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14일 열린 포스코 주주총회에 참석한 주주들
그러나 이번 주총은 많은 점에서 논란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우선 무엇보다 민영화된 공기업의 지배구조를 어떻게 선진화할 것인가 하는 숙제를 남겼다. 재벌 오너가 아니면서도 ‘황제 경영’을 한다는 비판을 받았던 유 전 회장이 3월17일 상임고문으로 선임돼 퇴임 이후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 지배구조 선진화를 위해 유 전 회장 연임 저지에 나섰던 정부로서도 더 이상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상황이다.
유 전 회장의 이런 행태는 외국의 최고경영자(CEO)들이 현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유지하면서 회사 경비를 펑펑 써대 비난을 샀던 대목을 상기시킨다. 더욱이 유 전 회장은 회장직에서 물러났어도 올 7월 이후 10만주의 스톡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
“上王 하고 싶은 듯 … 지배구조 더 불투명”
주총을 진행하는 이구택 신임 회장.
그러나 포스코 일각에서는 “유 전 회장이 ‘상왕(上王)’ 행세를 하고 싶은 모양”이라면서 “오히려 지배구조가 더 불투명해지게 됐다”는 불만의 소리도 나오고 있다. 포스코 사정에 정통한 한 전직 임원은 “일부 포스코 임원들은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뜬 격’이라면서 앞으로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의견을 보이면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벌써부터 걱정한다”고 전했다.
사실 포스코 사내외 이사들에게 더 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사람은 이구택 회장이 아니라 유상부 전 회장이다. 유 전 회장 덕분에 현재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 여기에 이사회 직후 단행된 집행임원 인사도 유 전 회장 안이 그대로 관철됐기 때문에 집행임원들에게도 유 전 회장은 ‘하늘’ 같은 존재나 마찬가지다. 결국 사외이사들을 유 전 회장과 상관없는 사람으로 선임하지 않는 한 유 전 회장에 대한 실질적인 ‘견제 장치’가 없는 셈이다.
주총을 진행하는 이구택 신임 회장.
이에 따라 3월14일 열린 주총에서 표 대결이 벌어진다고 해도 유 전 회장의 ‘승리’는 기정사실이 됐다. 그러나 주총 이틀 전 정부측 뜻이 완강하다는 것을 확인한 유 전 회장은 자진 사퇴 발표에 앞서 포스코에 대한 영향력 유지를 위해 정부측과 ‘물밑거래’를 시도했다고 한다. 한 관계자는 “유 전 회장측이 ‘상임이사직은 유지하되 명예회장으로 물러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으나 거절당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회사측은 “유 전 회장은 5년 동안 회장을 역임했는데, 무슨 욕심이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정부가 이처럼 유 전 회장 연임 저지에 나선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유 전 회장이 ‘주인 없는 회사’ 포스코에서 재벌총수와 같은 ‘황제 경영’을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에서도 유 전 회장의 이런 경영 행태가 도마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전윤철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포스코 회장직은 옥상옥(屋上屋) 제도여서 불필요하다”고 포문을 열었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러나 유 전 회장측의 대응도 만만치 않았다. 유 전 회장측은 유 전 회장이 1998년 취임 이후 매년 기록을 경신해가며 사상 최대의 경영실적을 올렸다고 주장하면서 포스코 경영권은 주주들이 결정할 문제라는 입장을 집중적으로 홍보해왔다. 그러나 포스코 관계자는 “유 전 회장 시절의 경영실적은 장기적인 발전을 위한 투자마저 희생한 단기 업적주의의 결과라는 시각이 많았다”고 전했다.
상임고문으로 복귀한 유상부 포스코 전 회장.
이런 점에서 정부가 물밑에서 유 전 회장에게 ‘자진 사퇴’를 종용한 것은 일정 부분 이해할 수 있다. 인수위에 참여했던 정부 관계자는 “유 전 회장의 경우 정부와 시장 모두 제대로 감시 감독할 수 없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점을 악용, ‘황제 경영’을 하는 것으로 파악됐고, 그를 끌어내릴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 없다는 점에서 정부가 ‘보이지 않는 손’을 활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어정쩡한 태도는 오히려 온갖 잡음만 일으켰다. 더욱이 유 전 회장이 상임고문으로 선임돼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현실적인 목적도 달성하지 못해 더욱 문제로 지적된다. 여기에다 정부 관계자들이 유 전 회장에게 ‘자진 사퇴’를 종용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포스코 안팎에서 ‘외압’ 시비까지 일었다.
물론 정부 관계자들은 유 전 회장과의 접촉 사실까지 부인한다. 포스코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라면서 “정부 스스로 떳떳지 못한 행동이었음을 인정하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차라리 정부 ‘간섭’의 불가피성을 설명하고 시장의 이해를 구했더라면 훨씬 당당하게 비쳤을 뿐 아니라 포스코 안팎의 이해 관계자들도 충분히 납득했을 법하다는 것.
정부의 당당하지 못한 태도가 불러온 ‘후유증’은 이뿐이 아니다. 인수위 시절부터 인수위와 정부 관계자들이 포스코 지배구조의 문제점을 거론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오자 유 전 회장측은 청와대 및 민주당 고위 관계자들을 접촉, ‘정치적으로’ 해결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였다. 다행히 정치권 관계자들 역시 정부 입장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뒷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특히 민주당 고위 인사가 유 전 회장에게 ‘자진 사퇴’를 종용했다는 소문이 포스코 내부에 퍼지면서 포스코 전·현직 임원들은 또다시 포스코에 ‘정치 외풍’이 몰아친 것 아니냐고 잔뜩 긴장했다. 특히 민주당 고위 관계자들이 공공연히 당직자들을 공기업 등으로 보낼 것이라는 방침을 밝히면서 이들의 긴장은 더했다. 그러나 유 전 회장 자진 사퇴 외에 정부의 다른 요구가 일절 없자 안심했다는 후문.
포스코 관계자는 “포스코 전·현직 임원들은 새 정부가 유상부 체제에 문제를 제기해 외부 인사를 포스코 경영진으로 보내려고 하는 게 아닌가 하고 예의 주시했는데, 적어도 현재까지는 그런 계획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제는 포스코가 엄연한 민간기업인 만큼 포스코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더라도 시장의 심판을 받을 수 있도록 시장 규율을 강화해 나가는 게 정부가 해야 할 일 아니겠느냐”고 말했다.