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3월28일 프랑스의 작가 장 콕토는 연인 마르셀 킬과 함께 80일간의 세계여행에 나선다. 그것은 1873년 쥘 베른이 쓴 ‘80일간의 세계일주’에서 영국 신사 필리어스 포그와 프랑스 하인 파스파르투의 여정을 따라가는 여행이었다. 포그씨는 런던에서 수에즈, 봄베이, 캘커타, 홍콩, 요코하마, 샌프란시스코, 뉴욕 그리고 다시 런던까지 철도와 여객선을 이용해 80일 만에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내기를 한다. 마침내 런던에 돌아온 날은 80일째인 12월21일 토요일 저녁. 약속한 시간 내에 도착하지 못해 파산 지경에 이른 포그씨가 날짜변경선의 도움으로 하루를 벌어 내기에서 이기는 장면은 얼마나 짜릿했던가. ‘80일간의 세계일주’는 비록 허구일지라도 여행에 대한 욕망과 탐험 의지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46세의 장 콕토와 26세의 마르셀은 포그와 파스파르투가 되어 소설 속의 여행을 현실로 만든다.
장 콕토는, 80일간의 여정이 포그에게는 끔찍하기 짝이 없었을지 모르지만 그로부터 63년이 지난 1936년에는 지나치는 항구마다 들러 한가로이 머물기도 하는 유유자적한 산책이 되리라 낙관했다. 그러나 3월28일 출발, 6월17일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기 전 신문사(이들의 여행을 지원한 ‘파리 수아르’)에 도착하기로 한 여정은 생각처럼 여유롭지 않았다. 3월28일 밤 10시40분으로 예정됐던 로마행 급행열차 출발시간이 어찌된 일인지 9시50분으로 50분 앞당겨지면서 시작부터 그들은 달음박질 쳐야 했다.
장 콕도는 자신의 여행관을 이렇게 피력했다. “일단 여행지의 사물과 더불어 지내라. 그 사물들에 시선을 던지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내 경우에는 그런 것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법이 없다. 그저 사진을 찍듯 쳐다보는 것으로 그만이다. 여행하는 동안 내 머릿속 암실은 그런 영상들로 마구 어질러져 있고, 집에 돌아온 후에야 필름을 현상하듯 하나하나 떠올려보는 것이다.”
하지만 장 콕토의 여행은 아무래도 시간에 쫓기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가 그리스로 가기 위해 경유한 로마는 죽음의 도시, 침묵의 도시(한밤중에 도착했으니!)일 뿐이다. 눈멀고, 귀먹고, 혀 잘린 이 도시에서 그는 무솔리니의 찡그린 얼굴만 떠올리며 부랴부랴 떠난다.
그렇다면 23년 동안 섬세한 감각으로 이탈리아 구석구석을 밟아본 이에게 물어보자. “이탈리아에 가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들어야 하는가?” 그는 “건축과 음악”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베네치아에서 비발디를 추억하며’를 쓴 건축가 정태남씨는 화가이자 사진작가이며 애호가 수준을 넘은 클래식 연주자요 오페라 연출자다. 그에게 여행은 삶이다. 특히 빛과 음악이 있는 이탈리아 도시들은 ‘영원히 낯설고 영원히 아름다운’ 연인과 같다.
나폴리행 열차에 몸을 싣는 순간부터 가슴속에서 강렬하고 낭만적인 나폴리 노래가 흘러나온다. ‘산타 루치아’와 ‘오 솔레미오’가 도시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으랴. 그러나 오랜 방랑 끝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율리시즈를 유혹하던 파르테노페의 노래를 떠올리는 게 먼저다. 파르테노페는 자신의 아름다운 노래가 율리시즈를 유혹하지 못하자 자존심이 상해 목숨을 끊었다. 그가 묻힌 곳이 바로 나폴리다. 여력이 있다면 오르페우스가 리라를 들고 에우리디체를 구하러 간 ‘지옥’(나폴리에서 쿠마로 가는 길에 있는 아베르노 호수)을 찾아보자. 여정은 지중해의 노래(나폴리, 소렌토, 카타니아)를 따라 라찌오와 토스카나로, 리스트가 활동했던 티볼리, 오페라의 탄생을 예고한 피렌체, 로시니와 베르디의 도시 페자로와 볼로냐로 이어진다.
‘베네치아에서 비발디를 추억하며’에서 기차는 왠지 천천히 노래하듯 달린다. 이 책을 펼치면 “음악은 음으로 세운 건축, 건축은 응고된 음악”이라는 말을 곱씹으며 이탈리아 23개 도시를 순례할 수 있다. 전쟁과 사스 공포가 여행자의 발목을 잡았지만, 어느 순간 그들은 떠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으리라. 당신의 이번 여행의 테마는?
