는 유일한 약점은 ‘호크’와 같은 일반 고등훈련기에 비해 값이 너무 비싸다는 점. 세계 항공업계는 초음속이라는 이점을 안고 있는 T-50이 이 약점을 얼마나 돌파해낼까에 주목하고 있다.
‘일부 외상안’ 채택 후 사업 추진 화근
그러면 ‘성공한’ T-50이 예산낭비 시비를 일으킨 원인은 무엇일까. 시비의 단초는 KAI의 파트너인 미국 록히드마틴(이하 록히드) 공장에 주재관으로 파견돼 록히드가 약속한 대로 T-50 부품을 제작하는지를 살펴온 이모 공군 중령(6월말 전역)이 제공했다. 이중령은 지난해 10월 부패방지위원회(이하 부방위)에 ‘T-50 주익 납품권을 가져오는 과정에서 한국은 록히드에 너무 많은 돈을 지불했다’는 내용의 투서를 냈는데, 조사권이 없는 부방위가 이를 감사원으로 넘기면서 지금의 사태로 번졌다.
한국은 왜 T-50의 주익 납품권을 가져왔을까. 이 문제를 살펴보려면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공군은 FX(Fighter Experi-mental·차세대 전투기 사업)를 준비하면서 동시에 92년 결정된 KFP(Korea Fighter Program·한국형 전투기 사업)에 따라 T-50 사업도 벌여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었다. FX가 하고 싶다는 ‘의지’가 투영된 사업이라면, T-50은 해야만 하는 ‘의무’적 성격의 사업이었다. 그러나 공군은 FX와 T-50을 동시에 추진할 정도로 돈이 많지 않아, ‘의지’냐 ‘의무’냐를 놓고 고민하다 결국 ‘의지’ 쪽으로 기울었다.
이에 따라 공군과 국방부는 T-50 사업에 투입될 돈의 30%를 업체에 부과시킨 후 T-50이 개발될 때 이를 보전해준다는 ‘일부 외상안’을 채택했다. 기업체에 개발비의 일부를 전가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지만, 일감이 필요했던 KAI와 록히드는 각각 17%와 13%를 부담하기로 하고 사업을 맡았다.
록히드는 대신 “T-50 개발이 끝나 양산에 들어가면 일감의 20%을 달라”고 요구했다. 전체 일감의 20%에 해당하는 부품이 주익이었으므로 국방부와 공군은 록히드에 주익 개발과 함께 생산권을 주기로 약속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2002년 시제 1호기가 만들어졌는데, 이때 T-50의 가격이 일반 고등훈련기보다 상당히 높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이로써 T-50을 수출해야 하는 KAI는 물론이고 T-50을 납품받아야 하는 공군과 국방부도 T-50의 가격을 낮추는 방안을 모색하게 되었다.
KAI 창원공장 전경. KAI는 T-50 주익 납품권을 가져옴으로써 T-50의 가격을 낮추었다.
13%가 외상이긴 했지만 T-50 개발비를 한국 정부가 전부 부담했기 때문에 록히드가 개발한 주익의 지적재산권은 한국에 있었다. 이에 따라 공군은 KAI에게 록히드와 협상할 것을 지시했고, 몇 차례 협상을 통해 공군과 KAI의 의도를 파악한 록히드는 “주익을 생산할 경우 예상 수익이 1억1000만 달러였으니, 이 돈을 준다면 주익 생산권을 한국에 넘기겠다”고 제안했다.
KAI는 이 제안에 대해 “록히드 측이 받아야 할 돈은 3100만 달러가 적정한 것 같다”고 주장해 록히드 측이 요구한 가격을 8500만 달러까지 깎았다. 그리고 지난해 말 공군이 직접 록히드와 협상에 나서 다시 8000만 달러로 낮추었다. 이로써 주익 생산권은 KAI로 넘어와 T-50의 원가는 더욱 싸질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시기 록히드 공장에 주재관으로 가 있던 이중령은 생각이 달랐다. 그는 ‘한국이 3100만 달러까지 낮췄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 국익에 손해를 보았다’고 생각해 부방위에 투서를 보낸 것.
투서한 이중령 “주익 생산권 협상 잘못”
이 투서가 감사원에 이첩된 뒤 감사원은 국익을 또 다른 관점에서 이해했다. 조사를 맡은 감사원 행정안보감사국 제4과(이하 4과)는 “8000만 달러가 록히드와의 계약 파기로 준 돈인 만큼 위약금 내지 손해배상금으로 보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국방부령(令)인 ‘방산물자원가계산에 관한 규칙’ 제2항 6조 등에는 무엇이 방산물자의 원가인지가 정리돼 있는데, ‘위약금이나 손해배상금은 원가에 포함될 수 있다’는 내용은 없다. 4과는 이 조항을 근거로 “KAI와 공군은 T-50의 가격을 결정할 때 8000만 달러를 제외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방산물자의 원가는 면세가 되나 원가가 아니면 세금을 내야 한다. 이어 4과는 “록히드 처지에서 이 돈은 기타수익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법인세법 제92조 등에는 ‘외국 기업이 한국에서 기타소득을 올릴 경우, 외국 기업에 기타소득을 제공한 기관이나 업체는 30%가량의 세금을 원천징수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이를 근거로 4과는 KAI의 관할 세무서에 “30%의 세금을 포함한 3000만 달러를 징수하라”고 통보했다. 감사원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하는 것이 공정한 법 집행을 통해 국익을 지키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감사원의 이러한 결정에 대해 KAI와 공군, 국방부가 뒤집어진 것은 불문가지. 이들은 “8000만 달러가 원가가 아니라니, 무슨 소리인가. 록히드가 이 돈을 받지 않고 주익을 제작한다면 T-50의 가격은 더 올라갔을 것이다. 투서를 보낸 이중령조차도 3100만 달러는 록히드에 줄 수밖에 없다고 보았는데, 왜 감사원은 한푼도 주지 말아야 한다고 판단했는가”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특히 KAI 측은 “주익 제조기술에 대한 지적소유권은 한국 정부에 있는데, 한국 정부가 이 기술을 한국으로 가져오기 위해 8000만 달러를 지불했다면 당연히 이 돈은 원가에 포함돼야 한다. 감사원은 하위령에 근거해 상위법인 방산특조법 정신에 어긋나는 결정을 내렸다. 감사원의 결정은 과연 국익에 도움이 되는 것인가”라며 항의하고 있다.
감사원과 이중령, 그리고 KAI와 공군·국방부 가운데 어느 쪽의 시각이 국익에 더 부합할까. 국내외에서 “성공했다”는 찬사를 받아온 T-50 사업은 본격적인 출격(양산)을 앞두고 국익 논쟁에 휘말려 마지막 성능 테스트를 받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