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의 중심에 선 서울남부지법 형사6단독 이정렬 판사.
해마다 20만명이 넘는 젊은이가 헌법에 명시된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나라에서 700명 정도에 지나지 않은 소수의 목소리를 정식으로 인정한 이번 판결은 적잖은 논란의 여지를 안고 있다. 그런데 논란이 ‘양심의 범위’나 ‘대체입법 방안’으로 향하지 않고 엉뚱한 곳으로 번지기 시작한 것. 판결을 내린 이판사가 진보적 법조인들의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소속이기 때문이다.
1988년 창립된 우리법연구회는 현재 100여명의 법관과 20여명의 변호사를 회원으로 한 순수 학술단체다. 이판사는 지난 4월 우리법학회가 발행하는 학술지에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해 무죄를 주장하는 논문을 제출하기도 했고, 그 논고는 세미나에 참석한 대다수의 회원들에 의해 회의적인 반응을 얻은 적도 있다.
그러나 일부 법조계와 언론은 “우리법연구회 소속 판사들이 조직적으로 대법원과 헌재의 판단에 대항하면서 이념논쟁을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식의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이는 우리법연구회 출신인 강금실 법무부 장관과 지난번 대법관 제청 당시 대법원의 태도에 항의하며 사퇴한 박시환 변호사로 대표되는 법조계 신주류에 대한 불쾌감으로 보인다. 더구나 사법개혁추진기구 실무협의회 위원인 이광범 법원행정처 송무국장(사시 23회)과 유승룡 법원행정처 사법제도연구관(32회), 박범계 전 대통령민정비서관(33회) 역시 이 모임 소속으로 우리법연구회는 사법개혁의 전도사로 부각됐다.
소속 회원들은 이 같은 시선에 대해 “판사 사회에 존재하는 십수 개의 연구모임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반박하면서도 몹시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우리법연구회는 지난해 강장관의 등장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자 자체 홈페이지까지 폐쇄해가며 ‘판사들의 이너서클’이란 시선을 피하려고 노력해왔다. 그러나 대다수 회원들은 일부의 편견이 부담스럽지만 어차피 거쳐야 할 판결이라는 분위기다.
“판사는 법과 양심에 의해 재판합니다. 법 해석은 시대에 따라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젊은 판사들의 대법원 판례를 ‘치받는’ 판결이 많을수록 우리 사회가 더욱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서울 행정법원 이용구 판사)
판결 직후 이판사는 “양심의 자유는 천부인권이며 이제는 우리 사회의 수준도 이런 판결을 용인할 만큼 성숙됐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과연 그의 의도대로 이번 판결이 법조계의 세력대결로 번지지 않고 건강한 토론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관심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