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대학 졸업식을 며칠 앞둔 1995년 5월28일 일요일 아침. 던스터 기숙사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에티오피아 출신 학생 시네두 타데스가 룸메이트인 트랑 푸옹 호를 마흔다섯 군데나 찔러 죽이고 자신은 욕실에서 목을 맨 것이다.
제3세계 출신의 가난한 유학생인 시네두와 베트남 보트피플로 열 살 때 미국으로 건너온 트랑은 모두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뛰어난 성적으로 하버드에 입학했고 의과대학원 진학을 목표로 생물학을 전공하는 전도유망한 젊은이였다. 두 여학생은 2년 동안 같은 방을 써왔으나 트랑이 4학년 때부터 룸메이트를 바꾸기로 결정한 후 사이가 크게 벌어진 상태였다. 3학년 2학기 마지막 주 시네두는 학생신문사에 자신의 사진과 함께 익명의 편지를 부친다. “이 사진을 잘 보관하세요. 곧 이 사진 속 인물에 관한 아주 짜릿한 이야기가 나올 거예요.”
‘미완의 천국, 하버드’는 하버드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의 진실을 파헤친 책이다. 저널리스트인 저자 멜라니 선스트롬은 부친이 하버드 대학 교수였고 자신도 하버드를 졸업한 후 모교에서 강의를 맡기도 한 하버드 패밀리다. 그러나 이 살인사건을 계기로 독선과 오만으로 가득 찬 하버드의 이면을 보게 된다. 그는 직접 시네두의 고향 에티오피아로 날아가 공부벌레요 모범생이던 한 학생이 하버드에 입학한 후 서서히 파괴되는 과정을 추적했다.
시네두를 파괴한 것은 자존심의 상처와 고립감이다. 에티오피아에서 시네두는 뛰어나게 공부를 잘하는 촉망받는 모범생이었다. 미국 24개 대학에 지원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부유한 대학 하버드에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허가를 받았을 때 그의 인생은 절정이었다. 하지만 하버드에 입학한 후 그는 성적이 그저 그런 평범한 학생에 지나지 않았고 소수민족 학생들이 겪는 문화적 소외감에다 부자 학교의 가난한 학생이 겪는 깊은 좌절감까지 맛봐야 했다. 심각한 우울증에 빠진 시네두에게 트랑이 햇살처럼 다가왔다.
베트남 난민으로 미국에 정착해 정부보조금으로 살아가는 가난한 생활이었지만 트랑은 뛰어난 지적 능력을 소유하고 있었고 매사에 씩씩하고 긍정적으로 대처했다. 다정다감하고 사려 깊고 명랑하고 솔선수범하고 부지런한 트랑을 싫어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92년 2월 ‘보스턴’지는 창간 13주년을 기념해 ‘보스턴을 지켜줄 25인’으로 시장, 주지사, 추기경, MIT와 보스턴 대학 총장, 상원의원, 대기업 회장 등과 함께 하버드대 1학년 학생인 열여덟 살의 트랑을 선정하기도 했다.
시네두는 이 멋진 친구를 발견하고 기쁨에 떤다. 하지만 트랑은 시네두에게 유일한 친구인 반면, 시네두는 트랑의 많은 친구 중 한 사람일 뿐이었다는 사실이 비극의 싹이 됐다. 룸메이트의 집착이 부담스러워진 트랑이 다음 학기부터 룸메이트를 바꾸겠다고 선언하자 시네두의 절망감은 분노로 바뀌었고 결국 가장 사랑했던 친구를 죽인다. 시네두는 일기에 이렇게 쓴다. ‘나쁜 해결책은 자살하는 것이고 좋은 해결책은 죽이는 것, 그들의 공포를 즐기고 나서 자살하는 거야.’
시네두의 성격적 결함, 문화적 충격에서 온 정신적 혼란 등이 살인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이지만, 저자가 ‘미완의 천국, 하버드’에서 책임을 묻는 상대는 바로 하버드다. ‘나에게 손을 내밀어주세요’라며 시네두가 구조신호를 보낼 때 대학 당국과 어른들은 무엇을 했는가. 저자는 시네두뿐만 아니라 수많은 하버드생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을 언급하면서 학생들의 어려움을 해결하려는 노력보다 평판을 유지하고 기부금을 모금하는 데만 급급한 하버드 역시 이 사건의 공범이라고 말한다. 시네두 사건이 일어나던 해 하버드에서는 4건의 자살 사건과 20건의 자살미수 사건이 있었다.