장 콕토의 다시 떠난 80일간의 세계일주/ 장 콕토 지음/ 이세진 옮김/ 예담 펴냄/ 380쪽/ 9800원
베네치아에서 비발디를 추억하며/ 정태남 지음/ 한길사 펴냄/ 336쪽/ 1만5000원
46세의 장 콕토와 26세의 마르셀은 포그와 파스파르투가 되어 소설 속의 여행을 현실로 만든다.
장 콕토는, 80일간의 여정이 포그에게는 끔찍하기 짝이 없었을지 모르지만 그로부터 63년이 지난 1936년에는 지나치는 항구마다 들러 한가로이 머물기도 하는 유유자적한 산책이 되리라 낙관했다. 그러나 3월28일 출발, 6월17일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기 전 신문사(이들의 여행을 지원한 ‘파리 수아르’)에 도착하기로 한 여정은 생각처럼 여유롭지 않았다. 3월28일 밤 10시40분으로 예정됐던 로마행 급행열차 출발시간이 어찌된 일인지 9시50분으로 50분 앞당겨지면서 시작부터 그들은 달음박질 쳐야 했다.
장 콕도는 자신의 여행관을 이렇게 피력했다. “일단 여행지의 사물과 더불어 지내라. 그 사물들에 시선을 던지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내 경우에는 그런 것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법이 없다. 그저 사진을 찍듯 쳐다보는 것으로 그만이다. 여행하는 동안 내 머릿속 암실은 그런 영상들로 마구 어질러져 있고, 집에 돌아온 후에야 필름을 현상하듯 하나하나 떠올려보는 것이다.”
하지만 장 콕토의 여행은 아무래도 시간에 쫓기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가 그리스로 가기 위해 경유한 로마는 죽음의 도시, 침묵의 도시(한밤중에 도착했으니!)일 뿐이다. 눈멀고, 귀먹고, 혀 잘린 이 도시에서 그는 무솔리니의 찡그린 얼굴만 떠올리며 부랴부랴 떠난다.
그렇다면 23년 동안 섬세한 감각으로 이탈리아 구석구석을 밟아본 이에게 물어보자. “이탈리아에 가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들어야 하는가?” 그는 “건축과 음악”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베네치아에서 비발디를 추억하며’를 쓴 건축가 정태남씨는 화가이자 사진작가이며 애호가 수준을 넘은 클래식 연주자요 오페라 연출자다. 그에게 여행은 삶이다. 특히 빛과 음악이 있는 이탈리아 도시들은 ‘영원히 낯설고 영원히 아름다운’ 연인과 같다.
나폴리행 열차에 몸을 싣는 순간부터 가슴속에서 강렬하고 낭만적인 나폴리 노래가 흘러나온다. ‘산타 루치아’와 ‘오 솔레미오’가 도시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으랴. 그러나 오랜 방랑 끝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율리시즈를 유혹하던 파르테노페의 노래를 떠올리는 게 먼저다. 파르테노페는 자신의 아름다운 노래가 율리시즈를 유혹하지 못하자 자존심이 상해 목숨을 끊었다. 그가 묻힌 곳이 바로 나폴리다. 여력이 있다면 오르페우스가 리라를 들고 에우리디체를 구하러 간 ‘지옥’(나폴리에서 쿠마로 가는 길에 있는 아베르노 호수)을 찾아보자. 여정은 지중해의 노래(나폴리, 소렌토, 카타니아)를 따라 라찌오와 토스카나로, 리스트가 활동했던 티볼리, 오페라의 탄생을 예고한 피렌체, 로시니와 베르디의 도시 페자로와 볼로냐로 이어진다.
‘베네치아에서 비발디를 추억하며’에서 기차는 왠지 천천히 노래하듯 달린다. 이 책을 펼치면 “음악은 음으로 세운 건축, 건축은 응고된 음악”이라는 말을 곱씹으며 이탈리아 23개 도시를 순례할 수 있다. 전쟁과 사스 공포가 여행자의 발목을 잡았지만, 어느 순간 그들은 떠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으리라. 당신의 이번 여행의 테마는?
장 콕토의 다시 떠난 80일간의 세계일주/ 장 콕토 지음/ 이세진 옮김/ 예담 펴냄/ 380쪽/ 9800원
베네치아에서 비발디를 추억하며/ 정태남 지음/ 한길사 펴냄/ 336쪽/ 1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