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08

..

나의 길 가련다 ‘경기도 독립선언’?

수도권 규제로 외자유치 기회 수차례 상실 … ‘국가균형발전특별법’ 역차별 불만 폭발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3-10-29 15:52: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나의 길 가련다 ‘경기도 독립선언’?

    경기도가 대중국 물류 거점으로 키울 계획인 평택항에 수출용 자동차가 줄지어 서 있다.

    10월21일 저녁 10시 반 무렵 이준원 경기 파주시장은 손학규 경기도지사의 전화를 받았다. 늦은 시각 손지사가 파주시장을 찾은 것은 경기도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LG필립스LCD 외자유치 건을 챙기기 위해서였다. 손지사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주라”고 이시장에게 신신당부했다. 파주의 LG필립스LCD 공장 건은 유일무이한 경기도의 대규모 외자유치 사업. 손지사를 비롯해 경기도 공무원들이 수개월 동안 끙끙거리며 파주 외자유치 문제를 챙기고 있는 것은 지식집약적 산업클러스터 건설에 경기도와 한국의 미래가 걸려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날 오전 7시 반 손지사는 대한상공회의소가 주최한 조찬간담회에 참가했다. 이날 손지사는 요즘의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냈다. “중앙정부의 처분만 기다리고 있을 때는 지났다” “경기도가 직접 나서겠다”는 등의 표현을 써가며 “앞으로 경기도가 국가적인 과제에 대해 적극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 손지사가 이 같은 발언을 쏟아낸 것은 10월15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국가균형발전특별법안’이 경기도를 역차별한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와 정부가 제대로 붙었다. 국무회의에서 ‘지방’ 개념에 수도권을 포함시켜 달라는 경기도의 요구가 배제된 국가균형발전특별법안이 통과됐기 때문이다. 각종 규제가 경기도의 발전을 옥죄고 있는 상황에서 경기도를 배제한 듯한 특별법안에 대해 경기도가 크게 반발하고 있는 것. 경기도는 ‘경기도에 들어오는 돈을 막아서 다른 도로 돌려야 한다’는 것이 특별법안의 논리라고 보고 ‘지방’ 개념과 수도권 내 공공기관 및 대학 이전 등 이 법안에서 논란이 됐던 조항과 지방양여금제도 폐지 등에 대해 수정·보완한 대체입법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경기도 지역 국회의원들도 관련법안에 대해 거세게 반발하고 있어 특별법은 국회 통과 과정에서도 상당한 진통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이하 국가균형발전위) 성경륭 위원장은 “솔직히 통과될지 걱정된다”고 우려감을 토로했다.

    손학규 지사 “참여정부에 기대할 것 없다”

    손지사의 발언은 나날이 격해지고 있다. 마치 경기도 경제 독립선언이라도 하는 듯하다. “더 이상 노무현 정부에게 기대할 것이 없다”면서 노무현 대통령을 직접 겨냥하는가 하면, “참여정부가 등장한 이후 무엇 하나 제대로 된 일이 없으며, 추진한 것이 있다면 ‘균형발전’이란 명목으로 수도권에 대한 규제정책을 양산한 것밖에 없다” “수도권 대 비수도권으로 나눠 수도권 때문에 국가가 발전하지 못하는 것처럼 호도하는 법안에 대해 찬성할 수 없다”는 등 현 정부를 비난하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는 것. 경기도의 한 관계자는 손지사의 최근 행보에 대해 “수도권에 대한 규제를 철폐하기 위해 대통령과 총리를 만나고 이곳저곳 뛰어다닌 지사님이 법안을 보고 실망해 ‘경기도정 독립선언’을 한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일각에선 대선 행보의 일환 아니냐고 지적하기도 한다.



    그동안 경기도는 정부의 수도권 규제정책으로 인해 대규모 외자유치 기회를 번번이 놓쳐왔다. 경기도는 외자를 유치하거나 국내 기업의 공장을 유치하는 게 각종 규제로 사실상 묶여 있다. LG필립스LCD 공장이 세워질 수 있었던 것은 ‘첨단산업 분야의 외국인 투자에 한해 한시적으로 공장을 세울 수 있다’는 예외조치 때문이다. 예외조치는 올 연말이면 효력을 상실한다. 경기도는 외자유치와 관련해 쓰린 기억이 많다. 덴마크 레고사의 ‘레고랜드’ 건설사업 유치 실패가 대표적인 사례. 경기도 이천에 2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을 세웠던 레고사는 수도권 규제의 벽에 막혀 결국 독일 군주버그로 투자처를 옮겼다. 또 미국 페어차일드코리아도 공장 증설을 위해 2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었으나 증설이 불가능해 투자계획을 수정했다. 투자하겠다는 기업을 되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던 경기도로서는 억장이 무너질 노릇.

