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에어컨이 켜진 환경에 노출된 사람이라면 실내오염으로 인한 질병에 특히 유의해야 한다.
여름철 실내오염으로 인한 질환 중 가장 무서운 것이 레지오넬라균 집단 감염에 의한 레지오넬라증이다. 이 병은 대형건물 등의 냉방장치에 사용되는 냉각수를 저장하는 저수 탱크나 냉각탑의 청결 상태가 불량해 거기에서 번식한 레지오넬라균이 냉방장치가 가동되면서 뿜어져 나와 전염되는 호흡기 질환. 레지오넬라균은 고온다습한 곳에서 왕성하게 번식하는 까닭에 대형건물의 냉방기 속은 이 균의 인큐베이터가 될 가능성이 크다. 레지오넬라증이 호텔이나 병원 등 대형빌딩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자주 발생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이 균에 레지오넬라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은 1976년 미국 필라델피아 호텔에서 열린 재향군인(레지오네르)의 모임에서 220명이 이 균에 감염돼 34명이 사망한 뒤부터다. 2∼12일의 잠복기를 거쳐 목의 통증, 고열과 설사, 두통, 마른기침 등의 증세로 시작해 폐렴 증상을 보이다 증세가 급속히 악화돼 사망에 이르는 과정이 올 들어 전 세계를 공황상태에 빠뜨렸던 사스(SARS·급성중증호흡기증후군)와 거의 비슷하다. 의식장애, 심부전 등 장애를 동반하기도 하며, 50세 이상의 노인, 만성 폐질환자, 암환자 등 면역력이 약한 사람이 이 병에 걸려 폐렴으로 발전할 경우 치사율이 최고 39%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 무서운 질환이기도 하다.
레지오넬라병 가장 무서운 질환
2002년 6∼7월 두 달간 전국 대형건물과 분수대, 온천수 등 3149개 시설물에 대해 레지오넬라균 검사를 실시한 결과 백화점, 병원, 보건소 등 114개소에서 균이 검출돼 충격을 줬다. 백신은 물론, 딱히 치료제도 없는 터라 냉방기기의 냉각수를 자주 갈아주고 소독해 예방하는 게 유일한 방법. 하지만 대형건물에서 오래 머문 뒤 고열, 두통 등 감기 증세를 보인다면 바로 병원을 찾아야 한다.
집 안의 에어컨이라고 해서 방심할 수도 없다. 껐다 켰다를 반복하면서 에어컨에 곰팡이나 일반 세균이 번식할 확률이 높기 때문. 비가 잦은 여름철, 특히 장마철은 자주 환기를 하지 않을 경우 실내공기가 습해 곰팡이나 집먼지 진드기가 많이 번식하는데 이는 알레르기 비염을 일으키거나 증세를 심하게 만든다. 집먼지 진드기는 이밖에도 코막힘, 재채기, 코와 눈의 가려움증, 콧물 등의 증상을 일으킨다. 애완동물을 키울 때는 특히 환기에 주의해야 한다. 자주 환기하지 않으면 동물의 털 등이 공기 속을 떠다녀 각종 알레르기 증상의 원인이 된다.
청담서울이비인후과 원장은 “여름철에는 냉방을 하는 곳에서는 환기를 철저히 해야 한다”며 “환기도 환기지만 냉방으로 인해 실내와 실외의 온도 차가 커지면 인체가 적응하지 못해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바이러스나 세균에 대한 저항력이 급격히 떨어진다”고 말했다.
여름철 실내오염은 이렇듯 냉방을 위해 환기를 등한시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에어컨을 청소하지 않거나,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는 등 오염을 방치하거나 유발하면 실내오염은 더욱 심각해진다.
서울대 의대 가정의학과 조비룡 교수는 “에어컨은 1∼2주에 한 번씩 청소해야 하며, 할 수만 있다면 한두 시간마다 환기해줘야 한다”며 “에어컨의 온도를 24℃에서 26℃ 정도로 설정해 외부와의 온도 차가 5℃가 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