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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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앤문 매서운 칼끝 심상찮다

문병욱 회장 대선자금 제공 파문 확산 … 지난해 감세 로비 의혹도 휘발성 커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입력2003-12-11 11: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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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썬앤문 매서운 칼끝 심상찮다

    12월4일, 썬앤문그룹 문병욱 회장은 기자들에게 “대통령 후배라는 게 어려운 자리다”라는 말을 남기고 영등포구치소로 향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부산상고 후배인 호텔 재벌 썬앤문그룹 문병욱 회장을 둘러싼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그가 지난해 대선을 전후해 이광재 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과 한나라당 서청원 전 대표에게 각각 1억원과 2억원을 제공한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이 전 실장의 경우 오랫동안 노대통령 곁을 지켜온 최측근이고, 서 전 대표 역시 지난해 대선 때 한나라당에서 핵심 역할을 맡았다는 점에서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서는 정치권에 엄청난 파문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문회장은 또 로비스트인 김성래씨를 내세워 서울지방국세청이 지난해 3월 말부터 6월 말까지 실시한 특별세무조사와 관련해 감세를 위해 광범위한 로비를 한 의혹을 받고 있다. 문회장이 김씨를 썬앤문그룹 부회장으로 영입한 것도 감세 관련 로비가 성공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이와 관련,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이하 대검 중수부)는 지난해 썬앤문그룹에 대한 특별세무조사 당시 국세청 관계자와 김대중(DJ) 정부 시절 청와대 고위직을 역임한 정치권 인사 등이 개입한 정황을 일부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검 중수부는 문씨에 대한 수사를 통해 전·현 정권의 핵심인사들을 향해 칼끝을 겨누고 있는 셈이다.

    공교롭게도 문회장에 대한 수사를 담당하는 부서는 대검 중수부 산하 공적자금비리합동단속반(반장 김수남 부장검사·이하 공자금반). 공자금반은 올 4월 나라종금 퇴출 저지 로비 의혹 사건을 재수사해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한나라당이 제기한 의혹을 해소하기도 했다. 당시 공자금반은 한광옥 전 대통령비서실장을 비롯해 김대중 전 대통령 아들 김홍일 의원, 노무현 대통령 측근 안희정씨 등이 관련된 혐의를 확인하고 이들을 구속 또는 불구속했다.

    이광재 전 실장 구속 임박

    한나라당은 처음에 이 사건에 대해서도 특검을 실시해야 한다고 칼을 갈았다. 그러나 검찰이 전·현 정권의 핵심인사들을 사법처리하자 특검 관련 주장을 철회했다. 검찰은 대통령 측근비리 관련 특검이 국회를 통과하긴 했지만 특검팀이 발족할 때까지 문회장에 대한 수사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검찰 안팎에서는 검찰이 이 전 실장에 대한 특검 수사의 김을 빼려고 나라종금 특검을 ‘무산시킨’ 공자금반에 문회장 관련 재수사를 맡긴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12월8일, 대검 중수부가 문회장을 상대로 추궁한 끝에 “지난해 대선 전 이 전 실장에게 1억원을 직접 전달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후 계좌추적과 관련자 조사 등을 통해 문씨의 진술이 사실이라고 결론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대검 중수부가 문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에서 “지난해 대선 등과 관련해 여야 정치권에 금품을 제공한 의혹이 있고, 일부 ‘사실’로 확인됐다”고 밝힌 것은 이를 두고 하는 얘기라는 관측이다. 이 전 실장은 그동안 “특검이든 검찰이든 소환하면 떳떳이 조사받겠다. 나는 거리낄 게 없다”고 호언해왔다.

    썬앤문그룹측으로부터 2억원을 전달받았다는 의혹이 일고 있는 한나라당 서 전 대표의 경우 한때 문씨의 로비스트로 활동한 김성래씨가 모 제약회사 회장을 통해 정치자금을 전달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같은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서 전 대표가 “검찰이 확인되지도 않은 혐의 사실을 언론에 흘리고 있다”면서 강력히 반발하고 있어 검찰 수사 결과가 주목된다.

    이 전 실장과 서 전 대표에게는 혐의가 확인되면 구속영장이 발부되거나(이 전 실장)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될 가능성이 높다. 법원은 그동안 불법정치자금을 수수와 관련해서는 재판에서 벌금형을 선고하고, 피의자에 대해서도 구속보다는 불구속 재판을 받도록 하는 등 비교적 관대한 입장을 보여왔다. 그러나 두 사람의 경우 문회장이 조성한 ‘비자금’을 불법 정치자금으로 받은 경우여서 사법처리 강도가 높아질 가능성이 많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전망이다.

    썬앤문 매서운 칼끝 심상찮다

    이광재 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왼쪽). 썬앤문그룹이 소유하고 있는 뉴월드호텔 전경.

