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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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없던 시절 어떻게 살았지

인터넷 상용화 10년 현실과 과제 … 외형적 수치론 강국, 이제는 내실 다져 열매 거둬야

  • 김용섭/ 디지털칼럼니스트 www.webmedia.pe.kr

    입력2004-03-18 14: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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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없던 시절 어떻게 살았지
    한국에서 인터넷이 상용화한 지 올해로 10년이 됐다. 코넷(KORNET), 데이콤인터넷(DACOM Internet), 아이네트(INET)가 미국에 전용선을 설치하고 상업서비스를 시작한 게 1994년이다. 인터넷이 우리 삶에 들어온 지가 10년밖에 안 되느냐고 반문하는 독자들도 있을 듯하다. 그만큼 인터넷은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왔고, 자연스럽게 삶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는 어떻게 살았을까’라고 과거를 떠올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10년 동안 인터넷이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끼친 영향은 더없이 크다. 물론 앞으로도 그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고민해야 할 부분이 있다. 생산적인 인터넷 문화가 아직도 부족하다는 게 그것이다. 한국이 인터넷 사용자 수나 인터넷 접속률에서 세계적 수준임은 틀림없지만, 인터넷 문화 수준은 아직도 많이 뒤떨어져 있다.

    온·오프라인 구분 자체 모호

    인터넷이 상용화한 후 10년 동안 우리는 엄청나게 많은 변화를 피부로 느껴왔다. 그 변화가 너무 가팔라 당혹스러울 때도 있었고, 이젠 인터넷 없이는 생활도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가 됐다. 인터넷 사용자가 3000만명에 이르러 10년 전에 비하면 300배나 증가했다. 양적인 팽창이야말로 인터넷의 속도만큼이나 빨랐던 셈이다. 모뎀에서 Kb를 다투던 속도가 ISDN을 거쳐 초고속인터넷으로 넘어오면서 Mb를 넘어선 지도 이미 오래다. 하물며 무선인터넷에서도 Mb의 속도를 구현하고 있을 정도다.

    인터넷 상용화 10년이 가져온 변화는 무척이나 많다. 인터넷은 언론매체로서도 영향력 있는 채널로 발돋움했으며, 인터넷을 이용한 IT(정보기술)산업은 수백만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었다. 닷컴 열풍이 불었을 때는 골드러시가 일어나기도 했으며, 지난 대통령선거에선 인터넷이 정치세력화의 한 축으로 영향력을 발휘했고, 이번 국회의원 총선에서도 영향력 있는 선거운동 수단이자 매체로서 이미 선거에 개입한 상태다.



    인터넷은 또 사람들간의 커뮤니케이션 문화를 바꾸었고, 온라인 커뮤니티를 활성화해 사이버 커뮤니티 문화를 만들었다. 외계어·얼짱 등의 인터넷문화는 온라인에서 그치지 않고, 오프라인에서도 문화적 영향력을 나타냈으며, 요사이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구분 자체가 모호해지고 있다.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게임과 음란물에 열광하고, 수많은 인터넷 폐인(廢人)이 만들어졌으며, 무수한 쓰레기 정보가 난립했다. 세계적 수준의 인터넷 사용자 수에 걸맞게 수많은 인터넷 중독자와 디지털 폐인, 디지털 레밍스(Digital Lemmings·맹목적이고 추정적인 경향의 인간형)를 양산한 것. 사이버섹스와 음란물이 온라인을 뒤덮고, 인터넷 바이러스가 빠르게 창궐하고, 사이버테러와 각종 인터넷 범죄가 숨쉴 틈 없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기도 하다.

    10년이란 시간이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인터넷 문화를 만들어내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다가오는 10년은 양적 확산보다 질적 확산에 좀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터넷 없던 시절 어떻게 살았지

    무선인터넷 기능을 갖춘 피아트의 차량 내부(위)와 SK텔레콤의 휴대인터넷.

    인터넷 상용화 10년 동안 한국의 경쟁력은 얼마나 높아졌는가? 겉으로 드러나는 수치로는 인터넷 강국으로 보여지긴 한다. 하지만 한국이 인터넷 강국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온라인게임을 비롯한 몇몇 산업을 제외하면 기실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분야가 거의 없다. 그나마 게임산업도 어느새 다른 나라들의 견제를 받고 있으며, 추월당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빠른 디지털 실험집단인 것은 분명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초고속인터넷 인프라를 가지고 있는 것도 자명하며, 인터넷 사용 인구비율 또한 세계 최고 수준임은 틀림없다. 그렇다면 과연 누구를 위한 디지털 실험집단인가? 외국 유수기업들이 한국을 디지털 기술의 실험장으로 이용하고 있는 데 반해 한국의 디지털 산업 경쟁력은 어떠한가?

    네티즌 다섯 중 하나가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라고 할 정도이지만, 얼리 어답터가 많다는 사실만으로 우리가 앞서간다고 장담할 순 없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누가 챙기는 상황은 피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면 진정으로 우리가 다음 10년에 이뤄야 할 것은 무엇일까? 먼저 인터넷 인프라에서의 경쟁력을 콘텐츠와 비즈니스에서의 경쟁력으로 이동시키는 것이 과제다. 그리고 소모적이고 소비적인 인터넷 문화에서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인터넷 문화로 흐름이 바뀔 수 있도록 토양을 건실히 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한국이 지난 10년 동안 보여준 저력은 다음 10년의 밑거름이 돼야 한다. 또 세계 최고 수준의 디지털 강국이자 인터넷산업 선진국이라는 실질적인 결과가 나타나야 한다. 10년 동안 인프라를 닦아왔다면, 앞으로는 콘텐츠를 가지고 도약해야 한다. 인터넷 선진국이 되어 세계 인터넷산업을 선도하는 것, 세계 인터넷 문화의 중심이 되어 디지털 트렌드를 이끄는 것도 실현해야 할 과제다.

    요컨대 지난 10년이 인터넷을 매개로 하는 산업의 씨를 뿌리는 과정이었다면, 다음 10년은 뿌린 씨앗을 열매로 거둬들이는 과정이 돼야 한다. 지난 10년간 보여준 세계적인 인터넷 인프라 수준에 자만하며 수치상으로만 떠드는 인터넷 선진국이 아니라, 실제로 사이버 시대를 주도할 수 있는 인터넷 선진국으로 거듭나야 한다. 우리가 인터넷 상용화 첫 10년간 빠른 인터넷 인프라의 확산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면, 맞이할 10년엔 반드시 콘텐츠와 인터넷문화, e비즈니스로 세계를 놀라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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