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데이타㈜ 전 감사 유길영씨
유씨는 94년 9월, 민주화투쟁과 여타 기업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첫 직장인 포스코로 향했다. 포항제철 수습공채 7기였던 그는 당시 입사동기 동일 직급으로 본사 기준 부장, 계열사 기준 상무로 95년 2월 포스데이타 감사로 부임했다. 문제는 96년 말, 그가 백지출금전표의 결제를 거부하면서 벌어졌다. 당시 신한국당 모 지구당 후원자금이라는 설명이 있었지만 그에게는 백지전표가 또 다른 정치자금을 조성하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그가 결제를 거부하자 곧바로 그에게 조직적인 퇴진 압력이 가해졌다. 결국 연임 4개월 만인 97년 7월29일, 그는 후속 보임을 전제로 사직서를 제출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이상이 유씨의 주장이다. 그러나 퇴직 이후 회사측이 약속 이행을 차일피일 미루는 바람에 결국 그는 2001년 7월, 기약 없는 면직 무효확인청구 소송에 들어갔다.
우리나라 기업문화에서 감사란 직책은 경영에 큰 권한을 행사하지 못한다. 그러나 제대로 활동하기만 하면 누구든 긴장시킬 만한 존재다. 그러기에 감사가 중도에 사직서를 내고 다시 복직투쟁을 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당시의 정황상 결국 사직서의 내용이 쟁점이 될 수밖에 없다. 만일 사직서가 유씨의 의사로 작성된 것이라면 그는 억지주장을 펴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2002년도에 종결된 1심 판결에서 유씨는 문제의 사직서를 확보하지 못하고 증거불충분으로 패소하고 만다. 2002년 10월에 항소한 유씨는 사직서를 법정으로 끌어내기 위해 총력을 다했다. 막상 법정에 제출된 사직서는 ‘일신상의 이유로 사직한다’는 내용의, 당시 인사부장 하모씨의 필체로 작성된 엉뚱한 문서였다. 곧바로 사직서 위작 논쟁이 불거졌다.
사건의 전기를 마련한 것은 한 달 전인 6월 말 법원이 선정한 ‘중앙인형필적감정원’. 감정원측은 사직서가 6년 전이 아닌 최근에 작성된 문서라고 감정해 “본인의 자필서명도 없고 사직 날짜까지 조작된 회사측의 위작”이라는 유씨의 주장을 뒷받침해줬다. 이에 회사측은 또 다른 감정원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감정을 의뢰하는 등 사건을 장기전으로 끌고 가고 있다.
포스코 정치바람 탈 때 퇴사
포스데이타(사장 김광호)측의 주장은 세 가지다. 첫째, 감사에게 정치자금 명목의 백지전표를 결제해줄 것을 요구한다는 것은 회계 관행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 둘째, 유씨 관련 인사는 당시 여당의 민주계와의 친분 관계를 통해 이루어진 낙하산 인사였다는 것, 마지막으로, 유씨가 여비서를 성희롱하는 등 품행이 방정하지 못해서 위기를 자초했다는 것이다. 유씨는 이에 대해 “자신의 고향 같은 조직이 자신을 두 번 죽이려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맞서고 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그 시기가 포스코를 둘러싼 정치적 혼란기였다는 사실. 1996년 말은 대선을 1년 정도 앞둔 시기로, 당시 포스코의 김만제 회장은 포스코의 정치적 독립과 자신의 연임을 위해서 암중모색하고 있었다. 아무튼 논란의 진위는 차치하고라도 국내 대표 기업이 전직 감사와 위조 사직서 논쟁까지 벌이며 이전투구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사건 관계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