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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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영화, ‘이념’줄고 ‘현실’ 늘고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통해 北영화 흐름 한눈에 … 80,90년대 들어 멜로·코미디 등 장르 확대

  • 이명자/ 대진대 강사·북한영화 전공 hanaby@hanmir.com

    입력2003-10-15 17: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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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영화, ‘이념’줄고 ‘현실’ 늘고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7편의 북한영화가 상영됐다. ‘기쁨과 슬픔을 넘어’ ‘신혼부부’ ‘대동강에서 만난 사람 1’ ‘대동강에서 만난 사람 2’ ‘봄날의 눈석이’(왼쪽부터).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북한영화 7편을 상영했다. 그 가운데 2편은 제한상영되긴 했지만, 이번 상영에서는 북한 최초의 예술영화인 ‘내 고향’(1949)에서부터 뮤지컬 형식의 영화 ‘신혼부부’(1955), 제1 문예혁명기에 만들어진 ‘우리 렬차 판매원’(1973), 북한이 ‘주체의 화원’이라고 평가하는 80년대의 ‘기쁨과 슬픔을 넘어’(1985), ‘봄날의 눈석이’(1985), 90년대 북한에서 인기가 높았던 것으로 전해지는 경희극(북한에서는 코미디를 가리킨다) ‘대동강에서 만난 사람1, 2’(1993)까지 선보여 분단 이후 북한영화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했다. 이 영화들은 영화사적으로도 서로 다른 시대를 보여주지만, 그 주제나 장르의 다양성은 한국영화 연구에서 그동안 배제돼온 나머지 절반의 영화가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알 수 있게 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북한에서 영화는 문학예술의 범주에 속한다. 초창기부터 김일성 주석에 의해 선전·선동 측면에서의 영화의 중요성이 인식된 이래 북한에서 영화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창작원리인 당성, 계급성, 인민성에 따라 창작되었다. 소작농 관필이 자신의 분노를 즉발적으로 표출하던 인물에서 모든 인민을 위해 봉사하는 혁명가로 성장해 고향에 돌아온다는 ‘내 고향’의 줄거리는 이런 창작원리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1967년을 계기로 북한은 정치·사회적 격변기를 거치면서 문학예술 분야에서도 커다란 전기를 마련한다. 50년대 중반 이후 조금씩 언급되던 ‘주체’가 문학예술에서도 중요해지고, 그동안 북한 문학예술계를 이끌어오던 한 축인 카프계가 퇴진하고 항일혁명 전통으로 일원화된 것이다.

    ‘신혼부부’엔 월북배우 문예봉 등장

    천세봉의 소설 ‘안개 흐르는 새 언덕’과 그것을 영화화한 ‘내가 찾은 길’에 대한 논쟁에서 촉발된 이런 변화로 인해 결국 카프계의 핵심인물인 안함광 등이 평론계를 떠나고 이후 북한영화는 오직 하나의 목소리를 담게 된다. 이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우리 식’, 곧 주체의 문예론으로 전환함을 의미한다. 1973년 김정일의 ‘영화예술론’ 출판으로 완성된 소위 ‘제1 문예혁명’을 계기로 북한영화는 더 단순하고 갈등 없는, 과거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전후 사회주의 국가 건설 시기의 급박한 요구 속에서 여성을 노동자로 칭하는 ‘신혼부부’는 결혼 후에도 계속 일하고 싶어하는 아내와, 여자는 남편을 보조하는 것으로 자아를 성취한다고 믿는 남편 사이의 갈등을 다룬다. 이 영화에서 아내의 친구 역으로 등장한 월북배우 문예봉과 북한의 대표적 인민배우였던 유원준의 젊은 시절 모습을 볼 수 있다. 선희라는 새 세대 노동자의 눈을 통해 본 북한사회의 관료주의와 계급차를 그리는 ‘우리 렬차 판매원’은 마치 60, 70년대 남한에서 가시적 성과를 거둔 산업화와 근대화의 그늘, 즉 가족의 해체, 도시 빈민층, 노동계급 문제를 다루던 영화와 유사한 면이 있다. 중학교를 막 졸업하고 판매원 일을 처음 맡은 선희는 실수도 많이 하지만 시원한 사이다와 맥주를 찾는 손님들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데 당시 기차 안의 풍경이 낯익다. 이 작품들은 현실의 문제를 강렬하게 드러내기보다 정해진 목표를 향해 가고 있다는 느낌을 주지만 북한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는 장점이 있다.



    북한영화, ‘이념’줄고 ‘현실’ 늘고

    ‘내 고향’(왼쪽)과 ‘우리 렬차 판매원’.

    이처럼 이상적 현실, 국가적 요구를 거침없이 담아내던 북한영화가 현실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은 ‘숨은 영웅 따라 배우기 운동’이 전개되는 80년대부터다. ‘도라지꽃’으로 시작한 80년대 영화들은 농촌을 떠나는 젊은이들, 세대갈등, 남녀의 사랑과 이별 등 대중의 변화하는 관심과 현실 문제를 보여준다. 게다가 90년대 초반 사회주의의 몰락, 계속 악화되는 경제, 증가하는 탈북자 등 현재 북한을 둘러싼 상황은 ‘우리 식’과 ‘주체’만을 고집할 수 없음을 알려준다. 이런 배경에서 나온 영화가 ‘기쁨과 슬픔을 넘어’, ‘봄날의 눈석이’, ‘대동강에서 만난 사람1, 2’다. 이 가운데 ‘봄날의 눈석이’는 영화 전체를 해외에서 촬영했으며 누드 장면까지 나와 당시 북한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며 암표까지 등장하게 한 영화다. 영화는 각각 남북에 뿌리를 둔 집안의 젊은이가 만나서 사랑하게 되지만 부모들의 반대로 고통을 겪는다는 내용의 멜로드라마다.

    누드신·노인의 性 등 소재도 다양

    ‘대동강에서 만난 사람 1, 2’는 남한의 ‘죽어도 좋아’와 같이 노인들의 성과 사랑을 코미디 형식으로 다루는데 북한영화는 재미없다는 편견을 한 번에 날려버리는 영화다. 특히 강선달 선장이 부르는 노래 ‘휘파람’은 대중들 사이에 매우 인기 있던 가요로, 이념적인 내용이 전혀 없이 사랑으로 애가 타는 마음을 담고 있다.

    최근의 북한영화에서 강하게 감지되는 징후들을 통해 새롭게 틀을 짜는 북한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생각해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영화 한 편으로 얻는 수익이 자동차 몇 대의 매출과 맞먹는지를 따지는 남한의 입장에서, 윤리적·교육적 임무를 강조하는 교양으로서의 북한영화를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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