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독립의 아버지 간디는 어려서부터 모든 육류 음식을 먹지 않도록 교육받았다. 그런데 비힌두교도인 친구들에게 설득당했는지 한번은 영국 지배자들처럼 몸을 강건하게 하기 위해 고기 먹기를 시도한 적이 있다. 간디는 그때 일을 이렇게 회고했다.
“차츰 육식이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육식을 하면 나도 강하고 용감해질 것 같았다. 만약 온 나라가 모두 육식을 하게 된다면 영국인들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강가의 호젓한 곳을 찾았고, 거기서 나는 생전 처음으로 고기를 맛보았다. 그 음식들은 내 입맛에 전혀 맞지 않았다. 구역질이 났고 그날 밤은 지독하게 괴로웠다.”
간디처럼 힌두교도들은 대부분 채식주의자들이지만, 전사 계급인 크샤트리아들은 육식을 해도 신분에 손상을 입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신체적 힘과 군사적 용감성을 기르는 데 육식이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육식의 터부(taboo)에 대한 대조적인 일화는 인류사회의 다양한 문화만큼이나 많다. 우리나라에는 개고기를 즐겨 먹는 이들이 많지만 구미에서는 이를 금기시한다. 한 프랑스 여배우가 한국의 개고기 식용을 비난해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과연 유럽에서는 식용하지 않았을까. 놀랍게도 스위스와 독일에서도 20세기 초까지 개고기가 식용됐다. 어쨌든 국경만 넘어서면 너무나 이질적인 이런 음식문화는 당혹감을 던져준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육류를 찾는 이유를 영양학적인 면과 경제적인 측면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개고기 못지않게 뱀과 지렁이도 단백질이 풍부하다며 먹기를 권할 수 있을까. 구하기 힘든 곰 발바닥이나 제빗집 요리, 상어 지느러미 수프는 경제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마사이족 전사의 이상적인 식단은 고기와 우유, 피밖에 없다. 그러나 결코 고기와 우유를 같이 먹지 않는다. 에스키모들은 해산물과 육지에서 나는 음식 재료를 섞지 않는다. 브라질 남비콰라 인디언들은 식용 가능한 가축을 많이 기르지만 이 가축들은 오직 애완동물일 뿐이다. 그들은 가축과 음식을 나눠먹고 함께 놀고 이야기하지만 자신들이 기르는 닭이 낳은 달걀조차 먹지 않는다. 매년 기근으로 수많은 사람이 굶어죽지만 인도에서는 소를 잡아먹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최근 나온 ‘이 고기는 먹지 마라?’(프레데릭 시문스 지음)는 이런 육식 터부의 문화사를 면밀하고 흥미롭게 서술하고 있다. 문화지리학자이자 미국 텍사스 오스틴대 지리학 부교수인 시문스는 1950년대 에티오피아,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등지를 여행한 뒤 ‘이 고기는 먹지 마라?’를 펴냈고, 94년 개정판을 냈다.
개정판의 번역본인 이 책에서 그는 돼지고기, 쇠고기, 닭고기와 달걀, 말고기, 낙타고기, 생선 등을 중심으로 음식 기피 현상과 그 기원, 확산과정 등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음식의 금기는 단일한 이유로 설명될 수 없다. 경제 환경 종교 관습 신분 제도 전통 등 여러 요인이 뒤섞여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세계관의 표현이기도 하다.
돼지고기의 경우 특히 이슬람 지역에서 기피돼왔다. 그러나 종교적 이유에서만은 아니었다. 돼지고기 기피 현상은 이슬람교가 발흥하기 전부터 있어왔고, 현대의 일부 비이슬람 집단에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이집트인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는데 이는 이집트신화에서 비롯된다. 매의 모습을 한 고대 이집트 주신 호루스가 돼지로 변한 세트(이집트신화에 나오는 암흑신 게브와 누트의 아들) 때문에 눈을 다친 일화가 있다. 세트는 멸시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그를 상징하는 돼지 또한 낮은 지위를 갖게 됐던 것이다. 돼지고기 터부의 원인은 이처럼 종교적인 문제뿐 아니라 위생·경제·환경·생태적 가설 등 다양한 뿌리를 두고 있다.
쇠고기 거부의 중심지는 인도다. 이는 인도의 자연환경이나 경제적, 종교적인 요인과 관련이 있다. 인도 고대 아리아인에게 소는 우유와 고기의 공급원이었고, 수레를 끄는 데 필요해 부의 척도로 여겨지기도 했다. 이들에게 전투를 뜻하는 단어는 ‘소를 얻기 위한 투쟁’이란 말과 같았다.
자이나교와 불교 문헌에서 불살생 개념이 처음 나오는 것은 기원전 6세기. 본격적으로 불살생 개념이 시작된 것은 서력 기원이 시작될 무렵이다. 4세기 무렵에는 암소를 죽이면 사형을 당할 정도로 엄격해졌다. 1670년에는 인도의 서부 해안에 있는 호노레의 한 유럽무역센터에서 불독이 암소를 죽이자 성난 군중이 그곳 유럽인들을 모두 살해한 사건이 일어났다. 암소에 대한 신성 불가침의 전통이 힌두교도의 마음속에 너무도 뿌리 깊게 박혀 인도는 독립하자마자 헌법에 ‘암소에 대한 보호와 암소 도살 금지령’을 포함시켰을 정도다.