저자가 하버드를 ‘반쪽짜리 천국’이라 한 데는 하버드라는 이름이 안겨준 황홀감의 이면에 이처럼 깊은 고독과 절망감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시네두에게 손을 내밀어주지 않는 사회는 결국 트랑으로 대표되는 건강한 존재까지도 위협한다. 저자는 우회적으로 ‘당신의 자녀는 시네두인가, 트랑인가’를 묻는다. 섬뜩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미완의 천국, 하버드/ 멜라니 선스트롬 지음/ 김영완 옮김/ 이크 펴냄/ 300쪽/ 1만2000원
제3세계 출신의 가난한 유학생인 시네두와 베트남 보트피플로 열 살 때 미국으로 건너온 트랑은 모두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뛰어난 성적으로 하버드에 입학했고 의과대학원 진학을 목표로 생물학을 전공하는 전도유망한 젊은이였다. 두 여학생은 2년 동안 같은 방을 써왔으나 트랑이 4학년 때부터 룸메이트를 바꾸기로 결정한 후 사이가 크게 벌어진 상태였다. 3학년 2학기 마지막 주 시네두는 학생신문사에 자신의 사진과 함께 익명의 편지를 부친다. “이 사진을 잘 보관하세요. 곧 이 사진 속 인물에 관한 아주 짜릿한 이야기가 나올 거예요.”
‘미완의 천국, 하버드’는 하버드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의 진실을 파헤친 책이다. 저널리스트인 저자 멜라니 선스트롬은 부친이 하버드 대학 교수였고 자신도 하버드를 졸업한 후 모교에서 강의를 맡기도 한 하버드 패밀리다. 그러나 이 살인사건을 계기로 독선과 오만으로 가득 찬 하버드의 이면을 보게 된다. 그는 직접 시네두의 고향 에티오피아로 날아가 공부벌레요 모범생이던 한 학생이 하버드에 입학한 후 서서히 파괴되는 과정을 추적했다.
시네두를 파괴한 것은 자존심의 상처와 고립감이다. 에티오피아에서 시네두는 뛰어나게 공부를 잘하는 촉망받는 모범생이었다. 미국 24개 대학에 지원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부유한 대학 하버드에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허가를 받았을 때 그의 인생은 절정이었다. 하지만 하버드에 입학한 후 그는 성적이 그저 그런 평범한 학생에 지나지 않았고 소수민족 학생들이 겪는 문화적 소외감에다 부자 학교의 가난한 학생이 겪는 깊은 좌절감까지 맛봐야 했다. 심각한 우울증에 빠진 시네두에게 트랑이 햇살처럼 다가왔다.
베트남 난민으로 미국에 정착해 정부보조금으로 살아가는 가난한 생활이었지만 트랑은 뛰어난 지적 능력을 소유하고 있었고 매사에 씩씩하고 긍정적으로 대처했다. 다정다감하고 사려 깊고 명랑하고 솔선수범하고 부지런한 트랑을 싫어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92년 2월 ‘보스턴’지는 창간 13주년을 기념해 ‘보스턴을 지켜줄 25인’으로 시장, 주지사, 추기경, MIT와 보스턴 대학 총장, 상원의원, 대기업 회장 등과 함께 하버드대 1학년 학생인 열여덟 살의 트랑을 선정하기도 했다.
시네두는 이 멋진 친구를 발견하고 기쁨에 떤다. 하지만 트랑은 시네두에게 유일한 친구인 반면, 시네두는 트랑의 많은 친구 중 한 사람일 뿐이었다는 사실이 비극의 싹이 됐다. 룸메이트의 집착이 부담스러워진 트랑이 다음 학기부터 룸메이트를 바꾸겠다고 선언하자 시네두의 절망감은 분노로 바뀌었고 결국 가장 사랑했던 친구를 죽인다. 시네두는 일기에 이렇게 쓴다. ‘나쁜 해결책은 자살하는 것이고 좋은 해결책은 죽이는 것, 그들의 공포를 즐기고 나서 자살하는 거야.’
시네두의 성격적 결함, 문화적 충격에서 온 정신적 혼란 등이 살인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이지만, 저자가 ‘미완의 천국, 하버드’에서 책임을 묻는 상대는 바로 하버드다. ‘나에게 손을 내밀어주세요’라며 시네두가 구조신호를 보낼 때 대학 당국과 어른들은 무엇을 했는가. 저자는 시네두뿐만 아니라 수많은 하버드생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을 언급하면서 학생들의 어려움을 해결하려는 노력보다 평판을 유지하고 기부금을 모금하는 데만 급급한 하버드 역시 이 사건의 공범이라고 말한다. 시네두 사건이 일어나던 해 하버드에서는 4건의 자살 사건과 20건의 자살미수 사건이 있었다.
저자가 하버드를 ‘반쪽짜리 천국’이라 한 데는 하버드라는 이름이 안겨준 황홀감의 이면에 이처럼 깊은 고독과 절망감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시네두에게 손을 내밀어주지 않는 사회는 결국 트랑으로 대표되는 건강한 존재까지도 위협한다. 저자는 우회적으로 ‘당신의 자녀는 시네두인가, 트랑인가’를 묻는다. 섬뜩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미완의 천국, 하버드/ 멜라니 선스트롬 지음/ 김영완 옮김/ 이크 펴냄/ 300쪽/ 1만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