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날 때부터 오래도록 ‘샘터’는 어른 손바닥만한 크기의 잡지였다.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교양지’를 모토로 내건 이 작은 월간지가 2003년 6월호로 꼭 서른세 돌, 지령 400호를 맞았다. 태어난 지 29년째 되던 1999년 1월호부터 키가 조금 커지고 품도 넉넉해지면서 크기가 얼굴만해졌지만 ‘마음으로 여는 따뜻한 세상’이라는 샘터의 정신은 변함이 없다.
월간 ‘샘터’를 창간한 이는 현재 샘터사 고문으로 있는 김재순 전 국회의장(78). 당시 국회 상공위원장으로 있으면서 기능올림픽대회 참가자로 선발된 사람들을 만나면 한결같이 “형편이 어려워 학교에 못 가 원망스럽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평범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가벼운 마음으로 의견을 나누면서 행복에 이르는 길을 찾아보자”는 뜻에서 월간지를 창간했다. 초대 편집장은 현재 한국민족문학작가회의 염무웅 이사장(영남대 교수·독문학)이었다.
만 33년 동안 400호를 내면서 ‘샘터’와 인연을 맺은 이는 수도 없이 많다. 매호 평균 50명, 지금까지 2만여명의 필자가 ‘샘터’에 기고했다. 그중에는 당대에 내로라하는 필자들-수필가 피천득(94), 법정 스님(68), 소설가 최인호(58), 이해인 수녀(58), 그리고 고인이 된 정채봉 선생-도 있다.
‘샘터’가 보유한 기록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월간지 사상 최장수 연재소설. 1975년 9월호부터 연재된 최인호의 ‘가족’은 긴 세월 동안 한 번도 거르는 법 없이 실려 2003년 6월호로 333회를 맞았다. 연재를 시작할 때 서른이던 작가가 지금은 50대 후반, 네 살이던 그의 딸 다혜가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창간 서른세 돌 기념호에서 ‘샘터’는 피천득·김재순의 ‘아름다운 인연’, 법정·최인호의 ‘산다는 것은 나눠 갖는 것’이란 제목의 특별대담을 마련했다. 우암(김재순)과 금아(피천득)가 30년 넘게 첫눈이 오는 날 서로 연락을 주고받아 왔으며, 금아의 생일에 우암은 ‘시인을 위한 물리학’을 선물하고, 우암은 금아에게 르누아르 화첩으로 화답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사람이 오래 산다는 건 과거의 좋은 기억과 인연을 많이 가졌다는 뜻”이라고 풀이하는 금아의 인생예찬에 절로 감탄이 나온다.
법정 스님은 1972년 4월호부터 맺은 ‘샘터’와의 인연에 대해 “만약 ‘샘터’가 없었으면 나 같은 게으름뱅이는 글을 못 썼을 것”이라고 고마움을 표시한다. 하지만 법정 스님의 호통소리가 샘터 편집실을 울리던 날도 있었다. 1970년대 말 자신의 글에서 오자를 발견한 법정 스님이 전화를 걸어 “다시는 글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 담당기자는 그 길로 밤기차를 타고 전남 순천 송광사 불일암을 찾아가 사죄하고 다시 새벽 상경기차를 타기 위해 나섰다. 그때 법정 스님이 기자에게 박카스 한 병을 슬그머니 내밀었다는 일화가 있다. 당시 기자가 바로 정채봉 선생이다. 400호 ‘샘터’의 6월 테마는 ‘늘 똑같이, 늘 새롭게’다. 손을 내밀면 늘 그 자리에 있어주는 친구처럼 작은 책 ‘샘터’는 33년을 한결같이 보통사람들 곁에 머물렀다.
월간 ‘샘터’를 창간한 이는 현재 샘터사 고문으로 있는 김재순 전 국회의장(78). 당시 국회 상공위원장으로 있으면서 기능올림픽대회 참가자로 선발된 사람들을 만나면 한결같이 “형편이 어려워 학교에 못 가 원망스럽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평범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가벼운 마음으로 의견을 나누면서 행복에 이르는 길을 찾아보자”는 뜻에서 월간지를 창간했다. 초대 편집장은 현재 한국민족문학작가회의 염무웅 이사장(영남대 교수·독문학)이었다.
만 33년 동안 400호를 내면서 ‘샘터’와 인연을 맺은 이는 수도 없이 많다. 매호 평균 50명, 지금까지 2만여명의 필자가 ‘샘터’에 기고했다. 그중에는 당대에 내로라하는 필자들-수필가 피천득(94), 법정 스님(68), 소설가 최인호(58), 이해인 수녀(58), 그리고 고인이 된 정채봉 선생-도 있다.
‘샘터’가 보유한 기록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월간지 사상 최장수 연재소설. 1975년 9월호부터 연재된 최인호의 ‘가족’은 긴 세월 동안 한 번도 거르는 법 없이 실려 2003년 6월호로 333회를 맞았다. 연재를 시작할 때 서른이던 작가가 지금은 50대 후반, 네 살이던 그의 딸 다혜가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창간 서른세 돌 기념호에서 ‘샘터’는 피천득·김재순의 ‘아름다운 인연’, 법정·최인호의 ‘산다는 것은 나눠 갖는 것’이란 제목의 특별대담을 마련했다. 우암(김재순)과 금아(피천득)가 30년 넘게 첫눈이 오는 날 서로 연락을 주고받아 왔으며, 금아의 생일에 우암은 ‘시인을 위한 물리학’을 선물하고, 우암은 금아에게 르누아르 화첩으로 화답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사람이 오래 산다는 건 과거의 좋은 기억과 인연을 많이 가졌다는 뜻”이라고 풀이하는 금아의 인생예찬에 절로 감탄이 나온다.
법정 스님은 1972년 4월호부터 맺은 ‘샘터’와의 인연에 대해 “만약 ‘샘터’가 없었으면 나 같은 게으름뱅이는 글을 못 썼을 것”이라고 고마움을 표시한다. 하지만 법정 스님의 호통소리가 샘터 편집실을 울리던 날도 있었다. 1970년대 말 자신의 글에서 오자를 발견한 법정 스님이 전화를 걸어 “다시는 글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 담당기자는 그 길로 밤기차를 타고 전남 순천 송광사 불일암을 찾아가 사죄하고 다시 새벽 상경기차를 타기 위해 나섰다. 그때 법정 스님이 기자에게 박카스 한 병을 슬그머니 내밀었다는 일화가 있다. 당시 기자가 바로 정채봉 선생이다. 400호 ‘샘터’의 6월 테마는 ‘늘 똑같이, 늘 새롭게’다. 손을 내밀면 늘 그 자리에 있어주는 친구처럼 작은 책 ‘샘터’는 33년을 한결같이 보통사람들 곁에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