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김선주 18세, 권혜진 18세’(왼쪽)와 한 소녀를 두 각도에서 찍은 작품‘윤진선 18세’.
그런데 열여섯 여고생은 보통 여고생이 아니고, 사진을 찍는 사람도 친구나 동네 사진관 아저씨가 아니다. 이 지점에서 미묘한 공기가 흐른다. 여고생은 연기자를 꿈꾸며 현재 연기학원에 다니고 있고, 사진을 찍는 사람은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스캔들’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등 한국 영화 포스터를 도맡은 제법 유명한 사진작가다.
여고생은 잘 안다. 왁자한 웃음은 금물이다. 또 교복차림으로 에로 배우처럼 섹시한 표정을 짓는 것도 어울리지 않는다. 이영애 전도연처럼 청순하고, 순수하게. 한마디로 여고생‘답게’. 소녀는 연기한다.
‘소녀연기’전의 여고생 70명, 60여 점 사진들은 그렇게 찍은 것이다. 소녀들의 모습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사진을 찍는 사건이 벌어지는 순간, 카메라에 대한 소녀들의 반응’이 ‘소녀연기’다. 여고생들은 각자 이름표까지 붙이고 있지만, 반복되는 소녀들의 얼굴은 ‘여고생’의 역할(role play)을 표현한 일종의 추상화 같다. 줄지어 늘어선 기둥처럼 사진을 전시해 그 효과는 강화된다.
사진작가 오형근(40)은 인물 사진에 애정을 갖고 있다. 그의 능력은 그 인물에 가장 어울리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주변 설명이 필요하면 심도 깊은 사진 배경에 거리, 간판, 건물과 행인을 담아낸다. 반대로 정면에 노골적인 플래시를 터뜨려 표정과 시선만으로 전형성을 찾아내기도 한다. 그는 이번에 “소녀들의 여린 피부를 가장 부드럽게 보여주는 중간톤 흑백 사진을 썼다”고 말한다.
소녀들 모습 담은 60여점 전시
그가 유명해진 것은 아무래도 ‘아줌마’전(1999·아트선재센터)에서 선보인 다수의 아줌마 사진 덕분일 것이다. 그는 번들거리는 피부에 파마머리, 붉은 립스틱과 진주목걸이 등을 한 아줌마들의 근접 사진을 통해 한국 아줌마들의 전형성을 제시했다. ‘아줌마’전은 ‘아줌마’ 담론을 이끌어냈고, ‘아줌마는 나라의 기둥’이라는 단체도 생겼다. 그 대가로 그는 화가 난 아줌마들을 달래느라 혼줄이 났다. 그는 이번에도 여고생 신드롬이 생길까 걱정한다.
“사실 교복에 대한 관음적이고 성적인 시선이 있습니다. 그래서 원조교제 여고생 기사에 이 사진을 붙여놓고 한국 여고생의 전형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소녀와 여성 사이를 오가는 순간순간들, 여고생들이 사진 혹은 미디어에 내놓고 싶어하는 자신들의 ‘전면’을 보여주자는 게 이들을 촬영한 의도입니다.”
정예지 17세.
이 모습이 소녀들의 정체성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자세히 보면, 이들은 교복 치마의 길이를 줄이고, 상의의 허리선을 팠으며(이건 기본이다), 눈썹을 다듬었고, 입술엔 광택 나는 립글로스를 발랐다. 어색한 듯 살짝 돌린 허리, 가방 끈 혹은 허리에 올린 손, 나르시시즘을 담은 시선 등은 이미 이들이 다양한 매체들이 생산해내는 10대 여성의 매혹적인 이미지를 알고 있으며 거울을 보고 수없이 연습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들은 눈치 빠르게 이번에 맡은 역이 ‘평범한 소녀’임을 깨닫고 카메라의 의도에 충실하고자 최선을 다한다.
이번 전시는 이들의 몸에 얇게 입혀진 ‘소녀’를 박피하여 채집한 것이다. ‘여고생 과(科) 소녀 종(種)’이랄까.
결국 소녀들의 정체성은 ‘여성의 삶에서 정체성을 갖지 않은 순간’이다. 숨길 수 없는 삶의 문신이 그려진 아줌마들과 비교하면 이 점은 더욱 분명하다. 소녀들은 어린이, 여성, 순진함과 관능, 억압과 터질 듯한 욕망 사이를 불안정하게 오간다. 작가는 소중한 기념 액자처럼 생긴 원과 타원형 마진 안에 이들의 초상들을 담는다.
연한 피부를 가진 소녀의 몸을, 곧 사라질, 모든 가능성을 가진 시간으로 치환하는 것, 그것이 오형근의 이번 프로젝트다.
5월2일까지, 일민미술관(02-2020-20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