    나의 길 가련다 ‘경기도 독립선언’?

    7월11일 열린 현대·기아 자동차 환경기술연구소 기공식(위). 9월4일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국회의장 주최 ‘국가균형발전과 산업집적전략화’와 관련한 토론회에 참석한 손학규 지사(맨 왼쪽).

    그렇다면 국가균형발전법안은 손지사와 경기도의 주장대로 경기도를 역차별하고 있는 것일까.

    경기도는 ‘비수도권=지방’이라는 법안의 용어 정의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법안 제2조 2항에서 ‘지방’을 ‘수도권 이외의 지역’이라고 명시함으로써 경기 북부 등 낙후된 지역이 적지 않은 경기도가 역차별당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경기도는 또 수도권에 자리한 기업과 공장을 비수도권으로 이전하도록 유도하겠다는 국가균형발전위의 계획에 대해서도 ‘제조업 공동화’를 부채질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지방 균형발전을 위해 경기도를 희생시킨다 해도 지방이 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향 평준화될 것이라는 게 손지사의 논리다. 수도권에 대한 투자를 막으면 기업들이 지방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중국으로 떠난다는 것.

    경기도는 수도권과밀억제권역(경기도는 수도권과밀억제권역 성장관리권역 자연보호권역으로 나뉘어 있다) 이외의 지역은 지방으로 대접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공기관 기업 대학 이전 대상 지역을 수도권이 아닌 수도권과밀억제권역으로 축소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 같은 경기도의 요구를 받아들이면 국가균형발전특별법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오히려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이 수도권 집중 현상을 심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땅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은 제조업체들이 공장부지로 경기도를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다. 경기도 대부분의 지역이 지방으로 분류되면 제조업 공장들이 우후죽순처럼 경기도로 몰려들 것은 당연한 이치다. 국가균형발전위가 절대로 물러설 수 없는 ‘비수도권=지방’ 개념을 경기도가 물고늘어지는 것은 “균형발전을 포기하자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같은 내용 절차상 논리에서는 대립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지방’ 개념에 관한 논란을 제외하면 각 사안들에 대한 경기도와 국가균형발전위의 견해가 겉모습만 다를 뿐 속 내용은 별반 차이가 없다는 점. 경기도와 국가균형발전위가 서로 치고받고 있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양쪽의 주장이 거의 비슷하다는 얘기다. 국가균형발전위 성경륭 위원장은 “경기도는 제조업 공장을 털어내고 지식집약적인 첨단산업을 육성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경기도의 논리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경기도는 “IT 등 지식산업이 경제의 중심으로 등장하면서 대도시 지역이 경제의 중심으로 부상하는 ‘대도시권 경제시대’가 도래했다. 경기도가 제조업 중심의 양적 성장에서 첨단산업 중심의 질적 성장으로 도약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경기도에 대한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논리도 ‘대도시권 경제시대’에 근거한 것이다.

    요컨대 경기도가 지식산업의 메카가 되어야 한다는 것, 경기도 내 낙후지역에 대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 경기도와 지방이 윈-윈(win win) 관계가 되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선 방법론의 차이가 있을 뿐 손지사와 성위원장의 의견이 일치한다. ‘경기도가 강해야 나라가 강해진다’는 손지사의 주장은 강한 자를 더 강하게 하여 약자를 돕게 한다는 논리고, 선 지방육성 후 수도권 규제 개혁을 주장하는 성위원장의 논리는 지방을 키우고 수도권을 체계적으로 관리하자는 것이다. ‘체계적인 수도권 관리’라는 논리엔 강한 자를 더 강하게 키우자는 뜻도 담겨 있다.

    결국 경기도와 국가균형발전위는, 국가균형발전위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지방’이라는 개념을 제외하면 똑같이 경기도와 기타 지역의 윈-윈, 상생을 얘기하면서 절차상의 논리에서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조직의 성격상 경기도 내 첨단단지 건설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의 한 브레인은 “경기도의 주장과 국가균형발전위의 주장이 별반 차이가 없는데도 서로 대립하고 있는 것이 안쓰럽다. 제조업체를 떨궈내고 첨단기술의 메카가 되겠다는 게 경기도의 목표 아닌가. 지식산업의 메카가 되어야 할 경기도가 구차하게 제조업 공장이나 잡아두려고 해서는 안 된다. 경기도는 법안에 대해 꼬투리를 잡기보다는 일단 받아들이고 외자를 유치하고 첨단산업을 육성할 수 있는 분야에서 대규모 국가지원과 규제완화, 중앙정부로부터의 권한 이양을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게 경기도가 중앙으로부터 독립하고 대도시권 경제시대의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는 길 아닌가”라고 말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