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22일은 동지(冬至)였다. 동지란 1년 365일 가운데 밤이 제일 긴 날이다. 당연히 낮은 가장 짧고, 이날 정오에 북쪽으로 떨어지는 해의 그림자는 가장 길다. 그래서 동양 사람들은 예로부터 이날을 한 해의 시작으로 삼으려 했다. 음양의 이치로 따지더라도 이날은 바로 음이 성(盛)하기를 다하여 드디어 양이 자라기 시작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천체운동을 계산하기 위해서는 해마다 동지의 순간을 정확하게 관측해야 했다. 그 관측 장치가 규표(圭表)였고, 조선 초기 세종 때 경회루 연못 북쪽에는 높이 10m의 규표가 세워져 있었는데, 그것은 구리(銅)로 만들었다 하여 동표(銅表)라 불렀다. 1442년(세종 24)에는 ‘칠정산(七政算)’이란 천체운동 계산방법을 완성하기에 이른다. 이 정도의 천문계산법을 완성한 민족은 그때까지는 중국과 아랍(사라센 제국)에 이어 조선이 세 번째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때부터 조선은 일식과 월식을 비롯해 모든 움직이는 천체 7개, 즉 7정 또는 7요(七曜)의 위치 계산을 정확하게 해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10m짜리 동표와 그밖의 여러 가지 천문기구들이 이를 위해 고안됐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이 가운데 어느 것도 필요하지 않은 시대로 접어들었다. 17세기 이후 서양 과학이 고속발전을 거듭하면서, 세상은 서양과학 일색이 됐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세종 때 만들어 사용하던 역법 대신 서양식 천문계산을 사용하고 서양식 달력을 쓰기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인 달력만 보더라도 우리는 이미 세종 때의 음력 대신 서양의 양력에 익숙해져 있다.
돌이켜보면 우리가 써온 음력은 그냥 ‘음력’이 아니라 원래가 ‘태음태양력(太陰太陽曆)’이다. 달의 운동으로 날자를 셈하지만, 그 속에 이미 태양 운동을 함께 섞어 만들었기 때문이다.
옛 음력에 들어 있는 24절기가 바로 태양 운동을 나타내고, 동지는 24절기의 시작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동지가 들어 있는 달의 초하루를 새해 첫날로 삼는 것이 이치에 맞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계산하면 새해 시작이 너무 빨라져 마땅치 못하다는 점이다. 마침 올해가 그 극단적인 경우다. 올해의 경우 동지(양력 12월22일)가 음력으로는 하필 동짓달의 마지막 날(음력 11월29일)이다. 동짓달의 첫날은 양력으로 지난 11월24일이었다. 그날을 설날로 한다면 얼마나 괴이한 일인가. 1월의 소한과 대한은 아직도 멀었으니, 추위는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새해가 시작되는 꼴이다.
그래서 역사가 시작되면서 동양에서는 새해 시작을 두 달쯤 뒤인‘입춘 정월’로 삼고, ‘동지 정월’을 작은 설날로 취급했다. 하지만 원칙대로 하자는 생각 역시 가끔씩 발동했나 보다. ‘삼국사기’에 보면 통일신라는 695년에 자월(子月)을 새해 시작으로 했다가 5년 뒤 700년에 인월(寅月)로 다시 돌아왔다는 기록이 있다. 자월이란 동짓달, 인월은 그 두 달 뒤를 뜻한다. 695년의 규정이 지금 살아 있다면, 우리는 올해 설날을 이미 한 달 전(11월 24일)에 보내고, 지금 2월에 접어들게 될 판이다. 선조들의 혜안이 고맙고 반갑게 느껴지는 것이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천체운동을 계산하기 위해서는 해마다 동지의 순간을 정확하게 관측해야 했다. 그 관측 장치가 규표(圭表)였고, 조선 초기 세종 때 경회루 연못 북쪽에는 높이 10m의 규표가 세워져 있었는데, 그것은 구리(銅)로 만들었다 하여 동표(銅表)라 불렀다. 1442년(세종 24)에는 ‘칠정산(七政算)’이란 천체운동 계산방법을 완성하기에 이른다. 이 정도의 천문계산법을 완성한 민족은 그때까지는 중국과 아랍(사라센 제국)에 이어 조선이 세 번째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때부터 조선은 일식과 월식을 비롯해 모든 움직이는 천체 7개, 즉 7정 또는 7요(七曜)의 위치 계산을 정확하게 해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10m짜리 동표와 그밖의 여러 가지 천문기구들이 이를 위해 고안됐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이 가운데 어느 것도 필요하지 않은 시대로 접어들었다. 17세기 이후 서양 과학이 고속발전을 거듭하면서, 세상은 서양과학 일색이 됐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세종 때 만들어 사용하던 역법 대신 서양식 천문계산을 사용하고 서양식 달력을 쓰기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인 달력만 보더라도 우리는 이미 세종 때의 음력 대신 서양의 양력에 익숙해져 있다.
돌이켜보면 우리가 써온 음력은 그냥 ‘음력’이 아니라 원래가 ‘태음태양력(太陰太陽曆)’이다. 달의 운동으로 날자를 셈하지만, 그 속에 이미 태양 운동을 함께 섞어 만들었기 때문이다.
옛 음력에 들어 있는 24절기가 바로 태양 운동을 나타내고, 동지는 24절기의 시작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동지가 들어 있는 달의 초하루를 새해 첫날로 삼는 것이 이치에 맞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계산하면 새해 시작이 너무 빨라져 마땅치 못하다는 점이다. 마침 올해가 그 극단적인 경우다. 올해의 경우 동지(양력 12월22일)가 음력으로는 하필 동짓달의 마지막 날(음력 11월29일)이다. 동짓달의 첫날은 양력으로 지난 11월24일이었다. 그날을 설날로 한다면 얼마나 괴이한 일인가. 1월의 소한과 대한은 아직도 멀었으니, 추위는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새해가 시작되는 꼴이다.
그래서 역사가 시작되면서 동양에서는 새해 시작을 두 달쯤 뒤인‘입춘 정월’로 삼고, ‘동지 정월’을 작은 설날로 취급했다. 하지만 원칙대로 하자는 생각 역시 가끔씩 발동했나 보다. ‘삼국사기’에 보면 통일신라는 695년에 자월(子月)을 새해 시작으로 했다가 5년 뒤 700년에 인월(寅月)로 다시 돌아왔다는 기록이 있다. 자월이란 동짓달, 인월은 그 두 달 뒤를 뜻한다. 695년의 규정이 지금 살아 있다면, 우리는 올해 설날을 이미 한 달 전(11월 24일)에 보내고, 지금 2월에 접어들게 될 판이다. 선조들의 혜안이 고맙고 반갑게 느껴지는 것이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