    문회장은 과거 노무현 후보 캠프 주변 인사들에게 경계 대상 1호로 꼽혔던 인물이다. 새천년민주당(이하 민주당) 관계자는 “지난해 대선 때 현재 대통령비서실에 근무하고 있는 노후보 캠프 인사들과 문회장이 술을 마시는 자리에 합석한 적이 있는데 문회장이 노후보와 굉장히 가까운 것처럼 말하는 등 ‘튀는’ 발언을 해 위험인물로 보였다. 노후보 캠프 사람들도 대체로 이에 동의하더라”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그런데도 이 전 실장이 문회장한테서 1억원을 직접 전달받아 노후보 캠프에 전달했다면 이 전 실장의 거짓말은 별개 문제라 하더라도 당시 노후보측이 얼마나 어려운 상황이었으면 그런 사람 돈을 받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문회장의 대선자금 제공 의혹은 그동안 물밑에서 은밀히 제기돼온 게 사실이다. 올 4월 문회장의 고발로 구속된 김성래씨가 검찰 조사 과정에서 “문회장과 함께 노후보측에 대선자금을 전달한 사실을 알고 있다. 재판 과정에서 이를 폭로하겠다”고 큰소리쳤다는 얘기가 흘러 나왔기 때문. 이에 대해 김씨의 한 측근은 “김씨의 진술은 자신을 구속한 검찰을 ‘압박’하기 위한 것으로 보였지만 문회장이 노후보 캠프 쪽과 일정 부분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은 분명해 보였다”고 말했다.

    문회장의 대선자금 제공 의혹은 문회장과 김씨가 지금껏 ‘동업’ 관계를 유지했다면 영원히 묻힐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그러나 김씨가 대선 직후 인수한 부실기업 계몽사의 어음이 회수되자 자신이 부회장으로 있던 썬앤문그룹 소유 양평TPC골프장 회원권을 담보로 농협에서 115억원을 대출받은 게 문제가 되면서 두 사람 사이도 끝장났다. 김씨는 문회장의 고발로 서울지방검찰청(이하 서울지검)에 구속되자 이에 앙심을 품고 자신이 알고 있는 문회장 비리를 털어놓기 시작했고 급기야 10월 초에는 녹취록을 공개했다. 김씨가 올 4월 초 계몽사 임원들과 한 대책회의 내용이 담긴 녹취록에는 “노무현 정치자금 저번에 95억원 들어간 거 아닌가.” “내가 수표 몇 장을 복사해놨다”는 등의 발언이 등장한다. 한나라당은 이를 근거로 “썬앤문그룹측이 이 전 실장에게 대선자금으로 95억원을 전달했다”고 집요하게 의혹을 제기해왔다.

    “국세청 간부들 잠 못 이룰 것”

    문회장이 지난해 감세 관련 로비를 했다는 의혹도 대검 중수부가 심도 있게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대목이다. 대검 중수부는 이미 지난해 국세청 관계자와 민주당 P의원, 무기거래상 김영완씨 집 떼강도 사건 관련 수사 은폐 과정에 개입한 것으로 알려진 경찰 간부 P씨 등이 감세 관련 로비에 개입한 사실을 일부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대검 중수부 관계자는 “지난해 국세청 간부 라인에 있었던 사람들은 요즘 편히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고 말해 묘한 여운을 남겼다.

    문제는 문회장의 감세 관련 로비 사건을 1차 수사한 서울지검 조사부가 이들 가운데 일부를 소환조사했으나 혐의를 밝혀내지 못했다는 점. 일부에서는 이 때문에 축소·은폐수사 의혹을 제기한다. 그러나 소병철 서울지검 조사부장은 “그래도 국세청 라인을 모두 소환해 사건 전모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며 “축소·은폐수사 의혹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당시 수사에 관여한 수사 관계자도 “정치권 인사 및 경찰 간부 P씨에 대한 부분은 면밀하게 조사했지만 담당 부서의 특성상 반드시 소환해 조사할 필요를 못 느꼈다”고 말했다.

    1999년 이후 양평TPC골프장을 인수하는 등 수도권 내에서 호텔 및 레저시설 5개를 운영하고 있는 문회장은 말 그대로 입지전적인 인물. 건설회사 경리로 시작하여 수천억원대의 재산을 형성한 그에게 위기가 닥친 것은 지난해 봄. 국세청은 2001년 서울 삼성동에 위치한 뉴월드호텔 인수 과정에서 15억원대의 세금이 불법적으로 환급된 사실을 밝혀내고 썬앤문그룹에 대한 특별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이에 문회장은 김성래씨를 썬앤문그룹 부회장으로 영입해 로비를 시도했다. 그 결과 약 180억원이던 썬앤문그룹에 대한 추징세액이 30억원대로 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지검 조사부는 올 6월 썬앤문그룹으로부터 5000만원의 뇌물을 받은 서울지방국세청 감사관 홍모씨를 구속하는 선에서 감세 관련 로비 사건을 마무리했지만 윗선 개입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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