저자의 결론은 간명하다. 음식문화는 상대적으로 이해되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 그래서 편견을 걷고 개방적인 태도로 이국의 문화를 살펴보자는 것이다. 육류 요리책인 ‘차마 말할 수 없는 요리법’에 나오듯 다양한 음식들이 소비된다면 음식 복지는 더 개선되고 요리에서 얻는 즐거움도 더 커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김병화 옮김/ 돌베개 펴냄/ 660쪽/ 2만8000원
“차츰 육식이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육식을 하면 나도 강하고 용감해질 것 같았다. 만약 온 나라가 모두 육식을 하게 된다면 영국인들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강가의 호젓한 곳을 찾았고, 거기서 나는 생전 처음으로 고기를 맛보았다. 그 음식들은 내 입맛에 전혀 맞지 않았다. 구역질이 났고 그날 밤은 지독하게 괴로웠다.”
간디처럼 힌두교도들은 대부분 채식주의자들이지만, 전사 계급인 크샤트리아들은 육식을 해도 신분에 손상을 입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신체적 힘과 군사적 용감성을 기르는 데 육식이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육식의 터부(taboo)에 대한 대조적인 일화는 인류사회의 다양한 문화만큼이나 많다. 우리나라에는 개고기를 즐겨 먹는 이들이 많지만 구미에서는 이를 금기시한다. 한 프랑스 여배우가 한국의 개고기 식용을 비난해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과연 유럽에서는 식용하지 않았을까. 놀랍게도 스위스와 독일에서도 20세기 초까지 개고기가 식용됐다. 어쨌든 국경만 넘어서면 너무나 이질적인 이런 음식문화는 당혹감을 던져준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육류를 찾는 이유를 영양학적인 면과 경제적인 측면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개고기 못지않게 뱀과 지렁이도 단백질이 풍부하다며 먹기를 권할 수 있을까. 구하기 힘든 곰 발바닥이나 제빗집 요리, 상어 지느러미 수프는 경제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마사이족 전사의 이상적인 식단은 고기와 우유, 피밖에 없다. 그러나 결코 고기와 우유를 같이 먹지 않는다. 에스키모들은 해산물과 육지에서 나는 음식 재료를 섞지 않는다. 브라질 남비콰라 인디언들은 식용 가능한 가축을 많이 기르지만 이 가축들은 오직 애완동물일 뿐이다. 그들은 가축과 음식을 나눠먹고 함께 놀고 이야기하지만 자신들이 기르는 닭이 낳은 달걀조차 먹지 않는다. 매년 기근으로 수많은 사람이 굶어죽지만 인도에서는 소를 잡아먹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최근 나온 ‘이 고기는 먹지 마라?’(프레데릭 시문스 지음)는 이런 육식 터부의 문화사를 면밀하고 흥미롭게 서술하고 있다. 문화지리학자이자 미국 텍사스 오스틴대 지리학 부교수인 시문스는 1950년대 에티오피아,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등지를 여행한 뒤 ‘이 고기는 먹지 마라?’를 펴냈고, 94년 개정판을 냈다.
개정판의 번역본인 이 책에서 그는 돼지고기, 쇠고기, 닭고기와 달걀, 말고기, 낙타고기, 생선 등을 중심으로 음식 기피 현상과 그 기원, 확산과정 등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음식의 금기는 단일한 이유로 설명될 수 없다. 경제 환경 종교 관습 신분 제도 전통 등 여러 요인이 뒤섞여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세계관의 표현이기도 하다.
돼지고기의 경우 특히 이슬람 지역에서 기피돼왔다. 그러나 종교적 이유에서만은 아니었다. 돼지고기 기피 현상은 이슬람교가 발흥하기 전부터 있어왔고, 현대의 일부 비이슬람 집단에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이집트인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는데 이는 이집트신화에서 비롯된다. 매의 모습을 한 고대 이집트 주신 호루스가 돼지로 변한 세트(이집트신화에 나오는 암흑신 게브와 누트의 아들) 때문에 눈을 다친 일화가 있다. 세트는 멸시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그를 상징하는 돼지 또한 낮은 지위를 갖게 됐던 것이다. 돼지고기 터부의 원인은 이처럼 종교적인 문제뿐 아니라 위생·경제·환경·생태적 가설 등 다양한 뿌리를 두고 있다.
쇠고기 거부의 중심지는 인도다. 이는 인도의 자연환경이나 경제적, 종교적인 요인과 관련이 있다. 인도 고대 아리아인에게 소는 우유와 고기의 공급원이었고, 수레를 끄는 데 필요해 부의 척도로 여겨지기도 했다. 이들에게 전투를 뜻하는 단어는 ‘소를 얻기 위한 투쟁’이란 말과 같았다.
자이나교와 불교 문헌에서 불살생 개념이 처음 나오는 것은 기원전 6세기. 본격적으로 불살생 개념이 시작된 것은 서력 기원이 시작될 무렵이다. 4세기 무렵에는 암소를 죽이면 사형을 당할 정도로 엄격해졌다. 1670년에는 인도의 서부 해안에 있는 호노레의 한 유럽무역센터에서 불독이 암소를 죽이자 성난 군중이 그곳 유럽인들을 모두 살해한 사건이 일어났다. 암소에 대한 신성 불가침의 전통이 힌두교도의 마음속에 너무도 뿌리 깊게 박혀 인도는 독립하자마자 헌법에 ‘암소에 대한 보호와 암소 도살 금지령’을 포함시켰을 정도다.
저자의 결론은 간명하다. 음식문화는 상대적으로 이해되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 그래서 편견을 걷고 개방적인 태도로 이국의 문화를 살펴보자는 것이다. 육류 요리책인 ‘차마 말할 수 없는 요리법’에 나오듯 다양한 음식들이 소비된다면 음식 복지는 더 개선되고 요리에서 얻는 즐거움도 더 커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김병화 옮김/ 돌베개 펴냄/ 660쪽/ 2만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