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기지이자 도시 기능을 갖춘 용산기지(큰 사진)와 용산기지 출입문.
도심에 있는 미군기지 이전은 지난해 의정부에서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 사건이 있은 후 격화된 반미시위로 인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됐다. 미래한미동맹회의가 용산기지 이전을 논의하기 시작했고 동두천에 있는 미 2사단 이전 문제도 이 회의 아젠다(토의할 일련의 과제)로 채택됐다. 그런데 미군기지 이전이 현실화돼 가는 지금, 이를 반기기보다는 우려의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10월20일 한나라당 박시균 의원은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문에서 “용산기지 이전을 위해 한국이 부담해야 할 비용이 1000억 달러를 상회할지 모른다”고 지적했고 열린우리당의 유재건 의원은 “미 2사단의 후방 재배치를 미래한미동맹회의 의제로 수용해준 것은 실수다”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언급은 반미시위가 격심할 때는 미군기지를 변두리로 옮기는 것을 ‘앓던 이 뽑는 것’만큼 시원하게 여기다, 막상 뽑아내려고 하니 치료비(이전 비용)가 만만치 않을 뿐만 아니라 고쳐 써야 할 ‘생니’를 뽑는 것은 아닌가 하여 두려워하고(안보적인 우려)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원인 제공자 부담’ 대신 LPP 원칙 적용
6월13일 저녁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여중생 사망 1주기 추모행사에 많은 시민들이 참가해 촛불을 들어 올리고 있다.
한국군은 야전군 체제인 탓에 부대 이전이 비교적 용이하다. 그러나 미군은, 특히 해외주둔 미군은 전혀 사정이 다르다. 해외주둔 미군은 가족을 데려와 생활하므로 기지 안에 가족을 위한 숙소를 건립한다. 아이들을 위해 유치원에서부터 대학교(용산기지에서는 매릴랜드대학 분교가 유명하다)까지 각급 학교를 운영하고 아내들을 위해 각종 쇼핑시설과 병원을 운영한다. 냉난방과 상하수도 시설, 쓰레기처리장, 병원, 호텔(드래곤 힐 호텔이 유명하다) 등 거의 모든 SOC(사회간접자본)를 갖춰놓고 지내는 것이다.
한국은 의무병제지만 미국은 지원병제다. 따라서 미국의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3만 달러면, 해외기지도 3만 달러 수준의 시설을 갖춰놓아야 지원자가 나오는 것이다. 어쨌든 한국전쟁을 계기로 용산에 주둔하게 된 미군은, ‘목마른 놈이 샘 파는’ 원칙에 따라 그들이 이러한 시설을 건설해왔다. 그러나 용산기지를 평택-오산 지역으로 옮기게 되면, 같은 원칙에 따라 이전을 주장한 한국이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용산기지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은 2만명이지만 그 가족과 한국인 근로자를 합친 실제 거주자는 10만여명이다. 따라서 용산기지 이전은 1인당 GDP 3만 달러인 인구 10만명의 도시를 옮기는 것이므로 그 비용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커질 수밖에 없다.
박시균 의원은 용산기지 이전 비용을 1000억 달러로 추산했으나 국방부는 30억 달러 정도로 전망하고 있다. 1000억 달러와 30억 달러 중에서 어느 것이 정확한지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1인당 GDP가 1만 달러밖에 되지 않는 한국으로서는 두 금액 모두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지난해 결정된 공군의 FX 사업비가 약 40억 달러였고, 한국의 1년 국가예산이 대략 1300억 달러였다. 용산기지를 이전하는 것이 FX 사업을 포기하거나 1년치 국가예산을 버리는 것만큼 중차대한 문제인가? 물론 반환되는 용산기지를 매각하면 이 돈을 마련할 수 있겠지만 이렇게 하면 용산은 ‘남(濫)개발’ 상태에 빠질 것이다. 부동산 투기꾼만 좋으라고 용산기지를 이전한 셈이 되는 것이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울 것이냐?”며 노무현 정부의 조급함을 질타한다. 이들은 “이는 좀더 여유를 갖고 기다리면 자연스럽게 풀 수 있는 문제다. 과거의 대통령들은 모두 자신이 집권한 기간 중에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덤비다가 실수와 정책 혼선을 초래했는데, 노대통령도 그 길을 가고 있다. 노대통령이 좋아하는 정치 선배인 김원기 의원의 별명이 ‘지둘려’ 아닌가. 용산기지를 비롯한 미군기지의 이전과 반환 문제에 관해서는 노대통령도 ‘지둘려 전략’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목마른 사람 누구인지 따져볼 때
이는 미국을 목마르게 만들어 미국이 스스로 샘을 파게 하는 전략이다. 이런 점에서 참고해야 할 것이 지난해 10월30일 국회 비준을 받음으로써 발효된 연합토지관리계획(LPP) 협정에 따른 미군기지 재배치 방안이다. 이 계획은 전국에 산재해 있는 주한미군 기지를 세 개의 허브지역에 모으는 것을 목표로 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2011년 말까지 미군은 28개 기지(약 214만평)와 3개 훈련장(약 3900만평)이 있던 4140만평의 땅을 한국측에 반환하고, 대신 3개 허브지역에 모일 수 있도록 한국으로부터 7개 지역에 154만평의 땅을 새로 공여받는다는 것이다. 4140만평을 받고 154만평을 주니 대략 4000만평이 한국으로 돌아오는 셈인데 이러한 계획을 내놓은 것은 미국이었다. 따라서 ‘목마른 놈이 샘 파는’ 원칙에 따라 대부분의 이전 비용을 미군이 부담하게 되었다.
한 소식통은 “지금 미국은 비용이 많이 드는 지상 전투병력은 본토로 불러들여 원정군으로 개편하고 해외에는 공군과 해군, 그리고 지원부대만 주둔케 한다는 전략을 선택했다. 해외에서 위기가 발생하면 원정군으로 개편한 지상군을 신속히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으로 본다면 미국은 2사단을 철수시키려 할 수밖에 없다. 한국이 안보문제를 거론하며 철수에 반대하면, 미국은 거액의 방위비 분담을 요구할 것이므로 한국은 2사단 철수에 동의할 수밖에 없게 된다. 지금 미군도 서울 한복판인 용산에 2만명을 주둔시키고 있는 데 대해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 조만간 규모를 줄이거나 7공군이 있는 오산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때는 미국의 필요에 의해 기지를 옮기는 것이므로 한국은 이전 비용의 일부만 지원하면 된다. 노대통령은 재임 중에 용산기지 이전을 확정짓겠다는 오만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